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의 폭정
완결

의자의 폭정

대부분의 의자는 인체에 적합하게 디자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앉는 자리를 좀 더 잘 만들 수는 있다.

©Guardian design team/Getty
“어떤 식으로든 앉아 있는 자세는 (몸에) 해롭다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의자 - 문화, 신체, 디자인을 다시 생각한다(The Chair Rethinking Culture, Body, and Design)》라는 책을 쓴 디자인 역사학자인 갤런 크랜츠(Galen Cranz)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앉아 있는 모든 자세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앉는 자세가 품위를 유지하고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술이다. 그리고 앉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늘 똑같은 동작이나 자세를 유지하기 때문에 신체에 필요한 다양한 움직임을 경험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의자가 현대인들에게 통증과 장애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해 왔으며, 크랜츠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그는 산업화의 결과로 주로 좌식 생활을 하는 요즘 시대의 독자들에게 많이 걸을 것을 권하는 글을 써오고 있다.

몇 시간을 앉아 있다 보면 우리의 등과 코어 근육이 약해질 수 있고, 엉덩이 부위의 신경을 압박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신체가 최대한의 에너지를 내고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혈액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앉아 있는 자세에서는) 그러한 혈액 순환이 방해를 받는다. 대부분의 신체는 이런 자세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크랜츠는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서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모든 종류의 허리 통증, 피로, 하지 정맥류, 스트레스, 그리고 횡격막 관련 문제들, 순환 계통, 소화, 배출 기능, 그리고 일반적인 신체 발달” 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버스나 지게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말 그대로 의자에 구속된 상태에서 계속해서 앉아 있는 자세로 작업하게 되면, 수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을 만큼 해롭다는 증거들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인간은 다양한 자세를 통해 세상과 조우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일상적인 일을 할 때 앉는 자세만큼이나 쪼그려 앉는 자세 역시 자연스러운 방식이었고, 일부 고대 문화에서는 식사를 할 때 누워서 먹는 것이 일반적인 자세였다. 그런데 수많은 현대의 문명사회에서는 왜 의자에 앉는 것이 그렇게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던 것일까? 다른 모든 물질적인 대상과 마찬가지로 기능이라는 것은 현상의 일부만을 설명해 준다고 크랜츠는 이야기한다. 그 설명의 나머지 부분에는 언제나 문화라는 것이 존재한다. 때로는 전통으로 전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우연하게 만들어진 것들이 일반적인 관행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우리가 의자에 앉게 된 것에 있어서는 생물학이나 생리학, 해부학이 아닌, 고대의 파라오와 왕들, 그리고 기업의 임원들이 더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크랜츠는 쓰고 있다.

역사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자들 중에서는 역사학자들이 “클리스모스(klismos)”라고 부르는 것이 있는데, 이 의자는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의) 지위를 보여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즉,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진 주변보다 높은 위치에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견고하면서도 반듯한 평판으로 만들어진 구조물 위에 신체를 올려놓는 것이다. 그래서 권좌라는 것은 그 사람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개인이 가진 권력을 인식시키는 수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이러한 권좌의 가장 초기 모델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나 로마와 같은) 유럽 남동부의 역사 발전 시대로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이렇게 권좌를 통해 권위를 표현하는 방식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이어졌고, 이러한 상징체계는 현대에 와서도 리더십을 의미하는 하나의 메타포로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위원회의 의장이나 조직의 부서장을 의미하는 단어로 의자(chair)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며, 영화 촬영장에서도 영화감독이 자신의 ‘전용 의자’에 앉는 것이 여전히 권좌에 앉는 것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의 자리, 권좌에 앉아 있는 이집트의 고대 신 오시리스(Osiris) ©De Agostini/Getty
서구 산업화 이전의 몇 세기 동안만 하더라도, 각 가정에서 스툴이나 벤치 같은 가구를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의자는 그렇지 않았다. 의자는 부유하면서도 권력을 가진 이들의 전유물 같은 것이었다. 대량 생산이 시작되면서 사회와 경제가 급속도로 바뀌기 시작한 19세기가 되자, 의자는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산업화 시대의 일자리는 앉은 자세로 일해야 하는 반복적인 작업이 많았기 때문에 의자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고, 수요가 커진 만큼 의자는 유럽과 미국의 중산층들이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해질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문화”가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크랜츠는 쓰고 있다. 의자를 하나의 스타일이자 실용적인 표준으로 고착화시키는 데 일조한 것은 현대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었는데, 의자가 비록 인체 공학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의자의 본래적인 미학 안에서 그것의 형태를 계속해서 재창조했다. 의자는 등받이와 좌판이 인체의 해부학적인 모양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네 발 달린 생명체이며, 마치 동물들처럼 몸통을 세우고 일어선 그 친숙한 모습은 우리에게 어서 여기로 와서 살아 있는 구조물 위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는 것 같다. 크랜츠는 의자가 “건축적인 요소와 의인화적인 요인”이 결합되어 사람들에게, 그중에서도 특히 디자이너들에게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즉, 의자는 구조적으로 흥미로운 동시에, 인간의 신체가 그 자체로 반향이 되어 울려 나오는 대상인 것이다.

의자가 인간의 신체 형태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인간의 신체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수많은 의자들은 보기만 해도 편안할 것처럼 보이는 크고 푹신한 쿠션을 갖고 있는데, 인체 공학에 따르면 이렇게 쿠션 처리가 된 의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틀렸다. 크랜츠는 이렇게 쓰고 있다. “쿠션이 너무 지나치면 사람의 좌골이 고른 바닥면과 만나기보다는 쿠션 속에 파묻히기 때문에, 엉덩이와 허벅지 부위의 살이 그만큼의 무게를 더 견뎌야 한다.”

편안하다고 외치는 듯한 멋진 쿠션의 의자가 실제로는 왜 인간의 신체에 그렇게 맞지 않는 것일까? 크랜츠는 사람이 신체를 움직여야 하며, 진정한 인체 공학이라면 디자이너들이 인간의 신체를 가만히 멈춰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디자인을 지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등받이를 앞으로 비스듬히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좌대는 앉은 사람이 체중을 양쪽 다리로 번갈아 옮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유연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유행하는 스타일을 따르고 제조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 이런 원칙들이 무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의자는 신체의 현실이나 진화적인 특성을 고려한 것도 아니고, 신체를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움직여야 하는 필요성을 반영한 것도 아니다. 실제로는 산업화 시대의 몸이 의자를 필요로 했고, 거기에 굴복해 버리고 말았다. 크랜츠는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말을 인용해서, “우리는 의자를 디자인하지만, 그다음에는 의자가 우리를 만든다”고 쓰고 있다.[1]

 

소수 집단으로 여겨지는 사람들과 그들의 ‘특수한’ 요구 사항들까지 모두 결합한다면, 우리가 결국 대다수를 위해서 디자인을 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디자이너들도 앉는 방식을 바꾸려고 많은 시도를 해왔다. 무릎을 꿇고 앉는 의자나 바운싱 볼에 앉는 방식도 있고, 무게 중심과 자세를 바꾸도록 유도하기 위해 좌대가 둥글게 되어서 걸터앉는 방식의 스툴도 나와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 유연하게 디자인 한 트립트랩(Tripp Trapp) 같은 의자도 있는데, 이 의자는 아이들의 신체가 성장함에 따라 말뚝을 이용해서 좌대와 발 받침대의 위치를 조절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사무실에서 스탠딩 데스크를 도입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식당이나, 평범한 교실, 기차와 버스,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편안함이라는 것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의자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의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산업 디자인이라는 전문 분야의 손을 거쳐 시장에 출시된 수많은 제품들도 사람들 다수의 신체를 고려해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그러한 제품들은 대량으로 제작할 수 있고, 필요보다는 참신함을 추구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디자인이 되었다. 유명한 디자이너인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은 이처럼 나쁜 디자인을 “우리를 죽이는 DIY(do-it-yourself)”라며 인상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1971년에 이렇게 썼다. “성인 남성들이 자리에 앉아서 전기 머리빗이나 모조 다이아몬드가 뒤덮인 서류함, 욕실에 깔기 위한 밍크 카펫 등을 디자인하고, 그런 도구들을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만들어 팔기 위해 정교한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역사에서는 한 번도 볼 수 없던 광경이다. 오늘날 산업 디자인은 우리를 죽이는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고 있다. 전 세계에서 매년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드는 흉악범인 자동차를 디자인하고, 영원히 썩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쓰레기를 만들어서 풍경을 지저분하게 만들며, 우리가 숨 쉬는 공기를 오염시키는 재료와 생산 방식을 선택함으로써 디자이너들은 위험한 생물종이 되어 버렸다.”

파파넥이 이런 글을 썼을 당시, 그는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저서인 《인간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the Real World)》은 20세기 중반의 산업 디자인이 잘못된 방식으로 실행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파파넥이 “수의 디자인(shroud design)”이라는 다소 섬뜩한 용어로 부르는 디자인에 대해 디자이너들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며 상당히 강도 높은 주장을 했다. 그가 표현하는 ‘수의 디자인’이란 어떤 물건의 기능이나 견고함 및 지속 가능성을 희생시키고, 겉모습에 대해서만 집착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다루는 제품들이 우리의 신체와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또는 어울리지 못하는지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제품들이 도구로서 우리의 일상에 결합되도록 의도된 작업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동료들이 스스로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에 대해 이런 비유를 들기도 했다. “만약 모든 의사들이 일반 진료와 수술을 포기하고, 피부과와 성형외과에만 집중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상상해 보라.”
빅터 파파넥은 1971년의 저서에서 ‘디자이너들은 위험한 생물종이 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Album/Alamy Stock Photo
파파넥은 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엄청난 대량 생산이 본격화됐던 초기에 이렇게 대응했다. 당시의 공급망은 그 전까지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규모로 성장했으며, 그와 똑같이 거대해진 광고 산업이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파파넥은 제품 디자인이라는 작업을 “인간의 주변 환경과 도구를 변형시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인간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며 상당히 야심 찬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당시 그는 전후의 아찔한 성장세 속에서 디자이너들이 스스로의 길을 잃어버리고 있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문화적 믿음이 형성되고 기술 부문에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무엇이든 빛나고 새로워 보이는 것에 대한 문화적인 욕구가 만들어졌고, 이제는 산업이 그것과 영합하게 되었다.

이처럼 빛나고 새로운 대상을 대중은 언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제품의 수명은 다음의 새로운 물건이 나올 때까지만 유효한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디자이너들 사이에서는 파파넥이 “새로운 스타일과 노후화(obsolescence)라는 어둠의 쌍둥이”라고 부르는 것을 철저하게 따르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스타일 위주의 제품을 만들어 내고, 광고가 그것을 더욱 증폭시켰으며, 그 결과로 용도가 빠르게 사라져 버리는 불필요한 물건에 대한 공허한 욕구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순전히 순간적인 욕구만을 위한 물건들이 만들어졌고, (그러한 욕구가 사라지고 용도가 완전히 폐기되면서) 완전한 노후화라는 에토스(ethos)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래서 안전 기준을 위험하게 무시하기 십상인 일회성이 용인되었으며, 흔한 가정용 물건들을 이용하면서 불필요한 부상을 입는 경우가 벌어지게 되었다. 파파넥이 저술 활동을 하던 시기에, 그는 위쪽으로 빨래를 집어넣는 세탁기 때문에 입은 부상으로 매년 600명의 여성들이 손을 잃는다고 말한다. 디자인이 초래하는 최악의 상황은 이렇게 불필요한 부상을 입는 경우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필요와 그 물건이 설계된 목적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도 문제다.

파파넥이 관찰한 바와 같이, TV 리모컨이나 자동차의 대시보드 등 일상적인 아이템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그러한 아이템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디자인을 결정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그리고 디자인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사용의 편리함보다는 다른 동기에 휩쓸리거나 제약을 받는다. 인간의 노동이 육체와 근력에 의한 것이 아닌 역할과 직무에 의해 체계화되어서 경제적으로 측정 가능한 결과물로 여겨지는 좌식 작업 환경에서 사람들은 활동성(bodiedness)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의자에 앉아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책상과 복사기와 작업대와 같은 각이 진 형체들 사이에서 각종 기계와 디지털 기기들과 함께 일할 때에도 늘 몸을 움직여서 일을 한다. 허리를 계속 굽혀서 딸기를 수확하는 것이든 아니면 콜센터에서 일이 끝날 때까지 몇 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든, 일하면서 적극적으로 몸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은 물론이고 수동적인 자세 역시 우리의 육체에게는 부담을 주는 것이다.

파파넥은 표준적이지 않은 신체를 허용하지 않는 디자인을 평가할 때 특히 비판의 날을 세웠다. 디자인을 하는 그의 동료들은 노인이나 장애인, 초등학생 등 중간 범위의 주류를 벗어난 사람들의 요구 사항을 “특수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런 사람들과 그들의 조건에 대해 훨씬 더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파파넥이 지적했듯이 우리 모두는 어린아이였던 시절이 있었고, 우리들 거의 대다수는 청소년이 되고, 중년을 지나 노년이 된다. 만약 우리가 “소수 집단으로 여겨지는 사람들과 그들의 ‘특수한’ 요구 사항들까지 모두 결합한다면, 우리가 결국 대다수를 위해서 디자인을 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쓰고 있다.
 

에어론 의자는 보편적인 디자인과 다양한 조절 방식, 그리고 장벽이 없고 포괄적인 디자인에 대한 하나의 표준적인 사례가 되었다.


파파넥 이후의 디자이너들은 의자라는 난제와의 고투를 계속했다. 1970년대 말, 사무용 가구 대기업인 허먼밀러(Herman Miller)는 독립 디자이너인 빌 스텀프(Bill Stumpf)와 돈 채드윅(Don Chadwick)에게 당시 가구 시장에 가능성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자신들의 신제품이 거기에 끼어들 틈이 있는지, 그래서 회사의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해 달라고 의뢰했다. 인간과 디자인 환경에 대한 노련한 관찰자였던 스텀프와 채드윅은 이 연구에서, 의자가 창의적으로 채택되었지만 정작 그 자리에 앉는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특정 상황에 주목했다. 즉, 하루의 많은 시간을 레이지보이(La-Z-Boy)의 리클라이너에 앉아서 TV를 보면서 보내거나, 그렇지 않다고 해도 거의 움직이지 않는 노인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들은 리클라이너가 어떤 상황에서는 의료용 의자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투석 치료를 할 때 사람들이 리클라이너를 뒤로 반쯤 젖혀 놓고 치료를 받는 광경을 목격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울기와 지지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리클라이너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는 수많은 조건에 있어서는 맞지 않는 의자였다. 근력이 약해진 노인들은 리클라이너에 앉았다가 일어나는 것이나 높이를 조절하기 위해서 손잡이를 당기는 것도 힘들어했고, 푹신한 의자는 안락함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오랜 시간 누워 있어야 하는 사람들은 욕창에 걸릴 위험이 있었다.

리클라이너의 개념에서 영감을 얻은 스텀프와 채드윅은 리클라이너의 모든 기능들을 다시 조사한 다음, 새라 의자(Sarah chair)라고 부르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1988년에 허먼밀러 측에 제공했다. 이 의자는 리클라이너 이상의 유연성을 전부 갖추고 있었다. 즉, 등받이와 좌대, 팔걸이를 다양한 높이로 조절할 수 있었고, 발받침은 자세를 보다 쉽게 바꿀 수 있도록 유연하게 만들어졌다. 그들은 좌대의 쿠션을 줄여서 좀 더 얇게 하고 좌대의 구조를 보다 통기성 있게 만들었다. 이 모델은 허먼밀러의 사내에서 기능성을 지닌 의자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허먼밀러의 많은 직원들은 이 의자가 자신의 조부모들에게 유용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중 시장에 선보였던 초기에는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고, 결국 허먼밀러는 새라 의자의 첫 번째 버전을 다시 생산하지 않기로 했다가 몇 년이 지나서야 이 디자인을 부활시켰다.
에어론 의자 ©허먼밀러
두 번째 버전에서 스텀프와 채드윅은 여전히 노화를 염두에 두고 의자의 인체 공학적인 특징들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와 키보드에 장시간 매여서 일하는 일반적인 사무직 노동자들의 신체에 대해서도 고려했다. 그들은 폼 패딩을 완전히 제거해서 새로운 미학을 대표하는 모델을 선보였는데, 단순히 나이 든 사람뿐 아니라 어떠한 체형도 받쳐 줄 수 있는 두꺼운 플라스틱 끈으로 된 쿠션이 없는 좌대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에어론(Aeron) 의자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고급 사무실 환경에서 높은 지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빠르게 받아들여지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에어론 의자는 비싸기는 했어도 “보편적인” 디자인과 다양한 조절 방식, 그리고 (이용하는 데) 장벽이 없고 포괄적인 디자인에 대한 하나의 표준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러한 원칙은 많은 사람들이 “장애”와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함께 들었을 때 떠올리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성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즉, 디자이너들은 의자의 곡면 가운데 부분의 안쪽에 깊이 파묻히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일반적이며 평균적인 것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주변부에 있는 소위 말하는 극단적인 사용자(extreme user)들과 그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함으로써 놀라우면서도 강력한 통찰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좋은 디자이너들은 어떤 제품이 (또는 환경이나 서비스가) 특정한 요구 사항을 가진 사람들이 이용하기에는 온갖 제약들로 가득한 평범하지 않은 환경과 장소들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것이다. 이러한 인간 경험의 주변부에서는 비록 정도가 더 약하기는 해도 중간 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조건들을 발견할 수도 있다.

장애를 예로 들면, 노인들과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폐증의 범주에 드는 사람들을 밀접하게 관찰해서 그러한 관찰로부터 추상화를 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이나 행동을 기반으로, 또는 말이나 행동으로 보여 주지 않는 것을 살펴봤을 때 이런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디자인이 효과가 없는 주변부적인 영역에서 마찰을 일으키는 부분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떠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여러 가지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테스트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러한 과정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보다 사용자 친화적이고, 인체 공학적이며, 접근성이 좋은 제품을 (또는 서비스나 환경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최소한 원칙적으로는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인 것이다.

 

많은 디지털 도구들에서 장애는 혁신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이 세상에 이러한 보편적인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제시한 것은 파파넥이 아니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오랫동안 갖고 있던 통찰력으로 인해 디자이너들이 따라야 하는 일련의 원칙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건축가인 로널드 메이스(Ronald Mace)는 1985년에 “보편적인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고안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용어는 “특별한 것”이 그저 좋은 디자인으로 여겨졌던 디자인의 특징들을 재평가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었고, 그래서 제품이나 건물들이 “모든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메이스를 비롯한 장애를 가진 이들이 만들어 낸 보편적 디자인이라는 원칙은 파파넥이 “스타일과 노후화”라고 불렀던 선입견만이 아니라, 부주의한 디자인이 초래한 “살인적인” 결과에 대한 해결책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 안에는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사용법”, “인식할 수 있는 정보”, “적은 신체적 노력”,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실수에 대한 관용”과 같은 원칙들이 포함되어 있다.

보편적인 디자인은 에어론 의자와 같은 고급 품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요즘에는 일반적인 매장에서도 주방 도구 코너를 살펴보면 옥소(Oxo)의 굿그립스(Good Grips) 제품군을 찾아볼 수 있다. 굿그립스는 검은색의 두꺼운 고무 손잡이가 잘 휘어지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제품인데, 이러한 제품은 편안하게 쥐기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지렛대와 같은 힘을 제공할 만큼 견고한 저항력도 갖고 있다. 이 브랜드는 처음에 채소의 필러(껍질을 벗기는 도구)로 시작되었는데, 이런 도구는 일상생활에서 너무 흔해서 굳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물건이다. 그리고 디자인이 종종 그런 것처럼, 이 필러 역시 기존의 도구를 이용하면서 겪는 불편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어졌다.

1980년대 말, 벳시 파버(Betsey Farber)라는 여성이 은퇴한 사업가인 남편 샘(Sam)과 함께 빌린 휴양지의 저택에서 당시에 일반적이었던 금속제의 채소 필러를 사용하려고 했다. 그 도구는 사용하기 까다로웠는데, 특히 벳시는 관절염이 있었기에 더욱 불편했다. 그래서 바로 그 주방에서, 샘과 벳시는 새로운 종류의 필러에 대한 아이디어를 그려 보기 시작했다.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그 아이디어는 결국 오늘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옥소의 디자인이 되었다. 옆면의 지느러미처럼 생긴 부분은 이 제품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엄지손가락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아주 우아한 방식으로 알려 준다. 이 손잡이가 직관적이라는 것에 대한 시각적인 단서인 것이다. 그리고 이 필러를 당근에 갖다 대면 자연스럽게 적당한 압력을 가해서 껍질을 벗겨 낼 수 있게 해준다. 너무 깊이 깎아 내게 하지도 않고, 손에서 당근과 필러가 이리저리 서로 미끄러지지도 않는다.

샘 파버는 은퇴를 번복하고 이 필러에 대한 작업을 계속했다. 파버와 벳시가 창안한 아이디어는 한 제품 디자인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채택되었으며, 이 회사는 캔 오프너와 샐러드 집게 등 주방에서 손으로 하는 미묘한 작업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들인 지금의 굿그립스 제품군을 만들게 되었다. 현재는 에어론 의자와 함께 보편적인 디자인의 역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고전적인 성공 스토리가 되었고, 전문 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세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옥소의 굿그립스 깡통 따개 ©Graham Turner/The Guardian
그 외에 다른 사례들도 있다. 디자이너인 마크 해리슨(Marc Harrison)은 1970년대 말에 쿠진아트(Cuisinart)로부터 이 회사의 상업용 만능 조리 도구를 보다 친숙한 가정용 모델로 만들 수 있는지를 점검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 회사는 해리슨에게 자신들의 제품의 활용 사례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까지 고려해 달라고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연구와 강의를 해온 그는 재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구와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건물에 대해서 수년간 협업을 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한 경험이 그의 통찰력을 풍부하게 해주었고, 그것이 조리 도구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는 라벨에 크고 색의 대비가 잘되는 글자, 성가시게 돌려야 하는 방식이 아닌 주걱처럼 뒤집을 수 있는 조작 방식을 도입했다. 이런 특징들은 해리슨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물건을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원칙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디자인에서 이러한 종류의 헌신성과 상상력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삶을 더욱 나아지게 해줄 수 있는 제품과 경험을 만들어 낸다.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디지털 도구들에서도 장애는 혁신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전화기의 역사는 청각 장애에 대한 연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은 청각 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들과 함께 한 작업을 통해 사람이 말하는 것을 가시적이며 단순한 신호로 만들어서, 전기적인 수단으로 전송할 수 있게 하는 연구를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이 연구를 통해서 전화기의 기술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의 초기 역사에서 중요했던 신호 처리 방식을 표준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미국에서 이러한 혁신의 보이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는 아마도 미디어 소비 방식에서 일어났던 기념비적인 변화일 것인데, 이런 변화는 장애 활동가들이 일반적인 모든 텔레비전에서 자막 방송 기술이 탑재되게 하기 위한 투쟁을 벌인 이후에 일어났던 것이다. 1990년에 미국에서 통과된 텔레비전 디코더 회로법(Television Decoder Circuitry Act)은 자막 방송 기술이 추가적인 장비를 달아야만 가능한 것이 아닌 텔레비전 제조 과정의 표준화된 공정으로 만들어지게 했다.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싸움은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통신 업계의 저항에 직면했던 것이다. 하지만 법제화를 통해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진 덕분에, 현재 텔레비전에 이러한 기능을 추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아주 적어서 수치로 계산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그러면서 자막 방송은 일상생활에서 하나의 표준화된 기능이 되었다. 식당이나 공항 터미널에서도 스포츠 경기의 진행 상황을 파악할 수 있고, 옆방에서 아이들이 잠을 자려고 할 때에도 노트북에서 소리를 끈 채로 멀티태스킹을 하면서 선거 토론회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더 나은 제품은 단기적으로는 유용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해법을 제공하는 데에는 더 나은 절차나 시스템이 보다 유용한 경우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보편적인 디자인이 “살인적인” 물건들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보내고 있으며, 미래에는 보다 접근성이 좋아지기만 할 것이라고 결론내리기 쉽다.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으며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손에 쥐어질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한 물건을 인체 공학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장애를 가진 학자들은 메이스의 연구와 그로 인해 본격화된 작업들에 의해 형성된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중 하나는 보편적인 디자인의 지배적인 모델이 장애를 한가운데 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디자인이 만들어 낸 옥소의 필러와 같은 가장 성공적인 혁신 사례가 오히려 보편적인 디자인이 출발하게 되었던 모티브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요즘의 세계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좀 더 적응하기 쉽고 유연해지기는 했지만, 그런 성공 사례들이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는 장벽들을 간과하게 만든다. 또한 보편적인 디자인은 소비자들이 손에 쥔 제품이 바람직한 세상을 만드는 데 있어서 필수적일 정도로 중요한 것이라는 아무런 의심 없는 믿음을 부추기는 경향도 있다. 더 나은 제품은 단기적으로는 유용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해법을 제공하는 데에는 더 나은 절차나 시스템이 보다 유용한 경우도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기존의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는 도로가 거의 없는 지역에서 하지가 마비된 휠체어 사용자들과 함께 디자인을 한 레버리지드 프리덤 체어(Leveraged Freedom Chair)가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글로벌 엔지니어링 및 연구 실험실의 소장인 에이모스 윈터(Amos Winter)는 자신의 팀과 함께 탄자니아와 과테말라, 인도에서 수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현장 연구를 진행했고, 아주 간단한 기술만으로도 오프로드 지형에서도 주행할 수 있는 다양한 토크(torque, 회전력)를 가진 휠체어를 협업해 디자인을 했다. 연장된 손잡이의 어느 부분을 쥐느냐에 따라서 마치 자전거의 기어를 바꾸는 것처럼 기계적인 힘을 더하거나 줄일 수 있는데, 이를 통해서 고르지 못한 포장도로나 비포장도로에서도 훨씬 더 쉽게 주행할 수 있다. 전면부에는 균형을 잡아 주는 용도로 세 번째의 바퀴가 추가되었다. 윈터는 말한다. “우리는 수도 없이 실패했습니다. 디자인 과정은 최종 사용자들과 함께 시작하고 그들과 함께 끝마쳐야 했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기술을 규정하는 것은 이들이 되어야 하며, 결국 그들이 마지막에 엄지를 추켜올려 줘야 하는 것입니다.”

좌석과 프레임, 핸들을 물리적으로 편안하면서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올바른 위치에 놓기 위해서 디자인을 정교하게 가다듬고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엔지니어의 임무였다. 하지만 이 휠체어의 진짜 독창적인 부분은 기계 장치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리와 유지 보수에 있어서 지속 가능한 시스템에 있었다. 휠체어를 만드는 수많은 기업들은 자사의 부품만을 이용해 제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휠체어를 무료로 기증한다고 하더라도, 부품을 교체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한 번 부서지기라도 하면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시골 지역에서도 휠체어를 오래 사용하기 위해서는, “현지의 도구와 재료, 그리고 그 지역의 상황에 맞는 지식을 활용해서 수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윈터는 말한다. 이 프리덤 체어는 전 세계적으로 규격화되고 저렴한 자전거의 부품을 이용해서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어느 곳에서든 이 휠체어를 수리하고 부품도 교체할 수 있다.

“무언가를 저렴하고 단순하고 신뢰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정밀한 공학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윈터의 말이다. 그는 “최소한의 비용과 최소한의 복잡성으로 필요한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어떤 해법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레버리지드 프리덤 체어는 타협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충분히 좋은” 휠체어도 아니었다. 그것은 특정한 맥락에 있는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이었고, 오래 유지될 수 있게 디자인한 것이었다.
[1]
We shape our buildings, and afterwards our buildings shape us. 우리는 건물을 만들고, 그 이후에는 그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 윈스턴 처칠이 2차 대전 중에 나치 독일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국회의사당 건물의 재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했던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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