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없는 석유 전쟁
2화

초토화된 세계

사우디, 러시아, 미국 모두 고통받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대리인을 앞세워 적과 싸우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이번에 일어난 두 나라 사이의 유가 전쟁은 전면적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 전쟁은 러시아가 3월 6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석유 수출국 기구(OPEC) 회담에서 생산 감축을 거부하면서 시작되었다. OPEC을 이끄는 실세 사우디아라비아는 구매자들에게 싼 값에 더 많은 원유를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반격했다. 그 직후 사우디아라비아는 4월에 하루 1230만 배럴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공급량보다 약 25퍼센트 늘어난 것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한 번도 생산한 적 없는 큰 규모다. 러시아도 기존의 일일 생산량 1120만 배럴에 더해 최대 50만 배럴을 추가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3월 9일 브렌트 원유 가격은 배럴당 34달러로 24퍼센트 급락했다. 일일 기준으로는 거의 30년 만에 가장 큰 폭의 하락이었다.

유가 폭락으로 촉발된 세계 시장의 혼란과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공포 속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3월 11일 다시 카드를 꺼냈다. 국영 석유 회사 사우디 아람코(Saudi Aramco)에 일일 국가 생산 능력을 백만 배럴 늘리라고 주문한 것이다. 사우디는 단순히 러시아를 다시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협상력을 강화할 목적인 걸까? 아니면 투자 회사 번스타인의 분석가들이 ‘상호 확증 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1]’라고 지칭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대신 경쟁자를 완전히 몰아내겠다는 생각으로 치열한 가격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금의 혼란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유가 급락의 여파는 석유업계의 향후 10년을 좌우할 엄청난 충격을 일으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미국 사이에서 권력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표 참조). 2014년 사우디아라비아는 시장에 원유를 과다 공급해 미국이 우세인 셰일 오일 산업을 견제하려 했다. 그 결과는 모든 생산자들에게 재앙이었다. 2년 후, OPEC은 러시아 및 다른 국가들과 동맹을 맺고 생산량의 통제력을 회복했다.
우위 경쟁/ 원유 일일 생산량(백만 배럴)/ 미국(하늘색), 러시아(파란색), 사우디아라비아(노란색)/ 출처: 블룸버그,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러시아는 OPEC과 합의한 거래 조건을 무시해 왔다. 로즈네프트(Rosneft)가 이끄는 러시아의 석유 회사들은 미국의 셰일 오일 생산업자들에게 빼앗기는 시장 점유율 때문에 초조해하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지만, 이제 미국은 다른 나라에 의존하는 것을 덜 부끄러워하게 되었다. 미국은 12월에 유럽으로 가는 러시아 가스관 노드 스트림 2(Nord Stream 2) 건설 사업을 지연시키는 제재를 발표했고, 2월에는 베네수엘라와의 거래를 이유로 로즈네프트를 처벌하는 제재를 가했다.

러시아와 OPEC의 동맹은 중동 지역에 새로운 영향을 미쳤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의 부담 대부분을 감수했다. 사우디는 생산량을 조절하는 역할에 지쳐 가고 있었다. 이런 입지는 지난 1월부터 더 불편해졌다. 세계 최대의 원유 수입국인 중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유가 하락 압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 결정은 굉장히 무모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면서 2020년에는 세계적인 원유 수요가 30여 년 만에 세 번째 수준으로 감소할 수도 있다. 씨티은행은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시기에 공급을 늘리면 2분기 브렌트 원유 가격은 30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나이지리아와 같이 원유 세입에 의존하는 비교적 작고 불안정한 나라들에게 고통은 심각할 수 있다. 이라크는 이미 유가 하락으로 정부가 붕괴될 수도 있는 위험한 지경에 처했다. 오만의 리알(rial)처럼 달러에 연동되어 있는 걸프 지역 통화의 선도 계약 움직임은 원유에서 얻는 달러 수입이 장기간 침체 상태에 빠질 경우의 우려를 시사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달러 연동 통화 제도를 유지할 능력이 있느냐 하는 우려다.

미국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값싼 유가는 미국 경제에 이득이 되곤 했지만,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 바이러스가 발생하는 시기에는 기름값 절약이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들, 특히 군중이 몰리는 분야의 소비로 전환되지 않을 것이다. 설사 전환된다 해도 소비자들이 일으키는 경제 활성화 효과보다 텍사스나 노스다코타 같은 셰일 유정 지역들이 입는 피해가 더 클 것이다. 댈러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Dallas Federal Reserve)에 따르면, 미국 셰일 지역의 손익 분기점은 배럴당 23달러에서 75달러 사이다.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들은 생산을 감축하고 직원을 해고할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셰일 기업들은 최근의 원유 헐값 판매 이전부터 수익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문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자본 시장은 거의 모든 산업에 닫혀 있다. 물론 셰일 기업들이 모두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기업들은 올해의 가격 하락에 대비하고 있다. 쓰러지는 기업들은 더 큰 경쟁자들에게 인수될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은 엑손모빌(ExxonMobil) 같은 거대 기업들은 값싼 유가에 대처할 수 있는 재정 상태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미국의 셰일 산업을 무너뜨리려는 러시아의 시도는 실패할 수 있다. 게다가, 유가 약세는 러시아 경제에도 타격을 줄 것이다. 그러나 통화가 달러에 고정된 사우디아라비아와 달리, 러시아의 루블은 유동적이다. 유가가 하락하면 통화도 하락해 생산 원가를 낮출 수 있다. 3월 10일 러시아 재무부 장관은 25달러에서 30달러 사이의 유가로 10년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외환 보유고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OPEC과의 협상 복귀를 서두를 이유는 없어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싼 석유로 러시아에 더 많은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 회사 라이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에 따르면, 사우디 아람코는 50년 이상의 매장량을 확보하고 있다. 생산 비용은 배럴당 9달러 미만이다. 러시아의 15달러보다 낮다. 그럼에도 1230만 배럴이라는 목표는 방대한 비축량을 확보해야 가능한 규모이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도 생산 유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국제 통화 기금(IMF)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예산이 유가 80달러 이상을 기준으로 수립되었다고 분석한다. 골드만삭스는 증산으로 유가가 떨어진다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이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지속되고 수요가 계속 급감한다면 그 피해는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이 유가 전쟁에서 승리할 국가는 없어 보인다.
[1]
1960년대 이후 미국과 소련이 구사했던 핵전략으로 상대방이 공격을 해오면 공격 미사일이 도달하기 전 또는 도달 후, 생존해 있는 보복력을 이용해 상대방도 절멸시키는 전략을 말한다. 이 전략 개념은 선제 공격을 감행해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것보다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통제해 국민과 사회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억제 전략이다. 핵전쟁이 일어나면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서 핵무기는 사용하기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기 위해 생산하는 억제 무기가 된다.
〈상호 확증 파괴〉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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