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상재 최주연 디렉터 - 타일을 사지 않아도 생각나는 브랜드

타일을 사지 않아도 생각나는 브랜드
윤현상재 최주연 디렉터


타일 매장이 빼곡히 들어선 학동역 부근에 윤현상재의 본사가 있다. 건물 꼭대기로 올라가면 전시장도 있다. 사무실에 예술 작품을 전시해 놓는 것은 특이하지만, 동시에 어딘가 ‘윤현상재’스럽다는 모습을 지울 수 없다. 타일 기업으로 시작한 윤현상재는 타일이 필요 없는 이들에게도 찾고 싶은 브랜드가 됐다. 윤현상재는 어떻게 타일을 넘어서는 브랜드를 일궜을까.
윤현상재는 타일 회사인가?

윤현상재라는 이름에서부터 레거시가 느껴지지 않나. 30년 정도 타일을 만들어 온 회사다. 지금은 이 시대의 문화를 만드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굳이 타일만이 아니더라도 인테리어, 디자이너, 건축가가 모여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10년 전에는 스페이스비이를 만들었다. 리브랜딩을 하면서 들뢰즈의 ‘되기’라는 개념에 주목했고 사물이 또 다른 상태를 이루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리브랜딩의 계기가 궁금하다.

타일 분야는 가격 경쟁이 엄청났다. 피로감을 느꼈다. 문득 학교와 집, 직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아하는 작품이나 음악, 취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터보다는 취향과 경험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 기업의 이야기에는 마음으로 통하는 것에서 오는 감동이 있다. 이 감동이 그 브랜드의 팬덤을 만든다. 좋은 회사, 철학이 있는 회사는 고객이 먼저 찾게 된다.

기존의 타일을 파는 방식에서는 어떤 한계를 느꼈나?

과거에는 SNS와 같은 외부의 창구가 없었으니, 완전히 디자이너만의 리그였다. 사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이런 회사가 크게 확장하는 게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나만 아는 맛집이 좋으니까. (웃음) 그래서인지 타일 회사는 모두 아는 사람만 찾는 그런 시장이었다. 점차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나니 이 기회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려움보다는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걸 감지했던 것 같다. 윤현상재만이 가진 강점이 있으리라 판단했고, B2B보다는 B2C에 초점을 맞춰 소비자를 공략했다. 그들과 소통하는 데서 시작했던 것 같다.
유통기한 프로젝트 <EXP:8Seasons>가 진행되는 윤현상재 머티리얼 라이브러리 건물 ⓒ윤현상재
윤현상재에는 윤현상재스러운 무드와 분위기가 있다. 팬덤을 만드는 데 유리한 요소였을 것 같다.

리브랜딩을 하기 전에 ‘좋은 회사는 어떤 회사일까’를 고민했다. 이때부터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의 본질이 중요해지더라. 오너의 마음이 그 회사의 모습을 결정하는 듯했다. 나는 예술을 좋아한다.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고, 좋은 작품을 지향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창의적인 것에 열광하기도 한다. 이런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 공통분모를 가진 이들이 즐겁게 들르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의 핵심 가치는 무엇일지를 계속해 고민했다.

그렇게 찾은 윤현상재의 본질은 무엇인가.

물성과 머티리얼(material)이라고 정의한다. 타일도 그 물성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리의 관심은 타일보다도 넓다. 재료를 봤을 때 호기심을 갖고 이 재료가 결국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윤현상재는 ‘이건 타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야(It’s not about tile)’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예술과 건축은 모두 재료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이때 재료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영감의 원천이 된다.

윤현상재가 정의하는 타일도 궁금하다.

타일은 마감재인 동시에 꿈에 관한 이야기다. 타일은 공간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다. 그렇다면 타일도 내가 살고 싶은 집, 머물고 싶은 공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언어가 된다. 이에 더해 윤현상재는 타일을 구매하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일 없는 삶을 이야기하는 타일 회사라니, 신선하다.

사실 자기 집이 아닌데 타일까지 사서 붙이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 그래서 타일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게 필요했다. 과거 블로그를 활발히 운영할 때는 건축과 디자인과 관련한 포스팅을 자주 올렸다. 윤현상재를 알리고 싶은데, 타일만으로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았다. 살고 싶은 집, 머물고 싶은 오피스로 개념을 확장했고, 그 공간에 삶과 감정도 함께 담았다. 소비자와의 네트워크를 그렇게 확장해 나갔다. 소통도 활발히 했다. 기업이 하는 블로그들, 대부분 재미가 없다. 생명 같지도 않은 사람한테 말 걸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항상 사람을 통한다는 것,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심으로, 또 올드한 방법으로 소통을 이어 나갔다.
스페이스 비이에서 진행 중인 최지영 개인전 〈경계〉ⓒ이정우
2011년 스페이스비이를 오픈했다. 윤현상재에게 스페이스비이가 필요한 이유는 뭔가.

타일을 사지 않을 때도 생각나는 브랜드, 들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인테리어 업자는 매일 들르는 곳이 타일 가게이지만, 일반인은 타일을 살 기회가 한 번도 없는 사람도 많을 테다. 게다가 타일은 옷이나 신발, 책이나 음반처럼 빠른 속도로 사이클이 돌아가는 물건도 아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이 많이 모여야, 사람이 많이 찾아야 그 공간과 브랜드에 힘이 생긴다. 기회는 그 힘에 기반을 둔다. 막상 집을 짓지 않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장기적인 인식과 이미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타일을 좋아하는 이들이 스페이스비이에 모이도록 하고 싶다.

스페이스비이와 윤현상재 전반을 가로지르는 원칙이 있었나.

우리는 윤현상재가 프랜차이즈를 잘 만드는 거대 기업이라기보다는 골목 한구석에서 묵묵히 일하는 작은 가게라고 생각한다. 이런 가게들은 맛을 깊게 유지하는 데 특화돼 있지 않나. (웃음) 마찬가지로 윤현상재, 스페이스비이도 ‘휴먼 스케일(human scale)’을 지켜 나가려 한다. 사람의 손이 직접 닿지 못하는 범위라면 데이터화가 되기 쉽다. 숫자가 되고, 확장을 지향하게 되는 건데 이때부터는 사람을 잃기 쉽다. 데이터만으로 높은 감도를 유지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새로운 공간에 윤현상재 머터리얼 라이브러리를 마련했다. 왜 라이브러리를 지향했나?

딱 보면 정말 라이브러리라는 생각이 드는 공간이다. 재료별로 모두 아카이빙을 해두었고, 사람들이 손쉽게 재료에 대해 공부할 수 있게끔 구성했다. 대부분 디자이너가 들르는 공간이지만 일반인도 30퍼센트 정도는 오는 것 같다. 문영빌딩에는 2년이라는 유통기한이 있다. 애매한 건물이라 신축을 해서 회사를 확장 이전하려 하는데, 그 사이에 2년이라는 유예 기간이 생겨 버렸다. 그 2년이라는 기한이 정해진 전시 공간을 구성해보자고 해서 만들어지게 됐다.
윤현상재 머터리얼 라이브러리 ⓒ윤현상재
전시 공간에서는 대체로 어떤 전시를 열고 있나.

범위는 굉장히 넓다. 최근의 관심은 미술과 공예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다. 경계로서 구분이 되지 않는 예술에 관해 이야기한다. 윤현상재는 타일을 팔지만 타일만 판다고 생각하지 않는 브랜드다. 그래서 최대한 경계나 한정을 두지 않고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려 한다.

그러한 전략이 사람들이 윤현상재라는 브랜드를 인식, 기억하는 데 어떤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나?

이제는 타일 회사보다는 예술을 지향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로 점차 인식이 넓어지는 듯하다. 예술이 모이고, 쉽게 예술을 만나볼 수 있고, 또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하나의 플레이스라고나 할까. 평소 예술과 멀었다면 본격적인 전시가 익숙지 않을 수 있는데, 우리는 그 문턱을 최대한 낮추고 싶다. 라이브러리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윤현상재는 앞으로 어떠한 브랜드가 되어 가고자 하나?

지금은 타일을 주로 다루지만 미래에는 라이브러리를 통해 타일을 넘어선 다른 소재를 발굴하고 싶다. 새로운 전시 공간이 생기면 확고한 방향성을 정한 채 전시를 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미래의 모습은 타일 브랜드보다는 미술관과 더욱 가깝겠다.

그렇다. 윤현상재라는 레거시와 한국적인 특성은 그대로 지키면서도 글로벌과 미래로 나가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예술과 플랫폼이 그를 가능케 해주지 않을까 싶다.

김혜림 에디터

* 2023년 11월 21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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