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해녀의 부엌 김하원 대표
사람은 사람의 이야기가 고프다. 물론, 배도 고프다. 이야기를 향한 욕구와 맛있는 음식을 향한 욕구를 결합해 세상의 문제 한 구석을 해결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해녀의 부엌이다. 해녀의 부엌은 연극과 음식을 결합하고 관객을 치유의 경험으로 부른다. 시장을 찾지 못했던 해녀의 해산물은 값진 식탁 위에 오를 수 있게 된다. 이야기와 해녀, 음식의 결합이라는 낯선 비즈니스 모델은 김하원 대표가 쌓아 온 경험과 궤적에서 비롯했다. 김하원 대표는 말한다. 예술가와 사업가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중요한 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풀어 내는 능력이라고. 해녀의 부엌이 발견한 해녀, 음식, 이야기에는 어떤 비즈니스 철학이 담겨 있을까?
해녀의 부엌은 해녀의 이야기와 해녀의 해산물을 판매한다. 이런 비즈니스를 예상했었나?
제주에서 태어났고, 해녀 집안에서 자랐다. 어느 지역 사람이든 다 그렇겠지만, 사실 그곳에서 살다 보면 내 주변의 환경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해녀도 당연한 존재였다. 한 번도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내가 해녀라는 아이템으로 비즈니스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웃음)
왜 해녀의 이야기와 해산물을 비즈니스화해야겠다고 결심했나?
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다. 방학 때 제주도에 잠시 들렸는데 부모님이 해산물 판로로 고생하고 계시더라. 해녀가 채집한 해산물은 대부분 일본으로 판매되는데, 당시 엔저 현상으로 인해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내수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가격 주도권은 모두 일본 측에 있었다. 20년 전보다 가격이 하락했더라. 왜일까 생각했다. ‘해녀는 유네스코에 등재될 만큼 우리나라의 유산이 됐는데, 왜 해녀의 해산물은 가치가 없는 걸까?’ 해녀가 잡은 해산물의 매력을 알려야겠다고 판단했다. 연기를 배운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해녀가 채집한 해산물의 매력은 무엇이라 보나?
자연 친화적인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해녀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자연을 파괴한다. 반면에 해녀는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자신들의 문화를 만든다. 해녀들은 무분별하게 어획 활동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숨의 길이만큼 해산물을 채집한다. 바다에서 해산물이 자라나는 시간을 기다리고, 바다가 허락한 ‘물때’에 해산물을 채집한다. 바다의 시간, 바다의 상태, 바다의 환경을 최우선으로 살아온 것이다. 바다가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한 새로운 종의 형태가 해녀가 아닐까. 그런 해녀의 마음가짐을 모두가 배워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어느 한쪽의 이득과 희생이 아닌, 상생과 공생을 위한 방식을 택하고 건강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다.
해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 지점이 비즈니스를 꾸릴 때 도움이 됐나?
나는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작업하는 분들이 내 감각에 ‘해녀스러움’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더라. (웃음) 사실 해녀가 유네스코에 등재되고 나서 수백, 수천 개의 해녀 콘텐츠가 나왔다. 해녀의 부엌은 그런 콘텐츠들과 무엇이 달랐을지 생각해 봤다. 진짜에서 나오는 힘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해녀의 부엌은 해녀를 해석하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해녀, 내가 봐왔던 해녀를 그대로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해녀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모두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본질에 더 깊게 들어가고자 노력했다.
익숙하고 잘 아는 건 오히려 본질을 파고들기 어렵지 않나?
어린아이들이 당연하게 먹던 것의 이름을 알게 됐을 때의 느낌, 그와 비슷한 걸 느꼈다. 내가 당연하게 경험했던 순간들, 감각들이 이런 이유로 생겨났다는 걸 배우니 모든 게 새롭고 다르게 느껴지더라. 해녀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지, 그래서 어떤 삶의 방식이 태어났는지를 알게 되니 내가 먹는 음식도 새로워졌다. 많은 이들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사람은 뭔가를 절이고, 보관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해녀들의 음식은 대부분 날 것의 재료를 쓴다. 우영팟(텃밭)과 바다의 식재료에 날식초와 날된장으로 간한 음식들. 대표적으로 물회 같은 것이다. 이야기도 비슷한 힘을 갖고 있다. 그냥 먹는 음식과 자식, 형제를 키워낸 사람이 물질한 음식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음식을 대접받을 때의 감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왜 해녀의 부엌을 소비한다고 생각하나?
치유를 경험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처음 해녀의 부엌을 기획할 때, 이 공간이 어떤 공간이 됐으면 좋을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때 내린 답이 치유의 순간을 경험하는 공간이었다. 첫 번째로는 해녀들이 그런 경험을 했으면 바랐다. 고모가 해녀인데 항상 당신을 초라하게 생각하시더라. 형제들을 뒷바라지하느라 공부를 못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내가 한 여성으로서 성장하다 보니, 저들처럼 살 수 있을까 하는 경외심이 들었다. 자연과 공존하는 정신을 지키고, 그 문화를 이어나가는 해녀들이 자긍심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게 해녀의 부엌이 만들어진 첫 번째 이유였다. 이들이 치유돼 가는 과정을 보며 관객들도 함께 치유의 순간을 느낄 것 같다. 사람은 사람의 이야기가 고플 수밖에 없다. 사람의 이야기를 원하는 이들이 이 공간에서 따스함을 느끼길 바랐다.
연극을 비즈니스로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게 연기뿐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속 가능한 일을 해야 하는데, 남들이 ‘잘 된다’고 말하는 걸 하면 오래 비즈니스를 해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항상 예술에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 잠재력에 비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늘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만 했고, 지속 가능하다기보다는 일회성에서 끝났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문화 예술도 지속적인 무언가를 창출하는 것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생력과 지속 가능성이 비즈니스에 있어 핵심이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 일회적인 것, 단발적인 것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수익 모델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때 무엇으로 돈을 벌지를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을지와 제주도에 사람들은 무엇을 하러 오는지를 조사했다. 가장 많은 지출이 일어나고, 여행 코스를 짤 때 중요한 게 맛집이더라. 맛집 투어 반열에 올라야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돈을 쓰겠구나, 생각했다. 그런 수익 모델에 경험적 측면, 즉 연기를 추가해 탄생한 게 해녀의 부엌이다. 외부와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자생력 있는 문화 예술 기업이 되고 싶었다.
해녀의 부엌이라는 비즈니스는 김하원 대표 개인에게서 출발한 것 같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비즈니스의 강점은 무엇인가?
계속 버틸 수 있다. 돈을 벌지 못하고, 내 걸 다 쏟아부어서 망해도 버틸 수 있다는 것, 이 지점이 생각보다 필수 조건이다. 지금의 비즈니스를 만들 때도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을 테다. 그럼에도 결국 예술이라는 단어가 나와 맞는 단어였다. 스타트업은 버티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버틸 수 없다면 회사도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비즈니스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늘 팀원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예술가와 사업가는 똑같다는 이야기다. 근데 단 하나의 차이가 있다. 그 하나의 차이로 예술가와 사업가가 나뉜다. 예술가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사업가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이야기를 한다.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세상에도 필요한 이야기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녀의 부엌은 예술가의 콘텐츠를, 사업가의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듯하다.
나는 해녀의 삶을 연기라는 도구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방식은 세상이 원하는 방식이어야 했다. 그래서 맛집이라는 타이틀을 선택했다. 내 세상을 만들어 놓고 남에게 들어오라고 하는 것보다, 남의 범위 안에서 내 것을 끼워 넣는 편이 더 낫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세상을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즈니스가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글
김혜림 에디터
* 2023년 9월 19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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