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가 도시를 위협한다
완결

기후가 도시를 위협한다

기후가 변했다. 도시도 변해야 한다.

이탈리아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가 디자인한 보스코 베르티칼레. 사진: Emanuele Cremaschi/Getty Images.

1. 인류세와 도시


대략 6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구 곳곳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지만 자연을 거스르는 일은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지구와 조화를 이루며 지구의 일부로 존재했다. 이들은 자신이 사는 생태계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갔다. 혹시나 자연에 해가 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경계했다. 역경을 힘겹게 극복하고 생존에 성공할 때마다 다음에도 우리를 수호해 달라는 염원을 담아 자연에 고마움을 표하곤 했다. 주기적으로 추위나 가뭄이 찾아올 때면 인간은 생존의 위기를 느끼며 두려움에 떨었다. 자연의 위력 앞에서 한낱 무력한 미물임을 자각하며 굴복하였다. 지질학적 시간으로 최근까지도 인간은 지구를 경외했고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며 상황은 반전됐다. 인류는 마치 날개를 단 듯이 지구상에서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했다. 산업 혁명과 도시화는 인간 사회가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는 초석이 됐다. 이 과정에서 지구 환경은 심하게 훼손되고 교란됐다. 기후 위기가 찾아왔고 생태계의 저항력(resistance)과 회복력(resilience)은 저하됐다. 그럼에도 인류는 끝 간 데 없이 치닫는 욕망을 쫓아 여전히 성장일변도의 길만을 고집하고 있다.

양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20세기 중반부터 전 세계 인구는 급속도로 늘어났다. 때마침 성공한 녹색혁명의 덕이었다.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공법인 하버-보슈법이 등장하면서 질소 비료의 사용이 대중화됐다. 동시에 작물의 품종 개량이 활발히 이뤄지면서 식량 생산량이 급증하였다. 인구의 증가는 자연스레 지구 환경을 압박했고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은 크게 악화됐다. 이에 1960년대 후반부터 유럽, 미국, 일본 등을 중심으로 자연환경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때 본격적으로 시작된 환경운동의 명맥은 국제 NGO 단체들에 의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과거에는 자연의 예기치 못한 변화에 인간이 일방적으로 흔들렸다면, 지금은 인간이 지구를 자신의 목적에 맞춰서 변형시키고 교란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인간의 화석 연료 사용은 20세기 중반부터 더욱 가속화됐다. 그 결과 지구 온난화가 지닌 엄청난 파괴력이 점차 수면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현재 지구와 인류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구 온난화의 결과로 지구의 환경변화가 더욱 뚜렷해지면서 기후 변화가 앞으로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많은 사람들이 우려한다. 기후 변화의 위험성이 가시화되자 2001년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은 인간이 지구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용어의 사용을 학계에 정식으로 제안했다. 처음에는 호응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온난화가 이례적인 속도로 진행되자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이르면 내년에는 이 용어가 정식 지질시대 이름으로 학계의 공인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인류세의 학문적 의미에 불분명한 지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이 이 용어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이는 증거와 경험을 중시하는 과학자들이, 최근 수십 년간 인류가 지구에 가한 생태적 압박의 결과가 부메랑같이 돌아와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일각의 주장을 완전히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인류와 지구가 현재 기후 위기에 직면한 것이 사실이니 최대한 빠르게 대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전 세계인을 향한) 호소 또한 담고 있다. ‘인류세’와 같은 전문 용어의 대중화는 앞으로 기후 위기의 경종을 울리는 데 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한다(엘리스 2021). 

산업화와 도시화가 무분별한 토지 이용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생물들이 자신의 서식처를 잃고 이미 멸종했거나 멸종 위기에 노출돼 있다. 생물종다양성의 이례적인 감소 속도에 놀란 학자들은 지구상에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Cowie et al. 2022). 이는 자연적인 요인으로 발생했던 과거 다섯 번의 대멸종 시기와 비교할 때 멸종 속도 면에서 20세기가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간은 도시를 건설하고 도로를 놓으면서 생물의 서식처를 침범하고 파편화시켰다. 그 결과 이미 많은 종이 사라졌는데, 이러한 직접적인 서식처 교란에 더해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지구 온난화라는 간접적인 환경 교란을 통해서도 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이다.

과거 수백만 년 동안 지표의 온도가 변할 때마다 동식물은 두 가지 전략을 활용해 위기를 극복해 왔다. 먼저 자신의 생리적 조건에 적합한 곳, 가령 남쪽 혹은 북쪽, 저지대 혹은 고지대로 이동하였다. 대부분의 동물은 공진화를 통해 획득한 운동능력과 기동성을 바탕으로 장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식물 또한 씨앗의 효율적인 분산 기제를 활용하여 생존에 적합한 곳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도시화는 생물이 오랜 진화를 통해 얻은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든다. 인간이 만든 장애물들이 생물의 이동을 번번이 막기 때문이다. 흔히 ‘로드킬(Roadkill)’로 대변되는 이동의 장애는 최근 도시와 주변 생태계가 겪는 환경문제 가운데 하나로 자주 언급된다. 로드킬을 방지하기 위해 이른바 생태 통로를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있으나 실효성 측면에서 이러한 정책이 갖는 한계는 뚜렷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복잡하게 얽힌 생태계 연결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이 어렵다면 원래 위치에서 유전적으로 적응하는 것도 멸종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그러나 지금 지구 생태계가 겪고 있는 기후 변화는 생물이 돌연변이의 축적이라는 유전적 변화로 적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변화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기 때문이다. 미래의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아마도 표현형의 유연성 정도가 종의 생존을 결정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다. 표현형의 유연성이 높다는 말은 같은 유전자를 갖는 개체들이라도 환경 조건에 따라 여러 다른 모습을 띨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속성을 지난 종은 그리 많지 않으므로 고삐 풀린 온난화를 제어하지 못한다면 종다양성의 감소 추세를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먼저 표현형의 유연성과 이동 능력이 떨어지는 개체들부터 멸종하게 될 것이다(de Lafontaine et al. 2018). 인간과 도시가 직간접적으로 주변의 생물상에 가하는 압박의 강도는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은 인간의 치명적인 환경 파괴 행위를 고발한 《침묵의 봄(The Silent Spring)》이라는 책을 펴냄으로써 전 세계에 환경 오염의 위험성을 각인시켰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활동으로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지구 시스템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다며 경고한다. 인간의 행위는 지구 내 탄소와 질소의 순환 체계를 심하게 교란시켰다. 수질 오염, 대기 오염, 토양 오염, 해양 오염, 그리고 소음 공해, 광공해, 방사능 오염, 플라스틱 오염 등 인간이 초래한 환경파괴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지구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다양한 유형의 환경 교란과 오염은 대부분 도시에서 비롯한 것이다.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야기된 다량의 생활하수는 수자원을 더럽혔고, 도시 내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자동차는 대기를 오염시켰다. 유류의 유출이나 산성비는 도시의 토양 오염으로 이어졌다. 해안 대도시의 하수와 폐수는 바다의 부영양화와 녹조 현상을 일으켰다. 하천이나 해안 정비 작업은 도시의 가용 면적을 넓혔는지는 몰라도 가치가 무궁무진한 자연 습지를 훼손했다. 습지는 수해를 막아주고 오염 물질을 정화해주는 등 다양한 생태적 기능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생산성과 다양성 또한 높은 곳이다.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 지구 온난화를 심화시키는 것은 과밀한 도시가 지구 환경에 가하는 압박의 일부에 불과하다. 도시가 초래하는 생태계 교란과 다양한 유형의 환경 오염은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잠재적 위험이 크다. 온난화에만 신경을 쓰다가 인류와 도시가 지구생태계에 지우는 다른 종류의 생태적 부담을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구 시스템은 대기, 물, 토양, 식물, 동물, 인간 등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 간에는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으므로 대기 조성의 변화에만 주목해서는 미래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2. 기후 위기를 불러온 도시, 도시를 위협하는 기후 변화


현대 사회는 산업화와 함께 우후죽순같이 생겨난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인류는 도시가 갖는 효율성 덕에 물질적 삶의 질을 한결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과도한 도시화와 인구 집중은 인류의 최대 걱정거리인 기후 위기를 초래했다. 건물과 도로의 재료인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는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고 저장하여 도시 내부의 온도를 높인다. 도시 기온은 주변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지며 이는 온난화 현상을 더욱 부채질한다. 이른바 도시 열섬 현상이다. 과도한 포장은 도시 내에서 빗물의 흡수와 저장을 방해하여 강수량의 감소와 가뭄 등의 국지적 기상변화를 불러온다. 도시화로 녹지가 감소하면 잠열 효과가 사라져 기온은 더욱 오른다. 동시에 토양 침식, 생태계의 기능 약화 등 다양한 환경 문제들이 이어진다. 무엇보다 도시는 교통, 산업, 가정 부문 등을 중심으로 다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공간으로 온난화의 주범이나 다름없다. 특히 교통 체증은 탄소 배출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또한 대도시들의 주요 거주 공간이 쾌적한 해안에 몰려 있는 것도 미래의 위험 요소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은 상승하는 반면 지하수의 남용으로 도시 지면은 가라앉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해일 피해의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해안 습지의 훼손에서 비롯된 도시의 해안 침식 또한 가벼이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현재 지구 온난화만큼 전 세계적인 주목을 끌고 있는 환경 문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기후 위기가 모든 거시적 사회 문제의 배경인 마냥 기후 이야기는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그 이유는 뭘까? 기후 위기가 수해나 가뭄의 심화로 가시화되면서 사람들은 실제로 그 변화를 느끼고 있으며 겪고 있다. 온난화 과정을 현실 속에서 분명하게 체험하는 중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인류가 큰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며 걱정한다. 지구 온난화와 관련해 여전히 많은 것이 불분명하다는 점 또한 두려움을 키우는 요인이다. 향후 지구 온난화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 결과는 또 어떻게 나타날지 대충 가늠하는 것조차 어렵다. 변수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분명함은 현실을 일깨우고 불분명함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높인다. 두 가지 이유가 혼재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 사회에서 많이 회자되는 기후 위기 관련 용어 가운데 ‘임계점(티핑포인트, tipping point)’이란 단어가 있다. 임계점 개념은 기후 위기에 무관심한 이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한다. 지구 생태계가 회복탄력성을 잃고 임계점을 넘는다면 연속적인 양의 피드백이 작동하여 인류가 기후 변화를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상태로 넘어간다는 것이 그 요지다. 임계점 가설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로 말미암아 인류가 파국적 종말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증폭시킨다. 인류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지구가 임계점에 다가서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감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국제 사회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응 노력이 대부분 선언적 효과에만 그치는 까닭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임계점을 정확히 모른다는 점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현재 우리가 실제 임계점에 가까운 ‘위험한’ 상황에 노출돼 있는지 그 여부를 과학적으로 판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기후문제가 정책 수립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때 이에 저항하기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지구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상호작용과 피드백 관계를 고려할 때 임계점을 파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 환경을 복원할 수 있다면 임계점을 실제와 비슷하게 추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임계점을 밝히고자 할 때 (고기후, 고생태, 고고학 등의 분야에서 생산된) 과거 환경 자료만큼 설득력 있고 믿음직한 정보를 제공하는 도우미는 없다. 과거의 실패 사례는 우리의 선조들이 기후 변화나 환경 변화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 또한 앞으로 기후 위기를 맞아 여러 시행착오를 겪게 될 터, 정확한 과거 정보는 이러한 실수가 초래할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사회의 ‘성공’ 사례로부터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여러 정보들, 가령 지속 가능한 농경 방식, 화재 관리 방안, 기후 변화 대처 방안, 환경 오염 저감 방안, 토양 관리 방법 등을 확보하는 것 또한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역사를 돌아볼 때 우리는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를 더 많이 접하곤 한다.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이 미래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갑작스럽게 무너진 과거 도시 문명과 관련해서 수많은 문헌이 출간됐고, 이 중 상당수는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읽히고 있다. UCLA 지리학과 교수인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2005년에 출간한 《문명의 붕괴(Collapse)》가 대표적이다. 기후 변화로 무너진 과거 도시 문명 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우선 4200년 전의 가뭄으로 동시에 쇠락한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드, 이집트의 고왕국, 인더스의 하라파, 양쯔강 유역의 량주, 산둥반도의 룽산 등이 있다. 3200년 전에는 동지중해 지역에 가뭄이 닥쳐 미케네, 히타이트, 이집트 신왕국이 무너졌다. 1200년 전에는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유카탄반도의 마야, 안데스의 티와나쿠가 쇠퇴했고, 700년 전에는 인도차이나 앙코르 문명, 차코 캐니언 푸에블로 사회, 그린란드의 바이킹 집단이 사라졌다(박정재 2021: 267-275). 각 도시가 쇠락한 연대에서 보듯이 대략 500년마다 나타난 주기적 기후 변화가 주된 이유였지만, 여기에 환경을 대하는 인간의 경솔함까지 겹치면서 더욱 급작스럽게 몰락한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중미 유카탄반도에서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마야 문명이다.

아메리카대륙의 과거 선사문화를 주도했던 세 문명(아즈텍, 잉카, 마야)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문명을 꼽으라면 마야일 것이다. 마야의 불가사의한 멸망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해 왔다. 대략 3,000년 전 멕시코의 유카탄반도에서 첫 모습을 드러낸 마야 문명은 서기 250년 이후부터 전성기를 누리다가 750년에서 900년 사이에 급격하게 쇠퇴했다고 전해진다. 마야인들은 수백 년에 걸쳐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과 문화를 향유했음에도 도시 쇠망을 피할 수 없었다. 마야 문명의 쇠퇴는 한 가지 요인에 기인했다기보다는 환경 파괴, 가뭄, 내전, 인구 증가, 낙후된 정치, 이웃 도시 테오티우아칸의 쇠락에 따른 무역 쇠퇴 등 다양한 사회와 환경 문제들이 동시에 혹은 연이어 나타난 결과였다. 자연과학자들과 일부 고고학자들은 위의 여러 원인 가운데에서도 특히 가뭄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인구 증가와 환경 훼손의 여파로 서기 600년에서 800년 사이 마야의 도시 사이에 전쟁이 폭증했는데, 학자들은 이때 가뭄이 중요한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도시의 동반 몰락을 부추겼을 가능성을 높게 본다(Hodell et al. 2001).

마야와 같이 생태계 문제에 시달리던 과거의 도시들은 기후 변화가 닥쳤을 때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덧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인구의 급증과 과도한 경작이 심각한 토양 침식을 야기하고 있음에도 마야의 도시민들은 자신의 터전이 서서히 임계점에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뒤늦게나마 몇몇 선견지명을 갖춘 사람들이 위기 상황을 감지하고 도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예상치 못한 가뭄에 손쓸 틈도 없이 빠르게 무너지는 도시 사회를 바라보며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체념뿐이었다. 자연을 거스른 과거의 과오를 뉘우치면서 말이다. 풍족한 도시 생활을 영위하던 마야인들의 마지막은 덧없는 후회로 점철을 것이다(다이아몬드 2005: 222-251). 생태계가 임계점을 지나 회복력을 잃는 과정은 가시적이지 않기 때문에 도시는 이렇듯 순식간에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자연에 비해 도시는 회복탄력성이 낮으므로 한번 망가지면 회복에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된다. 실제 쇠락한 기존 도시를 버리고 다른 곳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 사례는 과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도시는 자연환경을 변형시켜 인공적으로 조성한 장소이기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임계점에 이미 가까이 다가서 있는 셈이다. 한순간의 오판이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을 만큼 도시는 내재적으로 불안정성을 숙명처럼 안고 있다.

기후 위기가 턱밑까지 쫓아와 숨통을 조이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과밀함 탓에 생태계에 많은 부담을 주는 우리 주변 도시들의 미래 또한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도시는 인류세의 상징과도 같다. 기후 위기를 불러왔고 생태계의 회복력을 약화시켰으며 환경 오염을 심화시켰다. 도시는 과연 미래에도 현재와 같이 소비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자연과 공존하면서도 도시의 효율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미래의 환경 위기 속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도시의 형태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우리가 바라듯이 도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이 실제 가능할까? 혹 우리 도시들 또한 마야와 비슷한 길을 따라 걷게 되는 것은 아닐까?

 

3. 미래의 도시는 어떠한 모습일까?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엄밀히 말해 학술의 영역이 아니다. 미래의 도시가 어떠한 모습을 띨지를 예상하기란 쉽지 않다. 단, 미래 도시가 앞으로 인류가 직면하게 될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기술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현 여부와 성공 가능성은 점칠 수 없지만, 미래 도시의 모습으로 자주 제시되는 것으로 스마트시티, 생태 도시, 해상 도시, 탄소 중 립도시 등이 있다.

미래를 지향하며: 스마트시티

스마트시티는 정보통신기술의 빠른 성장을 기반으로 인프라와 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여 삶의 질을 높인 도시를 지칭한다.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교통, 에너지, 환경, 보건 등 여러 분야를 지능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도시 속에서 나타나는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도시민들의 편의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컨대, 실시간 교통 정보를 수집하여 교통 체증을 줄이고, 대기 오염이나 수질 오염을 항시 점검하고 관리하며, 공공 와이파이나 스마트 가로등 등의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고, 스마트그리드를 구축하여 재생 에너지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는 등의 다양한 혁신이 스마트시티에서 바라는 모습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마지막에 언급한 스마트그리드의 실현 여부가 스마트시티의 성패를 결정하는 가늠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란 스마트시티의 에너지 인프라를 지능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전력 공급과 수요를 지능적으로 조절하여 전력 사용의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소비를 최적화한다. 무엇보다도 스마트그리드가 상용화되면 시공간적으로 가용성의 편차가 심해 아직까지는 활용도가 낮은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향후 인류가 기후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스마트그리드 기술은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다. 스마트그리드는 스마트시티의 핵심 인프라로 스마트시티가 갖는 잠재력의 대부분을 설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너지의 효율적인 소비를 통해 도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것이 스마트시티의 중요한 존재 이유이자 목표이기 때문이다(Eremia et al. 2017).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생태 도시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는 각국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구 환경의 보전을 논의한 지구촌 최대의 환경회의였다. 생태 도시는 이 자리의 핵심 회의 주제였던 ‘지속 가능한 발전’ 개념에서 파생된 아이디어로 환경의 보전과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추구한다. 가령 독일의 베를린과 프라이부르크, 일본의 기타큐슈, 미국의 포틀랜드, 브라질의 쿠리치바 등은 일찍이 환경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자연과의 공생을 시도한 대표적인 생태 도시다. 이들 도시는 꾸준히 숲과 공원을 아꼈고 승용차 이용보다는 대중교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재활용과 에너지 절약을 강조했다. 특히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많은 공을 기울였다.

도시는 커다란 하나의 시스템이다.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해야 도시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도시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불안정한 공간이기에 예기치 못한 사건에 끊임없이 시달리곤 한다. 도시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인간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적절하게 개입해야 하는데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를 돌아볼 때 대부분의 도시들은 그리 길지 않은 전성기 후 쇠락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반면 건강한 자연은 강한 회복탄력성을 기반으로 꾸준히 안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도시가 흡사 자연과 같이 장기간 지속 가능하길 원한다면 도시 속에서 자연이 차지하는 비중을 지금보다 더 높여야 한다. 과거 우리는 경제 성장을 추구하며 도시의 녹지나 하천의 중요성을 간과할 때가 많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기후 위기가 눈앞에 다가온 현실을 자각하고 도시의 저항력과 회복력을 높이기 위해 생태 복원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정성스레 복원된 녹지나 하천은 도시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여가 공간이 돼 일상에 지친 도시민들에게 자연의 생동력을 불어넣어 준다.

생태 도시로 탈바꿈하려면 정부 및 시당국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시민들의 강한 지지가 있어야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생태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구축하는 것도 도시생태계 회복을 위해서 중요하다. 녹지나 하천 등 대형 비오톱을 다수 확보한 후 이것들을 서로 연결한다. 건강한 비오톱의 녹지 연결망을 기반으로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 공간을 창출한다. 예전에는 도심에서 찾기 힘들던 동식물도 생태 네트워크를 통해 유입되므로 도시의 동식물 개체 수는 증가하고 종다양성은 회복된다. 도시민들은 복원된 자연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에너지 절약, 폐기물 재활용, 대중교통수단 이용 등의 친환경적인 생활양식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박정재 2019). 앞서 설명한 스마트시티가 과학기술을 최대한 활용하여 미래의 환경 변화에 대응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면, 생태 도시는 자연의 높은 회복탄력성에 많은 것을 의지하는 도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상상이 현실로: 해상 도시

해수면 상승에 대한 우려가 점차 높아지는 가운데 최근 색다르면서도 창의적인 도시 형태로 전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시설이 해상 부유 도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같은 도시라니 상상 속의 이야기로 들리지만 현실 세계에서 실현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도시가 성공적으로 완성된다면 무엇보다 해안의 부족한 정주 공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해안 지대는 전 세계 인구의 30퍼센트가 살고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거주지로 인기가 높지만, 안타깝게도 해수면 상승의 여파로 섬이나 해안의 거주민은 삶의 터전을 잃을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해상 부유 도시는 이러한 미래의 기후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수 있다. 폭풍이나 해일과 같이 온난화 때문에 강력해진 기상 이변의 충격까지 피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다.

해상도시는 스마트시티와 함께 도시의 미래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바다 위에 육상 도시에 준하는 거주지를 조성하기에는 아직 기술적으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정주와 도시를 관장하는 국제기구인 유엔 해비타트(UN-Habitat)는 이미 해상 도시를 기후 위기 적응을 위한 지속 가능한 도시 사례들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고 이의 시범사업을 적극 추진 중이다. 최근 모듈식 해상 도시, 즉 부유식 모듈을 계속 연결해가면서 도시를 넓혀 가는 형태의 도시가 부산 앞바다에 세워진다고 해서 국내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오셔닉스 시티(Oceanix City)라 불리는 거주지의 건설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2028년 즈음 부산 북항 인근에 세계 최초의 해상도시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된다(UN Habitat 2022). 

무분별한 간척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새롭게 시도되는 방법이기도 하므로 건설 과정에서 해안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간척 행위와 비교할 때 해상 건축은 훨씬 친환경적인 방안이다. 이론적으로 해상 도시는 물 위에 떠 있는 인공물이므로 이동할 수 있다. 이벤트성 공간이 필요한 지역에서 건축 모듈을 대여하면 굳이 신축할 필요가 없으므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추운 겨울에는 공간적으로 모듈을 모아 열 손실을 줄이고 뜨거운 여름에는 모듈을 확산시켜 바람길을 확보하는 식으로 에너지를 절약할 수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장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계획대로 해상 도시 건설이 가능할 만큼 인류의 과학기술 수준이 충분히 올라와 있는지 그리고 과학기술을 맹신하다가 소중한 바다가 망가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친환경 도시로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조성 계획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미래에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도시 형태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탄소 중립 도시

탄소 중립 도시는 탄소 배출량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탄소 포집 기술 등을 활용하여 탄소 총배출량과 탄소 총흡수량의 균형을 이루고 이를 통해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이상적인 도시다. 사실상 대부분의 탄소 배출이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으므로 탄소 중립 도시가 현실화된다면 지구 온난화가 인류나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한결 줄어들 것이다. 앞서 설명한 스마트도시, 생태 도시, 해상 도시 등도 모두 탄소 중립을 기본 목표로 내세우는 미래의 도시 형태이다. 이러한 도시들이 가까운 미래에 탄소 중립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이 되길 바라지만 탄소 중립에 이르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이 될 것이다. 미래 세대에 온전한 지구 생태계를 넘겨줄 윤리적 책임이 현재 세대에게 있다는 점과 기후 변화에 따라 인간을 둘러싼 다른 비인간 요소들이 겪는 곤경 또한 작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탄소 중립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임이 분명하다.

도시의 탄소 중립을 이루려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며 생태계를 보호하고 복원하는 노력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전문가들이 탄소 중립 도시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제시하는 방안들은 대동소이하며 그리 특별하지도 않다. 예컨대 재생 가능 에너지의 사용을 늘리고 화력 발전과 같이 탄소 배출량이 많은 에너지 생산 방식은 점진적으로 줄여 나간다. 대중교통 시스템을 개선하고, 도시 내 자전거 도로망을 확충하며, 보행자 친화적인 도시 구조를 조성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하여 자동차 대신 저탄소 이동을 선호하는 문화를 정착시킨다. 녹지는 탄소를 흡수하고 생태계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기존의 녹지 공간을 보전하고 이를 확대하는 친환경적 도시 계획을 수립한다. 재활용과 재사용을 적극 유도하고 건물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정과 세제 혜택 등을 지원하여 환경 친화적인 선택을 장려하고 탄소 배출에 누진적으로 경제적 부담을 지우는 정책을 시행한다. 실제 계획대로 진행이 된다면 모두 탄소 중립에 기여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 할 수 있다(Seto et al. 2021).

도시의 무절제한 소비 행태가 변해야 기후 위기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명제는 자명하다. 따라서 도시의 구성원들이 미래를 위해 현재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도록 교육이나 언론을 통해 설득하는 작업 또한 중요하다. 공감한 도시민들이 중심이 돼 지방자치단체 및 기업에 탄소 배출량 감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단계에 이르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탄소 배출 저감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탄소 중립 도시는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기후 위기를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올바르게 형성되지 않는다면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4. 도시는 과연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지구 온난화로 폭발력이 점증된 재해들이 도시를 매섭게 몰아붙이고 있다. 우리는 극한 기상에 따른 도시의 피해를 최근까지 자연재해라 적당히 불러왔지만 현재 이러한 재해들 가운데 온전히 자연재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에서 발생하는 재해에 사람의 실수가 개입되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인위적인 지구 온난화가 홍수, 가뭄, 폭우, 폭염, 태풍, 산사태 등의 강도를 높였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므로 도시의 재해를 100퍼센트 변덕스러운 자연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지구 온난화가 지금같이 제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어리석음이 반복된다면 기상 이변에 따른 재해는 앞으로 더욱 심각하게 도시민의 삶을 압박할 것이다(박정재·유근배 2015). 

현재 기후 위기에 직면한 도시들이 우리가 바라는 미래처럼 지속 가능한 모습을 띨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 우리는 진정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기후 변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온난화가 이대로 지속된다면 기상 이변과 재해의 충격이 비선형적으로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부정적 전망이 주류를 이룬다. 기후 관련 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구 온난화의 위험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고, 최근 들어서는 대중 사이에서도 온실가스의 감축이나 극한 기상의 대응 측면에서 당장 획기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지를 얻고 있다. 기후 변화 대책 마련에 주저하고 자꾸 뒤로 미룬다면 도시는 가까운 미래에 복합적인 기상 이변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으면서 그 기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 만약 도시 기능이 마비된다면 도시의 기능에 생활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인류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릴 것이다. 도시 내외부의 인위적인 교란으로 회복탄력성이 약화된 상태에서 빠른 속도의 기후 변화가 갖는 파괴력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할 수 있다. 과거 마야 문명이 생태 위기와 기후 위기에 몰려 몰락한 장면이 우리의 미래에 재현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임계점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훨씬 편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해 잘 모른다. 임계점을 확인하기 위해 지구를 대상으로 실험할 수도 없다. 우리의 지구는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구의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정확성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진정 실제와 가깝게 미래를 예측하고 싶다면 과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고 가다듬는 과정에서 정확하고 정밀한 과거 정보는 필수적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과거를 더 자세히 그리고 더 자주 들여다보아야 한다. 최근 빅히스토리를 통한 접근이 주목을 받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융합적 사고에 기반한 빅히스토리 연구는 과거를 다루지만 미래 지향적이다. 지속 가능한 미래 구축에 필요한 정보를 생산하기 때문이다(크리스천 외 2022). 우리는 지금 지구 온난화, 환경 오염, 종다양성 감소 등 심각한 환경 위기에 직면해 있지만 과거에서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인간과 환경은 서로 에너지와 물질을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할 때 우리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간도 지구 생태계의 일부분일 뿐이다.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들은 서로 모두 연결돼 있다. 다른 것들이 생존해야 인간도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랫동안 경제 성장만을 추구하면서 지구를 구성하는 나머지 요소들을 훼손하고 교란시켰다. 인류가 지구를 무자비하게 정복해 들어갈 때 도시는 효용성 높은 전진기지였다. 지금도 도시는 생태계에 많은 부담을 안기고 있다. 인구가 이곳에 집중된 탓이다. 자연생태계와 지속적으로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도시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고 싶다면 우리는 인류세의 폐해가 의미하는 바를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지구의 자연 생태계는 우리가 마음 내키는 대로 이용하고 대충 내버려 둬도 되는 대상이 아니다. 적극적인 보존과 보호가 필요하다. 물론 인류도 지구생태계의 일부에 불과할진대 인류가 전체 지구를 보존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어폐가 느껴진다. 과연 인류가 지구를 보호할 수는 있는 것일까?

인간의 잠재력이 어떠하든 간에 인간은 거대한 지구 시스템의 일부 구성 요소에 불과하다는 명제는 옳다. 그러나 산업 혁명, 질소 비료 생산, 녹색혁명을 거치며 급증한 인구가 자원을 남용하면서 지구에 가한 생태적 압박은 자연적인 기후 순환 주기를 깨뜨릴 정도로 강력했다. 그런데 반대로 이렇듯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하는 인류가 지구의 다른 물질 요소들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들과의 공존을 꾀하는 식으로 사고의 대전환을 이룬다고 가정해 보자. 인간을 포함하여 지구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상호 조화롭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지구는 균형을 되찾을 것이다. 인류가 공생을 추구하면 지구 생태계는 충분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인간 자체가 체내와 피부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미생물의 도움 없이는 생존이 힘든 공생체의 집합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우리는 근대 이후 고착화된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생태계의 요소들은 모두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알게 모르게 수행하고 있으며 가시적이지 않지만 복잡한 연결망을 구성한다. 인류가 환경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하려면 지구 시스템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자기 자리에서 제 기능을 유지하며 온전하게 버티고 있어야 한다. 인간의 과한 욕심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불러오기 전, 지구의 비인간 요소와 사물은 활발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동적인 균형을 이루는 데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지구 생태계는 교란을 무마하고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지구를 가이아라 부르며 자기 치유력을 지닌 유기체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변을 고려하지 않는 인류의 탐욕스러운 행위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결국 가이아의 친절함과 선량함은 사라지고 참을성을 잃은 가이아의 분노만 남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할 것이다.

도시가 자연과 유사해질수록 미래의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커질 것이다. 생태 도시라는 개념은 그래서 나왔다. 자신의 거주 공간이 지속 가능하길 원한다면 절제하는 삶을 추구하고 자연을 거스르는 행동을 멀리해야 한다. 도시는 오랫동안 효율성을 과도하게 추구한 결과 복잡하고 불평등하며 반환경적인 공간으로 낙인찍혔다. 익명성과 무관심이 만연하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점점 쌓여만 간다. 치열한 경쟁과 스트레스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다 보니 자연과의 정서적인 교감을 누릴 여유마저 없다. 이는 도시가 효율성에 방점을 두고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른 것들과의 조화에 무관심했기에 나타난 도시의 부정적 모습이다. 도시가 자연의 모습을 닮아갈수록 도시가 주는 부정적 느낌은 한결 옅어질 것이다.

근대 서구의 사상가들은 광활하고 장엄한 풍경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상기시키고 신을 마주케 하는 영감을 준다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이 처음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장소들인 옐로스톤, 요세미티, 그랜드캐니언 등을 떠올려보라. 이들에게 덜 숭고한 풍경은 보존할 만한 가치가 없어 보였다. 자연 안에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과 인간은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까마득한 광야를 이상화하면서 실제 삶의 공간은 도외시됐다. 삭막하고 불안정한 도시는 이러한 관념의 산물이었다. 거대한 산과 깊은 협곡만이 보전과 보호의 대상일 수 없다. 고도로 산업화된 도시일수록 내부의 자연은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 사람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도시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핵심 공간이다. 도시에 더 많은 자연을 되돌려 주고 도시민들이 자연을 더 가까이에서 접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자. 시민들은 도심 속 자연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지구, 도시, 그리고 스스로의 앞에 놓인 미래에 대해 숙고할 것이고 주변 생태계를 아끼는 마음을 저절로 품게 될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과거의 과오를 돌아보며 발전과 개선을 거듭하는 종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특출난 창의성과 협동력을 바탕으로 이를 극복해 냈다. 그 결과가 우리다. 미래 인류가 앞으로의 역경을 또 어떻게 헤쳐나갈지 사뭇 궁금해진다. 기후 변화는 이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됐지만 도시의 사회적 환경을 어떻게 조성하는지에 따라 그 여파를 줄일 수도 있고 키울 수도 있다. 폭염이나 수해 등 기상이변에 의한 죽음은 사회적 비극에 가깝다. 보통 이웃을 돌보는 공동체의 존재 유무가 피해자 수를 크게 좌우한다. 지구 온난화는 사회적 약자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은 충격을 안길 것이다. 그러나 기후 위기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시민들은 지금과 같은 고립된 삶에서 벗어나 때로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이웃과 소통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 이러한 문화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향후 지구 온난화에 따른 비극이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도시를 목표로 우리 모두가 노력하자. 여기에 서로가 서로를 돕고 인정하는 공동체 의식이 더해질 때 도시는 누구나 거주를 원하는 공간으로 충분히 탈바꿈할 수 있다. 도시가 생태계의 다양성과 연결성을 본뜨며 저항력과 회복력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면 미래의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과제 또한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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