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다 외교에 관한 문제 제기

2024년 3월 5일, explained

무해한 푸바오의 매력에 인간은 행복했다. 그런데 마냥 행복해 할 일은 아니다.

2024년 3월 3일 푸바오의 마지막 근무 모습. 사진: 에버랜드
NOW THIS

푸바오가 퇴근했다. 지난 3월 3일을 마지막으로 일반 관람객 앞에 서는 ‘근무’를 종료한 것이다. 2021년 1월 4일 인파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푸바오는 그동안 무려 550만 명의 관람객 앞에 섰다. 푸바오의 퇴근길을 함께한 시민들은 눈물을 보였다. 푸바오는 이제 고국으로 돌아간다. 태어나기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엄연히 푸바오의 국적은 중국이다. 해외에서 태어났더라도, 임신과 출산이 가능해지는 만 4살이 되면 판다들은 쓰촨성 등에 위치한 중국의 판다 연구소로 돌아가게 된다. 근친 교배를 막기 위해서다.

WHY NOW

판다는 특별한 동물이다. 멸종위기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으로 가득하다. 지구상의 동물 중 가장 정치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중국과의 관계를 가늠하는 척도로 판다의 유무가 거론된다. 우리는 왜 판다를 사랑하나. 그 사랑을 받는 판다는 과연 행복한가. 판다 외교의 과정과 결과 속에 판다는 없다. 복잡한 인간사만 가득할 뿐이다.
유배당한 동물

15세기, 조선 땅에서 코끼리 한 마리가 유배당했다. 일본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바친 외교 선물이었다. 그런데 이 코끼리가 골칫덩이로 전락한다. 1년에 콩 수백 석을 먹어 치우는 먹성도 모자라 사람을 밟아 죽였다. 죄를 물어 전라도 장도로 유배시켰다. 유배지 생활은 당연히 순탄치 않았다. 결국 코끼리는 날이 갈수록 야위고 눈물을 보였다. 태종 임금은 애처로운 마음에 특별 사면을 내렸지만, 그 엄청난 먹성은 어느 한 고을이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코끼리는 전라도와 충청도, 경상도를 떠돌다가 다시 외딴섬으로 유배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냉전 종식의 마스코트

동물이 국가 간 친선의 상징으로 이용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린을 주고받았던 고대 이집트와 로마처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귀한 동물을 선물로 보내 외교적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시도는 늘 있어왔다. 그런데 중국의 판다는 조금 달랐다. 이 동물 자체가 몹시 매력적이었다. 유순한 이미지와 멸종 위기 동물이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쉽사리 ‘평화’라는 상징을 획득할 수 있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방중 당시 미국에 선물했던 판다, ‘링링’과 ‘싱싱’은 저물어가는 냉전 시대를 상징하는, 살아있는 증거가 되었다. 이후에도 서방 세계로 판다들이 속속 보내졌다. 중국의 ‘판다 외교’는 평화가 부재한 냉전의 시대와 몹시 잘 맞아떨어지는 전략이었다.

달러 먹는 녀석들

우리나라와 중국은 1992년 공식적으로 수교를 맺었다. ‘레드 컴플렉스’가 채 가시지 않았던 한국으로서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냉전의 종식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함께 경제적 실리를 택한 행보였다. 곧 우리나라에도 평화와 냉전 종식의 상징, 판다가 찾아왔다. 1994년 한국 땅을 밟은 ‘밍밍’과 ‘리리’다. 다만, 엄밀히 따지면 선물이 아니라 ‘대여’ 형식이다. 판다가 국제적 협약(CITES)에 따라 거래 금지 동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푸바오만큼 큰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당시에도 밍밍과 리리는 꽤 관심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은 1998년, 중국으로 돌아간다. 돈 문제였다. 중국은 판다를 대여해주고 해마다 100만 달러를 ‘판다 보호 기금’명목으로 받는다. 멸종 위기에 몰린 판다의 보호 및 연구를 위한다는 이유다.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맞았던 우리나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중국의 판다 외교가 실은 장삿속 아니냐는 눈초리를 받곤 한다. ‘외화 잡아먹는’ 판다는 결국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푸바오의 육아일기

판다가 우리나라 땅을 다시 밟게 된 것은 2016년이다. 한·중 양자 회담이 계기였다. 러바오와 아이바오 한 쌍이다. 한국 생활 4년 만에 임신과 출산에 성공했다. 2020년, 슈퍼스타 푸바오의 탄생이다. 다만, 시작부터 지금만큼 화제의 중심에 섰던 것은 아니다. 팬데믹 기간의 반중 정서에서 그 이유를 찾는 분석도 있다. 확실한 것은 푸바오만의 네러티브가 쌓이고, 공감대가 형성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온 판다들을 맡고 있는 에버랜드는 푸바오와 판다들의 일상을 꼼꼼히 기록해 유튜브를 통해 공유했다. 꼬물대는 핏덩이로 태어난 푸바오의 모습은 분명 신기하고 낯설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콘텐츠가 쌓였고 빠져들 이야기가 생겨났다.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사육사와의 유대감, 시간이 지날수록 명확해지는 푸바오만의 성격과 습관 등이 그것이다.

팬덤 증식의 원리

이는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자컨(자체 콘텐츠, 방송사가 아닌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 등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해당 그룹만의 콘텐츠)’을 끊임없이 소비하며 팬덤이 공고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사람은 자주 볼수록 자연스레 유대감을 쌓는 동물이다. 원시시대부터 그랬다. 그 시절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우리의 뇌는, 화면 저편의 연기자나 연예인이라도 자주 보면 정을 주고 만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판다는 보여줘야 볼 수 있는 존재였다. 자주 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에버랜드가 제작하는 공식 콘텐츠뿐만 아니라 푸바오를 촬영해 꾸준히 영상을 업로드하는 유튜브 채널,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등장한 마당이다.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 푸바오를 소비했고, 팬덤은 그만큼 커졌다.

신냉전 시대의 판다

판다는 실언을 하거나 사고를 내지 않는다. 먹고, 자고, 놀고, 성장할 뿐이다. 관계의 독성을 두려워하고 무해함을 갈구하는 피곤한 마음에 ‘애니멀 테라피’는 딱 적당하다.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의 인간은 판다에게 쉬이 ‘푸며들고’ 만다. 그러나 정치적 셈법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면서 미국 살이를 하던 판다들은 올해 안에 중국으로 모두 돌아갈 전망이다. 영국이나 스페인 등의 유럽 국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평화’라는 상징이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시절은 끝났다는 방증이다.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에만 머물 생각이 없다. 패권 국가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국과 더 이상 평화로운 판다 놀이를 지속할 이유가, 미국에도 유럽에도 없다. 판다 외교의 종식이 거론되는 이유다.

인간은 행복했지만

판다 외교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주장은 시민 사회에서도 나온다. 동물은 다른 나라에 ‘선물’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며 정치적 도구로 삼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동물 외교와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는 단체는 세계 최대의 동물권 단체인 페타(PETA)다. 동물 외교에 동원되는 판다처럼, 특정 지역에만 서식하는 개체를 낯선 환경으로 보내 억지로 적응시키는 과정 자체가 학대라는 것이다. 실제로 2001년, 태국 왕실이 스리랑카 정부에 선물했던 코끼리, ‘무투 라자’는 스리랑카의 한 불교 사원에서 쇠사슬에 묶여 감금 된 채 부상과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동물권 단체의 청원으로 무투 라자는 22년 만에 태국으로 송환되었다. 판다의 경우도 야생에서 지내지 못하고 평생을 동물원이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 반복적인 인공 수정과 강제 임신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페타 측의 지적이다.

IT MATTERS

조선 시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코끼리의 삶은 비극이었다. 모든 것이 낯선 땅으로 보내져 영문도 모른 채 유배당하고, 먼 길을 떠돌다 쓸쓸하게 사망해야 했다. 코끼리를 돌보던 사람들도 곤혹스러웠으며, 아까운 생명도 희생되었다.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의 첫 수상자로 선정된 엄정순 작가는 디아스포라(삶의 터전을 떠난 사람들)를 주제로 한 전시관에 그 코끼리를 만들어 세웠다. 푸바오는 디아스포라일까, 아닐까. 인간은 푸바오를 사랑했지만, 판다들에게도 타향살이는 즐거운 추억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인간이 행복했다는 점이다. 매출이 증명한다. 푸바오의 인기가 급증하면서 판다 관련 굿즈 판매량이 60퍼센트 정도 증가했고, 지난 2023년 11월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 문을 열었던 ‘푸바오 팝업 스토어’에서는 매일 주요 굿즈가 품절되었다. 푸바오의 귀국을 앞두고는 에버랜드 판다 월드 방문객이 성수기의 2배 수준인 일평균 8천 명을 웃돌았다. 중국과 각을 세우고 있는 미국에서는 ‘아기 판다 중국 송환 금지 법안’까지 발의되었다. 물론, 이런 인간의 절절한 마음이 판다들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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