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유럽이 과거의 성공에 고무되어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는 까닭은 그동안 30퍼센트에 달하는 탄소 배출량 감축은 30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친 중화학공업의 개도국 이전이라는 산업 구조조정으로 비교적 손쉽게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2030년까지 줄여야 할 추가적인 25퍼센트의 감축은 과거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남은 기간이 7년에 불과하며 과거처럼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탄소 유출 효과를 앞으로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소비자의 소비 패턴 변화와 총소비의 감축, 재생 에너지 비중의 획기적 증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겠지만, 과연 어느 정도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지난 30년간 소비 부문의 감축은 생산 부문보다 낮으며 대부분 소비 패턴의 변화보다는 소비제품의 에너지 효율 향상, 예를 들면 승용차의 리터당 마일리지 향상 등에 기인하지만, 앞으로의 감축은 소비 패턴, 예를 들면 승용차 이용의 획기적 감축과 대중교통 체제로의 전환 같은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6. 새로운 ‘지속 가능 경제학’ 아이디어
앞에서 살펴본 유엔 기후 체제가 당면한 한계의 근저에는 단기 생산 ‘GDP’의 극대화와 시장의 수요공급에 따라 에너지의 시장 가격을 결정하면서 물, 공기, 환경, 생태 자원, 기후, 탄소를 자유재(Free Goods)로 취급하는 자유 시장(Free Market)에 기반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탄소를 공짜(Free Goods)로 취급하면서 탈탄소(Carbon Free) Net Zero 2050 목표치를 달성하기는 어렵다. 세계 각국이 Net Zero 2050 목표 달성을 위해 녹색 에너지 전환과 기술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에너지 전환과 기술 혁신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부연하지만, 에너지 전환과 기술 혁신이 필요 없다는 뜻이 절대 아니며 보다 근본적인 경제 시스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기후 변화 문제는 탄소를 ‘공짜’로 취급하는 자유 시장 체제 때문에 발생한 만큼, 탈탄소 경제구축과 Net Zero 2050이라는 목표치의 달성을 위해서는 에너지의 시장 가격에 탄소의 가격을 반영하는 보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서 석탄에 탄소세를 부과하여 태양광 에너지 가격보다 더 비싸게 만들면 녹색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온실가스 감축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현재의 자유 시장(Free Market) 가격에 탄소 가격을 반영하여 지속 가능 시장(Sustainable Market)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기후 변화 문제해결의 기반이 마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탄소 가격을 반영하는 ‘지속 가능 시장’으로의 전환은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합의하여 동시에 추진하지 않는 한 실현되기가 어렵다. 시장 경쟁과 산업 경쟁력의 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나라만 일방적으로 시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2015년 파리기후협약이 채택되는 순간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은 관심 있는 국가들 간의 탄소 가격 내부화 동맹(Coalition of like-minded Countries for Carbon Pricing)을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이 제안은 실현되지 못했다.
2015년 유엔이 지속 가능 개발 목표(SDG)를 채택하고 각국 정부들이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도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고전하는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이든, SDG 달성을 위한 환경 보존과 사회발전이든 그들은 모두 장기적인 목표들인데, 현재 자유 시장 기반의 시장경제체제는 수요와 공급의 단기 균형 또는 단기 성과의 극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매년 GDP의 극대화가 경제 운용의 최우선 지표로 작동되는 한 기후 변화 대응, 사회발전과 경제발전 간의 균형을 통한 SDG의 달성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단기 성과의 극대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유 시장 경제체제를 지탱하는 자유 시장 경제학(Free Market Economics)을 장기 지속 가능성을 최우선 목표로 추구하는 새로운 지속 가능 경제학(New Sustainability Economics)으로 전환하는 구체적 실천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이다. 기후 위기와 빈부격차 등 생태, 사회 위기, 좀 더 넓게 말하자면 지속 가능성의 위기를 초래한 현재의 자유 시장 경제학에 안주하면서 우리가 당면한 다중적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일찍이 아인슈타인이 “We cannot solve our problems with the same thinking we used when we created them.”이라고 한 바 있다. ‘새로운 지속 가능 경제학’으로의 전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담론 시작이 시급한 이유이다.
7.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유엔은 앞에서 살펴본 다양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Net Zero 2050이라는 정치적 목표치를 검토하고 상호간의 Peer Pressure를 통해 감축 행동을 촉진해나가는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발적 서약과 검토 위주의 정치적 협상만으로 기후 위기 해결을 기대할 수는 없다. 보다 근본적이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 해결에 필요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내용을 살펴본다.
자유 시장에서 지속 가능시장으로의 전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탄소를 자유재, 즉 공짜(Free Goods)로 취급하는 자유 시장(Free Market) 경제를 운용하면서 탈탄소미래(Carbon Free Future)를 논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녹색 에너지 전환’과 ‘기술혁신’을 Net Zero 2050 달성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탄소에 얼마큼의 시장 가격을 부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턱없이 부족하다. 에너지와 기술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시장 경제 체제에서 시장가격에 탄소 가격을 반영하는 것만큼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경제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여러 이론(異論)을 제기하고 있다. “탄소 가격의 반영만이 능사가 아니다.”, “탄소 가격만 반영한다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등과 같이 여러 반론들이 있지만, 탄소 가격을 반영하지 않고 기후 위기에 대처할 만한 충분한 탄소 배출 감축 효과를 거둘 수는 없다.
태양광, 풍력, 연료 전지, 탄소 포집 저장, 수소자동차 등 이미 다양한 탄소 저감 기술들이 개발되어 있지만 경제성이 발목을 잡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기술들의 경제성을 제고하려면 시장가격에 탄소 가격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와 기술은 주로 생산 부문에 중점을 두지만 탄소 가격의 반영만이 소비패턴의 변화에 상당한 변화를 줄 수 있다. 문제는 속도와 범위의 조절 문제일 것이다. 탄소세와 같은 조치가 강력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 나라도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은 탄소세 도입이 가져올 경제 충격과 납세자들의 저항 그리고 이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검토할 수 있는 실천 가능한 단계적 조치들을 살펴보겠다.
자발적 탄소 가격 지불을 위한 차별화된 탄소 가격 시스템의 도입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48퍼센트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10년 안에 전기 요금의 두 배 인상에 찬성하였으며, 45퍼센트는 반대하였다고 한다. 여론이 이렇게 반반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정부가 재생전기 확대를 위한 전기요금 인상을 선도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은 자발적 탄소 가격 지불을 위한 차별화된 가격 체계의 도입이다. 기후 위기를 걱정하고 기후 위기 대처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차별화된 자발적 탄소 가격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다.
독일은 기후 위기를 걱정하여 스스로 탄소 배출이 없는 재생전기를 쓰고 싶은 소비자에게는 더 높은 가격에 재생전기를 공급한다. 고속기차 탑승권도 재생전기로 여행하고 싶은 소비자에게는 더 높은 가격으로 그린탑승권을 판매한다. 기후 위기를 걱정하고 탄소 배출을 하고 싶지 않은 소비자는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기차에 탑승하며, 추가로 지불한 금액만큼 재생전기를 구매하여 기차 운행에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제주도 풍력발전 단지의 풍력 발전기를 1년에 160여 일 이상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전력의 적자가 커지는 상황에서 재생 전기 구매량에 한도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인데 설치한 태양광 단지들도 한전에서 계통연결을 지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탄소 배출 없는 재생전기를 쓰고 싶은 소비자에게는 더 높은 가격에 재생전기를 공급하고 KTX 승차권도 재생전기승차권을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하여 이렇게 지불한 자발적 탄소 가격 지불 금액만큼, 한전에서 재생전기의 구매에 활용한다면 한전이 적자 때문에 재생전기의 구매를 중단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자발적 기여(Personally Determinded Contribution·PDC) 선택지의 제공
기후 변화 대응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반반으로 갈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기후 변화 대응에 참여 의사가 있는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추가 비용을 지불하여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탄소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각 개인이 스스로 결정하여 기후 변화 행동에 대한 기여(PDC)를 할 수 있는 자발적인 기후 행동 참여 사회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탄소발생이 없는 기차여행을 원하는 개인이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녹색기차표를 구매하여 여행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 PDC 활성화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앞에서 파리기후협약이 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국가가 스스로 결정한 기여)에 의존함을 지적했는데, 이미 설명한 대로 경제 성장, 민생, 산업 경쟁력 등 다양한 우선순위를 챙겨야 하는 정부가 다양한 경제 산업 분야의 우선 순위를 제쳐두고 NDC를 국가 운용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다른 정책 목표들을 희생하면서까지 NDC를 반드시 달성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만큼, 정부에 의한 NDC에만 의존하기보다는 기후 위기를 걱정하고 자발적으로 기후 행동에 참여하려는 개인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함으로써 PDC 활성화 방안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비록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일부 개인들이 시작한 PDC가 새로운 사회의 물결이 되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가능성을 기대하면서.
주요 사회 인프라 투자 사업의 경제 타당성 검토에 탄소의 잠재가격(Shadow Price of Carbon) 반영
우리나라는 500억 원 이상의 투자사업에 대해서는 예비 타당성 심사를 하여 경제성이 있는 경우에만 투자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성 검토가 주로 사업의 수익성, 즉 투자했을 때 경제적인 손실의 발생 여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평가 세부 항목에 사회, 환경 요소도 일부 포함되어 있으나 멸종 위기의 동식물에 대한 환경 영향, 인명 사고 발생 여부 등을 주요 평가 요소로 규정할 뿐 정작 가장 중요한 탄소 배출량, 미세먼지, 공기 오염 등의 증가 또는 감소 여부는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특히 기후 위기 대처에 가장 중요한 탄소 배출량에 대한 영향이 누락되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공항 접근 교통방식으로 민자 고속도로를 우선하면서 철도의 연결을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수년간 지연시킨 사례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수도권 광역고속지하철망인 GTX A, B, C 노선에 대한 경제성 검토에서도 탄소 배출량은 반영되지 않았다. 만일 인천공항교통망을 고속도로가 아닌 철도 위주로 설계했다면 그동안 감축할 수 있었던 탄소 배출량의 규모는 엄청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권 거래 제도에 의하면 탄소 1톤당 가격이 약 2만 9000원인데, GTX 노선 건설로 인해 줄어들 승용차 운행 감소와 이에 따라 줄어들 탄소 배출 감소량을 톤당 2만 9000원으로 계산하여 이를 수익으로 경제성 계산에 반영한다면, GTX와 같은 녹색 대중교통 투자가 촉진될 것이고, 승용차 운행도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대규모 투자사업의 탄소 배출량에 대해 탄소의 시장 가격을 반영하는 것을 탄소 잠재가격 반영이라고 하며, 유럽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