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와 함께 살 용기

2024년 2월 2일, explained

합정역에 독수리 사진이 붙었다. 신경 쓰는 것은 사람뿐이다.

2020년 5월 6일 코로나19 사태로 텅 빈 광장을 점령한 비둘기의 모습. 사진: Chung Sung-Jun, Getty Images
NOW THIS

지난 20일부터 서울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일부 출입구에 독수리 사진이 붙었다. 비둘기를 쫓기 위한 목적이다. 신임 역장의 아이디어지만, 전문가들은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새들이 처음에는 놀랄 수 있지만, 움직임이 없다는 사실을 학습한다는 것이다.

WHY NOW

전 세계의 55퍼센트 이상이 도시다. 인간의 편리한 생활을 위해 공들여 설계하고 건설하지만, 동물이 살 수 있도록 계획된 공간은 아니다. 그러나 도시에도 동물은 산다. 전문가들은 비둘기가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면 출입구를 막는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도시 전체를 틀어막을 방법이 없다면,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에 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해 동물

비둘기의 법적인 지위는 ‘유해 동물’이다. 지난 2009년, 시민과 건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지정되었다. 비둘기가 시민에게 피해를 줄 경우 포획할 수 있다. 개체수 조절을 위해 적극적인 조치도 이루어진다. 먹이를 통제하거나 기피제를 살포하고, 물리적인 방해물을 설치하기도 한다. 비둘기뿐만이 아니다. 참새나 까치, 꿩, 고라니, 두더지 등도 유해 동물이다. 농림수산업에 재산상 피해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5대 자유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는 동물 보호의 기본 원칙이 제시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동물의 5대 자유에 근거한 원칙이다. ① 본성과 몸의 원형을 유지하며 살 자유, ② 갈증과 굶주림을 겪지 않을 자유, ③ 정상적으로 행동하며 표현할 자유, ④ 고통, 상해,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⑤ 공포와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 등이다. 주무 부처는 농림축산식품부다. 그러나 유해 동물은 계급이 다르다. 적용되는 법은 야생생물법이다. 주무 부처는 환경부다. 지자체장의 재량으로 포획하고 개체수를 조정한다. 보호 대상이라기보다는 환경에 유해하여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얘기다.

손에 손잡고

결국, 유해 동물은 일종의 ‘2등 시민’이다. 도시의 비둘기는 어쩌다 2등 시민, 민원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가끔 보일 때엔 비둘기도 사랑받았다. 평화의 상징이기도 했고, 강한 귀소 본능 덕에 메신저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체수가 급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의 아시안게임과 1988년의 올림픽 등에 대거 동원되고 방사되었던 것이 계기다. 비둘기가 스스로 날아와 도시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다. 이들을 불러들인 것은 인간이다.

도시 착취종

동물에게 도시는 살만한 곳일까. 그렇다. 원래 도시는 인간이 살기 좋은 곳에 생긴다. 기후가 온화하고 식량과 물을 구하기 쉬운 곳이다. 당연히 생물학적으로도 풍성했을 터이다. 아무리 도시가 들어서고 인간이 몰려와도 그 조건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와 도시가 내뿜는 열기는 일부 동물에게는 생존과 번식에 좋은 조건이 된다. 환경학자 피터 알레고나는 집쥐나 참새, 그리고 비둘기 등은 ‘도시 착취종’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도시의 조건을 충분히 활용해 번성하며 좋든 싫든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침입자는 누구?

인간 입장에서는 ‘도시 착취종’이 침입자이며 경계 바깥으로 밀어내야 할 존재다. 그러나 동물의 터전에 도시를 세운 것은 인간이다. 오히려 동물이 인간과의 공생을 받아들였다고 볼 수도 있다. 일부 개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든 것도 인간이다. 도시에는 풀보다 나무가 훨씬 많다. 나무의 품종도 플라타너스, 은행나무 등 제한적이다. 다양성이 부족하니 먹이사슬이 가늘어진다. 풀을 먹고 사는 곤충, 곤충을 먹는 양서류나 파충류 등은 도시에서 배제된다. 도로나 빌딩 등의 방해를 상대적으로 덜 받는 조류는 육상 동물보다 생존에 유리하다. 이렇게 도시의 생태계는 왜곡된다.

독수리 사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비정상적인 먹이 사슬의 한중간에 도시의 비둘기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을 너무 모른다는 점이다. 합정역에 붙은 독수리 사진이 인간의 무심함을 상징한다. 비둘기는 바보가 아니다. 그들의 수명은 20년이며 목욕을 좋아하고 귀소본능이 강해 자신의 영역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비둘기는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 치우는 역할을 통해 도시의 하수 처리비용을 부담한다.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난 뒤에야 비둘기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수 있다. 개체수를 조절해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얼마의 예산으로 얼마의 비둘기를 불임 상태로 만들 것인지 합리적으로 결정하려면, 이와 같은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종차별주의

다만, 비둘기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재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간의 고약한 버릇, ‘종차별’이다. 동물보호법에는 여러 동물이 등장한다. ‘유기 동물’, ‘피학대동물’, ‘맹견’은 물론이고 ‘봉사동물’, ‘반려동물’도 있다. 야생생물법에는 ‘멸종위기종’이 등장한다. 그리고 비둘기의 계급은 ‘유해동물’이다. 반려동물과 비둘기 사이의 간극은 무엇일까. 인간이 돈을 주고 소유하게 된 동물이 아니라서, 인간이 감상하며 사랑하기에는 개체 수가 너무 많아져서 비둘기에게는 ‘유해’라는 딱지가 붙었다. 효용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경계를 가른다. 인종으로, 성별로, 계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선 아닐까.

IT MATTERS

도시 동물과 인간의 공존은 불가능할까. 그 가능성을 점쳐보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연구가 진행 중이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의 네이처 웨이(nature way)는 사람이 다닐 길을 낼 때 숲의 생태계를 최대한 모방해 길 양옆으로 다양한 나무를 심은 것이다. 다양한 조류와 나비 등의 곤충의 터전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이다. 도시의 일부를 자연환경에 내어주는 방식도 제안된다. 인도의 일부에 다양한 풀을 심거나 폐쇄된 군사 시설 및 쓰레기 매립지 등을 다양한 동식물의 터전으로 만드는 식이다.

너무 많아진 비둘기 같은 개체는 어떨까. 논란이 있지만 동물 단체를 중심으로 불임 사료 공급 등으로 개체수를 조절하는 방법이 제안된다. 다만, 지자체에서 단기적인 민원 대응에 치중하다 보니 실제 시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본격적인 조치에 나선다 해도 그다음이 문제다. 비둘기와 인간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 인간의 도시를 어느정도 도시 동물과 공유할 준비가 되어있는지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길고양이와, 들개와 어떻게 지낼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 채 논란만 키워오고 있는 현실을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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