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때문에 못 살겠다

2023년 10월 4일, explained

오버투어리즘이 도시를 거대한 세트장으로 만들고 있다. 지속 가능한 관광이 필요하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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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수상 도시 베네치아가 입장료를 부과하는 세계 최초의 도시가 된다. 내년 봄부터 당일치기 관광객에게 7000원의 입장료를 걷는다. 베네치아는 인구 5만 명의 작은 도시인데, 해마다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그중 3분의 2가 당일치기 관광객이다. 시 당국은 이들이 도시 과밀 현상을 초래할 뿐 지역 경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입장료를 받기로 했다.

WHY NOW

세계인이 코로나 3년간 여행 못 간 한을 풀고 있다. 전 세계 유적지가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과잉 관광)을 앓는다. 오버투어리즘이란 관광객이 지나치게 많이 몰리면서 현지 주민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한다. 세계 중산층이 늘어나고 기대 수명이 증가하면서 관광 산업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오버투어리즘 문제는 갈수록 심화할 것이다. 오버투어리즘이 휩쓸고 간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지속 가능한 관광은 가능할까.

파레토의 법칙 #에펠탑

오버투어리즘이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인의 버킷리스트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에펠탑, 산토리니, 콜로세움, 피라미드, 발리의 해변. 80/20 법칙으로도 불리는 파레토의 법칙은 관광에도 적용된다. 세계 1위 관광 대국인 프랑스를 찾는 사람의 80퍼센트가 에펠탑, 몽생미셸 등 국토의 20퍼센트에 불과한 명소만 방문한다. 교통, 주차, 숙박, 상하수도, 쓰레기 처리 등 인구에 맞게 설계된 도시 인프라가 감당하기 어렵다. 오버투어리즘은 여러 부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일상이 없다 #두브로브니크

여행용 캐리어의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는 여행자에겐 낭만이지만 주민에겐 소음이다.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는 “지상의 낙원을 보고 싶다면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했다. 이 낙원에선 11월부터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 벌금 40만 원이 부과된다. 두브로브니크의 시가지 바닥은 돌과 자갈로 이뤄져 있다. 연간 140만 명의 관광객이 밤낮없이 캐리어를 끌고 다녀 주민들이 고통을 받았다. 시 당국은 소음을 내는 카페와 술집에 벌금을 물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돈이 돌지 않는다 #베네치아

관광객이 생활에 불편을 끼쳐도 마을에 돈을 쓰고 가니 참을 만하지 않을까. 기념품 가게나 카페는 수혜를 입겠지만, 동네 세탁소와 미용실은 해당 사항이 없다. 당일치기 베네치아 관광객 중 70퍼센트는 관광버스나 크루즈 선박에서 쏟아져 나와 시가지를 몇 시간 동안 휘젓고 다니지만, 도시를 유지하는 데는 보탬이 되지 않는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만든 2만 원짜리 기념품을 하나 사고서는 가이드를 따라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떠난다.

주민이 떠난다 #베를린

유럽 주요 관광 명소에선 집주인이 저수익 장기 임대를 고수익 단기 임대로 전환하고 있다. 에어비앤비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고금리와 건설 비용 증가로 신규 주택 공급이 위축된 상황에서 에어비앤비 숙소가 늘어나면 주택 공급이 더 줄어들어 임대료가 올라간다. 현지 주민은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다. 독일경제연구소의 2021년 연구에 따르면 에어비앤비 숙소가 근처에 있을 경우 베를린의 아파트 임대료가 13퍼센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이 사라진다 #전주

한국도 오버투어리즘의 공습에서 예외는 아니다. 전주 한옥마을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옥 700여 채가 모여 있는 주거지였다. 그러나 지나친 상업화로 한옥마을 건물의 70퍼센트가 상가가 됐다. 탕후루 가게, 타코야끼 가게, 점집이 들어서면서 특색을 잃었다. “흔한 먹자골목에 기와지붕만 씌워 놓았다”는 비판도 있다. 서울 북촌도 마찬가지다. 관광객이 늘고 주민이 줄면서 빈집은 게스트하우스, 돌잔치 스튜디오가 됐다. 정주 한옥촌이 아니라 민속촌이 됐다.

환경이 파괴된다 #마야 베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비치〉가 성공을 거두면서 촬영지인 태국 피피섬의 마야 베이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석회암 절벽을 보러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피피섬에 정식 등록된 스피드 보트의 수만 1800대. 관광객을 태운 보트가 마야 베이의 수심 얕은 바다를 수없이 드나들어 산호 군락이 훼손됐다. 결국 태국 정부는 2018년 생태계 복원을 위해 마야 베이를 폐쇄한다. 필리핀 보라카이, 페루 마추픽추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관광 경험의 질이 떨어진다 #루브르

오버투어리즘의 피해자는 주민과 환경만이 아니다. 관광객도 피해를 본다. 수많은 관광객이 소수의 관광지에 몰리면서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비용이 올라간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를 실물로 보려면 최소 한두 시간은 줄을 서야 하고, 그림 앞에 어렵게 도착해도 단체 관광객들에게 밀려 먼발치에서, 1분 남짓 볼 수 있다. 루브르 박물관 노동조합이 “박물관이 질식하고 있다”고 성명을 냈을 정도다. 관광 경험의 질이 좋을 리가 없다.

IT MATTERS

오버투어리즘에 맞서 각국 정부는 덜 알려진 지역을 홍보하거나, 비성수기 여행을 장려하고, 일부 명소에서는 관광 인원을 제한하거나 입장료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과 상인, 관광객 모두가 만족하는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오버투어리즘이라는 용어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버투어리즘이라는 말은 관광객을 악마화하고 관광 자체를 문제로 여기게 한다. 관광은 문제가 아니라 해법이 될 수 있다. 바로 지속 가능한 관광이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2017년 ‘관광의 종말’을 선언했다. 관광객 몇백만 명 유치 같은 양적 팽창을 포기하고 ‘모두를 위한 지역 사회’를 만들기로 했다. 지역 사회의 지지가 없는 관광 산업은 반발을 일으킨다. 코펜하겐은 관광 정책을 주민이 주도해 만들도록 했다. 지역 사회와 함께 주민 참여형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해 관광객이 덴마크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고, 평범한 현지인 집에서 집밥을 함께 먹으며 관계를 맺게 했다. 코펜하겐에선 관광객도 ‘임시 주민’이 된다.

최근 서울시는 서울 관광 10대 과제를 추진해 관광객 3000만 명, 1인당 지출액 300만 원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코펜하겐은 목표부터 달랐다. 관광객 수를 성공 지표로 삼지 않았다. 코펜하겐을 방문한 사람이 이 지역 여행을 지인에게 추천할 의사가 있는지, 관광객 증가를 주민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지 등을 정책 성공의 지표로 삼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주민과 관광객의 만족도가 올라갔고, 관광객 수도 오히려 늘었다. 지속 가능한 관광은 주민, 상인, 관광객 모두에게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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