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을 버리는 방법

2023년 10월 10일, explained

우리는 매일 플라스틱을 먹는다. 어떻게 처리할지보다 언제까지 만들지가 중요할 수도 있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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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플라스틱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동굴에서, 구름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각종 정책이 시행되고 기업은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에 뛰어든다. 플라스틱을 먹어 치우는 미생물 연구도 활발하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전국 각지의 공원묘지와 납골당에서 조화 반입이 금지되기도 했다.

WHY NOW

소비주의는 20세기의 시대정신이었다. 플라스틱에 대한 혐오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이다. 그러나 종이 빨대를 사용하고 텀블러를 휴대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깨달았다. 플라스틱으로부터 인류세를 구원하기 위해 시장과 기술이 나섰다. 그런데 이 방향이 정말 맞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미세플라스틱 공포

미세플라스틱이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물론, 그 상식은 어렴풋하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뾰족하다. 미세플라스틱은 알츠하이머병이나 우울증 등과 연관성이 있다. 항생제 내성도 촉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세플라스틱은 태아에게까지 흘러 들어간다. 태반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보인다.

anti-plastic: 개인이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플라스틱 제품은 바닷물에, 바람에 쓸리고 깎이며 크기 5mm 미만의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분리수거에 신경 쓰고, 잘 모아서 버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21년, 북한강에 미세플라스틱이 다량으로 유입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원인은 하천변 산책로에 칠한 페인트였다. 북한강은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살고 있는 수도권의 상수원이다.

anti-plastic: 정책이 할 수 있는 일

개인의 노력과 주의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 정책이 등장한다. 올 추석에도 소소한 변화가 있었다. 일부 공원묘지와 납골당에서는 성묘 및 추모용 조화 반입을 막았던 것이다. 지자체 주도로 결국엔 미세플라스틱이 될 운명인 ‘예쁜 쓰레기’를 줄여보자는 움직임이다. 화훼농가의 입김도 작용했다. 2025년부터는 한강공원에 일회용 배달 용기 반입이 제한된다. 중앙정부도 나섰다. 2030년까지 플라스틱 재생 원료 사용 비율을 30퍼센트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재활용의 외주화

이런 정책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재활용 외주화의 실패 경험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올해, 30년 만에 재활용 및 폐기물 관리 강화를 위해 약 1억 달러의 보조금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과 터키 등에서 폐플라스틱을 더 이상 사들이지 않기 때문에 나온 대책이다. 우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18년 3월, 한국 사회는 쓰레기 대란을 겪었다.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면서 국제적으로 가격이 폭락했고, 안 그래도 수지가 맞지 않았던 플라스틱과 비닐을 중심으로 수거업체의 수거 중단 사태가 벌어진 것이 원인이었다. 아파트 단지마다, 빌라촌 골목마다 쓰레기가 쌓였다. 민원이 폭발했다. 정부가 재생 원료 사용 비율에 신경 쓰는 이유가 다 있다.

anti plastic: 기업이 할 수 있는 일

하지만 2023년, 정작 우리 기업들은 폐플라스틱 확보에 혈안이 되어있다. 플라스틱 재활용이 수출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2021년부터 포장재 플라스틱 폐기물 1kg당 0.8유로를 부과하는 ‘플라스틱세’를 시행 중이다. 또, 플라스틱 포장재에 재활용 소재를 30퍼센트 이상 사용하도록 법제화했다. 사건이 규제를 만들고, 규제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맥킨지에 따르면 폐플라스틱 재활용 시장 규모는 2050년 60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LG화학, 롯데케미칼, SK지오센트릭 등의 회사가 플라스틱 재활용 인프라 건설에 나섰다. 문제는 원료의 확보다. 폐플라스틱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으로 눈을 돌린 기업도 있다. SK케미칼은 페트병 조달을 위해 중국 업체에 지분 투자를 하고 일부 자산을 인수했다.

페트병을 골라내는 사람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수거와 선별 과정부터 문제가 있다. 시민들의 분리수거가 문제란 얘기가 아니다. 대부분 작고 영세한 재활용 업체들이 수작업으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분류하고 선별하고 있다.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다 못하면 매립하거나 소각한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연간 천만 톤이 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했다. 이 중 실질적으로 재활용된 비율은 27퍼센트 수준이다.

anti plastic: 과학이 할 수 있는 일

언제나 그렇듯, 과학과 기술이 구원투수로 등판할까. 재활용 쓰레기의 선별 자동화를 이룬 미국 뉴욕의 선셋파크 재활용시설에서는 선별 과정을 자동화했다. 하루에 천 톤가량의 재활용 쓰레기를 선별, 처리한 후 판매한다. 플라스틱을 먹어 치우는 미생물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전남대학교 염수진 교수팀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을 발견했다. 광주 매립장 지하 15m까지 건설장비로 파 내려가 만난 미생물이다.

IT MATTERS

개인이, 정부가, 기업이, 과학이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다만,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과연 덜 쓰고 더 재활용하는 것만이 방법이냐는 질문이다. 즉, 그만 만들 수는 없느냐는 질문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쓰고 버리는 소비자의 무책임과 돈이 되니 만들어 내는 기업의 탐욕 중 어느 쪽의 잘못이 더 무거운가.

1950년 150만 톤이었던 플라스틱 생산량은 2020년 3억 6700만 톤으로 증가했다. 약 240배다. 만들어지면 쓰이고 버려진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니, 플라스틱을 통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오판이다. 도색된 보행로를 걷는 행위만으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하고, 우리의 식수 속에 섞여 든다. 또, 플라스틱 재활용 과정이 오히려 미세플라스틱을 양산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물질의 위계는 폐기되고 하나의 물질이 모든 물질을 대체”하고 있다. 면, 종이, 유리, 나무의 자리에 플라스틱이 존재한다. 플라스틱은 쉽게 가질 수 있고 질리면 버릴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한번 쓰고 버리는 ‘임시적 소유’의 개념도 창조했다. 시대정신을 만든 물질이다. 소비주의라는 시대정신이다. 플라스틱을 버리고 싶다면 이 시대정신부터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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