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이 선사한 최후
1화

바그너의 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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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리고진의 죽음


저주받은 엠브라에르(Embraer) 제트기의 탑승 명단에는 예브게니 프리고진(Yevgeny Prigozhin) 이외에도 다른 사람이 더 있었다. 프리고진의 최측근 군부 및 민간인 동료, 바그너(Wagner) 그룹의 베테랑 지휘관도 이름을 올렸다.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바그너 그룹이라는 용병 집단의 지도력에는 공백이 생겼다. 그들은 곤란하면서도 불확실한 미래에 처해 있다. 비행기 폭파로 인해 감히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대들고 쿠데타를 시도했던 한 사람만이 아니라, 반란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확실히 제거되었다. 바그너 그룹이 사실상 참수된 것이다.

바그너 그룹의 최고위층이 제거되면서 과연 중동과 아프리카에서의 수익성 높은 군사 작전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떠오르고 있다. 크렘린을 비롯한 우군의 손에 넘겨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러시아 내 반대파 소식통에 의하면, 프리고진의 아내인 류보프(Lyubov)는 현재 인도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그녀가 남편의 사업에서 금전적으로 어떤 이해관계가 있고 무엇을 상속받을 것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이 비행기에 탐승한 사람들 중에서는 바그너 그룹의 공동 설립자인 드미트리 우트킨(Dmitry Utkin)도 있다. 사실 바그너는 원래 그의 콜사인(call sign)이었으며, 나중에 그룹의 정식 명칭으로 채택된 것이다. 참고로 그는 아돌프 히틀러가 가장 좋아하던 작곡가[1]의 이름을 따 자신의 콜사인을 붙였다. 전직 군부 정보통이자 스페츠나츠(Spetsnatz·특수부대) 장교였던 그는 프리고진의 오른팔로 간주되었으며, 지난 6월의 모스크바 진격을 조직했던 인물로 여겨진다.

또 다른 탑승객인 발레리 체칼로프(Valery Chekalov)는 프리고진과 바그너의 재정 문제를 담당하는 핵심 인사로 해외의 모든 민간 프로젝트와 그룹의 물류 지원을 관장하고 있었다. 그는 프리고진이 세운 콩코드(Concord) 그룹의 고위 임원이었는데, 콩코드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다수의 계약을 수주해 왔다. 그러한 계약들 가운데에는 식음료 사업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 덕분에 바그너의 수장인 프리고진에게 ‘푸틴의 요리사’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체칼로프는 네바 JSC(Neva JSC)를 이끌었는데, 이 회사가 소유한 에브로폴리스 유한회사(Evro Polis LLC)는 바그너가 시리아와 아프리카에서 추진하는 모든 프로젝트와 관련되어 있었다.

‘마카르(Makar)’라는 군용 콜사인을 갖고 있던 예브게니 마카랸(Yevgeny Makaryan)과 ‘케드르(Kedr)’라는 콜사인의 세르게이 프로푸스틴(Sergey Propustin)도 모두 바그너의 경험 많은 전사였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와 시리아를 포함하여 그룹의 수많은 임무를 수행했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프로푸스틴은 프리고진의 개인 경호원들을 감독했다고 한다. 러시아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번 사고로 희생된) 니콜라이 마투세에프(Nikolai Matuseev)가 시리아에서 복무했던 니콜라이 마투세비치(Nikolai Matusevich)일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프리고진은 한때 알렉산드르 루카셴코(Aleksandr Lukashenko) 대통령이 중재한 계약하에 벨라루스로 이동할 것으로 여겨졌다. 참고로 루카셴코는 지난 6월의 반란을 끝낸 인물이다. 그런데 프리고진은 이동이 자유로워 보였고, 심지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틴이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을 위해 주최한 정상회담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주 초에는 아프리카에서 촬영한 것으로 여겨지는 프리고진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게시되었는데, 그는 바그너가 그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사람들은 프리고진의 역할이 지나치게 중요해져서 크렘린에 의해 축출되거나 배제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는 그의 정적이 퍼트리려고 준비했던 그림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프리고진을 현실에서 영원히 제거하려고 계획하고 있던 것 같다.

“프리고진이 푸틴에게 맞서 도전한 뒤에도 그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우리가 그 답을 알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서방의 어느 안보 관계자의 말이다. “만약 이것이 계획된 공격이라면, 그것을 누가 계획했든 그 목표 대상 모두를 공격에 취약한 한곳에 모으려 했을 겁니다. 가령 비행기 한 대처럼 말이죠. 한 가지 아주 이상한 점은, 왜 최고위층 모두가 동일한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느냐는 겁니다. 안보 분야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인데 말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기고만장했거나, 아니면 그렇게 해도 된다는 어떤 보증이 있었을 겁니다.”

 

2. 바그너 그룹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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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약 6000명 규모의 바그너 용병들은 지난 6월의 반란을 종식시킨 루카셴코 대통령이 중재한 계약 하에 벨라루스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벨라루스와 바그너의 세력이 군사 훈련을 하는 동안 폴란드는 국경으로 1만 명의 병력을 보냈다.

이들 전사들이 무엇을 할지 현재로서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소셜미디어에는 자신들이 바그너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복면을 쓴 남성들이 복수를 다짐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크렘린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을지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프리고진을 비롯한 인사들의 죽음은 바그너 그룹의 분노를 일으킨 동시에,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깊은 우려도 들게 만들었다. 바그너의 노련한 전사들은 과거에는 이 그룹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대중적으로 발언하는 걸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시리아 작전에 복무했던 니콜라이 아파나셰프(Nikolai Afanasyev)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우리 병사들은 분노하고 있으며 화가 납니다. 그러나 또한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명확한 건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겨진 상황을 확인한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판단해야 합니다.”

5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텔레그램(Telegram) 채널인 그레이 존(Grey Zone)을 포함한 친 바그너 계열의 소셜미디어 계정들은 러시아의 국방부가 대공포 또는 기내의 폭발물을 통해서 비행기를 추락시켰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프리고진이 “러시아의 영웅”이었으며 “러시아에 대한 반역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말한다.

현직 블로거이며 전직 크렘린의 자문위원이었던 세르게이 마르코프(Sergei Markov)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우리의 적들을 죽여야지, 우리 자신을 죽여선 안 된다. 우리의 모든 적이 (이 사건을) 축하하고 있다. 프리고진의 죽음은 올해 우크라이나가 거둔 최대의 성과다.”

서방 및 우크라이나의 안보 관계자들은 이 공격을 누가 수행했는지에 대해 각기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의 정보 기관, 군부의 첩보 기관, 러시아의 국방부 내에 있는 각각의 단위에 모두 혐의점이 있다고 여긴다.

키이우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독립기념일(8월 24일)에 맞춰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가 프리고진의 죽음과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는 “그 일과 관련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참고로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HUR)은 프리고진과 별도로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은 지난 6월에 바그너의 수장인 프리고진이 만약 우크라이나가 바흐무트에 있는 자신의 병력에 저항하는 것을 중단한다면 러시아 군대의 위치를 공개하겠다고 제안해 왔다고 주장했다. 국방정보국은 관련 보도에 대한 논평을 거부해 왔다.

HUR의 어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고진이 실로비키(siloviki·정보 기관) 내에 수많은 정적을 만들어 온 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은, 푸틴의 직접적인 명령이 없이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서방의 우군들이 우리에게 푸틴과 거래를 하라고 요청할 때 마음에 잘 새겨야 할 필요가 있는 사실입니다. 프리고진도 푸틴과 계약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가 어떤 파국을 맞았는지 보십시오.”

푸틴 대통령은 범죄 현장으로부터 325마일(52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는 쿠르스크 전투(Battle of Kursk)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프리고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징주의에 대한 안목이 있는 사람들은 그가 오케스트라 앞에 서서 발언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바그너 그룹이 자신의 전사들을 부르는 별명이 바로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이다.

친 바그너 성향의 소셜미디어에서는 분노의 표현이 지속되고 있다. 밀리터리 블로거인 로만 사폰코프(Roman Saponkov)는 이렇게 썼다. “프리고진의 살해는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한 명령을 내린 그 사람은 군대 내의 정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위협을 무력화하기 위한 한 가지 조치는 러시아 항공우주군의 세르게이 수로비킨(Sergei Surovikin) 장군에 대한 해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내전에서 잔혹한 기법을 사용하여 “아마겟돈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은 수로비킨은 프리고진과 우호적인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고진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수행되는 방식 때문에 세르게이 쇼이구(Sergei Shoigu) 국방 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Valery Gerasimov) 장군 등의 고위층에게 반감이 있었는데, 수로비킨 역시 그러한 정서에 공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로비킨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이후 푸틴에 의해 직위가 해제된 수많은 지휘관 가운데 한 명이다. 세르게이 키셀(Sergey Kisel) 중장, 루스탐 무라도프(Rustam Muradov) 중장, 미카일 미진체프(Mikhail Mizintsev) 대장, 블라디미르 셀리베르스토프(Vladimir Seliverstov) 소장, 이고르 오시포프(Igor Osipov) 해군 중장,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Aleksandr Dvornikov) 장군, 알렉산드르 주라블레프(Aleksandr Zhuravlev) 대장 등이 모두 지난 18개월 동안 군을 떠났다.

우크라이나 침공의 설계자인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쿠데타로부터 살아남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반면에 쿠데타를 시도한 프리고진은 화려하게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안보에 균열이 인 상황에서 세력을 키우게 될 다음의 대항 상대는, 블라디미르 푸틴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의 가차 없는 무자비함을 능가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1]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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