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흔드는 자기 합리화
1화

판을 흔드는 자기 합리화

합리화는 고도의 전략이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자 중국 정부는 발원지가 우한이 아닐 수 있다며 이른바 ‘중국 책임론’에서 벗어나려는 홍보전을 펴기 시작했다. 2월 말 중국의 감염병 권위자인 중난산(钟南山)이 “출현은 우한에서 했어도 발원된 건 아닐 수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3월 초 “반드시 전력을 다해 바이러스 발원지를 분명하게 밝히라”고 언급하면서 거들었다. 이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군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우한에 가져왔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공식적으로 미국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중국은 또 자국 내 신규 확진자가 줄어드는 가운데 다른 나라에서 확진자가 급증하자 일부 국가에 마스크, 방호복 등을 제공하면서 코로나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중국 공헌론’으로 막으려는 시도를 보였다. 중국 인민의 힘든 노력이 세계 각국의 전염병 방제를 위한 소중한 시간을 벌어 줬고, 중요한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당초 중국 우한이 코로나 발원지로 지목됐을 때, 중국 정부가 초기 정보를 은폐 및 축소해 사태가 더 악화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책임 전가는 국제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외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런데도 중국은 왜 이렇게 무리해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일까?

일단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전개한 홍보전에는 일정 부분 효과가 있었다. 중국 내부적으로는 공산당 정부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대외적으로는 향후 중국에 대한 국제적인 손해 배상 소송을 미연에 방지하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하다. 우선,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의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로 인해 기본적으로 국제 사회에서의 매력이 크지 않다. 언론 자유 제한과 인권 침해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일련의 일방적인 정부 주장에 대해 스인홍(時殷弘) 중국 인민대학 교수는 “중국의 체제 선전전은 세계 각국의 반감을 불러왔다”고 인정했다.

그간 중국과 경제 분야에서 협력해 왔던 유럽 연합(EU) 국가들에서는 중국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거나, 경제 및 기술 협력의 범위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영국 정부는 당초 중국 기업인 화웨이의 5G 통신 장비를 자국에 도입하기로 했다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전면 취소했다.

실제로 중국의 비호감도는 증가하고 있다. 2020년 말에 실시한 미국 여론 조사 기관 퓨리서치의 조사에서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미국 73퍼센트, 영국 79퍼센트, 스웨덴 85퍼센트였다. 중국은 대외적으로 선전전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통치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성과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중국 공산당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행태를 보여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의 대응은 불가피하게 선택한 고육책이 아니라, 고도의 계산이 깔린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 거대한 면적과 인구,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싸우는 심리전의 전통과 상대보다 우위를 선점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협상술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중국식 영웅 서사


중국의 심리전과 협상술은 거대한 면적과 인구, 오랜 역사 속에서 뿌리내렸다. 중국은 국토가 넓고 기후 변화가 커서, 부단한 이동과 융합을 통해 타협의 지혜를 배웠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임기응변에 통달한 인재를 진정한 영웅으로 간주한다.

서양 전략가들은 전투에서의 승리를 강조하나, 중국 사상가들은 심리적 우위를 통한 승리에 가산점을 주고 직접적 분쟁을 피하라는 전략적 사고를 만들어 냈다. 중국에서는 전투의 승리는 불필요한 승리라고 강조한다. 중국에게 승리란 단순히 군대의 승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군사적 분쟁으로 확보하려고 의도한 최후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서양과 다른 전략적 독트린(doctrine)이다. 영웅주의의 공격을 강조하며 결정적인 힘의 대결을 칭송하는 것이 서양의 전통이라면, 중국은 적이 너무 많은지라 완벽한 안전 속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서양의 체스와 동양의 바둑을 비교할 때 이해할 수 있다. 바둑은 전략적 포위를, 체스는 완전한 승리를 목표로 한다.[1]

이러한 중국의 특징은 고대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춘추 전국 시기(BC 770년~BC 221년)에 각국의 제후들은 상대국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양한 작전을 구사했다. 고대 중국 병법서인 《손자병법(孫子兵法)》에서는 “마음에 대한 공략이 상책이요, 성곽에 대한 공략은 하책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상대국의 군심(軍心)과 민심(民心)을 흔들려는 여론전과 심리전의 전법을 작전의 주요 책략으로 채택했다. 손자는 속임수와 거짓 정보 흘리기를 중시했고, 전쟁하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화사상(中華思想)’도 심리전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 있으며 주변의 오랑캐와 구별되는 우월한 문화를 갖고 있다는 허구의 관념을 만든 것이다. 근대에 들어 서양 국제 정치 질서의 영향으로 사라졌으나 중국 대외 정책에 있어서는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대에 등장한 마오쩌둥(毛澤東) 역시 선전의 귀재였고 그가 영도하는 공산당 정권은 선전전에 능했다. 우선 1949년 공산당 정권인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기 전까지 마오는 내부적으로는 국민당, 대외적으로는 일본과 대결했다. 그는 이 싸움에서 심리전에 많은 비중을 뒀다. “중국 공산당은 선전술로 대륙을 석권했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정도로 공산당에는 빼어난 선전가들이 많았다. 선전이란 자신의 존재감과 장점을 만방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실패를 성공으로, 패배를 승리로, 욕심을 덕행으로 포장할 줄 알아야 선전가로서 자격이 있다. 이들에게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인간은 반복에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2]

이제 중국은 G2 반열에 오른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무기로 자신의 논리와 방식을 상대국에 강요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자기 합리화와 우위 선점이라는 큰 맥락 안에서 아홉 가지 배타적인 전략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략 1; 역사적 맥락에 가두기

©북저널리즘
중국은 구체적 사안을 긴 역사적 맥락 또는 큰 틀에 넣어 자기 페이스로 끌고 나가려 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 지도자들은 상대방에게 역사적 책임을 지우려 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외부 세력이 자연의 원리를 거스르고 있고 그러한 행동은 중국의 길고 오래된 역사 흐름에서 이탈하는 것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1971년 미·중 관계 개선을 위해 방중한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 국무장관에게, 중국 초대 총리 저우언라이(周恩来)는 “미국은 2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나, 중국은 4000여 년의 유산을 갖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중국의 도덕적 품격을 주장했다.[3] 또 2017년 시진핑 주석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에서 사드(THAAD) 문제와 관련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 있어서 쌍방은 역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큰 틀에서 합의한 원칙과 목표를 강조하며 상대국이 상호 관계를 얼마나 중시하는지 시험하려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어 미·중 양국이 1972년 체결한 상하이 공동 성명(상하이 코뮈니케)에는 상호 내정 불간섭, 하나의 중국(대만은 중국의 일부) 등의 내용이 담겼다.[4] 이후 중국은 미국이 자국 내 인권 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막는 데 이 성명을 수시로 활용한다. 2020년 7월 마이크 폼페이오(Michael Richard Pompeo)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 공산당은 안보와 자유를 위협한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하자 양제츠(杨洁篪)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은 “역사를 존중하고 미래를 향하며, 확고히 미·중 관계를 지키고 안정화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역사와 인민에 대한 책임 정신에 근거해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고 응수했다.[5]

대만의 독립 추진과 관련해서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2020년 10월 “(대만이) 역사의 올바른 쪽에 서라”는 논평을 싣고,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다.[6] 대만 내에는 현재 독립을 주장하는 정부와 국민, 대만 독립을 반대하고 중국과의 통일을 주장하는 세력이 모두 존재한다. 중국이 역사적 합의를 앞세워 무력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대만 정부에 큰 압력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대만의 국방 부문 미국 의존도와 대만 국민의 중국에 대한 혐오감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전략 2; 선악의 이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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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상대방의 조치 또는 생각을 선악의 이분법으로 판단 내린 뒤 “옳지 못하다”는 논리로 압박해 나간다. 각 국가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만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일방적인 주장을 펴는 식이다. 그렇게 중국의 ‘옳고 그름’ 프레임이 설정된다.

2012년 센카쿠 영유권 분쟁으로 중국과 일본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이와 관련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016년 4월 일본 외상과의 회담에서, “양국 관계의 개선을 위해 일본은 ‘잘못된’ 행동을 시정하고, ‘올바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또 2018년 10월 방중한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고조되는 미·중 긴장을 언급하며 “잘못된 행위를 즉시 중단하라”고 촉구했다.[7]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020년 11월 기자 회견 자리에서 “호주가 중국의 핵심 이익과 중대 관심사에 대해 ‘잘못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고, 도발적이고 적대적인 행동을 해온 것이 양국 관계가 난국에 빠진 근본 원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8]

외교 문제를 이러한 선악의 이분법으로 판단해 상대국을 압박하는 것은 자유 민주 국가의 입장에서는 생소하다. 초강대국인 미국조차 법에 의거해 다른 나라를 비판한다. 중국 내 열악한 인권 상황을 비판하는 경우에도 선악이라는 도덕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이라는 인간에게 주어진 천부적인 권리가 침해되면 안 된다고 근거를 제시한다. 또 중국이 남중국해 전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국제법 위반이라며 비판한다. 국가 간에는 국가 이익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선악의 문제로 접근하는 경우는 중국이 거의 유일하다.

 

전략 3; 친구라는 의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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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해탄(新上海滩)〉이라는 중국 TV 드라마에는 조폭 두목인 주인공의 부하가 중요한 일을 그르쳐 주인공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자, 주인공은 “우리는 형제이기 때문에,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부하는 감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이나 일을 상대할 때 관계를 기준으로 틀을 정해 놓고 이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중국인들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이다.

친구와 꽌시(關係)는 중국 처세 철학의 기본 요소다. 특히 중국의 대외 교류에서는 옛 친구라는 뜻의 라오펑여우(老朋友)가 중시된다. 외교에서 친구를 중시하는 것은 두 가지 효과가 있다. 첫째, 국가 간 관계 발전을 촉진하고 둘째, 외교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친구 간의 교류라는 명목으로 경색된 관계를 타개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미·중 관계 개선의 산파 역할을 했던 키신저를 1971년 이래 매년 중국에 초청해 지도자들과 면담을 주선한다. 이에 대해 중국 지도자들은 “키신저 박사는 중국 인민 모두가 깊이 아는 친구”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1989년 천안문 사건 당시 학생들을 무력 진압한 중국은 인권 문제로 외교적 고립을 당했는데, 이때 키신저를 초청해 천안문 사건이 미·중 관계의 장애가 되지 않기 바란다는 뜻을 미국 정부에 전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중국 지도자들은 친구를 버리지 않는다는 명성을 위해서라면 약간의 대가도 기꺼이 치른다. 1972년 미·중 관계를 극적으로 개선한 미국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직전 불명예스럽게 사임했다. 닉슨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직후 여기저기서 외면당할 때 마오는 그를 중국에 초청해 옛 친구를 중시한다는 것을 과시했다.

우호 관계(친구 관계)는 상대방에게 의무감을 부여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은 2008년 전략적 호혜 관계라는 이익이 포함된 새로운 표현으로 양국 관계를 공식적으로 정의했다. 이 표현은 일본 측이 추상적인 우호 관계라는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요구하면서 만들어졌다. 우호 외교, 좋은 관계라는 환상이 양국 사이의 문제 해결을 오히려 방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우호 관계 또는 동반자 관계로 공식적으로 정의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미국은 구속될 수 있는 표현으로 양국 관계를 정의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전략 4; 약한 고리 공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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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여러 나라와 동시에 충돌하는 경우 약한 국가만 선택해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1978년 말 베트남은 소련과 동맹 조약을 체결해 중국을 견제했다. 그러자 중국은 1979년 2월 베트남 북부에 침입했는데, 그 명분은 베트남에 교훈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 당시 겅뱌오(耿飇) 중국 부총리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 미국 대통령 안보 보좌관에게 “우리는 소련과 맞붙을 능력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베트남보다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아세안(ASEAN) 국가들이 미국과 합세해 남중국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다자적 접근을 중국에 요구했던 2010년 7월의 상황도 비슷하다. 당시 양제츠 외교부장은 “중국은 큰 국가이고 다른 국가들은 작은 국가들이다”라고 언급하며 싱가포르 총리를 응시했다.[9] 미국, 호주를 중심으로 코로나 확산 책임에 대한 손해 배상 소송이 논의됐을 때, 중국은 약한 고리인 호주를 겨냥했다. “중국인들은 호주의 와인을 마시지 않고, 호주에 중국 유학생들을 보내지 않을 수 있다”고 경제적 압박을 가한 것이다. 인도가 최근 미국과 함께 중국을 적극적으로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자 중국은 2020년 6월부터 인도와의 국경에서 무력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10]

 

전략 5; 의도가 숨겨진 과장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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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과장된 말을 해서 상대방에게 공포를 심어 주는 것도 중국의 전략 중 하나다. 마오는 냉전 당시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의 군사적 능력을 의도적으로 무시함으로써 강대국과의 심리적 대등함을 실현했다. 미국, 소련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마오는 “핵전쟁도 불사해야 하며, 3억 명의 중국인이 죽는다고 해도 시간이 가면 전보다 더 많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외교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중국과 상대 국가의 전반적인 관계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라는 식의 추상적인 위협을 함으로써, 상대국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려 한다.

중국의 과장된 말 뒤에는 철저한 계산과 논리가 있다. 1972년 미·중 관계 개선을 위해 상하이 코뮈니케 초안을 협상하던 당시 중국은 미국에 무리한 요구를 했다. 저우언라이는 중국이 허풍과 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 측에 솔직하게 언급하면서도 “웅변조의 공허한 허풍에 신경 쓰지 말고, 중국의 실제 행동을 잘 관찰하라”고 말했다. 중국통 언론인 데니스 블루드워스(Dennis Bloodwo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인들의 의식적인 과장법에 현혹되어 중국의 전술 이론이 주로 격렬성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오히려 얼음같이 차가운 논리를 포함하고 있다.”[11], “모든 전쟁은 속임수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 스스로는 외양과 실제, 그들의 목청 높은 외침과 냉엄한 사실을 결코 혼동하지 않는다.”[12], “이길 수 있을 때만 공격하라는 중국 사람들의 말은 손실을 보지 않을 때에만 공격하라는 의미다.”[13]

 

전략 6; 새로운 형태의 중화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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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과거의 중화 질서를 현재에도 이웃 국가들에 적용하려고 한다. 2016년 한국의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는 2017년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하고 ‘3불(三不)’의 약속을 받아 갔다. 3불은 한국이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Missile Defense, MD) 체제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안보 협력을 군사 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3불을 수용한 것은 우리의 안보 군사 주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었다. 중국은 사드 합의로 한국에게서 거의 항복 문서를 받아 간 셈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2017년 11월 “중국은 한국의 사드 문제에서 총 한 발 쏘지 않고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태도는 사드 문제 그 자체보다 소국(한국)이 대국(중국)의 이익을 크게 침해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고, 한국의 전적인 순응을 원했다. 당시에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한국을 굴복시킨 전략을 ‘개집 방식(doghouse approach)’이라고 이름 붙이고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중국은 상대방이 하는 행동이 마음에 안 들면 바뀔 때까지 괴롭힌다. 그래도 안 바뀌면 상대를 개집에 가둬 벌을 준다. 그래도 여전히 변하기를 거부하면 적절한 처벌 기간을 둔 후에 상대를 개집에서 꺼내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굴면서 상대가 고마워하길 바란다.”[14]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방중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파격적으로 환대하면서도 ‘우리가 형님, 너희가 동생’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했다. 시 주석의 훈계를 듣는 김 위원장의 이미지를 선전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관영 매체인 CCTV가 공개한 북·중 정상 회담 장면을 두고 “잘못을 저지른 아들을 꾸짖는 아버지와 꾸지람을 듣는 아들과 비슷한 역학 관계를 보여 줬다”고 분석했다.[15]

 

전략 7; 시간은 중국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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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시간을 갖고 상대방을 압박한다. 거대한 면적과 인구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략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의 ‘신냉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2020년 7월 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대미 항전 전략을 논의하면서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문제는 중장기적인 것이라 반드시 지구전(持久戰)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갈등 상황에 대한 향후 대응 전략으로 마오의 ‘지구전론’을 선택한 것이다.

마오는 중일 전쟁이 한창이던 1938년에 군사력과 경제력이 월등한 일본에 맞서 유격전을 바탕으로 장기전을 펼쳐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16] 시진핑 주석은 미·중 무역 전쟁이 한창이던 2019년 초 마오의 《지구전론(持久戰論)》을 읽는 모습을 관영 매체를 통해 공개한 바 있다. 현재 중국의 국력이 미국보다 열세이지만 14억 명의 인구, 방대한 시장을 감안할 때 시간을 끌수록 중국이 미국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협상이 정체되는 것을 감정적으로 잘 받아들인다. 또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그저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긴 협상 과정을 상정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정체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키신저는 이에 대해 “미국은 250년 역사에서 문제를 잘 해결해 왔다고 생각하나, 중국은 수천 년의 역사 동안 대부분의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협상 시간이 지연되는 것을 오히려 즐기며, 시간에 쫓기는 상대방에게 양보를 강요한다.

중국은 다른 나라와 협상을 진행할 때 구동존이(求同存異)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해 왔다. 이는 양국의 차이는 일단 미루어 두고 공동의 이익만을 추구하자는 의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고, 문제 해결을 미루면서 시간을 버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오는 것을 기다리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략 8; 뜻밖의 실용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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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자기 합리화와 우위 선점에 집요해 보이지만 동시에 실용주의적 사고로 행동할 때가 있다. 키신저는 자신이 만난 중국 지도자들이 현실을 중시하는 실무형 자기중심주의자이며, 중국 외교는 모험주의, 낭만주의 또는 선의가 아니라, 논리적인 자기 이익에 의해 수행된다고 본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 전 일본 총리는 중국인들은 중국 중심적인 관념으로 세계를 보지만 놀라울 정도로 융통성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양보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중국인들은 일본인들과는 달리 정치적으로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독특한 대국 의식과 이에 따른 융통성이 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쉽게 저자세를 보이면서 필요한 것을 취한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힘을 찾을 것이며, 이에 따라 상대방에게 당한 빚을 갚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유례없이 전방위적으로 전개되면서, 2020년 중국 내에서는 그동안 미국을 잘못 봤다는 통절한 반성이 일었다. 대미 강경파로 유명한 다이쉬(戴旭) 중국 국방대학 전략 연구소 교수가 3월 말 발표한 연설은 중국 내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원한이 이렇게 깊을 줄 몰랐다면서 중국은 강력한 미국을 상대할 때 반드시 분노가 아닌 이성으로 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실용주의적 사고와 행동과 관련해서는 ‘7대 3 법칙’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의 대외 관계와 국내 정치에서 잘 나타난다. 진찬룽(金燦榮)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향후 10년간 70퍼센트는 경쟁하고 30퍼센트는 협력하는 중·미 간의 ‘신창타이(新常態, 새로운 상태)’가 전개될 것이다. 중국이 이 고비를 잘 넘기면 중국의 덩치는 더욱 커져 미국의 대중 정책이 변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선 1976년 마오 사망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문화 대혁명 등의 극단적인 조치로 중국을 파탄에 이르게 했다며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덩샤오핑(邓小平)은 1981년 당 대회에서 ‘마오의 공(功)과 과(過)는 7대 3’이라고 공식 선언하며 과거에 대해 더는 왈가왈부하지 말고 미래를 보고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을 천명했다.

이러한 중국의 7대 3 법칙은 현대 중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상징하는 개념이다. 대내외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체면과 명분을 잃지 않는 가운데 고통스러운 현실을 실용주의적으로 수용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목표를 최종적으로 달성하려는, 중국 특유의 전략이다. 7대 3의 법칙에서 중국은 그 당시 처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한 사람 또는 하나의 상황에 대해 명과 암을 일시적으로 포용한다. 물론 중국은 결코 7에 해당하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다. 긴 시간 인내심을 갖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려고 한다.

 

전략 9; 은유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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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은유(metaphor)를 많이 활용한다. 역사학자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이러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국인은 입을 굳게 닫음으로써, 자기 뜻을 관철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필요할 때만 의견을 내며, 사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선호한다. 아주 민감한 문제(대만 문제)가 아닌 한 조용한 외교를 선호한다. 중국인들은 말을 간접적으로 하기를 좋아한다. 말을 할 때 거리를 두기 좋아하며 다른 사람의 상상에 맡기는 화법을 즐긴다.” 중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말을 너무 많이 하거나 동작이 많으면 신빙성을 떨어뜨린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중국인들은 가타부타 남의 의견에 선뜻 동조하지 않으며, 좋거나 싫거나 표정에서 일단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은유 또는 간접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자기의 입장은 최대한 감추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최대한 알아내 주도권을 갖고 결과를 유리하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최근에 ‘핵심 이익’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핵심 이익은 무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활적 이익을 가리킨다. 2010년 이후 중국의 핵심 이익은 계속 확대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남중국해까지로 확장됐다. 현재 중국 정부는 의도적으로 핵심 이익을 포괄적이고 애매하게 규정한다. 자신들의 해석에 따라 융통성 있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평화 발전’, ‘조화 세계’, ‘인류 운명 공동체’ 등의 수사도 중국인의 은유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평화 발전’은 중국이 평화적 부흥을 추구하고, 이를 통한 중국의 부상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 평화,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의미다. ‘조화 세계’는 중국이 항구적으로 평화롭고 공동 번영하는 세계를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중국은 ‘인류 운명 공동체’에 대해 “항구적 평화, 보편적 안보, 공동 번영, 개방과 포용, 깨끗하고 아름다운 세계 건설, 평화 발전을 추구하는 세계 인민들의 최대 공약수를 한데 모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중에서 인류 운명 공동체라는 개념은 고대 중국의 국가관에 기초한 중국 중심주의 이념으로 아직은 뜻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중국은 이러한 담론을 앞세워 중국 위협론을 극복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에 대해 미국 등 서구는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인류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는 독재, 권위주의를 실현하는 이념적 토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아울러 서구의 기존 가치 체계에 대한 중국의 도전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중국 제대로 바라보기


우리는 중국을 두 가지 다른 모습으로 바라본다. 차이나 드림이라는 기회를 제공하는 강대국과 국제 질서를 어기는 안하무인 개발 도상국이 그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1992년 수교한 이래 약 30년이 지났고 그동안 중국은 미국과 더불어 G2 반열에 오를 만큼 고속 성장했다. 10년 이내에 경제 규모로는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달라진 위상에 맞춰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정비해야 한다. 단순한 호불호 차원에서 중국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현재 중국이 전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고 그 안에 담긴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을 그저 제멋대로인 국가로 치부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더 커지기 때문이다.

아홉 가지 협상술은 중국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중국은 과장된 논리와 차가운 현실을 자유롭게 왕복하면서 이익을 추구한다. 때로는 상호 모순되는 방법으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중국의 다양한 얼굴을 대하는 것이 버거울 수 있다. 하지만 협상은 분명한 이해타산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중국의 태평한 표정 이면의 의도를 이해할 때 우리도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1]
Henry A. Kissinger, 《On China》, Penguin Press, 2011, pp. 22-32
[2]
김명호, 〈저우, 우슈취안에 “한국전 정전 담판하겠단 말만 하라”〉, 《중앙선데이》, 2019. 6. 2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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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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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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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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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광진, 〈양제츠⋅왕이, 폼페이오 면전에 “잘못된 조치 중단하라”〉, 《조선일보》, 2018. 10.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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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Carlyle A. Thayer, 〈Recent Development in the South China Sea: Grounds for Cautious Optimism?〉, 《RSIS Working Paper》 220(1), 2010, p.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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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데니스 블루드워스(전남석 譯), 《삼국지 정치학》, 동국출판사, 1980, 114쪽.
[12]
데니스 블루드워스(전남석 譯), 《삼국지 정치학》, 동국출판사, 1980, 315쪽.
[13]
데니스 블루드워스(전남석 譯), 《삼국지 정치학》, 동국출판사, 1980, 166쪽.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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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윤완준, 정동연, 〈시진핑, 김정은에 “너”라고 불러…‘형님-동생 관계’ 확실히 부각〉, 《동아일보》, 2018. 3. 30.
[16]
이장훈, 〈“시간은 내 편”, 지구전론으로 미국과 맞서는 시진핑〉, 《동아일보》, 2020.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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