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차별금지법인가
1화

프롤로그;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불과 30여 년 전까지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분류했다. 그러다 1990년 5월 17일 국제 질병 분류[1]에서 동성애를 제외했다. 전 세계 성 소수자 인권 단체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5월 17일을 국제 성 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로 지정했다. 지난해 한국 성 소수자 단체 연맹인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5월 17일을 앞두고 서울 지하철역에 성 소수자 응원 광고를 게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는 게시를 미루다 한 달이 지나서야 게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후 무지개행동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자 공사는 입장을 바꿔 광고 게시를 허가했다.

이 광고에는 “국회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동성혼을 당장 인정하라!” 같은 구호가 아닌, “성 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저 성 소수자는 우리 주변에도 존재한다는 내용을 담았을 뿐이다. 그런데 어렵게 설치된 이 광고는 이틀을 채 버티지 못하고 절반 이상이 찢긴 상태로 발견됐다. 최초 발견 이후에도 광고는 여러 차례 더 훼손됐는데, 결국 경찰이 나서 이 광고를 연달아 훼손한 20대 남성을 체포했다. 사방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된 지하철역은 범행이 발각되기 쉬운 장소임에도, 이 남자는 무려 여섯 번이나 같은 곳을 찾아가 이 광고를 훼손했다. 후에 그가 밝힌 범행 동기는 간단했다. “성 소수자들이 싫어서.”[2]

성 소수자가 싫다는 사람이 이 남자만은 아닐 것이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일상적이다. 성 소수자의 44.8퍼센트가 취업이나 직장 생활에서 인사 불이익, 따돌림 등을 경험했다.[3] OECD에 따르면 한국의 동성애 수용도는 10점 만점에 2.8점으로, 37개 회원국 가운데 터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4] 전체 국민 중 자살 충동을 경험한 사람은 6.8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성 소수자 중 자살 충동을 느낀 사람은 무려 66.8퍼센트로 그 비중이 열 배 가까이 차이 난다. 충동을 넘어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성 소수자는 전체의 25.5퍼센트며, 심지어 그중 절반 이상은 두 차례 넘게 시도한 사람들이다.[5]

하지만 성 소수자 차별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차별의 한 단면일 뿐이다. 우리나라 남녀 간 임금 격차는 34.6퍼센트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6]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68.4퍼센트는 여전히 인종 차별을 느끼고 있다.[7] 65세 이상 노인 중 무려 48.8퍼센트가 중위소득의 반도 벌지 못하는 빈곤층으로 분류되며,[8] 노인 자살률은 부동의 OECD 1위다.[9] 이런 사례들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학벌, 재산, 직급, 출신 지역 등 본인의 인격이나 개성과는 무관한 사유로 부당한 평가를 받는다고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열 명 중 여덟 명은 “우리 사회의 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한다.[10]

하지만 이렇게 모두가 차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정작 차별 문제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다. 대표 여론 조사 기관인 한국갤럽조사연구소는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조사를 할 때, 개별 응답자에게 긍·부정 평가와 해당 평가의 이유를 함께 묻는다. 그런데 2021년 4월 4주 차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답한 40여 가지의 이유 중, 차별과 관련된 것은 한 건도 없었다.[11] 이 정도로 우리 사회는 차별에 무관심하다. 이렇다 보니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법적 토대가 될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입법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정치권에서 처음 논의를 시작한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말이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적극성이 부족한 것은 크게 세 가지 오해에 기반한다. 첫 번째는 평등주의가 진보주의자의 전유물로서,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은 적극적으로 지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 정치 지형의 특성상 지금까지 평등주의는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 정당에서 주도적으로 다뤄왔지만, 보수주의자라고 해서 무조건 반대할 이유는 없다. 보수주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사상이다. 정부의 권한과 역할을 제한하기 위해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기본권을 법으로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이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이다. 법이 차별을 막지 않는다면 공권력이 자의적으로 권리를 유린할 수 있는 계층이 발생한다. 이러한 약한 고리가 사회에 존재하는 것은 보수주의가 가장 경계하는 공권력의 무분별한 확산과 자유의 부재로 이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차별금지법은 모두가 동일한 조건에서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기 위한 기본 전제로, 보수주의자의 입장에서도 꼭 필요한 법이다.

두 번째는 평등주의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서양의 가치를 무분별하게 수입하면서 생긴, 우리 문화와 맞지 않는 외래종이라는 오해다. 정치 현안으로서 평등에 대한 논의는 서구 사회에서 출발했을지 몰라도,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서도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7세기 초에 허균은 〈유재론(遺才論)〉이라는 글을 통해 “이 나라에서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할까 두려워해도 더러 나랏일이 제대로 될지 점칠 수 없는데, 도리어 그 길을 스스로 막고서 우리나라에는 인재가 없다고 탄식한다. (중략) 참으로 이웃 나라가 알까 두렵다”라며 신분제의 폐해를 비판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여성 중심의 독립운동 단체인 근우회가 등장해 “여성 해방 없이는 민족 해방도 없다”는 주장도 했다.[12] 이어 지금의 헌법을 만든 1948년 제헌 의회에서는 구성원이 모두 남성이었음에도, 부부의 재산권이나 상속과 관련해 여성의 권리를 명시하는 구체적인 조항을 헌법에 넣자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된 바 있다.[13] 한 의원은 심지어 “국회 대의원 200명 중 여성 대의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남존여비 사상의 결과”라며 다양성 부족을 직접 비판하기까지 했다.[14] 1994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외교협회가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잡지인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Is Culture Destiny〉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그는 서구의 제도인 민주주의를 동양에 강요해선 안 된다는 싱가포르 리콴유(Lee Kuan Yew) 수상의 주장에 반박하며, 동양에도 민주주의적 철학과 전통이 있음을 역설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평등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문화적 이질감이란 변화에 따른 불편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가 반드시 우리의 운명일 수만은 없다. 평등이 우리의 운명인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오해는 차별이란 구세대의 편견으로 인한 문제로,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시대가 변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차별이 나쁘다고는 이해해도, 해결에는 절박하지 않다. 비교적 차별에서 자유로운, 이성애자 남성으로 한국에서 오래 산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십여 년 전 변호사가 되기 위해 처음 미국으로 향할 무렵, 그곳은 우리보다 평등주의가 훨씬 먼저 자리 잡아 지금은 어느 정도 차별 문제가 종식된 사회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변호사가 되어 마주한 미국 사회의 모습은 예상과 달랐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끔찍한 수용소에 갇힌 이민자, 이유 없이 경찰에게 폭행당하는 흑인, 공개적으로 백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 대통령, 그리고 그 연설에 환호하는 이웃들의 모습. 안이하게도 평등한 미국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늘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 내 눈으로 본 미국의 민낯은 지향점이 아니라 반면교사로 삼을 대상이었다.

차별에 대한 나의 무관심, 생소함, 그리고 근거 없는 낙관이 어떻게 절박함으로 변했는지 공유하고자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차별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독자분일지라도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실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일부 운동가들의 열정적인 활동도 소중하지만, 차별금지법 입법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평등주의의 대중화다. 차별받는 이웃들의 존재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평등을 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같은 목소리로 변화를 요구하는 하나의 정치 세력이 될 때, 지금 당장은 실현 가능성이 작아 보이는 차별금지법도 현실이 된다.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의 명언 중 “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말이 있다.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뜻이다. 킹 목사가 1963년 앨라배마(Alabama)주에서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집회를 조직한 혐의로 투옥됐을 때 쓴 편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 정치권에서도 이를 자주 인용하는데, 수많은 정치인 중 이 글 몇 단락 밑에 나오는 이야기까지 아는 분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흑인의 자유를 향한 전진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백인 인종주의자가 아니라 백인 온건주의자다. 그들은 정의가 있는 적극적 평화보다는 갈등이 없는 소극적 평화만을 원한다. (중략)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얄팍한 이해는 악의를 가진 사람들의 완전한 몰이해보다 나를 더 지치게 한다. 소극적 찬성은 적극적 반대보다 더 납득하기 어렵다.”[15]

킹 목사를 가장 분노하게 만든 것은 흑인을 2등 시민으로 내모는 법을 만들고 심지어 흑인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는 백인 인종주의자들이 아니었다. 인종 차별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작 흑인의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울 의지는 없었던 소극적인 백인들이었다. 인종주의자들의 폭력을 가능케 한 것은 다수인 온건주의자들의 침묵이라는 사실을 킹 목사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일수록, 지금 자신에게 소극적인 백인의 모습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집필을 마무리하던 2021년 초,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육군에서 강제 전역당한 전차 조종수 고(故) 변희수 하사의 안타까운 부고가 들려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강제 전역 조치가 부당하다며 전역 취소를 권고했지만, 육군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인권위의 권고를 무시했다. 변 하사는 단 하루라도 다시 군복을 입겠다는 일념으로, 육군의 결정을 뒤집기 위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긴 법정 싸움까지 다짐했다. 만약 인권위의 권고에 강제성을 부여하는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변 하사의 본인을 위한 싸움은 인권위에서 끝났을 것이고, 그는 다시 전차 조종간을 잡고 조국을 위한 싸움에 복귀했을 것이다. 나와 같이 언론 보도를 통해 변 하사의 사연을 접하고 안타까워했던 사람들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정치권에 차별금지법 입법을 요구했다면,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선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지 않았을까.

변 하사를 위한 정의는 너무 오래 지체되었고, 그 역시 수많은 차별의 피해자 중 한 사람이 됐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이웃이 보이는 곳에서, 또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지체된 정의를 기다리며 여전히 차별에 고통받고 있다. 시대는 이제 그들의 문제를 모두의 문제로 바꾸고, 지체된 정의를 오늘의 정의로 바꿀 행동력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경제 발전과 민주화가 각각 우리 조부모님 세대, 부모님 세대의 과업이었듯, 평등은 우리 세대가 거부할 수 없는 지상 목표가 되어야 한다. 1945년까지 나라가 없고, 1987년까지는 민주주의가 없었던 것을 오늘의 우리가 개탄하듯, 2021년 초 차별금지법과 평등이 없었다는 사실에 가슴 칠 날도 반드시 올 것이다. 이 책이 그런 변화를 위한 작은 불씨가 되기를 바란다.
[1]
WHO가 공식적인 질병의 종류와 이름을 정해 배포하는 자료다. 국가별로 정리하는 사망 원인 통계를 표준화해서 관리할 수 있다.
[3]
연윤정, 〈성소수자 채용과정·직장내 차별 심각〉, 매일노동뉴스, 2015. 11. 11.
[4]
OECD, 〈Society at a Glance 2019〉, 2019. 3. 27.
[5]
전진식, 〈성소수자들 66.8% 자살 충동〉, 《한겨레21》, 2015. 5. 13.
[11]
한국갤럽, 〈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2021. 4. 22.
[12]
국사편찬위원회, 〈근우회의 창립과 이념〉, 《신편 한국사》
[13]
대한민국 국회, 《제1회 국회속기록 제21호》, 1948. 6. 30., 15쪽.
[14]
대한민국 국회, 《제1회 국회속기록 제21호》, 1948. 6. 30., 19쪽.
[15]
“the Negro’s great stumbling block in his stride toward freedom is not the White Citizen’s Council-er or the Ku Klux Klanner, but the white moderate, who is more devoted to “order” than to justice; who prefers a negative peace which is the absence of tension to a positive peace which is the presence of justice; who constantly says: “I agree with you in the goal you seek, but I cannot agree with your methods of direct action”; who paternalistically believes he can set the timetable for another man’s freedom; who lives by a mythical concept of time and who constantly advises the Negro to wait for a “more convenient season.” Shallow understanding from people of good will is more frustrating than absolute misunderstanding from people of ill will. Lukewarm acceptance is much more bewildering than outright rej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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