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실리콘밸리에 살고 싶은 건 아니다. 우리는 전국에 더 역동적인 사업 거점을 건설하게 되길 바란다.” 알파벳·구글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루스 포랏이 2018년 기술 콘퍼런스에서 했던
말입니다. 그가 밝힌 비전은 3년이 지난 현재 뉴욕에서 차근차근 실현되고 있습니다. 포랏은 지난 9월 21일 구글이 기존에 임대해 사용하고 있던 세인트존스 터미널 건물을 21억 달러(2조 4800억 원)에 매입한다고 자사 블로그에
공지했습니다. 2023년 개장을 목표로 진행 중인 확장 공사가 마무리되면, 이 빌딩은 캘리포니아 이외 지역에서 가장 큰 구글 사무실로 거듭납니다.
글로벌 부동산 데이터 제공 업체 리얼캐피털애널리틱스에 따르면, 한화로 2조 원이 훌쩍 넘는 이번 매입가는 코로나19 판데믹 이후 미국에서 성사된 단일 빌딩 거래 가운데 가장 높은
금액입니다. 건물 면적도 130만 제곱피트(3만 6500평)로 대형인데요, 이로써 구글은 ‘허드슨 스퀘어’ 구축에 마침표를 찍게 됐습니다. 허드슨 스퀘어는 구글이 뉴욕 맨해튼 허드슨강 일대에 조성하는 대규모 근무 단지로, 그 크기가 170만 제곱피트(4만 7775평)에 달합니다. 이는 축구장 20개를 더한 것보다 넓은 것으로 이 일대는 명실상부 구글의 제2 본사로 기능하게 될 예정입니다.
올해 들어 뉴욕시는 늘어가는 빈 사무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올 1분기 맨해튼 지역의 사무실 공실률이 16.3퍼센트로, 199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로
나타났습니다. 구글 역시 8월 말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을 감안해 직원들의 사무실 복귀를 내년 1월 10일까지 미루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제 재택근무가 일상으로 자리 잡은 많은 기업의 경영진이 여전히 오프라인으로의 복귀를 고심하는 가운데, 구글은 왜 뉴욕에 사무 공간을 확장하는 걸까요. 또 새로운 사업 거점에는 어떤 기대를 걸고 있을까요.
실리콘밸리 엑소더스
구글은 페이스북, 애플 등과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지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는 글로벌 IT 기업들의 성지이자 기술 혁신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인근에 스탠퍼드대와 UC 버클리 등 명문 학군이 있어 전 세계 인재가 모이는 곳으로도 유명하죠. 그야말로 IT 산업의 대명사입니다. 그런데 최근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직장인과 기업이 크게 늘면서 탈 실리콘밸리가 하나의 트렌드로 읽히고
있습니다. 재택근무하는 개인은 살인적인 수준의 집값과 물가로 악명 높은 샌프란시스코 생활을 감내할 필요가 없어졌고, 판데믹으로 경영 환경이 복잡해진 기업 입장에서는 세금 등 각종 규제가 강한 캘리포니아를 고집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휴렛 팩커드 엔터프라이즈(이하 HPE)의
본사 이전 계획 발표는 탈 실리콘밸리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됐습니다. 1938년 윌리엄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허름한 차고에서 창업한 이래로 HPE는 공동 창업, 차고 창업(garage startup) 등 지금의 실리콘밸리 문화를 만든 원조로 인식돼 왔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시기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도 반기업적인 캘리포니아주 정책을 비판하며 텍사스주로
이사했습니다. 1995년 처음 실리콘밸리에 터를 잡아 25년간 사업을 이어 오며 오늘날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의 상징성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작년 한 해 캘리포니아주를 떠나 이사간 주민만 20만 명이 넘어 미국에서 가장 큰 이탈을
보였습니다.
실리콘밸리 엑소더스
[1] 행렬에 반사 이익을 누리며 새롭게 부상한 지역은 텍사스주 오스틴 지역입니다. HPE 외에도 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 등 굴지의 기업이 잇따라 오스틴으로 본사를 옮겼고, 애플도 새로운 캠퍼스 설립지로 이 지역을 택하면서
실리콘힐스(Silicon Hills)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였습니다. 텍사스는 땅값이 싸고 캘리포니아와 달리 개인의 주 소득세가 없어 직원 선호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20개 넘는 대학이 위치한 영향으로 대졸자 비중이 높고, 낮은 법인세 등 세제 혜택이 제공돼 기업 운영 측면에서도 유리한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실리콘힐스에 감도는 위기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