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차별금지법인가
7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되지 않기를

어린 시절,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라고 배웠다. 그런데 지금은 이 둘의 경계가 흐려져 ‘다른 것은 곧 틀린 것’이라는 전제까지 용인되는 것만 같다. 나(우리)와는 다른 성별, 나이, 장애, 피부색, 성적 지향, 종교 등이 상대를 비난하고 혐오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어서다. 사람을 벌레에 빗대는 각종 ‘~충(蟲)’이라는 신조어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특정 집단이나 계층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게, 심지어는 남들 앞에서까지 차별받는 피해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생겨나고 있다. 대다수의 무관심 속에 이들의 고통은 나와 상관없는 ‘그들만의 문제’로 취급되고, 그사이 차별은 더욱 공고해진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있다. 우리 모두 특정 상황, 시기에는 사회적 약자인 소수자 즉, 차별의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지금 당장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도 차별금지법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 모두가 차별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없앨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반대나 혐오의 목소리를 내는 순간 처벌받을 거라는 주장도 틀렸다. 설령 길거리에서 이민자나 동성애자를 욕한다고 해도 잡혀갈 일은 없다. 우리 사회를 듣도 보도못한 모습으로 바꾸려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의된 차별금지법 법안을 살펴보면, 차별 가해자에 대한 처벌보다 차별의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다시 말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입과 귀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차별 피해자들을 실질적인 불이익으로부터 보호하고, 나아가 평등이라는 우리 모두의 기본권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는 순간,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 1항은 무시된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차별금지법을 애써 무시하고 묵히는 사이, 우리 주변에 평등이라는 기본권을 빼앗긴 사람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동시에 혐오는 일상적이고 익숙한 것으로 변질했다. 이대로라면 다음 피해자는 누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차별금지법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전찬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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