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SF 양상환 센터장 - 네이버가 기술 기업에 투자하는 이유

네이버가 기술 기업에 투자하는 이유 
D2SF 양상환 센터장


스타트업 소식에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바로 D2SF다. 양상환 센터장은 테크 스타트업에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 D2SF를 네이버의 창문이라 소개한다. 기술 시장은 빠르게 변한다. 몸집이 큰 기업은 그 흐름에 빠르게 대응하기 어렵다. 미래는 어찌 됐든,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D2SF는 그 예측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데서 네이버의 혁신이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기민하고 민첩하게 기술 시장을 바라보는 D2SF에게 물었다. 네이버는 왜, 이 무모한 기술 기업들에 투자를 이어 가나? 어떤 기술이 결국 기업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D2SF 팀은 초기 기술 기업에 투자한다. D2SF 팀이 투자하는 기업들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언썽히어로(UnsungHero)’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름이 불리지 않는 영웅이라는 뜻인데, 기술 계열, 개발자의 콘퍼런스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개발과 기술은 제품과 서비스, 사용자 가치를 만드는 데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주목받는 경우가 적다. D2SF가 투자하는 스타트업들은 그런 보이지 않는 영웅의 역할과 정체성을 갖고 있다. 기술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도구이자 과정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기술들이 없으면 제품이 만들어질 수 없다.

새로운 기술을 갖고 있으면 기술 스타트업인가? D2SF 팀이 정의하는 기술 스타트업은 무엇인가.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기술 자체에 집중했다. 10년 전만 해도 지금과 다르게 생태계 자체가 약해서, 내심 실리콘밸리처럼 엔지니어가 대접받고 성장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 기술 자체에 스트레스를 주자, 점을 찍자는 의도가 있었고 원천 기술과 유니크한 기술을 가진 팀과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팀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결국 기술도 시장의 문제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더라. 원천성에 집중했던 과거와는 달리 오히려 지금은 아이디어와 실행력, 기술을 모두 겸비한 기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사업으로 바뀌지 않은 기술은 스타트업보다는 연구에 가깝다.

일종의 시행착오다.

과거에는 기술 자체의 밸류를 너무 믿거나 기술의 희소성, 완성도에 집중했다. 실패를 경험하면서 기술은 결국 수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제품이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기술도 함께 실패한다. 이제는 기술도 좋지만 결국 이 기술을 통해 어떤 제품을 만들고, 어떤 고객을 만날지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됐다. 페인포인트를 발견하고, 그를 잘 해결하기 위해 솔루션이 필요하다. 기술로 그를 해결하고자 하는 기업들에서 가능성을 본다.

어떤 기업이 기술 기업의 정의에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하나?

오픈AI는 기술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서비스를 만든 회사다. 챗GPT 열풍 이전 AI 붐이 일었던 때가 2015년 즈음이다. 당시 구글의 알파고, 딥마인드가 중심에 있었다. 회사를 만들고, 기술을 개발한지 8년만에 빛을 본 것이다. 지금은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블록체인, 메타버스도 언젠가는 부활할지도 모르겠다. 명함 어플리케이션인 ‘리멤버’나 배달 플랫폼인 ‘배달의 민족’도 일종의 기술 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독보적인 데이터를 갖추고 있다. 그들만이 가진 데이터 위에 기술이 쌓이고, 끝단에 사용자 경험이 덧붙어 비로소 제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직접 투자했던 기업 중 기억에 남는 곳이 궁금하다.

시장이 변하면 그 시장이 필요로 하는 기술도 달라지기 때문에, 시장의 변화에 잘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 기술 하나로 시작해도, 계속 민감하게 시장에 주목하는 팀들은 풍파를 견뎌낼 수 있는 듯하다. AI 칩을 만드는 스타트업인 ‘퓨리오사’에 2017년 투자했는데, 당시만 해도 AI와 딥러닝이 많이 알려진 상황은 아니었다. 시장에 공감대가 없는 상황인데, 심지어 스타트업이 AI 칩을 만든다는 건 어불성설 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초반에는 힘든 상황을 많이 겪었는데, 서로를 독려하면서 동력을 잘 얻었던 것 같다.

퓨리오사는 시장의 변화를 잘 예견했던 기업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시장의 변화에 맞게 능동적으로 대처한 기업도 있었다. ‘노타’라는 기업이 있는데, 원래는 키보드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스타트업이었다. 타자를 치다 보면 오타가 나기 마련이지 않나. ‘노타’는 사용자가 오타 내는 메커니즘을 학습해 인공지능으로 자동 보정을 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이었다. 키보드 시장 자체가 빠르게 사라져서 위기를 맞았는데, 약간만 시선을 바꾸니 또 다른 게 보였다. 노타는 스마트폰 위에 올라가는 작은 AI 딥러닝 모델을 누구보다 빠르게, 잘 만들었다. 키보드를 쓸 때 계속 서버 통신을 하면 딜레이가 걸린다. 그래서 노타는 직접 AI 솔루션을 만들었는데 그게 특별한 기술력이 된 셈이다. 노타는 기술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시장으로 피벗하며 능동적으로 대응했다. ‘노타’라는 이름도 사실은 ‘노 오타’에서 시작한 건데, 시작할 때의 취지를 잊지 말자며 이름을 바꾸지 않더라.

언젠가 빛을 보는 기술 기업의 특징도 궁금하다.

가만히 보면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골목을 지키는 기술들이 있다. 아파트를 건설하는 일에 비유하면 더 이해가 쉽겠다. 아파트를 짓는 건 엄청난 규모의 건설 회사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개인도, 스타트업도 아파트를 지을 수는 없다. 고객들은 다 지어진 집 안에서 자신의 침실을 꾸미고, 책상을 꾸민다. 그 중간에 인테리어 업자가 있다. 인테리어는 규모가 큰 대기업도, 개인으로서의 고객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들은 인프라와 고객 경험을 중간에서 잇는 역할을 한다. 기술 영역에도 항상 거대 기업의 인프라와 사용자의 영역을 이어 주는 기업이 존재한다.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면 이 중간 영역을 빠르게 차지할 수 있다.

기술 투자는 리스크가 크다. D2SF에게는 무엇이 리스크인가.

재무적 투자가 목적은 아니다. D2SF는 기술 스타트업과 좋은 관계를 맺고 네이버 성장의 징검다리를 만드는 걸 목표로 삼는다. 그런 전략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게 회수라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리스크에 대한 관점도 약간 다르다. 만약 투자를 이어 나갔는데 네이버와의 시너지가 발휘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면, 그것이 하나의 리스크일 것이다. 중요한 건 시너지와 연결이다. 네이버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술 영역의 변화를 선도하거나 따라 달릴 수는 없다. 그러나 스타트업들을 통해서 시장의 상황과 동향을 마치 창문 밖을 보듯 관찰할 수는 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플레이어들 간의 네트워킹도 굉장히 소중한 요소다.

“창문”이라는 표현이 강렬하다. 네이버에게 기술 스타트업 투자는 세상을 보는 창 같은 것인가.

네이버는 안 하는 게 없어 보이는 기업이지만, 시장은 그런 네이버보다 더 빠르게 변한다. 기술 자체의 사이클도 빨라져 더더욱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모든 기업은 이런 종류의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한다. 이때 작지만 빠른 스타트업과 관계를 맺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 시장이 예측 가능하다면 천천히 움직여도 상관없다. 그러나 그 기회의 창은 정말 잠깐 열렸다 닫힌다.

네이버의 기술도 큰 변화를 겪어 왔다.

로봇, 자율주행, 디지털트윈 기술은 5~6년 전만 해도 대부분이 손대지 않는 영역이었다. 인공지능 모델인 하이퍼클로바, AI 기업이라는 네이버의 정체성도 7~8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물론 네이버가 갑자기 신약 제조를 하지는 않겠지만, 헬스 케어는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 (웃음) 다가올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놓고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D2SF가 필요한 것 아닐까.

D2SF가 그리는 미래도 궁금해진다.

우리가 필요 없는 조직이 되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사실 회사라는 게 그렇다. 야생마처럼 앞만 보고 직진하게 된다. 그러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옆도 돌아보고, 발견하고, 또 협력해야 한다. 각 조직이 알아서 외부와 빠르게 호흡하는 게 가장 이상적인데, 그런 시간과 비용을 D2SF가 감당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 단계에 언제 도달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상은 이상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나.

김혜림 에디터

* 2023년 11월 14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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