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무겁다

2024년 4월 4일, explained

정신 건강과 자연환경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러스트: Julia Wytrazek, Getty Images
NOW THIS

기후 변화가 우리 뇌를 바꾸고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신경 과학자인 클레이튼 페이지 앨던은 신작 《자연의 무게(The Weight of Nature)》에서 기후 위기가 우리 두뇌에 실질적인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구가 극적인 환경 변화를 겪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경학적 지형도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WHY NOW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해수면이 상승한다. 극단적인 날씨가 나타난다. 폭염과 폭우, 폭설 같은 기후 재난이 일상이 된다. 우리가 기후 변화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기후 변화가 우리 뇌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거의 보고되지 않고 있다. 클레이튼 페이지 앨던은 6년의 연구를 바탕으로 환경이 우리 몸의 내부를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자연은 무겁다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한 변화는 해수면 상승이나 폭염, 폭우에 그치지 않는다. 앨던은 화석 연료 사용이 기억과 실행, 언어, 정체성 형성, 심지어 뇌의 구조까지 우리 몸의 거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자연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우리 몸 안쪽까지 눌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게는 우리 상식을 뛰어넘는다.

허리케인 샌디

2012년 10월 미국 동부 해안에 허리케인 샌디가 상륙했다. 역대급 허리케인이었다. 미국에서 100명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경제 피해 규모도 630억 달러에 달했다. 우리나라 1년 예산의 13퍼센트 규모다. 태풍이 뉴욕을 덮쳤을 때 정신의학자 노무라 요코는 뉴욕에서 수백 명의 인구 집단을 구성해 임신부의 산전 스트레스가 태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있었다.

샌디를 겪은 임신부

노무라 요코는 문득 이런 궁금증을 가졌다. 허리케인이라는 아주 특수한 재앙을 경험한 임신부가 낳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임신부가 낳은 아이가 어떤 차이를 갖게 될지 알고 싶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답을 얻었다. 엄마 뱃속에서 샌디를 겪은 남아는 그렇지 않은 남아보다 ADHD 위험이 60배 높았다. 여아의 불안은 20배, 우울증은 30배 증가했다.

인지 능력

2006년 여름 보스턴에 폭염이 찾아왔다. 당시 하버드대 연구자들이 기온과 학업 성취도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에어컨이 없는 기숙사에 사는 대학생은 에어컨이 있는 기숙사에 사는 대학생보다 인지 능력 테스트를 더 느리게 수행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자들은 부유한 학군과 가난한 학군의 교실 기온 차이가 미국 내 인종별 학업 성취도 격차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폭력

고열은 인지 능력뿐만 아니라 폭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 우편배달부는 온화한 날에 비해서 32도 이상의 더운 날에는 괴롭힘과 차별 같은 행동을 5퍼센트 정도 더 경험한다는 조사가 있다. 날이 더우면 짜증이 나는 건 동물도 마찬가지다. 검은과부거미는 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습성이 있다. 이 거미는 날이 더워지면 동족을 잡아먹는 습성이 더 강해진다.

기억 장애

2015년 우리나라 연구진은 열 스트레스로 인한 기억 장애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해마는 뇌에서 기억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 열 스트레스를 받은 쥐는 해마에서 염증이 증가했다. 또 2017년 핀란드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고온 환경에서는 뇌의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이 적게 나온다. 세로토닌 결핍은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와 관련이 있다.

기후학적 신경역학

놀라운 연구 결과들이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기후와 정신 건강의 연관성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예컨대 날씨가 흐리면 기분이 우울하고, 더운 날에는 짜증이 쉽게 난다. 앞서 소개한 연구들은 이런 우리의 상식과 직관을 데이터로 증명한 것이다. 이 분야를 기후학적 신경역학이라고 하는데, 기후 관련 연구의 다른 분야에 비해 아직 초기 단계다.

IT MATTERS

기후 변화로 인한 신경학적 변화에 가장 취약한 집단은 아동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더 많을수록 더 위험하다. 지금 태어날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고, 평생 극단적인 날씨와 기후 재난 같은 환경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그러다 말년이 되어 기후 변화로 인한 신경 퇴행성 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크다. 기후 변화가 해수면만 높이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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