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한 러쉬코리아 마케팅본부장 - 러쉬의 브랜드 가치에는 거품이 없다

러쉬의 브랜드 가치에는 거품이 없다
러쉬코리아 김상한 마케팅본부장

 
돈은 정직하다. 소비자는 이제 환경을 파괴하고 윤리를 저버린 기업을 소비하지 않는다. 상품의 품질을 넘어, 달성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 기업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갑을 연다. ‘가치 소비’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20년 전부터 한국에서 트렌드를 선두해 온 기업이 있다. 동물과 환경, 사람을 믿는(We Believe) 글로벌 뷰티 브랜드 러쉬(LUSH)다. 러쉬코리아는 한국 런칭 20주년을 맞아 ‘아트(Art)’라는 새로운 방향을 설정했다. 올해 러쉬는 기후 변화로 사라지는 우리나라의 자생 식물을 주제로 발달 장애 예술가 50인의 작품을 선보이는 ‘제2회 러쉬 아트 페어 –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를 개최한다. 러쉬가 예술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상한 마케팅본부장을 만나 러쉬코리아의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러쉬코리아의 새로운 방향성은 ‘아트’다. 왜 아트를 택했나?

필연적인 선택이자 선포였다. 예술은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활동이고, 경계 없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것을 만들어낸다. 러쉬 역시 유연한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 이미 아트가 기업 문화에도, 제품에도 녹아 있다. 입욕제 등 제품도 조각품을 만들 듯 손으로 빚고 뭉친다. 배쓰밤은 욕조에 풀리면서 하나의 세계가 펼쳐진다. 제품을 개발할 때부터 러쉬는 아트 정신을 가지고 있다. 새로운 방향성은 아트를 본격적으로 아트 신이나 시장에 들어가 연결 고리를 만들고 확장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아트 페어를 개최한다. 어떤 전시인가?

50인의 발달 장애 예술가, 13곳 수목원과 협업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전시다. 기후 변화로 사라져 가는 우리나라의 자생 식물의 중요성을 알리는 전시로, 예술가들이 수목원에 방문해서 식물들을 보고 느낀 감정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8월 31일까지 전국 18개 매장에서 전시를 하는데, 러쉬코리아 웹사이트에서도 디지털 갤러리로 볼 수 있다. 9월 8일부터는 5일 동안 국립수목원에서 100여 점 되는 작품을 다 모은 특별전이 진행된다.

러쉬 이태원역점 ‘제2회 러쉬 아트페어’ 모습 ©LUSHKOREA
서울 가로수길에 있는 매장을 다녀 왔다. 통유리 앞에 작품이 전시돼 있더라.

러쉬 매장의 콘셉트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러쉬 매장은 고객이 제품과 매장을 즐길 수 있도록 1:1로 눈 마주치며 소통한다. 판매가 아니라 즐거운 경험이 핵심이다. 그런 매장에서 미술 작품까지 함께 즐길 수 있으면 고객 경험이 더욱 풍부해질 거라는 판단이었다. 또 러쉬의 고객뿐 아니라 거리를 지나가든 누구나 편안하게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고 퍼블릭하게 접근했다. 러쉬가 장소를 제공함으로써 발달 장애 아티스트들의 강렬한 작품이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바랐다.

유명한 작가, 큰 갤러리가 아닌 발달 장애 아티스트를 콜라보레이션 대상으로 선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러쉬가 한국에 들어온 지 올해로 21년째다. 단 한 번도 스타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 러쉬는 광고 이미지로 상품을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아트 콜라보레이션에 대해 접했을 때 러쉬의 철학과 신념에 맞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현재 러쉬코리아와 함께하고 있는 한젬마 부사장님의 적극적인 서포트로 발달 장애 작가들과의 인연이 만들어졌다. 접할 수록 그들의 작품성이나 기질이 러쉬의 것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러쉬 강남역점 ‘제2회 러쉬 아트페어’에 전시된 이다래 작가의 작품 ©LUSHKOREA

어떤 점에서 그랬나?

먼저, 작품 색감이 강렬하다. 개성이 뚜렷하고 톡톡 튀는 표현 방식이 러쉬의 성격과 잘 맞는다. 발달 장애 아티스트들은 교육을 받아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천재성 혹은 집요함, 그리고 새롭게 사물을 보고 느끼는 통찰력이 뛰어나다. 그런 고유의 기질 역시 러쉬의 성격과 닮았고, 브랜드 메시지를 함께 하기에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팀 내부에서 아트 페어는 ‘후원’이 되면 안 된다는 토론을 격렬하게 했다는데.

돕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프로젝트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는 ‘동행’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아티스트의 작품만 가져오는 게 아니라 그들이 활동하는 공동체와 소통하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도록 기회를 노출하는 데 집중한다.

지난 1회 아트 페어의 주제는 멸종 동물이었다면, 이번에는 한국의 사라지는 자생 식물이다.

기후 위기는 우리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여기에 대한 접근법을 모색하던 중 산림청 산하 수목원과 연이 닿았다. 수목원은 종을 보전하고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는 역할을 한다. 러쉬코리아는 사라져 가는 자생 식물의 현실을 조명해 보고자 하는 진심을 전달했고, 수목원이 동참 의사를 밝혀 주었다. 예술가들이 자기 지역에 있는 수목원을 방문해 실제로 식물을 보고 느끼고 관찰했고, 그 결과가 그림으로 나온 것이다.

좋은 취지의 캠페인이지만, 러쉬는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다. 마케팅적인 아쉬움은 없나?

러쉬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 대신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는 캠페인을 한다. 불필요한 포장재를 없애자는 의미로 옷을 벗고 행진하는 ‘고 네이키드(Go Naked)’ 캠페인은 올해 10번째로 진행되고, 2012년부터 꾸준히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해 왔다. 캠페인이 매출과 연결된 사례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 진행한 손을 씻는 캠페인이다. 위험한 시기였지만 언제든 고객이 매장에 와서 손을 닦고 갈 수 있도록 했다. 모두가 예민하고 두려움 많고 고립되는 시기였다. 매장에서 근무하는 ‘해피 피플(직원)’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그 마음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고, 러쉬는 코로나19 당시 매출이 상승했다. 캠페인으로 메시지를 풀어내는 건 돌아가는 길 같아도, 의외로 정공법이다. 러쉬는 단순히 세일즈를 올리기 위해 신념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메시지화하는 데 주력한다.

하지만 영리 기업으로서 매출을 무시할 수는 없다.

매출은 제품으로 승부한다. 기본적인 제품력을 바탕에 두고, 콜라보레이션 라인을 출시해 신규 고객을 유치하고 있다. 최근에는 브랜드 〈바비〉와 콜라보레이션한 라인이 출시되었다. 애니메이션 〈원피스〉, 〈스폰지밥〉 등과도 함께했다. 캠페인은 자연과 인권, 동물과 상생한다는 브랜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투자다.

영국 본사는 러쉬코리아의 새로운 방향성에 어떤 반응을 보였나?

한국 파트너에서 세일즈를 위해 아트를 선택했다고 하면 설득하기 어려웠을 거다. 우리가 아트를 택한 이유와 본질을 전달했을 때 영국에서도 흔쾌히 환영했다. 영국에서도 이미 자폐성을 가진 아티스트 공동체 아트하우스 언리미티드(ARTHOUSE Unlimited)와 함께 작품을 낫랩(Knot-Wrap·보자기)으로 출시했다. 10년 전에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여사와도 환경 문제에 대해 ‘기후 혁명(Climate Revolution)’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오는 9월에는 제1회 아트 페어에서 연이 닿은 전유현 작가의 작품을 글로벌에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하여 코리아에서 직접 리드했고, 러쉬코리아 단독으로 낫랩을 출시할 예정이다. 영국 본사의 경우 확실한 가이드는 있으나 그 가이드 내에서, 러쉬의 가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는 새로운 시도에 열려 있다.

훼손되어선 안 되는 러쉬의 브랜드 가치란 어떤 것인가?

환경을 구성하는 자연과 인권, 동물과 상생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 비전 하에 ‘We Believe’라는 핵심 가치 6가지가 있다. 러쉬는 공정하게 얻은, 신선한, 100퍼센트 식물성 원재료를 이용해 핸드메이드로 제품을 만든다. 제품은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포장재 없이 고객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이런 이념을 실천하는 것이 직원들인 만큼, ‘해피 피플’로 불리는 직원들이 가장 큰 브랜드 가치다.

2020년대 들어 우리는 환경과 동물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러쉬는 20년 전부터 이것을 이야기했다.

러쉬는 가능성을 믿는 브랜드다. 우미령 대표가 한국에 러쉬를 들여오려고 시도할 때 다른 경쟁자는 대기업이었다. 본사가 지금의 대표를 선택한 이유는 자금력이 아니라, 브랜드의 신념을 한국에 고스란히 녹여줄 수 있다는 믿음과 가능성이었다. 론칭 후 메시지를 로컬화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탈북 청소년을 위한 ‘두드림’,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화(花)를 내다’ 등 로컬에 맞는 캠페인을 진행하며 러쉬를 한국에 알렸고 차근차근 환경 이야기도 시작했다. 러쉬코리아가 단숨에 지금 같은 브랜드가 된 것은 아니다. 원칙을 지켜가며 지속적으로 같은 메시지와 같은 방법을 취했던 것이 지금의 메시지를 만들었다.

용기의 원천은 무엇인가?

러쉬에는 여러 가치가 있지만 가장 핵심은 사람이다. 가치나 신념이 좋고, 그걸 텍스트나 제품으로 표현하는 회사는 많다. 그러나 동참하는 직원이 없으면 실현이 어렵다. 러쉬는 직원을 교육하는 데에 많은 품을 들인다. 광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직원들이 매장에서 직접 고객과 만나 러쉬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600여 명의 러쉬 직원은 각자가 앰배서더가 돼 브랜드를 알린다. 그것이 코로나19 시기에도 성장할 수 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비건 뷰티 브랜드가 치고 올라오고 있다. 러쉬만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러쉬는 ‘지속 가능’을 넘어 ‘재생’까지 나아간다. 원재료의 씨앗이 땅에 심기는 순간부터, 공병을 매장에 반납해 재활용하는 자원 순환까지 모든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브랜드 가치를 지켜나가려고 한다. 재료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주변 자연이 훼손되지 않는지, 지역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는지 등 제품 그 이상을 보려는 노력이 지금 소비자들의 가치에 부합하는 러쉬의 경쟁력 아닐까.
채러티 팟 코인. 채러티 팟 보디 로션의 판매금(부가세 제외)은 100퍼센트 인권, 동물 보호, 환경 보전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소규모 단체에 기부된다. ©LUSHKOREA
한 사람의 직원으로서 러쉬는 어떤 회사인가?

자율성이 높고, 그만큼 책임감이 따른다. 달리 말하자면 일이 많다. (웃음) 마케팅 본부에 있지만 리테일 본부, 경영지원팀과도 협업할 일이 정말 많다. 다 같이 동참하는 데 있어 적극적인 분위기를 띠기 때문에 일의 영역이 넓다. 힘들지만, 그만큼 직원을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의지가 있으면 성장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회사기도 하다. 나의 경우,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해서 매니저, 본사 리테일 팀을 거쳐 마케팅 본부의 본부장이 되었다. 경력상 리테일 베이스였고 마케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회사에선 가능성을 본 거다.

러쉬만의 조직 문화를 만드는 비결이 있나?

창의성과 다양성은 러쉬의 성격이다. 다수의 직원이 매장에서 근무하다가 오피스로 옮겨 왔는데, 이 역시 가능성과 창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영의 한 부분이다. 닉네임은 글로벌 러쉬 중에서도 러쉬코리아만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브랜드를 들여올 당시 수평적인 소통을 위해 대표님이 낸 아이디어다. 한국에서 닉네임 문화가 생소하던 때다. 직원들이 입사하면 제품 이름을 바탕으로 닉네임을 하나씩 지어 주기도 했다. 또한 요즘은 사내 ED&I 다양성 교육 등으로 유연한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러쉬 직원은 적극적이기로 유명하다. 실제로도 그런가?

기본적으로 ‘해피’하지만, 전부 외향적인 건 아니다. 다양한 성향이 존중받으며 조화롭게 공존한다. 다만 러쉬의 이념과 신념에 동참하는 데 있어서는 적극적이다. 최근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했을 때도 다들 휴무를 반납하고 참여했다. 브랜드 메시지나 세상을 변화하는 데 있어서는 두려움 없이 함께한다. 그런 직원들의 마음과 행동이 러쉬의 비즈니스가 이어지는, 매출이 떨어지지 않는 원동력이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지금껏 〈바비〉, 〈스폰지밥〉 등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해 왔는데 새롭고 흥미로운 콜라보레이션 플랜이 내년까지 잡혀 있다. 12월에는 채러티 팟의 10주년 행사가 진행된다. 매출이 전부 기부금으로 가기 때문에 판매를 결정하기 쉽지 않은 물품인데도, 러쉬의 가치를 이야기하기에 가장 좋은 제품이기에 10년 동안 판매해 123개의 단체에 기부를 해 왔다. 그 단체들과 함께 뜻깊은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러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동물과 자연, 인간이 조화롭게 상생하고 공존하는 세상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러쉬는 ‘재생’이라는 새로운 목표점을 두고 앞서 가려고 하고 있다. 앞으로 러쉬는 직원뿐 아니라 소비자, 대중이 함께 목소리 낼 수 있는 가슴 뜨거운 캠페인을 진행하며 우리의 신념이 이뤄지는, 더 나은 러쉬스러운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백승민 에디터

* 2023년 8월 29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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