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하거나 창궐하거나
완결

멸종하거나 창궐하거나

치솟는 열기가 생태계를 불사르고 있다. 붕괴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곤충도 예외는 없다.

2020년 케냐의 삼부루 카운티(Samburu County)에 나타난 메뚜기 떼. ⓒPhotograph: Getty Images
기후 위기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현저히 바꿔 놓을 것이다. 이러한 재난으로 고통받게 될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산호초들이 유령처럼 하얗게 변하고 열대 우림이 파괴되면서 동물의 왕국 전역에 걸쳐 거대한 절멸의 파도가 들이닥칠 것이다. 한동안 일부 연구자들은 곤충이 포유류나 조류 등의 생물 집단에 비해 이러한 변화에 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아니면 적어도 곤충들은 좀 더 적응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토록 거대하고 탄력적인 규모와 과거에 있었던 대량 멸종 사건들에서도 살아남은 전적을 보라. 곤충들이야말로 기후 비상사태의 시퍼런 위협 속에서도 다른 모든 생물들보다 더욱 잘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지난해 열린 제26차 유엔기후 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는 이런저런 어수선한 약속들을 쏟아내면서 기온 상승 폭이 섭씨 2.4도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치를 내놓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이번 세기가 끝날 무렵이 되면 세계의 기온이 섭씨 3.2도까지 상승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구상 모든 곤충 종의 절반은 현재 서식 가능한 면적의 절반 이상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는 척추동물이 잃게 되는 비율의 약 두 배에 달하며, 심지어 날개나 다리가 없어서 혼자서는 빠르게 이동할 수 없는 식물들보다도 더욱 높은 비율이다. 서식지의 소멸이나 살충제 사용과 같은 문제들로 이미 고통받고 있던 차에 이제는 살아갈 수 있는 공간마저도 대규모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8년에 각각의 생물 종이 기온이나 강수량 등 어떤 기후 조건의 조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연구한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University of East Anglia)의 생물학자 레이첼 워런(Rachel Warren)은 “아직까지 살아남아서 버티고 있는 곤충들도 기후 변화의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잠자리와 같은 일부 곤충들은 민첩하기 때문에 서서히 진행되는 변화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곤충들은 그렇지 않다. 나비와 나방들도 물론 상당한 기동력을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애벌레나 고치처럼) 생애주기의 여러 단계에서 특정한 지형 조건이나 먹이 식물에 의존해야만 한다. 따라서 그들 중 상당수가 취약한 상태다. 한편 꿀벌이나 파리와 같은 꽃가루받이 곤충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짧은 거리만을 움직일 수 있는데, 이는 농부들이 특정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분투해야 하는 새로운 식량 안보 위기를 가속할 것이다. 수분(受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온이 섭씨 3도 이상 상승하면 방대한 면적의 대지가 더 이상 작물을 기를 수 없는 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열대 지방에서는 인류 역사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기온이 급등하면서 커피나 초콜릿을 대량으로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이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기후 위기는 빈곤, 인종 차별, 사회 불안, 불평등, 궁지로 내몰리는 야생동물 등 수많은 중차대한 사안들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심각하게 곤충들을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지는 간과하기 쉽다. 기후 위기는 대처하기에도 더욱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 네바다대학교(University of Nevada)의 생물학 교수 맷 포리스터(Matt Forister)는 이렇게 말한다. “기후 변화가 까다로운 이유는, 맞서 싸우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하면 살충제 문제는 오히려 간단해 보일 정도입니다. 반면에 기후 변화는 수질을 변화시키고, 포식 동물들에게 영향을 끼치며, 식물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곤충들은 극지방에서부터 열대에 이르기까지 공격을 받고 있다. 북극호박벌(Bombus polaris)은 알래스카, 캐나다, 스칸디나비아, 러시아의 북쪽 극지방에 서식하는 종으로, 영하에 가까운 기온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몸통을 빼곡하게 뒤덮은 털이 열기를 보호해주는 데다, 북극양귀비(Arctic poppy)와 같은 원뿔 모양의 꽃으로 햇빛의 세기를 증폭하여 몸을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극의 기온이 계속해서 치솟으면, 2050년이면 멸종할 가능성이 높다. 두 종류의 고지대 식물들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고산 나비(alpine butterfly)와 같은 곤충들 역시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개체 수가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다.

극지방으로부터 훨씬 남쪽에 있는 영국에선 2001년 이후에 반딧불이의 개체 수가 4분의 3으로 줄어들었다. 연구에 따르면 가장 유력한 범인은 기후 위기로 여겨진다. 반딧불이 애벌레들은 습한 조건에서 서식하는 달팽이를 먹고 사는데, 몇 년 동안 덥고 건조한 여름이 이어지면서 반딧불이의 먹잇감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온대 기후에서 서식하는 곤충들은 몇 도가량의 기온 상승에도 대처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졌다. 세계의 열대 지역에 가득한 대다수의 곤충들이 이미 견딜 수 있는 온도의 상한선에 도달한 현실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유럽에서 위와 같은 감소세가 목격되면서, 그러한 추정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스웨덴과 스페인의 연구자들은 온대에 서식하는 곤충들의 대부분이 추운 시기가 되면 활동을 멈춘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곤충들의 생애가 불과 몇 개월의 따뜻한 시기에 한정된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그들은 온대 곤충들 역시 점점 더 견딜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와 관련하여 스웨덴 웁살라대학교(Uppsala University)의 생태학자인 프랑크 요한손(Frank Johansson)은 침울하게 전망한다. “온대 곤충들도 열대 곤충들과 마찬가지로 기후 변화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공격받는 곤충들


겨울용 외투 같은 털에 뒤덮인 커다란 호박벌들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 2020년에 오타와대학교(University of Ottawa)가 수행한 연구에 의하면, 북아메리카의 호박벌 개체 수는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유럽 전역에서는 17퍼센트 감소했다고 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 연구에서 제시하는 이러한 연관성이 어떤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빗발치는 위협을 받고 있는 곤충들에게는 기온 및 강우량의 변화가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예를 들자면, 2019년에 과학자들은 남태평양의 피지(Fiji) 섬에서 아홉 가지의 새로운 벌 종류가 발견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지만, 그 직후의 발표를 통하여 산꼭대기에 있는 서식지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해당 종들의 상당수가 기후 위기와 연관된 멸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서식스대학교(University of Sussex)의 생태학자 데이브 굴슨(Dave Goulson)은 이렇게 말한다. “이미 상당한 개체 수가 감소한 수많은 생물들에게 있어서 앞으로의 기후 변화는 그들의 관 뚜껑에 못을 박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기온이 섭씨 2도 상승하는 현상이나 그와 동반하여 발생할 그 모든 극한의 기후 사태들에 전혀 대처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20년 8월, 브라질 파라(Pará)주의 아마존 우림에서 발생한 화재. 가뭄과 들불은 아마존 우림에 서식하는 쇠똥구리의 개체 수를 급격하게 감소시킨다. ⓒPhotograph: Carl de Souza/AFP/Getty Images


2. 무너지는 먹이 사슬


곤충들은 자연환경과 매우 긴밀하게 엮여 있기 때문에 생태계의 일정한 리듬 가운데에서 어느 하나라도 갑자기 요동치는 순간이 발생한다면 그것을 아주 민감하게 감지한다. 특히 봄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빨리 찾아오면서 곤충들의 자연스러운 생태 주기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영국에서는 나방과 나비들이 고치에서 깨어나는 시기가 10년 전에 비해 평균 6일 빨라졌으며,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곤충들의 활동을 촉발하는 봄 날씨 조건이 70년 전에 비해 20일이나 빨리 찾아온다. 대부분의 동식물은 봄이 찾아오며 조금씩 따뜻해지는 기온에 맞추어서 꽃을 피우고 번식을 하며, 곤충들의 알도 거기에 맞춰 부화한다. 그러나 봄의 시작 시기가 혼란스러워지면 섬세하게 유지되고 있는 상호작용의 균형이 깨질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철새들이 따뜻해진 기온에 맞춰 이동 시기를 앞당겨도, 도착한 곳에는 아직 그들의 먹이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일 수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 지난 반세기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살펴본 과학자들은 이제 진딧물들이 상승한 기온 때문에 예전보다 한 달이나 빠르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새들은 일주일 일찍 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봄이 길어졌다고 해서 진딧물의 개체 수가 반드시 더 많아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더 일찍 나타나고 있다는 건 진딧물들이 더 어리고 더욱 연약한 식물들을 공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벌 전문가인 레딩대학교(University of Reading)의 사이먼 포츠(Simon Potts)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기후 변화로 인해 자연이 더 일찍 따뜻해진다는 증거가 영국에 많습니다. 그래서 근래 모든 벌이 세상에 더 일찍 나오고 있죠. 하지만 꽃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낮의 길이까지 바뀌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꽃가루받이 곤충들과 식물들 사이에 이러한 어긋남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매우 민감하고 섬세한 먹이 사슬 전체에 지장을 주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어떤 곤충들에게는 따뜻해지는 영국의 날씨가 반가운 변화일 수도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보라색호박벌(violet carpenter bee)이나 꼽등이(camel cricket)와 같은 곤충들이 영국 해협을 건너와 스스로 서식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조흰뱀눈나비(marbled white)와 같은 영국의 일부 토종 나비들은 기후 변화 때문에 좀 더 서늘한 기후를 찾아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개체 수 감소라는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야생 난초 같은 식물들도 북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기후 붕괴가 식물들의 특성 자체를 왜곡하면서 곤충들이 찾을 수 있는 먹이를 감소시킨다면, 이러한 적응 기술도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 배출이 늘어나면 식물들의 영양학적 가치가 감소하여 곤충들이 아연이나 나트륨과 같은 필수 영양소는 없고 칼로리만 높은 먹이를 먹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 캔자스의 대초원에 마련된 연구 부지에서는 메뚜기들의 개체 수가 매년 약 2퍼센트씩 줄고 있음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살충제의 사용이나 서식지 유실과 같은 요인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원인을 파악했다. 이러한 감소세의 원인은 바로 메뚜기들이 기후 비상사태를 거치면서 겪는 굶주림이었다.

기후 붕괴가 단지 곤충들의 영양실조만 유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후 붕괴는 식물들의 향기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먹이를 찾아 나선 꽃가루받이 곤충들은 꽃들의 색깔과 숫자는 물론이고 향기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벌들은 식물의 향기를 기억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그 식물이 무엇인지, 안에 꿀이 들어 있는지 여부도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은 프랑스 마르세유 인근의 관목지에 있는 로즈마리가 풍기는 냄새 분자를 조사했는데, 식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른 종류의 냄새를 내뿜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런 로즈마리에는 양봉(養蜂)[1]들이 접근하지 않았다. 기후 위기로 인해 더 많은 식물들이 가뭄과 치솟는 열기에 시달리게 되면, 곤충들은 단지 맛없는 먹이를 먹게 되는 것을 떠나 심지어 그런 식물에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식물들이 겪는 이러한 변화는, 적어도 곤충들에게 있어서는 기후 붕괴의 가장 광범위한 증상인지도 모른다.

보라색호박벌은 점점 따뜻해지고 있는 영국으로 서식 범위를 넓혔다. ⓒPhotograph: Ruth Swan/Alamy


3. 대왕 곤충 떼의 습격


그러나 점점 더 온난해지는 세계에서 모든 곤충이 절망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재편되는 상황에서는 승자도 있고 패자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는 사막 나방의 개체 수 감소에 조바심내는 과학자 몇 명보다는, 지구 온난화로 고삐가 풀린 채 먹이를 약탈하고 다니는 거대한 곤충 집단에 더욱 쉽게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2020년 아프리카의 동부는 수십 년 만에 최악의 메뚜기 떼가 출현하여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 전년도에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2] 지역은 평균 강수량보다 400퍼센트 이상의 어마어마한 폭우가 강타하면서 메뚜기들의 번식이 더욱 활발해졌다. 기온 상승 역시 메뚜기 개체 수의 증가를 더욱 부추긴 것으로 여겨진다. 엄청난 강우량과 치솟는 기온 모두 기후 붕괴의 영향을 크게 받은 요인들이다. 케냐의 농부들은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메뚜기 떼가 농장에 내려앉아서 옥수수와 수수밭을 파괴하는 광경을 속절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이와 별개로 인도의 서부와 중부에도 거대한 메뚜기 떼가 출현하여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무서운 속도로 농지를 먹어 치웠다.

더욱 뜨거워진 세계에서는 다량의 해충과 병균이 발생하여 감자와 대두와 밀을 비롯한 작물들을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한 연구진은 기온이 섭씨 1도 상승할 때마다 밀, 쌀, 옥수수와 같은 가장 중요한 곡물들의 수확량이 곤충의 공격으로 인해 최대 25퍼센트씩 줄어들 것이며, 온대 지역의 국가들이 가장 극심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포식자들이 사라져서 서식하기 편해진 환경에서는 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해충들도 더욱 번성할 텐데, 이는 단일 경작 관행의 또 다른 결과물이기도 하다.

미국의 교외 지역에서는 아시아 토종인 화려한 초록색 비단벌레를 점점 더 많이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 곤충은 나무 상자에 들러붙은 몇 마리가 디트로이트로 유입된 이후 미국에 퍼지게 되었다. 식탐이 많은 비단벌레들은 북아메리카 전역에서 수억 그루의 물푸레나무를 죽였으며, 이제는 동유럽에도 서식하기 시작했다. 겨울이 점점 더 온화해지고 있기 때문에 이 해충들은 훨씬 더 북쪽까지 퍼져 가면서 더욱 심각한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심지어 각 가정에도 원치 않는 새로운 곤충들이 유입될 것이다. 어느 추정에 의하면 기온, 습도, 강우량의 변화로 인해 2080년에는 파리의 개체 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파리들은 음식물에 오염 물질을 옮기면서 질병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적어도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주요한 매개체는 아니다.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점은 모기의 개체 수가 폭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낮은 기온은 모기의 알을 죽게 만든다. 다시 말해 지구가 뜨거워지면 모기들은 새로운 영토를 정복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뎅기열(dengue), 이탈리아의 치쿤구니야열(chikungunya), 그리스의 말라리아를 일으킨 조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갑작스런 습격은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지중해 유역의 일부는 이미 열대가 되면서 열기와 습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그리하여 유럽의 중부 지대뿐만 아니라 심지어 영국의 남쪽 지역까지도 무시무시한 신종 전염병의 타격 범위에 포함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영국의 곤충학자 사이먼 레더(Simon Leather)는 이렇게 말한다. “기온이 더 오르면 영국에서도 웨스트나일열(West Nile)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건강 문제와 관련하여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모기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로 판단하자면, 모기는 단연코 지구상에서 인류에게 가장 무시무시한 동물이다. 그러나 모기를 쳐부수고자 하는 열의로 가득한 우리 인간들도 그들에게 최고로 치명적인 무기들을 사용해 왔다. DDT(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3]는 모기를 없애려는 용도로 만들어져 널리 사용된 화학물질이다. 그러나 모기들이 여기에 내성을 갖게 되고 DDT가 다른 야생동물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미치자 결국엔 사용이 금지되었다. 좀 더 최근에는 날레드(naled)라고도 불리는 유기인산염(organophosphate)이 꿀벌이나 물고기를 비롯한 생물들에게 유해하다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DDT를 대신하여 모기의 서식지에 살포되고 있다. 이처럼 모기와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만약 온난화로 인한 곤충들의 대량 습격이라는 공포스러운 이미지가 고스란히 체화된 종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 주인공은 아마도 장수말벌이 될 것이다.
2020년 10월, 에티오피아의 암하라(Amhara) 지역에서 수수를 기르는 농부가 메뚜기를 잡고 있다. ⓒPhotograph: Tiksa Negeri/Reuters


4. 진정한 위협은


아마 ‘살인 말벌’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엄지손가락만큼 덩치가 큰 이 말벌은 만화 속 악당 같은 모습을 갖고 있다. 배에는 호랑이 줄무늬가 있고, 거대한 머리는 오렌지 빛깔로 이글거리고 있으며, 스파이더맨을 닮은 악마 같은 커다란 눈알에 무시무시한 두 개의 아래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갖는 우려와는 반대로, 이 살인 말벌은 사람들을 살해하지 않는다. 그들이 죽이는 것은 꿀벌이다. 장수말벌은 꿀벌의 벌집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바깥으로 나오는 일벌들을 무참하게 죽여 버린다. 그들은 이 불운한 희생양의 몸통을 절단하여 자신들의 유충에게 먹이로 준다.

이러한 학살은 벌집 전체가 전멸할 때까지 지속될 수도 있는데, 그러면 범죄 현장에는 몸통이 잘린 꿀벌 시체 수천 구가 널려 있게 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꿀벌들이 맞서 싸우는 경우도 있는데, 말벌의 토착 분포 지역에 사는 꿀벌들은 스스로 방어 전략을 만들기도 한다. 꿀벌의 집에 들어온 말벌에게 달려들어서 이 침입자를 공 모양의 덩어리로 둘러싼 다음, 날개의 근육을 진동시켜서 최대 섭씨 47도에 달하는 뜨거운 열을 발생시키는 식이다. 그러면 말벌은 산 채로 구워지게 된다. 그러나 유럽이나 북아메리카의 꿀벌들은 이러한 장수말벌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므로, 대학살을 마주하더라도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장수말벌은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숲이나 산악지대에 서식하는 토착종이다. 이들은 사촌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등검은말벌(Asian hornet)과 어울려 지내는 경우가 흔한데, 등검은말벌들은 이미 유럽으로 이동하여 영국과 프랑스에서 수많은 꿀벌을 죽이고 있다. 그러잖아도 영국과 프랑스의 양봉업자들은 바로아응애(varroa mite·진드기의 일종)와 살충제 때문에 꿀벌의 생존이 예전부터 위협받고 있다며 우려해 왔다. 한편 장수말벌들은 북아메리카의 서부 해안에 진출해 공격을 개시하고 있다. 아마도 화물선을 얻어 타고 건너왔을 가능성이 높다.

2019년 8월에 밴쿠버 섬에서 장수말벌의 존재가 확인되어 캐나다 당국을 깜짝 놀라게 했고, 이후 그보다 더 남쪽에 있는 미국과의 접경 지역에서도 또 다른 장수말벌이 발견되었다. 12월에도 장수말벌이 다시 한번 목격됐는데, 이번에 발견된 지역은 약 20킬로미터 남쪽에 있는 미국의 워싱턴주였다. 화난 말벌들에게 몇 차례 쏘인 양봉업자 한 명이 말벌 서식지 전체에 불을 질러 파괴하면서 그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2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장수말벌의 새로운 여왕벌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장수말벌들이 해외에서 계속해서 유입되고 있거나 또는 이미 거세게 퍼져나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020년 5월이 되자 어느덧 서부 해안에서는 장수말벌들의 출현이 당연할 정도로 여겨지게 되면서 《뉴욕타임스》의 관심을 끌기에 이르렀고, 이 신문은 〈미국의 살인 말벌―장수말벌을 근절하려는 분주한 움직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했다. 미 대륙에서 보이는 장수말벌들의 이러한 확산세는 기후 변화로 인해 더욱 촉진됐을 가능성이 있다. 등검은말벌이 프랑스까지 이동하여 놀라게 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본래 동남아시아에 살던 등검은말벌은 프랑스에 2000년대 초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 매년 약 80킬로미터씩 이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알프스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살인 말벌들이 날아와 습격한다거나 어떠한 역경에도 끄떡없는 바퀴벌레들이 치솟는 기온을 뚫고 진군해 온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끔찍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현실에서 진정으로 두려운 부분은 기후 붕괴 그 자체다.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다른 모든 생물들에게 자초한 실존적인 위협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친 듯이 경고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지나치게 나태한 태도로 일관하여 그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회의 동요뿐 아니라 심지어 전쟁까지도 촉발할 수 있는 홍수, 폭풍, 가뭄이라는 위협에도 그토록 마지못한 태도로 느릿느릿 대응해 왔다. 그런 상황에서 곤충들의 비참한 현실이 과연 우리를 각성시키리라는 희망이 있을까? 보다 현실적인 목표는 우리 모두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곤충 친화적인 서식지를 복원하고, 가능한 한 오염되지 않도록 유지하려 노력하는 것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기후 위기의 맹공으로부터 최소한의 시간과 공간이라도 마련해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우리는 기후 붕괴라는 것이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며, 마치 머나먼 후대에 대처해도 될 정도로 거의 감지되지 않는 변화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이미 진행되고 있는 엄연한 현실임을 알려주기 위하여, 자연이 간혹 이렇게 혹독한 경고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2020년 10월, 미국 워싱턴주에서 농무부의 직원들이 장수말벌을 제거하고 있다. ⓒPhotograph: Elaine Thompson/AFP/Getty Images
이 글은 올리버 밀먼(Oliver Milman)이 쓴 《곤충의 위기, 세계를 움직이는 작은 제국의 몰락(The Insect Crisis: the fall of the tiny empires that run the world)》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1]
꿀을 얻기 위하여 기르는 벌.
[2]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등이 위치한 아프리카의 북동부 지역.
[3]
유기염소 계열의 살충제, 농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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