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은 유일한 답일 수 없다

2023년 10월 26일, explained

소가 아닌, 사람이 바이러스를 옮긴다. 접근법은 바뀌어야 한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소 축사에 병이 돈다. 모기와 같은 흡혈 곤충을 통해 감염되는 럼피스킨병이다. 첫 발생 닷새 만에 감염 농가가 29곳으로 늘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백신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달 말까지 400만 마리에게 처방할 수 있는 물량이 들어올 예정이다. 항체 형성 기간 3주를 포함한다면 11월 중순에는 럼피스킨병의 발생 추세가 안정화될 것으로 보인다. 감염된 소는 모두 살처분된다. 확진 농장에서 지금껏 살처분된 소는 1000마리에 이른다.

WHY NOW

럼피스킨병은 안전하다. 종간 감염이 불가하고 유전자 변이 가능성이 크지 않다. 백신이 도입되고, 감염된 축사의 소를 모두 살처분하면 인간에게 끼칠 직접적 위해는 크지 않다. 질병으로선 그렇다. 시각을 조금 바꾸면 가축의 감염병은 위험한 징후다. 증거로서의 럼피스킨병이 울리는 경고음은 그리 작지 않다. 살처분은 감염의 시대를 구할 수 없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럼피스킨

럼피스킨병은 소에서만 발생하는 DNA 바이러스성 질병이다. 병에 걸린 소는 울퉁불퉁(lumpy)한 피부(skin)를 갖게 된다. 독감, 코로나19와 같은 RNA 바이러스와 달리, 럼피스킨 바이러스는 변이가 심하지 않은 DNA 바이러스다. 안정적인 구조 덕에 종간 감염은 쉽지 않다. 반면 확산은 빠르다. 울퉁불퉁하다는 표현에서 추측할 수 있듯, 럼피스킨 바이러스는 폭스(pox) 바이러스과에 속한다. 2022년 유행한 엠폭스, 천연두 바이러스가 대표적인 폭스 바이러스다. 이로 인한 질병 대부분은 풍토병으로 시작한다. 엠폭스는 중앙 및 서부 아프리카의 오랜 풍토병이었다. 럼피스킨병도 마찬가지다. 1929년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최초로 발견된 이후, 1989년에 중동 전역과 유럽으로 퍼진다.

풍토병

특정 자연환경이나 생활 습관으로 인해 제한된 지역 내에서만 유행을 반복하는 질병을 풍토병이라 칭한다. 풍토병이 해당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의 감염병이 되려면 자연환경, 혹은 생활 습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이 아프리카의 풍토병을 만들고, 그를 전 세계로 확산시켰을까? 다양한 감염병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바이러스는 침팬지의 SIV 바이러스로부터 변이됐다. 당시 아프리카에서 진행된 무분별한 동물 사냥과 개발은 침팬지와 인간의 교류를 지나치게 늘렸다. 2019년 유행한 아프리카 돼지 열병은 한 항공기 내부에서 전파가 시작됐다. 숙주였던 돼지가 기내식으로 유통됐다. 모두가 연결되기 시작하자 풍토병은 지역 바깥으로 향했다.

가축의 연결

바이러스 자체는 나쁘거나 특수한 존재가 아니다. 진화생물학자이자 공중보건 연구자인 롭 월러스는 그의 저서 《죽은 역학자들》에서 바이러스 이주의 원인으로 인간을 꼽는다. 바이러스에게 숙주는 죽여서는 안 되는 매개체다. 숙주가 죽으면 생명체가 아닌 바이러스는 활동할 수 없게 된다. 그 한계 지점을 면역학적 방화벽이라고 말하는데, ‘거리 두기’가 불가한 공장식 축산에서는 이 방화벽이 무력해진다. 수만 마리의 숙주가 한 공간에 모여 있으니 바이러스는 굳이 자신의 독성을 통제할 필요가 없다. 숙주는 언제나 준비돼 있다. 가축의 무분별한 연결은 바이러스가 더 악랄해지도록 돕는다.

서식지의 변화

축사를 벗어나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면역력을 길러 왔던 체계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뜨거워지는 지구는 영역 사이의 연결을 가속화한다. 2017년 연구에 따르면 10년마다 육지 생물은 17킬로미터, 해양 생물은 72킬로미터씩 위도가 높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뎅기열 바이러스를 옮기는 열대 지방의 흰줄숲모기가 2050년 한국에도 토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지구 온난화만이 아니다. 지역 개발도 그 균열의 시작이다. 박쥐의 바이러스는 수천 년 동안 서아프리카 숲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서아프리카의 숲이 잘려 나가자 나무에 가려져 있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 박쥐의 바이러스는 남극 대륙을 제외한 전 대륙, 113개국에서 발견된다. 2014년의 에볼라, 2020년의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렇게 쫓겨난 박쥐가 옮긴 병이었다.

생태계의 변화

서식지의 변화는 거대 생태계의 혼란으로도 쉽게 이어진다. 온도가 2도 오르면 모기 유충의 성장 속도는 50퍼센트 증가한다. 천적은 사라지는 중이다. 지난 10월 4일,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양서류 8000여 종 가운데 2873종이 멸종 위기 상태다. 멸종 위기에 처한 양서류는 1980년 37.9퍼센트에서 현재 40.7퍼센트로 늘었다. 질병이 큰 원인 중 하나였다. 포자로 피부를 덮어 양서류의 호흡을 막는 항아리곰팡이병은 치사율이 90퍼센트에 달한다. 서식지 변화는 이러한 감염병에 대한 대처 능력을 크게 낮췄다. 양서류가 줄면 양서류를 먹이로 삼는 조류와 포유류의 개체 수도 줄어든다. 반면 양서류가 먹이로 삼는 장구벌레는 늘어난다. 곤충 매개 질병은 퍼지기 더 쉬워진다.

살처분

글로벌과 기후 위기의 시대, 감염병은 모습과 이름을 바꾼 채 반복될 것이다. 다시 럼피스킨병을 보자. 살처분은 이 감염 확산의 미래를 떠받칠 수 있을까? 질문을 바꿔 보자. 길고양이가 조류 독감에 걸리기 시작할 때, 우리는 모든 길고양이를 살처분할 수 있을까? 살처분은 지금의 감염을 막기에 충분히 빠르고, 효과적이다. 그러나 미래의 감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윤리적 문제만이 아니라 실리적으로도 완벽하지 않다.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인간의 감염, 가축의 감염, 동물의 멸종과 기후 위기는 이제 동떨어진 문제일 수 없다. 동물을 거래의 대상이 아닌 생명으로, 환경을 개발의 대상이 아닌 서식지로, 생물을 처분의 대상이 아닌 거리 두기의 대상으로 봐야만 한다.

원헬스

생명체는 만난다. 그리고 연결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기도 한다. 만남과 연결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만 만드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연결이라는 동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2004년, 야생동물보존협회는 록펠러대학에서 ‘맨해튼 원칙’을 세운다. 추후 ‘원헬스(One Health)’라 불리기 시작한 이 원칙은 사람의 건강, 다른 동물의 건강, 환경과 건강이 모두 연결돼 있다고 전제한다. 모두의 건강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의학과 수의학, 환경 과학 모두 감염을 예방하는 데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살처분이 유일한 해결책은 아니다. 2019년 10월, 야생동물보존협회는 베를린에서 다시 모인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그룹이 ‘원헬스를 위한 베를린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팬데믹이 터진다.

IT MATTERS

2003년의 사스, 2009년의 신종플루, 2014년의 에볼라, 2015년의 메르스, 2020년의 코로나까지, 2000년대 이후는 감염의 시대였다. 베를린 원칙에 참여했던 한 연구자는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는 예측됐고, 피할 수 없었다. 결정적인 조치가 없다면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날 것이다.” 결정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이기적인 이유에서 말이다.

인간 사회의 건강과 예측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개발의 방향과 축산업의 표준은 바뀔 필요가 있다. 동물의 영역을 존중한다면, 살처분이 이뤄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든다면, 장기적인 사회적 비용은 필연적으로 감축된다. 감염병은 사후적으로 막으면 된다는 일차원적인 생각으로는 다가오는 2년 뒤를 예상할 수도, 미래 세대를 도울 수도 없다. 지구에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