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선택
1화

현행 기후 체제의 한계

세계가 해온 30년 동안의 노력이 미국 때문에 실패했다. 허망한 결과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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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후 체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나


전 세계 유엔 회원국들은 1995년 이래 연례행사로 개최되어 왔듯이 2022년 11월 이집트의 샤름 엘 셰이크에서 개최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7)에서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렇게 지금까지 27년씩이나 전 세계 유엔 회원국 정상들을 비롯한 정부 대표들과 학계, 환경 단체, 기업 대표 등 수만 명이 모여서 협의를 해왔음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기후 위기는 날로 악화하고 있으며 역시나 이번 COP27의 성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평가가 넘치고 있다.

이제야말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직설적인 분석과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현재의 기후 위기는 더 이상 외교적 수사와 정치적 편의로 진실을 호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는다. 27년 동안 매년 수만 명이 모여서 2주일 간이나 밤을 새워 가며 협의를 해도 성과가 없었다면 이제 더 이상 유엔기후변화협약의 한계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피할 수는 없다. 한계가 분명한 기존의 통상적인 방식으로 또다시 27년을 허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올해 11월 중동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COP28을 개최한다고 하는데, 지난 27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COP28에서 갑자기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석유 수출국인 중동 국가들이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를 독점적으로 돌아가며 개최하는 현 상황이 유엔기후변화협약 체제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화석 연료에 인질이 된 기후 위기를. 석유와 천연가스의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중동 국가들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돌아가면서 개최하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도출되기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뉴스에서는 금년 COP28 의장으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국영석유회사의 회장이 임명되었으며, 환경 단체들은 그의 임명이 적절치 못하다고 우려한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아마도 일부에서는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약’이라는 유엔 기후 체제가 가동되고 있고,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이른바 Net Zero 2050이라는 목표치를 발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40퍼센트 감축을 공약하였으니, 상당한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긍정적인 기대를 하면서 유엔 기후 체제에 희망을 거는 견해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파리기후협약은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즉 ‘각국이 스스로 결정한 기여’라는 자발적 서약과 검토에 기반하고 있어 강제력이 없다. 국제 사회는 이미 수차례 법적, 정치적 목표치를 서약한 바 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1992년 채택된 유엔기후협약은 2000년까지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으로 동결할 것을 규정하고 전 세계 국가들이 비준까지 하였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1997년도에 채택된 ‘교토의정서’는 선진국들의 배출량을 2012년까지 1990년 수준에서 5.2퍼센트 감축하기로 규정하고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비준까지 하였으나,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2009년도에 채택된 코펜하겐합의는 전 세계 130여 개 국가들이 2020년까지 20~40퍼센트에 이르는 과감한 감축 목표치를 서약하였으나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당시 이명박 정부에서 30퍼센트 감축 목표치를 서약하였으나 정작 2020년에는 그러한 목표치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배출량도 줄기는커녕 25퍼센트나 증가하였다. 물론 이러한 사정은 우리나라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촉발한 에너지 대란은 독일 같은 기후 변화 선도국조차 오히려 석탄 발전을 재가동하게 하면서 화석 연료의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이래 30년간 수많은 정상회의와 유엔 기후협약 당사국총회가 개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어든 적이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극단적인 보건 위기와 금융 위기로 인해 세계 경제가 위축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최근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Net Zero 2050이라는 정치적 서약이 탄력을 받는 형국이긴 하나, 만일 미국에 또 다시 공화당 정부가 들어서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 것처럼 파리기후협약을 헌신짝 버리듯이 탈퇴한다면 현재의 파리 기후 체제는 하루아침에 또다시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다.

 

2. 국제 사회가 허비한 20년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 채택 이래 2015년 파리기후협약이 합의될 때까지 국제 사회는 유엔 기후협상에서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새로운 대안의 모색은 지난 30년간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그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1992년도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규정한 기후 체제는 사실 간단하다. 선진국들이 산업 혁명 이래 배출한 온실가스에 대한 과거의 역사적 책임을 부담하는 차원에서 1990년도를 기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의 절대량을 감축하는 법적인 의무를 부담하고, 개도국은 각국의 개발 수준과 능력에 상응한 자발적인 감축 노력을 하지만 법적인 책임은 지지 않는 그런 기후 체제를 규정하였다.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간단하지 않은가? 부연하면 여기서 법적인 책임이란, 의무를 준수하지 못하는 경우는 그에 해당하는 범칙금(Penalty) 등을 부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처럼 간단하고 상식적인 기후 체제가 딱 한 나라 때문에 법적 구속력 있는 기후 체제 운용 방식으로 합의되지 못하고 1995년에 시작된 기후 협상이 20년이라는 세월을 낭비하고 결국은 2015년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발적인 파리기후체제로 귀착되고 말았다. 필자가 20년의 세월을 낭비했다고 하는 이유는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발적인 기후 체제에 합의할 것이었다면 1995년에도 얼마든지 합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년씩 걸릴 일이 아니었다. 각국이 스스로 알아서 자발적으로 서약하고 검토하고 이렇게 서약한 감축 목표치를 준수하지 못해도 아무런 불이익도 당하지 않는 체제라면 합의에 20년씩 걸릴 이유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 사회는 20년을 허비했다. 딱 한 나라 때문에.
 

3. 미국 대 전 세계


1992년 이래 지난 30년간의 유엔기후협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과 법적 구속력 있는 감축 의무를 주장한 개도국들과 이를 거부한 미국 한 나라가 대립한 역사로 압축할 수 있다. 유럽은 개도국의 주장에 동조하였으며, 개도국과 힘을 합쳐 미국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17년,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에 대해 사과하고 첫 행정 명령으로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을 지시했다. ©Adobe Stock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을 언급한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은 미국도 합의하고 서명 비준하였으며 협약의 당사국이다. 그런데 1997년 교토의정서 합의를 앞두고 1997년 7월 25일 미국 상원에서 95 대 0의 만장일치로 버드-헤이글(Byrd-Hagel)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부터 산업 혁명 이래 온실가스 배출이 촉발한 선진국의 과거 역사적 책임을 부정한 미국의 입장은 2015년 파리기후협약까지 이어졌다. 작년 11월 샤름 엘 셰이크 COP27에서 천신만고 끝에 개도국들이 기후 변화로 입은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를 지원하기 위한 합의에 대해서도 미국은 이것이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니 참으로 놀랄 만한 일관성이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기후 체계를 좌절시킨 버드-헤이글 결의안은 중국, 인도 등 주요 개도국들이 미국과 동등한 법적 의무를 수락하지 않는 한 미국은 어떠한 법적 의무도 수락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 미국은 미국과 개도국 간의 기후 변화에 대한 법적 의무의 동등성(Legal Parity)을 유엔 기후 변화 체제 참여의 전제 조건으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을 규정한 유엔기후변화협약의 기본 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양립이 불가한 주장이다.

지난 2세기 동안 석탄과 석유 등 값싼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한 산업 혁명과 값싼 탄소 문명의 선두 주자인 미국은 중국, 인도 같은 주요 개도국들도 동일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미국 역시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1990년대만 해도 미국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톤을 상회하였으며 당시의 인도와 중국은 1~2톤에 불과하였다. 역사적 누적 배출량은 말할 것도 없지만 기후 정의의 차원에서 중국과 인도가 미국과 동등하게 기후 변화의 법적 책임을 분담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 아니다. 인도와 중국도 미국처럼 법적 의무 감축량을 수락하고 감축 의무를 준수하지 못하면 미국 등 선진국처럼 범칙금을 지불하는 동등한 법적 의무를 부담하는 기후 체제라는 것은 애초부터 개도국들과 합의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미국은 ‘교토의정서’ 협상 당시 앨 고어(Al Gore) 부통령이 참석하여 직접 서명까지 하고서도 중국과 인도에 대한 동등한 의무 부과가 없다는 이유로 당시 부시 대통령이 비준을 거부하였으며, 2000년도 헤이그 기후총회, 2007년의 발리 기후총회, 2009년의 코펜하겐 기후총회 등 결정적 계기마다 법적 구속력 있는 기후 체제의 합의를 무산시켰다. 같은 선진국 그룹인 유럽연합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대하고 개도국의 입장을 지지하였지만 국제 사회는 미국의 일방적 주장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2015년 아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파리기후체제라는 자발적 서약에 기반을 둔 기후 체제에 합의하고 말았다. 선진국과 개도국 공히 법적 의무를 지지 않는 방식으로 법적 동등성(Legal Parity)을 달성하였다. 국제 사회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기후 체제이지만 그나마 미국이 참여하여 준 것을 고마워하는 딱한 상황이었는데, 그러나 어이없게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파리기후협약마저도 탈퇴하여 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유엔 기후 협상의 현장을 보지 못한 비전문가들은 필자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 선뜻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미국의 정치적 수사에 현혹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대통령이나 국무장관 등 고위 정치급에서, 특히 민주당 정부는 유엔총회 등 고위급 회의와 기후당사국총회의 개회 연설 등에서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강력한 기후 체제를 지지하며, 자신들이 선도적 책임을 지면서 개도국도 적극 지원하겠다는 화려한 정치적 수사를 아낌없이 구사하여 왔다. 그러나 유엔 실무 협상 테이블의 실무선에서는 선진국의 일방적 법적 의무 분담 그리고 ‘선진국’과 ‘개도국’ 의무의 차별화를 철저히 거부하였다. 이러한 사례를 일일이 다 나열할 수는 없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는 자발적 체제인 파리기후협약 협상에서조차 미국은 협상의 마지막 순간까지 ‘선진국’과 ‘개도국’의 의무를 각각 별도의 조항에 차별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면서 ‘선진국’과 ‘개도국’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당사국’이라는 하나의 조항에 근거해 동등한 의무를 규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협상을 파국으로 몰고 갔으며, 마지막 순간에 존 케리(John Kerry) 국무장관이 주요 협상 그룹의 장관급 비공식 협상에 직접 참석하여 기후 협상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이 ‘선진국’과 ‘개도국’ 의무의 차별화된 규정, 이른바 당시 협상 용어로는 Bifurcation을 수용함으로써 법적 구속력이 없는 파리협약이나마 극적으로 겨우 합의가 되었다. 강력한 법적 구속력 있는 기후체제를 지지한다는 미국 고위급 대표들의 정치적 발언과 선진국의 법적 구속력 있는 의무 분담을 철저히 거부하면서 개도국도 동등한 법적 구속력 있는 의무를 분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실무 협상 대표들 간 역할을 분담하는 굿 가이 배드 가이 투 트랙(Good Guy Bad Guy two-track) 협상 테크닉과 선진국 매체들의 편파적인 보도로 미국의 이러한 역사적인 책임 거부가 기후 체제 합의에 최대 걸림돌이었다는 사실이 외부에 제대로 보도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중국, 인도 등 강경한 개도국들의 비협조로 기후 체제가 합의되지 못했다는 인식이 외부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지게 된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 인도 등 강경 개도국들의 지나치게 경직된 협상 논리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개도국도 선진국의 ‘과거’에 대한 책임 추궁에는 강경하였으나, 자신들의 경제 개발에 따른 ‘미래’의 책임을 ‘능력’에 상응하게 부담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에는 지나치게 인색하였다.

유엔 기후 협상에서 얻은 가장 큰 한계와 교훈은 법적 구속력 있는 의무에 기반한 기후협약체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국제 사회가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하여 기후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30년간의 노력이 실패하였으며, 앞으로도 이를 강제하기 위한 어떠한 국제적인 체제도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30년이라는 세월을 지불하고 얻은 교훈 치고는 너무나도 허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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