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을 있게 한 시작으로 돌아가 보자. 평범한 취준생은 어쩌다 영상을 만들게 됐나?
비디오에 대한 관심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직접 영상을 만들게 된 건 LG에서 대학생 기자단을 하면서다. 전문 지식은 없었지만 콘텐츠 제작을 도맡게 됐다. 당시 주관사가 광고 회사였다. 기자단 활동이 끝난 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 간간이 일거리를 받았다. 이영애 배우를 정말 가까이서 촬영할 기회가 있어 수업을 빼먹고 가기도 했다. 당시 학점이 3점 미만이어서 출석 한 번이 소중한 상황이었다.
유튜브 ‘원의 독백’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싶었다. 당장에 돈이 되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LG의 광고 회사와 일하던 때의 갈증도 작용했다. 내 제작을 많이 믿어주셨지만 더 자유로운 프로젝트를 원했다. 당시엔 취업도 어려웠고 학점 3점이 취직의 마지노선처럼 느껴졌다. 원의 독백이 나만의 포트폴리오가 돼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왜 독백의 형태로 기획했나?
내가 주인공이 되길 원해서다. 유튜브엔 브이로그든 먹방이든 장르가 뚜렷한 채널이 많다. 그렇게 되면 채널의 주인공은 그 소재가 된다고 생각했다. 테크 유튜버가 갑자기 패션이나 음악을 다루면 당연히 조회 수가 떨어질 거다. 채널의 주인공에 나라는 사람과 내 생각을 놓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테크, 패션, 음악, 그 어떤 것이든 다룰 수 있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사람들의 관심이 유지되는 탄탄한 브랜딩이 된다. 독백의 범용성은 큰 것 같다.
원의 독백에선 시대정신이 읽힌다.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으리란 확신이 있었나?
바이럴이 되리란 생각은 못 했다. 나에 대한 브랜딩이 주된 목적이라 그저 사람들이 다루지 않을 법한 사소한 얘기나 잡념을 풀었다. 댓글이 하나 둘씩 달리고 조회 수가 늘어가며 이것이 나만의 얘기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더라. 사실 원의 독백을 처음 시작할 땐 취업도 잘 안 되고 외로웠다. 영상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고 에너지를 얻는 걸 보며 혼자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구독자분들이 키워 준 채널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소셜 미디어든 어디든 독백을 하고 살아간다. 원의 독백이 특별할 수 있던 이유는 뭘까?
남의 고민은 가벼워 보인다. 내 고민은 무겁게 느껴진다. 인지상정이다. 내 고민이 가볍게 소비되지 않길 원했다. 더 무게감 있게 표현해 마치 영화처럼 만든 점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먹고 살기 어렵고 취업도 안 되는 게 사회 전체로 볼 땐 보잘것없는 개인의 서사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굉장히 의미 있는 인생의 계단이다. 부정적인 감정조차 소중한 경험이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고민이기 때문이다. 이를 캡처해 영화처럼 남겨놓은 게 원의 독백이다.
여담이지만 공간을 잘 쓴다. 자신이 스크린 속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것 같다.
감사한 피드백이다. 실제로 공간 배치를 매우 신경 쓴다. 영상의 몰입도를 위해 담고자 하는 대상이 서 있는 위치를 조정한다. 원의 독백에선 그 대상이 내가 된다. 주인공이 이 세계 안에서 어디에 위치했는지에 따라 영상의 무드도 크게 바뀐다. 힘든 소리를 고층 아파트 사이에서 하면 이질감이 느껴질 것이다. 나 자신을 때때로 신호등 끝에, 방구석에, 군중 사이에 놓는 이유다. 시청자에게도 주인공이 어디 서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먼저 전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의 독백은 기획도 감각도 힙하다. 트렌드를 좇는 것과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의 비율이 궁금하다.
트렌드는 거의 생각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 100퍼센트다. 무신사에서 콘텐츠를 만들며 의식적으로 유행을 찾아보고 했던 게 다다. 최근의 트렌드는
쇼츠(shorts)에서 생산되는 것 같다.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요즘은 취향도 통제당하는 것 같다. 유튜브 쇼츠를 보면 늘 같은 것만 뜬다. 옆 사람이 보는 걸 나도 보고 있다. 나만의 차별점이 사라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극적으로 짜깁기된 쇼츠로부터 의도적으로 멀어지는 훈련도 필요하다고 본다.
유행과 멀다곤 했지만 특정 브랜드를 다룰 땐 커머셜급으로 풀어낸다. 브랜드나 제품을 바라보는 관점이 궁금하다.
군더더기 없고 실용적인 브랜드를 좋아한다.
애플, 프라이탁, 칼하트 같은 브랜드의 제품을 보면 디자이너가 사용자 입장에서 고민한 흔적이 느껴진다. 이를 엿보는 것을 좋아한다. 브랜드 철학이나 창작자의 관점은 늘 흥미롭다. 시작은 애플이었다. 중학생 때 세뱃돈 모아 사곤 했다. 사람들은 애플이나 프라이탁을 예쁜 쓰레기라고 하는데 잘 이해하지 못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