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힘?
완결

지리의⋯ 힘?

산맥과 바다는 국가의 가능성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바뀐다. 지정학의 시대는 끝났다.

ⓒIllustration: Benedetto Cristofani/The Guardian
러시아가 시작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러 지점에서 놀라웠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사실은 전쟁이 진짜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지난해 러시아는 평화로운 상태였고 복잡한 글로벌 경제에 얽혀 있었다. 이미 방대한 영토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정말로 땅을 더 넓히기 위해 교역 관계를 끊고 핵전쟁의 위협을 가할 것인가? 블라디미르 푸틴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도 여러 번 경고했지만, 그래도 이 침공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저널리스트인 팀 마샬(Tim Marshall)에게는 충격이 아니었다. 2015년에 발표한 자신의 인기 도서 《지리의 힘(Prisoners of Geography)》에서, 마샬은 러시아의 복잡한 지형으로 독자들을 초대했다. 러시아는 산맥과 얼음으로 둘러싸여 있다. 중국과의 국경은 산맥으로 막혀 있고, 이란 및 튀르키예와는 캅카스 산맥으로 분리돼 있다. 러시아와 서유럽 사이에는 발칸 산맥과 카르파티아 산맥, 알프스 산맥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들이 또 하나의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적어도 장벽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산맥들의 북쪽에 있는 유럽 대평원(Great European Plain)은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통해서 서방의 무장한 이웃들과 러시아를 연결시킨다. 이곳을 통하면 파리에서 모스크바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그리고 탱크를 몰고 갈 수도 있다. 마샬은 러시아의 천연 방어벽 사이에 있는 이 틈새가 공격에 얼마나 자주 노출됐는지 언급하고 이렇게 결론 내렸다. “푸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는 서쪽으로 향하는 이 평원을 막기 위해 최소한 시도라도 해야 한다.” 푸틴은 더 이상 조용한 수단으로 우크라이나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정확히 그 말대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했다. 마샬은 이 전쟁이 개탄스러우면서도 놀랍지는 않다며 다음과 같이 고리타분하게 설명했다. “(지리적 요소는) 지도자들을 가둬 놓고, 선택권과 운신의 여지를 생각보다 훨씬 더 적게 남겨 둔다.”

마샬의 이러한 사고방식을 지정학(geopolitics)이라고 부른다. 지정학이라는 용어는 막연히 ‘국제 관계’를 의미하는 용도로 사용될 때도 있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산맥, 지협(地峽)[1], 지하수면 등의 지리적 요소가 세계정세를 지배한다는 시각을 가리킨다. 지정학자들은 어떤 지역의 사상, 법률, 문화가 흥미롭더라도 그곳의 정치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세계는 제로섬(zero-sum) 게임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이웃한 나라들은 모두 서로의 잠재적인 경쟁국이며 성공은 〈리스크(Risk)〉라는 보드게임에서처럼 영토를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지정학은 인간의 동기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 비슷한데, 마르크스주의에서는 계급 투쟁을 역사의 동력으로 본다면 지정학에서는 지형이 역사의 동력이라고 보는 것이다.

지정학과 마르크스주의는 1990년대 냉전의 종식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여겨졌던 점에서도 서로 비슷하다. 시장의 팽창과 신기술의 폭발은 지리학을 낡은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바다에는 컨테이너선이 가득하고 위성에서는 정보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말라카 해협이나 오데사 항구 통제를 누가 신경 쓰겠는가? 저널리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2005년에 “세계는 평평하다”고 선언했다. 이는 상품, 아이디어, 사람들이 순조롭게 국경을 넘어서 움직이는 세계화에 대한 적절한 메타포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세계가 덜 평평하게 느껴진다. 공급망이 끊어지고 글로벌 교역이 흔들리면서, 지구의 지형이 매끄럽기보다는 좀 더 바위투성이처럼 보인다. 팬데믹 이전에도 도널드 트럼프나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2]와 같은 인물들은 세계화에 대해 적대적인 움직임을 드러내 그 인식이 부상하고 있었으며, 팬데믹은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냉전 종식 당시에 대략 10개 정도였던 국경 장벽의 수는 지난 10년 동안 장벽 건설 붐이 최고조에 도달하면서 현재 74개에 이르렀고 지금도 계속해서 세워지고 있다. 정치학자인 엘리자베스 발레(Élisabeth Vallet)는 탈냉전이 세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은 “환상”이었으며, 우리는 현재 “세계의 재영역화(reterritorialisation)”를 목격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적대적인 환경을 새롭게 마주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책장에서 오래된 전략 안내서를 꺼내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H. R. 맥매스터(H. R. McMaster)는 2017년에 이렇게 경고했다. “지정학이 돌아왔다. 복수심과 함께. 우리가 소위 탈냉전 시기라고 불렀던 역사의 휴식기는 끝났다.” 이러한 관점은 러시아의 속내를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설명하면서 “지정학적 현실(geopolitical realities)”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개방적인 교역 기반의 국제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서, 팀 마샬이나 로버트 카플란(Robert Kaplan), 이언 모리스(Ian Morris),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 피터 자이한(Peter Zeihan)과 같은 독도법(讀圖法) 전문가들의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앞다퉈 오르고 있다.

이러한 지리학 옹호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광활한 스텝 지대(steppe)와 산맥의 경계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소였던 13세기 칭기즈칸의 세계 이후로 무엇이 변했는지 궁금해진다. 지정학적 사고는 대놓고 암울하며, 평화, 정의, 올바름에 대한 희망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암울하냐가 아니라, 그것이 옳은가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기술과 지성, 제도적인 측면에서 중대한 변화를 이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연 마샬이 주장하듯 여전히 “지리의 죄수들(prisoners of geography)”일까?

 

1. 지도 속에 갇힌 인류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는 부끄러울 정도로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생명체다. 인간은 환경적 여건이 허용하는 곳에서는 번영했고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사멸했다. 루이스 다트넬(Lewis Dartnell)은 자신의 역작인 《오리진(Origins)》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서로 부딪히며 마찰하는 지각판(地殼板, tectonic plate) 경계를 표시한 지도 위에 세계의 주요 고대 문명들의 위치를 겹쳐 놓으면, (둘 사이에서) 놀라울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우연이 아니다. 판(板, plate)은 서로 충돌하면서 높은 산맥과 거대한 강줄기를 만들어 내고, 그 강물은 바닥의 침전물을 낮은 곳으로 실어 나르면서 하류 지역의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 고대의 그리스, 이집트, 페르시아, 아시리아, 인더스 계곡, 메소아메리카[3], 로마는 모두 판의 경계 근처에 있었다. 이집트에서 이란까지 걸쳐 있는 비옥한 농경 지역으로 농업, 글쓰기, 바퀴 등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세 개의 판이 서로 맞물리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백악기의 암석 퇴적층(위)과 2016년 선거에서 민주당에 투표했던 카운티(아래)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지도. ⓒFrom 《Origins: How the Earth Shaped Human History》 by Lewis Dartnell
지리의 영향력은 미국 남부의 투표 패턴이 보여주듯이 상당히 인상적인 방식으로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미국의 최남부는 공화당 성향이 아주 강한 지역이지만, 그 중간에 민주당 성향의 자치주가 커브 형태로 나타난다. 과학자 스티븐 더치(Steven Dutch)는 이러한 ‘반대의 띠(dissenting band)’가 “지리학자라면 즉시 알아볼 수 있는” 형태라고 한다. 그 모양은 수천만 년 전에 쌓인 퇴적층의 노출부와 일치한다. 이는 현재 미국 영토의 상당 부분이 물밑에 있었던 뜨거운 백악기(白堊紀) 시대에 침전된 것이다. 이 침전물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압력을 받아 셰일(shale, 이판암)이 되었고, 이는 다시 더욱 많은 시간이 흐르고 물이 빠진 뒤에 침식 작용에 의해 드러났다. 더치는 이러한 노출부가 면화를 재배하기에 이상적이라는 점을 19세기 농장주들이 알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비옥하고 짙은 색을 가진 이 지역의 토양을 ‘블랙 벨트(Black Belt)’라고 불렀다. 농장주들은 면화를 수확하기 위해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그 후손들이 여전히 이 지역에 살면서 주기적으로 보수적인 정치인들에게 반대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다트넬은 그 백악기 띠의 ‘한가운데’에 있는 앨라배마의 몽고메리(Montgomery)시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이 연설을 하고 로자 파크스(Rosa Parks)가 버스 승차 거부 등의 저항을 했던 시민권 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물론 지정학자는 지방 선거보다 국가 간 전쟁에 더 신경 쓴다. 여기서 지정학적 사고의 기초를 만든 영국의 전략가 해퍼드 매킨더(Halford Mackinder)가 등장한다. 매킨더는 1904년에 발표한 〈역사의 지리적 중심축(The Geographical Pivot of History)〉이라는 논문에서, 세계의 입체 지도를 보면 역사는 유라시아(Eurasia) 평원의 유목민과 바닷가 해양 세력 사이의 수 세기에 걸친 투쟁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같은 나라들은 해양 세력으로 번성했지만,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식민지를 모두 차지하고 항로가 막히면서 향후의 확장 과정에서 육지에서의 충돌이 유발됐다는 것이다. 매킨더는 유라시아의 ‘심장부(heart-land)’에 있는 방대한 평원이 세계 전쟁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매킨더의 예측이 모두 맞은 것은 아니지만, 동유럽을 두고 벌어진 충돌, 영국 해양 권력의 쇠퇴, 독일과 러시아라는 대륙 강대국의 부흥 등 개략적인 윤곽은 충분히 맞았다. 세부 사항은 논외로 하더라도,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에 대한 권리를 잃어버리고 서로에게 등을 돌릴 것이라는 시각은 마치 미래를 내다보는 것 같았다. 또한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그들이 노리는 상품은 유라시아의 안쪽일 거라고 예견했다. 훗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유라시아의 심장부는) 완전한 세계 지배에 필요한 전제 조건을 모두 제공한다. 심장부를 통치하는 이가 세계섬(World-Island)[4]을 지배한다. 세계섬을 통치하는 이가 세계를 지배한다.”

매킨더의 발언은 하나의 경고였다. 그러나 독일 군부의 장군이었던 카를 하우스호퍼(Karl Haushofer)는 매킨더의 이론이 “모든 지리적 세계관 중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하우스호퍼는 당시 새롭게 떠오르는 분야였던 게오폴리티크(Geopolitik, 영어의 ‘지정학(geopolitics)’이라는 단어도 이 표현에서 유래했다)에 매킨더의 통찰력을 더했고, 1920년대에는 자신의 생각을 아돌프 히틀러와 루돌프 헤스(Rudolf Hess)에게 전달했다. 히틀러는 “독일인은 (발전이) 불가능한 지역에 갇혀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독일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동쪽으로 방향을 돌려야 했는데, 그곳이 바로 매킨더가 말한 심장부였다.

독일의 운명이 동쪽에 있다는 아돌프 히틀러의 판단은 백악기의 암석층으로 투표 성향을 예측할 수 있다는 스티븐 더치의 설명과는 전혀 다른 종류다. 그러나 이 두 가지에 모두 영향을 미친 것은 발밑에 있는 것이 머릿속에 있는 것을 형성한다는 이론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략적으로 가치 있는 지역을 두고 충돌하던 각국의 군대들이 유라시아의 상당 부분을 갈기갈기 찢어 놨을 때, 이 주장을 부인하기는 어려웠다. 2차 세계 대전 시기에도 살아 있었던 매킨더는 지리학의 ‘불변하는 사실’이 무너질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의 헬만드(Helmand)주 무사칼라(Musa Qala)를 순찰하고 있는 미군 병사. ⓒPhotograph: Rodrigo Abd/AP

 

2. 장벽이 무너진 후


해퍼드 매킨더는 입체 지도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모든 사람이 이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국제 관계를 두고 “상금을 따내기 위한 끝없는 격투(perpetual prize-fight)”라고 표현했다. 이상주의자들은 이런 상태를 바꿀 수는 없을지 20세기 내내 고민했다. 케인스를 비롯한 그의 추종자들은 교역을 통해서 이를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 세계가 개방적으로 무역하게 된다면, 더 이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영토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다른 이상주의자들에게는 새로운 항공 시대의 기술이 그 핵심이었다. 그들은 항로를 통해 세계의 모든 지역을 서로 연결함으로써, 각국이 지도상의 전략 거점을 두고 다투는 일을 멈추길 바랐다.

그러나 이것은 희망이었을 뿐 현실은 아니었다. 지구를 두 개의 무역 블록과 군사 동맹으로 나눴던 냉전은 지도자들의 시선을 지도 위에 고정시켰다. 어린 아이들도 1957년에 발매된 프랑스의 〈라 콩퀘트 듀 몽드(La Conquête du Monde, 세계정복)〉라는 보드게임을 통해 지도 읽는 법을 배웠다. 미국의 파커브라더스(Parker Brothers)라는 회사는 이 게임을 〈리스크〉라는 이름으로 바꿔 널리 판매했다. 기병대와 구식 총포 때문에 이 게임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초강대국들이 세계 지도를 분할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불편할 정도로 시의적절한 면도 있었다.

나치와 연관된 이후에 지정학적 사고의 목소리가 작아졌더라도, 냉전에는 그 흔적이 남았다. 미국의 핵심 전략가였던 조지 케넌(George Kennan)은 냉전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대단치 않게 생각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눈가림(fig leaf)’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소비에트의 행동은 “광활한 평원의 험악한 유목민 이웃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 하면서 몇 세기에 걸쳐 쌓인 “러시아인의 관습적이며 본능적인 불안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케넌은 이같이 매킨더스러운 문제 제기에 대해 매킨더스러운 해결책을 제안했다. 그것은 바로 ‘봉쇄(containment)’였다. 공산주의를 근절하기보다 그 안에 가둬 두자는 것이었다. 이 전략은 결국 미국의 전 세계적인 개입으로 이어졌다. 베트남 전쟁에 270만 명의 전투 병력을 파병하는 것도 이에 포함된다. 베트남 전쟁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복무했던 사람들에게 그 전쟁은 자신을 집어삼키는 ‘수렁’이었다. 지리학의 영향력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야 사라지는 것 같았다.

냉전은 세계를 경제적으로 갈라놨지만, 냉전이 끝나자 무역 장벽도 무너졌다. 90년대는 무역 협정 체결과 기구 설립 등이 광적으로 만들어진 시대였다.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라틴아메리카의 메르코수르(Mercosur, 남미공동시장) 등이 생겨났고, 다른 무엇보다도 세계무역기구(WTO)가 탄생했다. 지역 무역 협정은 1988년부터 2008년 사이에 네 배 이상 늘어났고, 이전보다 철저한 공조로 관계는 더 깊어졌다. 같은 시기에 교역량은 세 배 늘어났다. 이는 전 세계 GDP의 6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에서 4분의 1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었다.

더 많은 나라가 교역을 통해 중요 자원에 접근할수록, 대지를 점유할 이유는 적어진다. 토머스 프리드먼 같은 낙관주의자들은 경제적 네트워크에 단단히 얽힌 나라는 이러한 네트워크에의 접근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프리드먼은 1996년에 이 생각을 ‘분쟁 예방에 관한 황금 아치 이론(Golden Arches Theory of Conflict Prevention)’이라는 말로 가볍게 표현했다. 이 이론은 (황금 아치 모양 로고의) 맥도날드 매장이 입점한 나라들끼리는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이론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맥도날드 매장이 있는 나라들 사이에서도 몇 차례의 분쟁이 있기는 했지만, 국가들 사이의 전쟁으로 인해 개인이 사망할 확률은 냉전 이후 현격하게 줄었다.

교역이 전쟁 발발 가능성을 줄이자 군사 기술의 형태도 바뀌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불과 몇 개월 뒤,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이 이끄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이는 전형적인 지정학적 사건이었다. 이라크는 세계 4위의 무기 보유 대국이었고, 쿠웨이트를 점령한다면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5분의 2를 차지하게 될 예정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강력한 지상군은 광활하고 흔적이 남지 않으며 길을 찾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사막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매킨더는 이를 지정학적 사건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그러나 90년대는 더 이상 매킨더의 시대가 아니었다. 사담 후세인은 미국 주도 연합군이 루이지애나, 영국, 스페인, 사우디아라비아, (영국령) 디에고가르시아섬에서 보낸 폭격기로 이라크에 폭탄을 떨어트렸을 때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라크의 기반시설 상당수가 불과 몇 시간 만에 가동 불능 상태가 됐다. 폭격이 한 달 이상 이어졌고, 이후 연합군은 GPS라는 새로운 위성 기술을 활용해 이라크 사람들이 절대로 뚫을 수 없는 방벽이라고 오해했던 사막을 가뿐하게 가로질렀다. 지상전 100시간만으로도 이라크의 너덜너덜한 군대를 패퇴시키기에는 충분했다. 훗날 이라크 관료들의 설명에 의하면 그조차도 필요 없었다고 한다. (만약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가혹한 공습을 몇 주 더 이어갔다면, 이라크는 전장에서 적을 단 한 명도 마주하지 않은 채 쿠웨이트에서 군대를 철수시켰을 것이다.

90년대의 ‘전장’이란 대체 무엇이었을까? 걸프전은 그간 많이 논의됐던 ‘군사적 사안에서의 혁명’의 전조였다. 그 혁명이란 기갑부대와 중화기부대, 대규모 보병부대가 정교한 공습으로 대체된다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군사 이론가인 블라디미르 슬립첸코(Vladimir Slipchenko)는 야전, 전선, 후방, 측면 등 전략가들에게 익숙한 공간적 개념들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공위성, 항공기, GPS, 그리고 이제는 드론이 나타나면서, 오늘날 전략가들이 ‘전투공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상의 울퉁불퉁한 지면이 아니라 그래프용지의 평평한 시트가 되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드론이 세계의 평화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기술을 옹호하는 이들은 이를 통해서 최소한 민간인 사망자, 포로, 파견 병력의 숫자를 줄이면서 훨씬 더 깔끔하게 싸울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군사적 사안에서의 혁명은 (주로 미국과 그 동맹국 등의) 강대국들이 국가 전체보다는 개인이나 조직을 겨냥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국가 간 전쟁으로부터 국제 치안으로의 변화를, 그리고 지정학의 피투성이 파괴 행위로부터 때로는 치명적이더라도 이전보다는 부드러운 세계화를 향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예상됐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과 콩고민주공화국(DRC) 사이의 국경 역할을 하고 있는 음보무(Mbomou) 강. ⓒPhotograph: Florent Vergnes/AFP/Getty Images

 

3. 지정학의 오류


하지만 실제로 세계화가 지정학을 대체했을까? 전략지정학자인 로버트 카플란은 “90년대에는 공군력 때문에 지도가 2차원으로 줄어드는 걸 목격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와 이라크의 (평범한 듯 보이지만) 위험한 골목길”에서 “3차원의 지도”가 복원됐다고 한다. 1991년 걸프전과 2003-2011년 이라크 전쟁 사이의 대비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 준다. 두 전쟁 모두 초강대국이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상대로 연합군을 이끌었다. 그러나 첫 번째 전쟁에서는 공군력을 활용해 순식간에 승리를 거두었던 반면, 두 번째 전쟁은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미국이 만든 또 하나의 ‘수렁’으로 보였다.

90년대 이후로 급속하게 증가하던 전 세계 수출량은 2008년 무렵 정체되기 시작했다. 현재로서는 가까운 미래에 탈세계화가 현실화되어 국제 교역이 현저하게 후퇴할 수도 있으며, 유럽의 통합은 브렉시트로 인해 엄청난 차질이 빚어졌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현재 유럽에서는 지상전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이 전쟁은 ‘맥도날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 모두에 수백 군데의 맥도날드 매장이 있기 때문이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부동항과 천연자원을 확보하고 취약한 러시아 서쪽에 전략적 완충 지대를 만드는 것이 평화로운 통상 관계로부터 러시아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능가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카플란이 알기 쉽게 표현했듯이, 이것은 ‘지리의 복수’였다.

지리의 복수와 함께 지정학 이론가들이 돌아왔다. 이들은 스트랫포(Stratfor)와 연관된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스트랫포는 ‘민간 글로벌 정보 기업’이다. 배런스(Barron’s) 매거진이 “음지의 CIA”라고 부르는 스트랫포는 탈냉전 이상주의의 실패를 자양분으로 영위하고 있다. ‘지도가 역사를 설명한다’고 하는 최근의 베스트셀러 상당수가 그들의 영향력 아래서 나왔다. 로버트 카플란은 한동안 그곳의 수석 지정학 분석가였다. 올해 발간된 《지리는 운명이다(Geography is Destiny)》의 저자 이언 모리스는 그곳의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지정학 작가인 조지 프리드먼과 피터 자이한은 각각 이 회사의 창업자와 부사장이었다. 영국 작가인 팀 마샬은 조금 다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그의 책 《지리의 힘》은 전직 MI6 국장의 추천사로 시작한다.[5]

2014년, 해커들이 위키리크스(WikiLeaks)에 보낸 이 회사의 이메일 500만 통을 통해서 우리는 스트랫포의 업무 관련 정보 일부를 얻을 수 있었다. 이 회사의 개입은 지도에만 국한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싸움에 뛰어든 후, 권력과 확실히 편안한 관계를 갖게 된 것으로 보였다. 해커들은 스트랫포가 기업들을 대신해 활동가들을 모니터링 해왔으며, 한때는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를 위해 저널리스트인 글렌 그린월드(Glenn Greenwald)[6]를 조사하겠다고 제안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 회사의 가입자 및 고객에는 세계적 화학기업인 다우케미칼(Dow Chemical), 항공방위 군수업체인 레이시언(Raytheon), 증권사인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투자회사인 메릴린치(Merrill Lynch), 공학기업인 벡텔(Bechtel), 그리고 코카콜라와 미국 해병대 등이 있다. 2020년에 또 다른 정보 기업에게 인수된 스트랫포가 방대한 미국 안보조직의 바다 속에서 중간 크기 이상의 물고기에 해당하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유출된 이메일에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로부터 직접 얻어낸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이스라엘 측의 정보, 헤즈볼라(Hezbollah)의 지도자를 암살하려는 이스라엘의 의지 등이 있었다. 그리고 워싱턴의 대화 상대에 대한 총리의 기분도 묘사되어 있었다. 그에 따르면 “BB(네타냐휴 총리)는 오바마를 엄청나게 싫어한다”고 했다.

스트랫포는 기밀을 팔았지만, 결국 고객층이 기대하던 것은 그들의 예측이었다. 지정학자들은 이런 활동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최근에도 그들은 수많은 이해관계가 맞물린 사안에 대해 예측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그들의 발표에서 보이는 확고한 자신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과연 스트랫포의 창업자인 조지 프리드먼이 주장하듯 튀르키예는 유럽 및 아시아, 아프리카의 ‘중심점’이 될까? 또는 인도가 카플란이 생각하듯 ‘세계적 중심 국가’가 될까? 그 외에도 이란이 중동에서 ‘가장 중심적인 지형’이 된다거나, 대만이 해양 아시아(maritime Asia)[7]에서 ‘중심적’이라거나, 북한이 ‘동아시아의 진정한 중심’이라는 예측도 있다.

지정학자들이 입증된 기록을 갖고 있다면 위의 이야기를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조지 프리드먼이 1991년에 쓴 책 《일본과의 다가오는 전쟁(The Coming War with Japan)》과 같은 일은 아직까지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카플란의 예측을 평가할 때는 그가 백악관에서 열린 비밀 위원회에 참석해 이라크 전쟁 옹호 활동을 하는 등 그 전쟁을 지지했다는 점을 언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카플란은 자신의 실수를 시인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이라크를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을 지지했을 때, 우리는 그 대가를 완전히, 혹은 정확하게 고려하지 못했다.”

현대의 매킨더들이 어떤 사안과 관련된 모든 요인을 완전히, 혹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밝혀지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에 대한 그들의 관점은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그 관점은 대체로 보수주의를 비웃는 것이다. 이런 입장이 과연 유사 이래로 얼마나 새로운 것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팀 마샬이 보기에 발칸 반도의 “부족들”은 “해묵은 의심들”에 영원히 얽매여 있고, 콩고민주공화국(DRC)은 “전쟁의 암흑에 둘러싸인 공간”으로 남아 있으며,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트로이 전쟁 이후로 “상호 적대심”에 갇혀 있다. 카플란의 생각도 비슷하다. 그는 러시아가 언제나 “불안정하게 퍼져 있는 내륙의 강국”이었으며, 러시아인들은 “역사 내내” 캅카스 산맥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지녀 왔다고 한다. 그는 추운 겨울을 견디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고통 감내 능력’이 발달했다는 은퇴한 어느 역사학자의 이론을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처럼 인용하고 있다.

지리학 교수였던 하름 데 블레이(Harm de Blij)는 카플란의 《지리의 복수(The Revenge of Geography)》를 검토하면서 이 책의 어떤 부분은 “과도하다”는 걸 지적했고, “오래전에 쓰레기통에 버려진” 조잡한 환경 결정론이 다시 살아난 것을 보면 학자들이 놀랄 것이라고 한다. 카플란은 지정학적 사고를 위해 매킨더와 같이 “확실하게 인기 없는 사상가들”을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매킨더 등은 제국주의와 나치즘과의 연관성으로 오명을 얻었다. 카플란은 “매킨더의 이론이 잘못 사용된 것”이 그가 틀렸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산악 지형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에 움츠러들어 끝없이 불안에 떨고 있는 러시아인에게로 다시 돌아가 보자.

지정학자들에 의하면, 강력한 지도자라 하더라도 지리적 요소에 맞서서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한다. 마샬은 우크라이나의 시위대가 2014년에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 대통령을 쫓아낸 뒤에 푸틴이 “크림반도를 합병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비록 마샬이 러시아의 공격성을 비난하고 있긴 하지만, 그의 논리는 푸틴이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논리와 비슷하다. 2014년에 푸틴은 러시아의 경쟁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구석에 몰아넣으려 한다. 당신들이 스프링을 한계까지 누른다면, 스프링은 다시 강하게 튀어 오를 것이다.” 누군가는 지도가 아니라 푸틴의 생각과 태도가 러시아의 호전성을 이끌고 있다며 반대할 수도 있지만, 지정학은 그러한 요소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또 다른 글에서 마샬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의 현실에 대응하는 것뿐이다.”
두바이의 팜 주메이라(Palm Jumeirah) 섬. ⓒPhotograph: Matthias Seifert/Reuters

 

4. 지도, 미래의 지도


스트랫포의 부사장이었던 피터 자이한은 지정학적 세계관의 핵심이 “지리학의 불변적인 속성”으로 인한 제약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마샬은 몇 개의 국경선을 새로 그리면, “이반 뇌제(Ivan the Terrible, 이반 4세)가 보던 지도와 지금 블라디미르 푸틴의 눈앞에 있는 지도가 동일하다”고 한다. 두 시대의 지도나 그것을 둘러싼 계산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현명한 행동은 그처럼 변하지 않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의) 신장 지역에는 과거에도 문제가 있었고, 현재에도 문제가 있으며, 미래에도 언제나 문제가 있을 것이다.” 마샬이 체념하듯 쓴 이 문장은 지정학 전체의 캐치프레이즈로 쓸 수도 있을 정도다.

이언 모리스는 “지리는 불공평하다”고 한다. 또한 “만약 지리가 운명”이라면, 이것은 강자가 강자로 남아 있고 약자가 약자로 남아 있는 세상을 위한 하나의 레시피라고 주장했다. 지정학자들은 어떤 현실이 왜 바뀌지 않는지 설명하는 데에는 탁월하다. 그러나 그 현실이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설명하는 데에는 탁월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한 특징은 역사에 대한 지정학자의 태도가 눈에 띄게 경솔한 이유를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독일이 통일된 이유가 마샬의 주장처럼 “동서독 양국이 서로 싸우는 것에 결국은 지쳤기 때문”이었던가?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이 과연 스트랫포의 창업자인 프리드먼의 말처럼 “미국의 역사에서 중요하지 않은 그저 별개의 사건들”이었는가? 피터 자이한은 “유럽의 다른 모두와 다르게 영국인은 군 복무 중 지루함을 느끼거나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걸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했는데, 과연 사실일까? 또는 카플란이 주장하듯 “미국은 세계를 이끌 운명”인가? 역사에 대한 지정학자들의 설명은 ‘쾌적한 산들바람’과 ‘다음 일정의 관광버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성에서 수많은 학생을 견학시키느라 어찌할 바 모르는 가이드’ 사이 어딘가에 있다.

이러한 지정학자의 방식이 지도를 제작하고 동료평가(peer-review) 연구를 수행하는 실제 지리학자가 글을 쓰는 방식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지리학자도 지정학 이론가와 마찬가지로 어떤 장소가 가진 힘을 믿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공간이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률과 문화, 경제도 지각판만큼이나 지상의 풍경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러한 풍경은 시간과 함께 변화한다.

지리학자들은 심지어 물리적인 지형도 지정학자가 주장하는 만큼 불변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12년 동안 스트랫포의 부사장이었던 피터 자이한은 미국의 막강한 권력이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완벽한 지리적 환경” 덕분일 수 있다고 오랫동안 주장했다. (그는 최근의 저서에서 “오직 CIA에서만 이에 관해 말할 수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대륙의) 뉴잉글랜드에 도착한 정착민들은 “밀이 절대 자라지 않을” 정도로 농사에 부적합한 환경을 마주했지만, 운 좋게도 빠르게 더 나은 서쪽 땅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풍부한 농지와 함께 “진짜 물건”이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우스울 정도로 저렴한” 비용으로 국내의 교역을 가능하게 해주는 광범위한 하천 시스템이었다. 자이한은 이러한 특징들이 미국을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들어 줬으며, 몇 세대에 걸쳐서 그 힘을 유지시켜 줄 것이라고 서술했다. “미국인은 이것을 망치면 안 된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은 상수가 아니다. 자이한이 “절대 자라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던 것과는 다르게, 밀은 한때 뉴잉글랜드에서 흔히 기르던 작물이었다. 밀의 산출량을 감소시켰던 것은 헤시언 파리(hessian fly)와 같은 해충의 유입과 파괴적인 농업 관행에 의한 토양 약화 때문이었다. (헤시언 파리는 미국 독립 전쟁에 참전한 독일 군대와 함께 건너온 것으로 여겨진다.) 자이한이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한 자연의 강 역시 변수다. 강물을 (인간의 용도에 맞게) 이용하려면 거액을 들여 인공 운하 시스템을 보완해야 하고, 그 이후에도 수십 년 안에 새로운 기술로 대체해야 한다. 현재 미국에서 금액 기준으로 보면 강보다는 철도와 항공, 심지어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이동하는 화물이 더 많다. 트럭은 보트나 선박보다 45배 더 큰 가치를 실어 나르고 있다.

이는 우리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지형을 언제나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음을 말해 준다. 세계 최고층 건물인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가 솟아 있는 두바이는 몇 세기 동안 사막과 소금사막에 둘러싸여 있었을 뿐인 가망 없는 어촌 마을이었다. 그곳의 입체 지도에 지금의 원대한 운명을 가리키는 것은 없었다. 그곳의 기후는 무덥고, 한때는 중요했던 석유 판매가 현재 두바이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퍼센트도 되지 않는다. 만약 두바이에서 뭔가 두드러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물리적인 지형이 아니라 법률적인 지형이다. 이 나라는 단일한 법령에 의해 통치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외국의 흥미를 끌기 위해 설계된 여러 개의 자유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대표적으로는 두바이 인터넷 시티(Dubai Internet City), 두바이 지식공원(Dubai Knowledge Park), 국제 인도적 도시(International Humanitarian City)가 있다. 언젠가 도시 이론가인 마이크 데이비스(Mike Davis)는 두바이 사막이 사실상 전 세계의 자본이 쉽게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회로 보드(a huge circuit board)”라고 주장했다.

두바이를 비즈니스 허브로 변모시키는 것은 지도가 운명이라는 인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그곳을 물리적으로 다시 만든다는 것을 의미했다. 두바이의 엄청난 교역량 중 상당수는 중동 최대 규모 항구인 제벨 알리 항구(Port of Jebel Ali)를 통과한다. 수심이 엄청나게 깊은 항구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지정학적인 행운 요소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곳은 사실 두바이가 사막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만들어 낸 것이다. 두바이의 엔지니어들은 또한 준설 모래를 이용하여 다수의 섬을 만들었는데, 그중에는 100개 이상의 섬을 세계 지도 모양으로 배열하여 만든 곳도 있다. 녹지 공원과 실내 스키장도 함께 자연을 거스르는 경관을 완성한다.

그러나 두바이를 거주 가능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도 가장 작은 일에 불과하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세계 곳곳의 섬이 물에 잠기고 있고, 초원은 사막이 되고 있으며, 하천은 황무지로 바뀌는 등 지상의 풍경이 뒤죽박죽으로 변하고 있다. 지정학 논문들에서 이러한 사실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 이상할 정도이다. 조지 프리드먼은 자신의 책 《100년 후(The Next 100 Years)》 말미에서 “어떤 독자든 내가 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라고 시인했다. 간략한 논평이나 언급을 제외하면, 이언 모리스의 《지리는 운명이다》와 팀 마샬의 《지리의 힘》, 로버트 카플란의 《지리의 복수》, 피터 자이한의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도 마찬가지다.

지정학자가 기후 위기를 고려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처가 그 현실을 이겨내거나 받아들이거나 두 가지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우리를 물리적인 제약에서 벗어나게 해주거나, 아니면 여전히 그러한 제약 안에 갇혀 있게 한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과 제도가 공간의 중요성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정학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로 이것이 유일한 선택지일까? 세계화의 전개는 우리를 19세기로 후퇴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례 없는 위험으로 가득한 미래로 내던질 가능성이 더욱 큰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러한 미래에서 환경의 제약을 극심하게 경험할 것이다. 지정학자들이 예측하는 방식으로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것은 자연의 제약이 아니라 물리적 환경을 재구성한 방식 등 인간이 만든 풍경일 것이다. 카플란이 말했듯 지리는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덕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를 가든, 옛날 지도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1]
바다 위에서 거대한 육지 사이를 연결하는 길고 비좁은 지형. 육지 사이의 비좁은 바닷길을 의미하는 해협(海峽)과 대비되는 의미이다.
[2]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를 주도한 극우 정치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가장 먼저 미국으로 날아가서 직접 축하 인사를 건넸다.
[3]
현재의 멕시코 및 중앙아메리카의 북서부 지역으로, 고대의 마야 문명 등이 발달했다.
[4]
유라시아에서부터 아프리카까지 하나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륙
[5]
한국어판에는 없지만, 영국판에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영국의 비밀 정보기관인 MI6의 국장을 지낸 존 스칼렛 경(Sir John Scarlett)의 추천사가 맨 앞에 실려 있다.
[6]
2013년에 미국의 CIA와 NSA에서 일했던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은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이 전 세계의 일반인들을 사찰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기밀을 폭로했는데, 당시 스노든으로부터 기밀문서를 넘겨받아서 전 세계에 이 사실을 알렸던 기자가 바로 가디언 소속의 글렌 그린월드였다.
[7]
동남아시아의 해양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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