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데탕트
1화

바이든 독트린과 G7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What the hell.” 바이든의 인내심도 바닥난 모양이었다. CNN 기자에게 쏘아대기 시작했다. “왜 푸틴 대통령이 행동을 바꿀 거라고 그렇게 자신하는가”라고 물은 기자였다. 바이든은 따져 물었다. “내가 언제 자신한다고 말했나? 빌어먹을.” CNN 기자가 반문했지만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바이든은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치켜들면서 말을 끊어 버렸다. “나는, 나는, 내가 말한 건, 분명히 하자. 나는 무엇이 그의 행동을 바꿀 것인가를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자신하지 않는다. 나는 사실을 말할 뿐이다. 내가 언제 확신한다고 했나?”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져 


지난 6월 16일이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 회담이 끝난 직후였다.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정상 회담이 건설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건설적이란 수사는 외교 은어다. 의견 차이가 커서 결론난 건 없다. 적어도 이견이 무엇인지는 직접 대화로 확인했다. 이런 말이다. 미러 사이의 쟁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5월에 발생한 미국 최대 송유관 회사 콜로니얼에 대한 랜섬웨어 공격이 대표적이다. 콜로니얼은 미국 동부권 에너지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다. 하루 송유량만 250만 배럴에 달한다.

일주일 가까이 석유 공급이 끊기자 미국에선 주유 대란이 벌어졌다. 주유소 앞에서 가솔린을 놓고 운전자들끼리 난투극을 벌이는 미친 지경에 이르렀다. 영화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현실판이었다. 주유 대란은 금융 시장도 혼란에 빠뜨렸다. 석유 가격이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코로나로 무너진 미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전방위 돈 풀기에 나선 상태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율이 비정상적으로 치솟으면 미국의 금융 정책과 재정 정책이 무력화된다. 석유 송유관에 대한 해킹은 결국 달러 송유관에 대한 해킹인 셈이다.

미국 정보기관은 콜로니얼에 대한 랜섬웨어 공격의 배후에도 러시아가 있다고 확신한다. 러시아 해커 집단이 미국의 기간 시설과 민간 기업을 해킹해서 돈을 요구하는 랜섬웨어 공격이 한두 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테러리스트들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야 유명하다. 미국 기업들의 사정은 좀 다르다. 사실상 러시아의 랜섬웨어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콜로니얼도 500만 달러를 비트코인으로 지급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문제는 에너지나 상수도 같은 미국의 인프라가 대부분 민영화돼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기업에 대한 공격은 곧 미국 인프라에 대한 공격인 셈이다. 지난 2월엔 플로리다주에 있는 플로리다시 상수도 관리 회사에 대한 랜섬웨어 해킹 시도가 있었다. 치사량의 화학 물질을 상수원에 주입하려다 발각됐다. 플로리다 시민들의 생명을 볼모로 잡으려는 시도였다. 이와 비슷한 시도가 2016년 우크라이나에서도 있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군사적 긴장 관계다. 미국은 푸틴 정부가 러시아와 적대적인 국가들에 대한 자국 해커들의 렌섬웨어 공격을 사실상 묵인 방조하고 있다고 본다.

바이든은 푸틴을 싫어한다. 솔직히 푸틴 같은 독재자들을 혐오한다. 대선 토론에서 바이든은 푸틴과 김정은 그리고 시진핑을 공개적으로 “Thug”이라고 불렀다. 국내 언론에선 깡패자식 정도로 순화됐다. 툭 까놓고 말해서 양아치란 뜻이다. 바이든은 반세기 동안 외교 무대를 누볐다. 독재 국가의 정상을 마주하면 바이든은 면전에다 독재자라고 면박을 주곤 했다. 바이든은 그것이 강대국의 의무라고 여겼다. 전 세계를 민주주의 체제와 권위주의 체제로 이분해서 바라보는 바이든 정부의 세계관은 확실히 전략적이지만 다분히 정서적이다. 정치인 바이든의 영혼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레이밴 선글라스를 쓴 캡틴 아메리카다.

그런데도 캡틴 아메리카는 이번 미러 정상 회담에선 독재자 윈터 솔저의 얼굴에 침을 뱉어 주지 못했다.[1] 구속 중인 나발니 이야기를 꺼내긴 했다. 알렉세이 나발니 전 러시아 진보당 대표는 반푸틴 저항 운동의 상징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푸틴 시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나발니는 2000년부터 이어진 푸틴 독재를 끊어 낼 수 있는 결정적 지렛대다. 그런데도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 회담이 끝난 뒤 가진 개별 기자 회견에서 이 정도 언급에 그쳤다. “나발니의 죽음이 러시아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구두 경고다. 레드카드는커녕 옐로우카드도 못된다. 푸틴 앞에서 바이든은 방패 없는 캡틴 아메리카였다.

이러니 바이든 대통령도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자기 자신한테 화가 났을 법 하다. 양아치를 마주하고도 못 본 채 했기 때문이다. 사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만 해도 러시아와 난타전을 벌였다. 4월엔 러시아에 대한 전방위적 제재 패키지를 발표했다. 결국 미국과 러시아는 1952년 이후 처음으로 상대방 외교관을 추방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2차 대전 이후 미러 관계가 최악이 된 셈이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은행들의 러시아 국채 매입을 금지시켰다. 러시아 경제가 악화되면 경제 위기가 나발니를 중심으로 한 정치 변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악시오스〉는 바이든 행정부의 러시아 경제 제재를 “러시아 경제에 대한 광범위한 냉각 효과”라고 표현했다.

문제는 뜨뜨미지근한 냉각 효과였다. 지금 러시아 경제는 코로나로 인한 타격을 빠르게 만회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미러 정상 회담 직전에 열린 2021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 경제 포럼에서 사실상 러시아 경제가 코로나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했다. 경제만 회복되면 미국 은행이 아니더라도 러시아 국채를 구매할 투자자는 시장에 널렸다. 게다가 바이든은 러시아 경제 제재를 말하면서도 정작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송유관인 노르트 스트림2에 대한 제재는 풀어 줬다. 사실상 천연가스 같은 자원 수출로 먹고 사는 러시아한텐 금융 규제보다도 더 치명적인 제재일 수 있었다. 노르트 스트림2는 러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맹 독일의 이해관계도 걸린 예민한 이슈다. 트럼프는 동맹의 입장을 무시했다. 트럼프가 노르트 스트림2를 묶어 버릴 수 있었던 이유다. 바이든은 그럴 수 없다. 푸틴 입장에선 트럼프보다 바이든이 쉬운 상대란 말이다.

그때, 바이든 대통령은 미러 정상 회담이 끝난 뒤 단독 기자 회견을 마치고 스위스 제네바 파크 데 오 비브 호텔로 걸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상의 재킷을 벗고 선글라스를 든 채였다. 워싱턴 외교 전문가들은 미러 정상 회담이 끝나더라도 공동 기자 회견만큼은 절대 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푸틴이 미러 정상 회담을 불리한 국내 정치에 대한 반전 카드로 이용할게 뻔했기 때문이다. 바이든도 조언에 따랐다. 공동 기자 회견만큼은 피했다. 그런데도 푸틴이 신이 나서 떠드는 것만큼은 피할 수 없었다. 푸틴은 1시간 가까이 프롬프터도 없이 기자 회견을 했다. 바이든의 기자 회견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두 정상 모두 이번 회담이 러시아 쪽으로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걸 알고 있었다. 만남 자체만으로도 푸틴 체제를 바이든 정부가 인정했단 의미였다. 인사만 했어도 악수도 한 것으로 보일 수 있었다. 러시아에 대한 미국 정부의 경제 제재도 기대만큼의 냉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번 정상 회담은 캡틴 아메리카도 윈터 솔져한텐 별 수 없다는것만 만천하에 드러낸 꼴이었다. 이미 미국 언론은 회담 전부터 “이것은 초강대국끼리의 협상이 못된다”라며 김을 빼고 있는 분위기였다. 러시아의 위상이 구소련과는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었다.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대략 스페인 수준이다. 2020년 GDP 기준으론 한국에 이어 11위다.

그런데도 바이든은 푸틴과 정상 회담을 했다. 과거 냉전 시절처럼 중립국 스위스에서 만나서 양자 회담을 가졌다. 심지어 “두 강대국”이라는 표현까지 써줬다. 러시아를 소비에트처럼 추켜세워 준 셈이다. 《폴리티코》는 이걸 바이든의 도박이라고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미국과 바이든은 지금 도박이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란 말이다. 배알이 꼬여도 양아치와 만나서 4시간 동안 건설적이라고 쓰고 시간 낭비라고 읽어야 하는 회담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란 말이다. 중국 때문이다.

 

바이든의 민주주의 연환계

©Leon Neal - WPA Pool/Getty Images
“세계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은 더 탄력적이고 지구적 발전을 지지하는 인프라 업그레이드에 있어서 중국에 대한 높은 수준의 대체재를 제공할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이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시장 민주주의 국가들이 21세기 무역과 기술을 둘러싼 규칙들을 쓰는 데 확실히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바이든의 출사표였다. 지난 6월 5일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에 칼럼을 기고했다.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영국 콘월에서 열릴 G7 정상 회담과 1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릴 나토 정상 회의를 앞둔 시기였다. 바이든 유럽 순방의 마무리는 16일로 예정돼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이었다. 

이번 바이든의 유럽 순방은 세계에 미국이 돌아왔다는 걸 알리기 위해 짜여진 정교한 외교 플랜이었다. 바이든의 외교 만찬에서 푸틴이 마지막 디저트였다면 《워싱턴포스트》는 첫 번째 애피타이저였다. 바이든은 《워싱턴포스트》 출사표에서 미국 외교의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혔다. 한마디로 중국 봉쇄다. G7과 나토를 통해 중국의 서쪽으론 영국과 독일과 프랑스, 남쪽으론 인도와 호주, 동쪽으론 일본과 캐나다를 묶는다. 이때 패키지로 중국 턱밑 한국까지 회유한다. 마지막으로 북쪽에선 러시아를 견제한다. 바야흐로 베이징 공략에 들어간다. 바이든의 연환계가 통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중국보단 아직은 미국이 글로벌 리더로서 세계 번영에 더 이득이라는 걸 국제 사회에 설득하고 동의를 얻는 것이었다.

6월 18일 현재 미국에서 1회 이상 백신 접종을 맡은 비율은 53.7퍼센트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지난 1월 20일 미국의 하루 신규 코로나 확진자 수는 18만 5000명이었다. 바이든이 《워싱턴포스트》에 출사표를 올린 지난 6월 6일엔 6147명이었다. 통계만 봐도 코로나 상황이 통제 가능해졌다고 자신할 만하다. 경제 회복도 낙관할 만하다. 지난 4월엔 미국 소비자 물가 지수 상승률이 4.2퍼센트를 기록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최대치였다. 소비 대국 미국에선 경제 지표 중에서도 소비자 물가 지수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수출 강국 한국이 수출 데이터를 중시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IMF는 2021년 미국 경제 성장률을 6퍼센트로 전망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보건과 경제에서 미국 국내 정치를 빠르게 안정시켰다. 바야흐로 중국 공략에 나설 때가 무르익었단 말이다. 그러자면 바이든은 우선 미국 외교를 국제 무대에 복귀시켜야만 했다. G7이야말로 “America is back”을 알릴 최적의 무대였다.

미국의 귀환은 일단은 화려했다. 우선 미국은 G7의 의제를 B3W로 미는 데 성공했다. B3W는 ‘Build Back Better World’의 줄임말이다. 더 나은 세계 재건이다. ‘Build Back Better’는 바이든 대선 캠페인이었다. 미국 대통령의 대선 구호를 선진 7개국 정상들이 모두 수용한 셈이다. 다시 한 번 미국이 세계의 규칙을 정한 셈이다.

B3처럼 B3W의 골자도 한마디로 천문학적인 인프라 투자다. 이건 G7도 백퍼 공감할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은 코로나로 대동소이한 경제 위기와 보건 위기를 겪었다. G7 정상들의 국내 정치적 입지도 코로나 탓에 비슷한 운율로 흔들리고 있다. 경제를 재건할 정치적 비전이 절실한 시점이다. 돌고 돌아 결국 답은 인프라 투자다. 바이든이 제시한 B3W는 어차피 포스트 코로나 경제 재건을 위해 각국이 너나없이 해야 할 인프라 투자를 국제적 협력을 통해서 공동으로 해나가자는 제안이다. B3W는 G7한테도 좋고 G7 정상들한테도 유리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B3W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는 지난 6월 12일 백악관이 공개한 팩트시트에서도 잘 드러난다. 백악관은 G7이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 하루 전에 G7 성과에 대한 보도 자료를 공개했다. 공식적인 G7 코뮤니케가 나오기도 전에 백악관이 먼저 주요 내용을 공개해 버린 것이다. 백악관은 G7 코뮤니케의 진정한 의미는 바이든 대통령과 G7 정상들이 B3W 파트너십을 구축한 것이라고 못 박고 있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재확인했단 말이다. B3W를 통해 향후 수년 동안 수조 달러에 이르는 인프라 투자가 이뤄질 예정이다. 그런데 투자 대상이 각별하다. 저개발 국가들과 개발도상국이다. 백악관은 B3W가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 인도태평양 지역을 포괄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이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지역이다. 앞으로 경제 성장이 기대되는 지역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팽창해 온 지역이다. 3대 투자 조건도 명시했다. 자본의 투명성과 정부의 건전성과 사업의 친환경성이다. 4대 분야도 제시했다. 환경, 보건, 디지털 그리고 성평등이다. 이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민주화다. 중국과의 결정적 차별점이다.

백악관은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이 B3W의 기준들에 합의했다”고 확인했다. 국제 외교에서 ‘agree’는 막중한 표현이다. 지금 세계 무역 질서의 규범인 자유무역협정, 그러니까 FTA도 ‘agreement’다. 백악관은 G7 정상 회담을 통해 B3W가 국제 협정에 준하는 성격을 갖게 됐다고 규정한 것이다. 다음날인 6월 13일 발표된 1만 4000단어에 달하는 G7 공동 성명은 사실상 전날 백악관 보도 자료를 연설문 형식으로 바꾼 것에 가까웠다. 코뮤니케의 초안을 의장국 영국이 아니라 사실상 미국이 잡았다는 뜻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그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밑그림을 주요 선진국들이 수용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바이든이 G7 정상 회담을 통해 얻는 진정한 승리는 따로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구도를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 구도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일방주의를 고수했다. 결과적으로 중국과의 패권 전쟁에서도 미국은 독고다이였다. 미국이 스스로를 고립시킨 결과였다. 2019년 G7 정상 회담은 공동 성명 자체가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패권 경쟁의 프레임을 전환시켰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자유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G7 동맹들이 자연스럽게 미국 편을 들 수 있도록 그림을 그렸다. 푸싱을 하지 않고 넛징을 한 것이다. 덕분에 G7 코뮤니케는 70개 항목 전반에 걸쳐서 중국에 대한 비판을 명시할 수 있었다.

홍콩과 신장 위구르에 대한 고도의 자치 허용을 요구한 것이나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촉구한 것도 마찬가지다. 명분으로 따지면 중국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모든 종류의 위협을 비판한 것이다. 그런데 그 명백하고 현재적인 위협이 중국인 것이다. G7 코뮤니케에 중국이 명시된 건 처음이다. 바이든 외교의 표면적 승리다. 바이든 외교의 내면적 승리는 앞으로 전 세계가 권위주의라고 쓰고 중국이라고 읽게 만든 것이다. 바이든 캡틴 아메리카가 민주주의 어벤져스와 함께 권위주의 중국이라는 타노스와 맞서게 된 것이다.[2]

 

스리랑카의 홍콩

함반토타의 모든 것이 파괴됐다. 2004년 12월 26일이었다. 인도양에서 규모 9.3의 해저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해일을 일으켰다. 빌딩만한 해일이 인도양 연안 국가들을 덮쳤다. 스리랑카부터 아프리카 소말리아까지 해일의 피해를 입었다. 28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인도양 한복판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는 특히 피해가 극심했다. 스리랑카 남부의 항구 도시 함반도타는 폐허가 됐다. 아수라장이었다. 2005년 마힌다 라자팍사가 스리랑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함반도타 출신이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파괴된 함반도타를 재건하고 스리랑카 경제를 부흥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라자팍사는 스리랑카의 희망처럼 보였다.

지금 함반도타는 중국의 조차지다. 조차란 다른 나라가 어떤 나라 영토의 일부를 일정 기간 동안 임대하는 것을 말한다. 말이 임대지 사실상 식민 지배다. 홍콩이 그랬다. 홍콩도 형식적으론 영국이 중국으로부터 99년 동안 임대한 조차지였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인도양 해일로 파괴된 고향 함반도타를 재건한다는 명분으로 대형 항만 건설을 계획했다. 명분은 거창했지만 실리는 전무했다. 스리랑카는 수도 콜롬보에 이미 충분한 항만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다. 사전 경제 타당성 조사에서도 함반도타 항구 개발은 수요가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투자유치에 거듭 실패하자 라자팍사 대통령이 손을 내민 곳은 중국이었다. 스리랑카 정부는 중국 정부로부터 3억 700만 달러의 차관을 들여왔다. 그렇게 함반도타 개발이 시작됐다.

라자팍사 대통령이 함반도타 항구 개발을 밀어붙인 건 정치적 의도가 컸다. 고향을 기반으로 라자팍사 가문의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재난을 재건의 명문으로 정략적으로 이용한 셈이었다. 중국 정부는 라자팍사 대통령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중국 국영 항만 기업 자오상쥐한테 항만 건설을 맡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빚은 스리랑카 정부가 지는데 돈벌이는 중국 기업이 하는 셈이었다. 권력에 눈이 먼 라자팍사 대통령은 중국 정부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함반도타항은 2010년에 개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함반도타항은 곧바로 개점 휴항 상태에 빠졌다. 스리랑카 정부가 중국 정부한테 빌린 차관에 대한 이자만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참다 못한 스리랑카 유권자들은 친중 정권이었던 라자팍사 정권을 교체했다. 패착이었다. 중국 정부는 반중 정부였던 차기 정부를 상대로 차관 상환을 거칠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양아치 짓이었다. 3억 달러 정도였던 차관은 이자까지 붙어서 11억 달러를 넘어선 상태였다. 중국 정부는 차관을 갚을 수 없다면 대신 함반도타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2017년 스리랑카는 중국 국영 항만 기업 자오상쥐에게 99년 동안 함반도타를 조차해 줬다. 중국은 함반도타를 스리랑카의 홍콩으로 전락시켰다.

2019년 마힌다 라자팍스 대통령의 친동생인 고타바야 라자팍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다시 친중 정권이 들어선 셈이다. 라자팍스 가문은 스리랑카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마힌다 라자팍스 전 대통령은 동생 정권에선 총리를 맡았다. 그 뒤엔 중국이 있다. 형식상 함반도타 조차는 상업적 목적에만 국한돼 있다. 친중 정권이 들어선 이상 중국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함반도타에 해군을 주둔시킬 수 있다. 라자팍스 가문이 스리랑카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선 중국의 자금이 절실하다. 중국은 사실상 스리랑카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인도양 해일이 결과적으로 중국의 인도양 진출의 빌미가 된 셈이다. 쓰나미가 덮친 곳을 인민패가 덮쳤다.

이것이 일대일로의 실체다. 개도국의 인프라 개발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중국 정부가 차관을 제공하고, 중국 기업이 건설 개발을 독점해서,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는 빚쟁이로 만들고, 중국 정부는 이자를 먹고, 중국 기업은 수익을 얻고, 궁극적으론 해당 국가의 정부를 반식민지화하는, 일사천리 정책이 일대일로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처음 제시한 구상이다.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서 주변 국가들의 경제 발전에 중국이 이바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유라시아와 인도양 국가들의 철도와 도로와 항만 인프라가 구축돼서 21세기 실크로드가 재건되면 결국 중국 경제한테도 글로벌 경제한테도 모두 좋다는 청사진이었다.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를 제시하면서 중국이 인류 전체의 번영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작 일대일로는 사실상 중국의 신식민지 정책으로 변질됐다. 스리랑카뿐만이 아니다. 아프리카 가나의 자료에 따르면, 아프리카 개도국들이 중국 정부한테 진 빚은 도합 1450억 달러를 넘는다. 이들 국가들이 1년 동안 상환 가능한 금액은 고작 80억 달러에 불과한데 말이다. 아프리카 대륙은 이미 경제적으론 중국 대륙에 예속돼 있다. 이러니 아프리카 정부들은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파키스탄 역시 중국 차관의 비중이 GDP의 10퍼센트를 넘어섰다. 이미 실크로드 인근 8개국이 중국한테서 빌린 돈으로 벌인 무리한 인프라 개발 탓에 공공 부채의 늪에 빠졌다. 이쯤되면 실크로드가 아니라 부채로드다.

중국은 사실상 20세기 초반 서구 제국주의가 자행했던 식민지 전략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 함반도타에서 홍콩이 어른거리는 건 우연이 아니다. 양차 대전을 거치면서 서구 열강은 제국주의를 해체하고 식민지를 포기하고 다자주의로 이행했다. 저개발 국가를 부채의 늪에 빠뜨려서 식민지화하는 전략이 결국 식민지 국민들뿐만 아니라 서구 제국들까지 비참하게 만든다는 걸 뼈져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세계 대전은 식민지 쟁탈전이 낳은 필연적 비극이었다. 지금의 세계 질서는 전쟁의 교훈이 낳은 산물이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미국의 패권만 위협하는게 아니란 말이다. 궁극적으론 세계 평화에 위협적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이걸 예정된 전쟁이라고 예언했다.

2차 대전 이후 선진국들은 개도국에 대한 공적 개발 원조를 할 때 이자를 받지 않고 원금 상환도 요구하지 않는다. 덕분에 개도국 입장에선 차관을 받는 게 까다롭게 됐다. 덕분에 개도국 입장에서도 빚의 수렁엔 빠지지 않는다. 무리한 차관은 20세기에도 그랬고 21세기에도 식민지화의 첫 단추다. 한일 합방은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한테 반강제로 제공한 1300만원의 차관에서 비롯됐다. 당시 민중은 가락지를 내놓고 담배를 끊는 국채보상운동까지 벌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미 정권이 대한제국의 라자팍스들한테 장악됐기 때문이었다. 당대 한국처럼 중국도 서구 제국들한테 똑같이 당했다. 그런데도 중화인민공화국은 과거 가해자들의 악행을 답습하고 있다. 제국화되고 있단 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 출사표에서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더 높은 수준의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대일로가 부패해서 실패했다는 건 사실이다. 개도국이나 저개발국 입장에선 일대일로밖엔 대안이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G7이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 위기로 미국 자본주의의 허점이 드러났다. 2013년 유럽발 재정 위기는 EU 체제의 맹점을 드러냈다. 미국과 유럽은 내부 시스템의 오류를 수정하느라 2010년대를 허비했다. 20세기 후반기를 지배했던 미국식 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에 버그가 발생하자 그 진공을 치고 들어온게 중국식 권위주의 자본주의 체제였다. 서구 제1 금융권이 금융 위기로 대출을 조이자 중국 제3 금융권인 저축은행이 국제 대출시장을 잠식한 것이나 다 없었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21세기 식민주의나 다름없다. 시진핑 주석도 입으론 인류 운명 공동체론을 외치고 있다. 일대일로도 겉으론 중국 체제가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도 좋다는 걸 입증하려는 시도였다. 아직까진 중국 체제는 더 못한 세계만 촉진하고 있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 식민 제국주의 중심의 대체재였다. 미국의 패권 시대는 적어도 겉으로는 식민지 시대의 종언이었다. 더 나은 세계였다. 일대일로는 중국의 부상이 세계 역사의 퇴행이 될 수도 있다는 징후다. 국제 사회가 중국의 부상을 우려하는 이유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G7을 “어떤 회의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G7 정상 회담은 세계를 상대로 미국 대통령이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비전을 프리젠테이션하는 자리였다. 미국이 글로벌 리더로서 아직 자격이 있는지 가늠하는 자리였다. 미국은 트럼프 시대에 리더십을 상실했다. 고립주의로 퇴행했었다. 미국이 귀환하려면 우선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했다. 평가받는 건 사실 미국이었단 말이다. 그래서 미국은 G7을 통해 미국식 세계 질서가 중국식 세계 질서보다 우월하다는 걸 입증할 생생한 증거가 필요했다. 여기서 한국이 등장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아웃라이어 

©청와대
“이 자리 이 모습이 대한민국의 위상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왔습니다. 위대한 국민들과 정부가 함께 해온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G7 정상 회담 기념 사진을 공개하면서 이렇게 홍보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2년 연속 초청된 G7 정상 회담의 의미를 국내 언론이 제대로 홍보해 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반면에 보수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애써 깎아내리려고 혈안이 돼 있다. 그래서 청와대는 G7 외교 성과를 직접 국민들에게 알리는 방향으로 홍보 전략을 바꿨다. 청와대가 직접 공개한 〈사진 한 장으로 보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작 남아프리카 공화국 시릴 라마포마 대통령을 삭제하는 바람에 또 다시 트집이 잡히고 말았다.

임기 5년 차인데도 여전히 40퍼센트 안팎인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국내 정치의 중대 변수다. 지난 6월 17일 발표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전주에 비해 3퍼센트포인트 상승한 43퍼센트였다. G7 외교 성과가 대통령 지지도 상승으로 직결됐다. 한미 정상 회담 직후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7주 만에 40퍼센트대를 회복했었다. 여야 정당과 진보 보수 언론이 정상 외교를 정파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결국 너무 깎아내리거나 너무 추켜올리거나다. 모두 소모적이다. 대통령의 정상 외교는 정치 공학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 지금처럼 바이든 대통령이 대대적인 중국 공략에 나선 상황에선 말할 것도 없다. 국민들도 지금 한국이 어디 좌표에 서 있는지를 균형 있게 공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명실상부하게 G8 국가로 자리매김한 것 아니냐는 국제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G7 성과를 브리핑한 내용이다. 사실이다. G8은 자타공인 대한민국의 위상이다. 다만 좀 더 해석이 필요하다. 현대자동차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해서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유일무이한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다. 대다수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20세기 전반에 등장했다. 미국의 GM과 포드가 그렇다. 독일의 벤츠와 BMW가 그렇다. 폭스바겐은 2차 대전 전범 기업이었다. 일본의 도요타도 마찬가지다. 21세기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국의 테슬라나 중국의 니오가 부상했다. 20세기 내연 기관 시대엔 오직 현대차가 예외적인 경우였다. 국제 질서의 현대차가 대한민국이다. 쉽게 나오기 어려운 아웃라이어 말이다.

바이든은 한국이야말로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창출해 낸 예외적이지만 특별한 성공 사례라고 본다. 한국은 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가장 민주주의가 발달된 국가다. 식민 지배를 겪고 권위주의 체제를 경험했지만 끝내 민주화라는 상록수를 지켜냈다. 홍콩 우산 혁명과 미얀마 저항 운동은 모두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지향한다. 자본주의에선 성공했지만 민주주의에선 정체돼서 노인 국가화된 일본이나 자본주의만 받아들이고 권위주의에 머물러서 제국화된 중국과 달리 한국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20세기 중후반부터 21세기 초까지 세계 질서를 지배했던 팍스아메리카나가 한국이라는 아웃라이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한국의 경제적 번영은 20세기 후반에 미국이 설계한 글로벌 공급망 덕분이다. 한국의 정치적 성공은 이웃 국가들인 일본이나 중국이나 북한과 달리 자유 민주주의를 시스템화하려고 멈춤 없이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김대중과 노무현 같은 민주적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바이든이 지지했던 정치인들이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레벨업된 시대는 정확하게 바이든 대통령이 상원과 백악관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한 시기와 일치한다. 캡틴 아메리카에게 한국은 에이지 오브 팍스아메리카나의 산실인 것이다.[3]

이번 G7 정상 회담에선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총재가 화상으로 함께했다. WB와 IMF는 분명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상징하는 국제 기구들이다. 한국은 IMF와는 악연이다. 1998년 외환 위기의 지옥도가 생생하기 때문이다.[4] 이렇게 한국은 탈식민화 뿐만 아니라 세계화에도 성공한 드문 사례다. 한국은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 국가들과 달리 금융 개방에도 성공했다. 비록 반강제적이었지만 말이다. 이번 G7은 한국 입장에선 감계무량한 일이었다. IMF한테 구제 금융을 구걸하던 나라가 이젠 IMF총재와 세계 질서를 논의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나라가 가해자인 일본과 같은 테이블에서 국제 정세를 논하게 된 것이다. 제국화됐던 일본은 아시아에서 결코 리더가 될 수 없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모디 총리는 삼엄한 자국 코로나 상황 탓에 화상으로만 참석했다. 여러모로 여전히 금융 개방을 지연시키면서 제국화되고 있는 중국과 대비된다. 아시아에서 한국은 제국화된 적도 가해자인 적도 없이 강국이 된 유일한 국가다. 세계사적으론 저마다 죄인들인 G7에게 한국은 존재만으로도 기적이고 상징이다. 

워싱턴에서 한국을 G10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맨 처음 한 사람은 커트 캠벨이다. 커트 캠벨은 아시아 차르라고 불린다. 오바마 정부의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로 대아시아 전략을 총괄하면서 붙은 별명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NSC 인도태평양조정관으로 중용했다. 커트 캠벨의 아내는 연방준비제도 이사인 라엘 블레이너드다. 블레이너드는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재무부 장관 후보로도 거론됐었다. 커트 캠벨은 여러모로 바이든 정부에 ‘인싸’란 말이다. 커트 캠벨은 대표적인 대중 강경파다. 캠벨은 지난 1월 12일에 《포린어페어》에 미국은 어떻게 아시아 질서를 강화할 수 있나”라는 제목의 공동 기고문을 발표했다. 《포린어페어》 기고문은 사실상 바이든 정부 대중 정책의 밑그림이 됐다. 기고문에서 캠벨은 두 개의 아시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는 정치 안보적 아시아와 경제 무역적 아시아라는 이중 구조를 띄고 있다는 얘기다. 캠벨은 미국 외교가 서유럽과 아시아의 이런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안보와 경제의 이해관계가 불일치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그래서 캠벨은 군사적으론 미국과 일본과 인도와 호주로 이뤄진 쿼드 체제로 아시아의 나토를 만들어서 대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경제적으론 한국을 호주와 인도를 더한 G10에 포함시켜서 아시아의 EU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포린어페어》에서 밝힌 커트 캠벨의 구상은 거의 고스란히 바이든 정부의 대아시아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 지나 3월엔 쿼드 회담을 열었다. 그리고 이번 G7 정상 회담에선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을 주빈으로 초청했다. 두 개의 아시아를 대표하는 나라로서 한국을 조금이라도 미국 쪽으로 끌어당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G7 코뮤니케에 서명하지 않았다. 반면에 별도의 열린 사회 성명에는 서명했다. G7 코뮤니케에는 중국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이 담겼다. 임기 말 대북 평화 협상 재개를 추진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선 무척 예민할 수밖에 없는 북한에 대한 CVIA 촉구까지 담겼다.[5] 지난 5월 5일 열린 G7 외교장관 회담 공동 성명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 포기를 뜻한다. 그나마 CVID보단 한 톤 다운된 표현이다.[6]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핵 해체 말이다. CVID가 반강제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다면 CVIA는 그나마 좀 자발적인 느낌이다. G7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성과는 바로 이것이다. 미국과 G7이 캠벨의 표현처럼 두 개의 한국을 인정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의 힘으로 한국의 입장을 그들이 고려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단 얘기다.

그렇지만 함정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명한 열린 사회 성명은 오늘날 자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라면 거부할 수도 거부해서도 안 되는 내용이다. 인권 보호, 민주주의 신장, 성 평등 실현, 법치주의 확립, 무역 다자주의 같은 내용들이다. 잘 살펴보면 결국 G7 코뮤니케에서 예민한 주어와 목적어만 뺀 내용들이다. 중국의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미국 중심의 자유 민주주의 세계 질서에 서명은 안 했지만 동의는 했다고 볼 수 있단 말이다. 커트 캠벨은 《포린어페어》 기고문에서 “동맹보단 연합을 추구해야 한다”고 썼다. 1차적 포섭 대상은 한국이다. 좁은 반중 군사 동맹으로 맞서기보단 넓은 정치 경제 연합을 만들어서 두 개의 한국을 포획한다는 전략이다. 미국 중심 질서의 아웃라이어로서 한국의 위상이 부각되고 두 개의 아시아 대변자로 한국의 입장이 고려된 이번 G7은 그 1단계다.

 

중국의 전랑외교와 러시아의 꽃놀이패 

©Mark Schiefelbein-Pool/Getty Images
“G7은 사이비 다자주의다.” G7에 대한 중국의 시각은 영국 주재 중국 대사관의 논평으로 요약된다. 중국은 지난 6월 12일 주영 중국 대사의 논평을 통해서 이렇게 말했다. “몇몇 국가들이 전 세계적 결정을 내리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소수 집단과 정치 블록의 이익을 위한 다자주의는 사이비다. G7은 패배자들의 연맹에 불과하다.” 중국 국내에선 G7을 조롱하는 패러디물이 만발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최후의 G7으로 바꾼 그림이나 중국이란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들이 시샘하는 사진이 인기였다. 중국 특유의 전랑외교다.[7]
 
7월 1일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 대륙에선 그 어느 때보다 애국주의가 거세게 창궐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과 중국 인민까지 상하가 모두 일치단결하는 분위기다. 급기야 중국은 반외국 제재법까지 통과시켰다. 3조가 핵심이다. “외국 정부가 중국 공민과 조직에 차별적 제한 조치를 취하거나 내정을 간섭하면 중국 정부는 이에 상응하는 보복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 중국도 칼을 갈고 있다.

동시에 인접국이자 G8 국가인 한국에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6월 9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미국에 치우치지 말라”고 경고했다. 왕이 부장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은 냉전적 사유로 가득 차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은 편향된 장단에 휩쓸리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정의용 장관과 왕이 부장의 통화는 한국 측의 요구로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G7 정상 회담 전에 중국 측과 입장을 조율하기 위한 자리였다. 통화 분위기는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중국이 한국을 대놓고 압박하는 모양새였다. 최소한 겉으론 두 개의 한국을 인정해 주며 사활을 열어 주는 G7과는 대조적이다. 푸싱과 넛징의 차이다. 권위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체제의 차이다.

사실 베이징이 예의주시한 건 G7도 한국도 아니었다. 러시아였다. 바이든 캡틴 아메리카는 G7에선 중국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어벤져스를 결성했다. 14일 나토 정상 회의에선 중국을 구조적 도전이라고 규정하며 군단을 구축했다. 냉전 시대 이후 나토의 주적은 늘 러시아였다. 그런데 유럽이 국경조차 맞대지 않은 중국을 위협으로 간주하게 만든 것이다. 동시에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는 미국과 EU 무역기술위원회 신설에 합의했다. 인공지능이나 바이오 같은 21세기 무역과 기술의 규칙을 미국과 EU가 함께 쓰겠단 말이다. 텐센트나 바이두 같은 중국의 빅테크 기업의 이해 관계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한국과 인도를 포함한 G7과는 영혼을 나눴고 EU와는 이해를 나누었으니 사실상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연환계는 거의 완성된 셈이다. 남은 문제가 러시아였다. 베이징이 모스크바를 숨죽이며 지켜본 이유다.

중국과 러시아는 겉보기엔 끈끈해 보인다.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경제 의존도 역시 상당하다. 권위주의 국가로서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것도 이심전심이다. 정작 속내는 좀 복잡하다. 러시아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1969년엔 국경 분쟁도 있었다. 시베리아는 지금도 중국이 탐내는 지역이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는 사실상 중앙아시아의 지역 패권을 놓고는 서로 경쟁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중국의 일대일로는 미국의 세계 패권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지역 패권도 위협하는 기획이다. 그래서 러시아는 중국을 언제든 배신할 수 있다. 중국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배알이 꼬이는 걸 참으면서도 푸틴 대통령과 스위스에서 독대한 이유다. 중국 봉쇄의 마지막 카드인 러시아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한마디로 미중 패권 경쟁에서 러시아가 중립을 지켜 주면 푸틴 체제를 용인해 주겠다는 의미였다. 바이든이 푸틴과 만난 것부터가 사실상 푸틴 독재를 인정해 준 꼴이다. 자칫 자유 민주주의 대 독재 권위주의라는 구도마저 깨질 수 있는 도박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러시아를 묶어 놓지 않으면 중국을 상대할 수 없다. 과거 나폴레옹도 히틀러도 같은 딜레마에 빠졌었다. 제갈공명도 북벌에 나설 때 먼저 정벌한 곳이 남쪽의 맹획이었다. 《워싱턴포스트》에 출사표를 올린 바이든의 중원 정벌도 결국 러시아가 결정적인 변수다.

중국도 약한 고리가 러시아라는 걸 잘 알고 있다. G7은 조롱하고 한국한텐 윽박지른 베이징도 미러 정상 회담에 관해서만큼은 달랐다. 중국 외교부의 자오리젠 대변인조차 지난 6월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단결은 산처럼 강하고 우정은 견고해서 깨뜨릴 수 없다.” 자오리젠은 중국의 대표적인 전랑외교관이다. 입이 걸기론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런데도 중러 관계에 관해선 이 정도까지 깍듯한 표현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거꾸로 읽힌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세계가 국제 외교 무대다. 깨뜨릴 수 없다는 단언은 제발 깨뜨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다. 중국 관영 언론들도 미국과 러시아의 만남을 노심초사 경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미러 정상 회담을 강대국 회담이라고 정의한 점에 주목했다. 러시아를 격상시켜서 중국을 견제하려는 속셈이란 해석이다.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순방의 최대 하이라이트가 미러 정상 회담이었던 이유다. 바이든이 푸틴을 상대로 얼마나 분명하게 중국과의 선을 그어 놓느냐에 향후 미중 패권 경쟁의 향방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바이든의 러시아 견제는 실패한 듯 보인다. 바이든이 아무리 푸틴을 맞상대해 줘도 푸틴의 양아치짓은 멈출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우크라이나는 이미 유럽의 화약고로 변해 가는 분위기다.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일대에 괴로국을 세워 놓고 있다. 15만 명의 병력까지 집결시켜서 군사적 긴장감을 높이고 있는 분위기다. 여기엔 외부 전쟁으로 자국 내 국가 애국주의를 강화해서 나발리 민주화 운동을 위축시키려는 푸틴의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 푸틴은 지금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나토 정상 회의에서 나토 헌장 제5조는 신성한 의무라고 확인했다. 한 나라가 공격 다하면 다른 동맹국이 자동으로 군사적 개입을 한다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헌장 5조를 사실상 무시했다. 바이든이 5조를 언급했다는 건 사실상 크림 반도와 흑해 일대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럴 경우 푸틴과 정상 회담에서 그어 놓은 선은 여지 없이 무너질 수 있다. 동시에 러시아 견제를 통한 중국 봉쇄 계획도 실패로 돌아간다. 반대로 크림 반도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면 애써 만든 유럽과의 연환계가 깨지게 된다. 

이쯤되면 바이든 대통령이 CNN 기자한테 역정을 낸 것도 이해가 된다. 참을 인자 백번 쓰면서 푸틴과 애써 건설적인 대화를 하고 돌아왔는데 미국 국내 언론이 대통령한테 삿대질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언론에 사과했지만 이렇게 토를 달았다. “좋은 기자가 되려면 비관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삶에 비관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는 당신들이 내게 긍정적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누군가를 신뢰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의 이해 관계를 알아내야 한다. 나는 누구도 무작정 믿지 않는다.”


진짜 예정된 전쟁 
백악관은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유럽 순방으로 힘겹게 구축한 연환계가 흔들리기 전에 미중 정상 회담을 갖으려고 한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6월 17일 브리핑에서 10월 말 이탈리아에서 열릴 G20 정상 회담에서 미중 정상이 만날 수 있다고 암시했다. 6월 16일 미러 정상 회담이 끝나고 하루도 안 지난 상황이었다. 미국 외교가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는 걸 보여 준다. 지금 시간에 쫓기고 있는 쪽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이미 G7 정상 회담이 끝나자마자 유럽 정상들 사이에선 딴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확실하게 말하지만 G7은 반중 클럽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중국이 구조적 도전이라는 나토의 성명은 과장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G7에서 의장국이었던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마저 “신냉전은 안된다”고 한발 뺐다. 독일의 최대 교역국은 여전히 중국이다.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10년 동안 1000억 파운드 넘게 투자를 받기로 약속받은 상태다. 1000억 파운드면 한화로 160조 원이 넘는다. 두 개의 아시아만 있는 게 아니란 얘기다. 두 개의 유럽도 있다. 《뉴스위크》 편집장을 지낸 파리드 자카리아는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미국 외교는 돌아왔다. 그런데 미국은 돌아왔나?”

반면에 중국은 상대적으로 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커트 캠벨과 함께 《포린어페어》에 공동 기고를 한 부르킹스 연구소의 중국 전문가 러시 도시는 ‘미국의 국제 질서를 대체하기 위한 중국의 대전략’이라는 긴 부제가 달린 책을 썼다. 여기서 러시 도시는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게 된 빌미를 미국이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와 2016년 트럼트 당선으로 미국 자본주의와 미국 민주주의가 허점을 드러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러시 도시가 쓴 저서의 원제는 이렇다. “《Long Game》.” 러시 도시는 NSC의 중국 담당 국장으로 바이든 행정부에 합류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중 정상 회담을 서두르는 배경이다. 워싱턴은 이미 장기전은 베이징한테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미국은 숏게임을 원한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전략엔 아직도 모호한 부분이 있다. 미국이 과거 미소 냉전 체제처럼 미국과 중국의 지속적 교착 상태를 원하는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전술적 목표는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겠지만 전략적 목표는 모호하다. 시간이 중국 편인 상황에서 지속적인 교착 상태는 미국한테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레이건 행정부가 소련과 군비 경쟁을 벌였던 것처럼 소모적 제로섬 게임을 벌이기엔 미국도 예전 같지가 않다. 중국을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중국이 스스로 변하기를 기대해야만 한다. 그건 더 난망한 노릇이다. 바이든은 민주주의과 권위주의로 미중 패권 경쟁의 구도를 전환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한국이 기꺼이 동참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다만 미국이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려 한다면 문제가 된다. 이미 아시아는 홍콩이나 미얀마처럼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마찰 지점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미국이 수성이 아니라 공성을 추구한다면 이른바 민주주의 동맹국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진다. 자국의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과 타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6월 19일 성킴 대북특별대표가 서울을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순방길에서 돌아오자마자 워싱턴에선 대북특별대표가 득달같이 방한한 것이다. 바이든의 외교 시계가 얼마나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성킴은 지난 한미 정상 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소개한 한반도의 대미 창구다. 북한은 미국의 대중 포위망 가운데 또 하나의 약한 고리일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체제 안정과 경제 개방을 모두 원한다. 핵무기는 두 가지 모두를 얻기 위한 지렛대다. 만일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의 합의점을 찾아낸다면 중국과의 체스게임에서 한 수쯤 앞서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말 업적과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 북한은 신의 한수가 될 수도 있다. 반면에 중국은 이제까지처럼 한국측에 하반기 시진핑 방한을 회유책으로 던질 공산이 크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해서 시진핑이 한국을 방한하는 건 의미가 크다. 그렇지만 이제까지처럼 희망 고문에 그칠 가능성이 더 높다.

“미국도 대화와 대결에 모두 준비돼 있다.” 성킴 미국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6월 21일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끝내고 던진 메시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시지에 라임을 맞춘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G7 정상 회담이 끝난 시점과 성킴 방한 시점에 딱 맞춘 지난 6월 17일 메시지를 하나 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였다. “대화에도 대결에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외교에선 내용보다도 뉘앙스가 중요하다. 북미가 오랜만에 서로 같은 말을 한 것이다. 자연히 대결보단 대화에 방점이 찍힌다. 그동안 북미간 대화는 2018년 6월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 회담 이후 사실상 단절돼 있었다. 마침 지금은 싱가포르 정상 회담이 3주년을 맞이하는 시기다. 북미 대화를 재개하기에도 시점상 아귀가 맞는다. 한반도에 다시 한번 평화 공존의 찬스가 왔다. 문재인 데탕트다.

분명한 건 G7 정상 회담으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무역 전쟁에서 외교 전쟁으로 국면이 전환됐다는 사실이다. 두 개의 아시아로 살아가야 하는 숙명인 한국 입장에선 무역 전쟁보단 외교 전쟁이 훨씬 유리하다. 혹시 모를 진짜 전쟁에 대비할 시간을 벌 수 있다. 금융 전쟁과 군사 전쟁이다. 지금 중국으론 글로벌 핫머니들이 몰려들고 있다. 중국 역시 코로나 경제 회복을 위해 돈 풀기에 나선 상황이다. 중국의 증시와 부동산은 모두 과열 상태다. 중국의 공공 부채는 한계 상황에 달한 지 오래다. 중국은 더 이상 제조업 강국이 아니다.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퍼센트 남짓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구조적 저성장 상태에 빠져 있다. 한국의 오포세대나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닮은꼴인 중국의 당평세대가 등장한 배경이다.

외교 전쟁 다음엔 금융 전쟁이 예정된 전쟁이란 현실 인식은 시진핑을 상대하는 바이든의 히든카드가 될 수 있다. 중국 정부 역시 미국과 유럽의 금융 자본들이 중국 경제의 약한 고리를 공격할 수 있다고 두려워한다. 금융 전쟁이다. 20세기에 21세기에 걸쳐서 벌어진 군사 전쟁에서 미국은 그닥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반면에 달러 패권을 앞세운 금융 전쟁에선 거의 완승을 거둬왔다. 중국이 그토록 위안화를 기축 통화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유다. 금융 안보를 위해서다. 일대일로의 진짜 목표는 어쩌면 위안화 공용권을 만들기 위해서다. 외교 전쟁이 금융 전쟁으로 확전되면 그것이야말로 중국에겐 헬게이트가 될 수도 있다. 권위주의로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하나 있다. 아직 미중 전쟁의 본게임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제 겨우 서막이 올랐을 뿐이다. 이게 진짜 “What the hell”이다. 
[1]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의 두 주인공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저는 서로 적대적 관계지만 동시에 2차 대전에서 함께 싸운 전우다. 정의로운 캡틴 아메리카도 전우 윈터 솔저 앞에선 늘 약해진다.
[2]
디즈니 영화 〈어벤져스 : 인피니티워〉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유럽의 신 토르와 아프리카의 왕 블랙펜서와 함께 어벤져스 연합을 만들어서 우주제국 타노스 군단과 맞선다.
[3]
〈어벤져스〉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서울에서 주요 액션 장면을 촬영했다.
[4]
외환 위기 20주년인 2018년에 개봉한 유아인과 김혜수가 주연한 한국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선 프랑스 유명 배우 뱅상 카셀이 당시 IMF 총재 캉드쉬를 연기했다. 당시 캉드쉬는 한국 경제의 저승사자로 통했다.
[5]
CVIA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포기(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Abandonment)를 뜻한다.
[6]
CVID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해체(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를 뜻한다. 여기서 'D'는 '비핵화(Denuclearization)' 혹은 '폐기(Dismantlement)' 두 가지 의미 모두로 쓰인다.
[7]
전랑외교(戰狼外交)란 늑대 외교라는 뜻으로 중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공격적인 외교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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