시니어 인플루언서 그룹 ‘아저씨즈’의 틱톡 영상이 1000만뷰를 넘었다. 전략이 통한 것 같다.
늘 단순하게 가려 한다. 멤버들에게 무엇을 촬영할지 미리 말하지 않는다. 당일에 알려주고 5분 연습한다. 촬영도 두 번이면 끝이다. 건물 1층에서 찍으면 엘레베이터 타고 올라오면서 편집해 SNS에 업로드한다. 애매하게 멋 부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조금 부족해도 멤버들이 즐거워하는 현장 분위기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
아저씨즈라는 이름은 누가 정했나.
나의 촉이었다. 처음에는 ‘그레이 아이콘’ 등이 언급됐다. 아저씨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자 만드는 콘텐츠인데, 이것저것 피하는 단어를 쓸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아저씨라는 단어에 ‘꼰대’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 있다 보니 내부에서도 동의를 모으기 쉽지 않았다. 그냥 밀어붙였다. 주도권을 가지고 어떻게 보면 멤버들의 의견을 묵살했다. 그게 포인트다.
무슨 뜻인가.
젊은 디렉터가 30~40살 차이나는 어른들과 일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시니어 산업의 유일한 진입장벽이고, 그래서 팀조차 못 꾸리는 경우가 많다. 일단 진행하고 결과로서 보인다. 이제 신용이 생겨서 ‘대장은 생각이 다 있구나’하고 따라오신다. (웃음) 요즘은 시니어들이 브이로그를 시작했으면 해서 내가 먼저 찍고 있다.
모델이 아닌 인플루언서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가 궁금하다.
시니어들도 자기 콘텐츠를 가져야 한다. 시니어 모델 열풍이 불면서 이에 대한 환상도 커졌다. 하지만 지금의 시니어 모델 시장은 경쟁이 심하고 대체되기 쉬운 상황이다. 젊은 사람들은 모델보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 하는 추세다. 밀라논나, 박막례 할머니, 순자 엄마 등 시니어 인플루언서들이 있지만 기획과 편집은 젊은 사람들이 한다.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게 사진·영상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더뉴그레이클럽이라는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이유인가.
그렇다. 3개월간 개인의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을 돕는다. SNS 활용법 등 요즘 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돕고, Z세대 관련 책을 읽고 독서 토론을 하기도 한다. 마지막 날엔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 가서 자신의 이야기로 강의를 하는 시니어 테드(TED)를 기획했다. 보통 시니어들이 무엇을 한다고 하면 미사리 카페를 대여하는데, 최대한 젊은 세대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으로 찾는다.
시니어 산업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시니어가 전 세계에서 가장 젊다. 새로운 감각에 민감하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활용 능력도 앞서 있다. 고령화가 문제라고 하지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새로운 시니어 문화를 잘 세팅해 놓으면 고령화의 모범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실제 일본으로 관련 산업을 확장하고 있다.
닉 우스터를 보고 시니어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그전까지 권정현 대표에게 ‘어른’은 어떤 존재였나.
솔직히 말하면,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해서 별생각이 없었다. 제일 가까운 남자 어른인 아버지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닮고 싶지 않은 가장이었다. 그래서 닉 우스터를 보고 충격이 더 컸을 수도 있다. 나에게 어른은 덜 ‘꼰대’스러우면 다행인, 반면교사 삼는 존재였는데 처음으로 닉 우스터를 동경하게 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나보다 어른인 사람과 친구가 된다는 생각은 감히 못 한 것 같다.
지금은 시니어들과 가장 많이 만나는 젊은이 중 하나일 텐데.
나이 차 난다고 다를 것 없다. 호칭만 선생님일 뿐 같이 카페도 가고 여행도 간다. 예전에 일하던 공유 오피스에서 오며 가며 마주치는 분이 있었다. 옷을 잘 입어서 자꾸 눈길이 갔다. 중국어 에듀테크 스타트업의 공동대표로 계신 분이었다. 서로 눈빛만 주고받다가 지인의 소개로 친구가 됐다. 지금은 더뉴그레이의 시니어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패션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친구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았나.
어릴 때부터 옷 입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생 때부터 내 돈으로 직접 사 입기 시작했는데, 엠씨엠(MCM) 브랜드의 백팩이 한창 유행할 때였다. 백팩을 메고 과외를 하러 갔는데 고등학생들이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비싼 가방 때문에 위화감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때 옷으로 의미 있는 무언가, 남한테 상처가 되지 않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도 적게 들면서 가장 빠르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옷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