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의 인종차별
완결

팬데믹 시대의 인종차별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팬데믹을 겪고 있는 사회의 차별은 다른 문제였다.

2020년 6월, 나는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런던 북부에서 열린 ‘흑인들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시위에 참석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시위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내 아내의 친구들이 알려준 시위였다. 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참석한 인원은 1000명이 훨씬 넘었는데, 평소에 친분이 있는 이들 외에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음향 시스템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연단에서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블랙팬서(Black Panther, 흑표범단)들처럼 주먹 하나를 든 채로 8분 동안 그 자세를 유지했다. 8분은 데릭 쇼번이 자신의 무릎으로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누르고 있었던 시간이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박수를 치고 이야기를 나눈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도시에는 여전히 봉쇄 조치가 내려져 있었다. 나는 그 시위를 누가 소집했는지 알지 못한다. 시위는 그냥 열렸고, 그렇게 끝이 났다.

당시를 전후로 해서 많은 기관이 성명을 발표했고, 논평들이 이어졌으며, 소셜미디어의 아바타가 바뀌었고, 박물관들은 소장품을 점검했으며, 노동당이 우세한 지역의 시청사에는 분노가 넘쳤고, 학교들은 커리큘럼을 개정했으며, 유명인들의 동상이 쓰러졌다.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목록은 하룻밤 사이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안내서와 백인 의식에 대한 탐구서들로 가득 찼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다. 온라인을 통해 유명해진 동영상 한 편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을 만들어냈고,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졌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움직임에 감염되진 않았지만, 모두가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이 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이 모든 일들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마치 불이 붙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기름처럼, 때를 기다리고 있던 인종차별 반대주의 유권자들을 폭발시켰다. 그들이 인종차별이라는 주제에 관해서 관심은 아주 많았지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는지, 아니면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에 의하여 주저하던 마음이 열정적인 감정으로 바뀐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들은 들고 일어나보니 서로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그날 우리가 런던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전혀 새로운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는데, 인종차별 반대 운동은 새롭게 느껴졌다.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겪는 인종차별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으며, 그들의 생생한 경험은 여전히 존재한다. 리서치 기업인 유가브(YouGov)가 같은 달에 영국에 있는 소수 인종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중 4분의 1은 인종차별적인 괴롭힘을 수 차례 당했으며, 거의 절반은 경력 개발에 있어서도 인종이 영향을 끼쳤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종 그룹 간에 상당한 차이가 보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응답자 모두가 인종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미국에서는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되는 장면이 거의 실시간으로 노출되면서 충격을 주었지만, 관련 뉴스가 충격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미국에서 경찰에 의해 살해되는 흑인의 수는 지난 5년 동안 거의 변함이 없었다. 미국으로부터 관심의 초점을 옮겨 영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을 살펴봐도, 불평등은 특별히 새로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우리는 영국에서 일어나는 뭔가 새로운 인종차별에 대해 항의했던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차별의 본질에 대해 저항했다. 유가브가 6월에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백인이 아닌 사람 중에서 사회적으로 30년 전에 인종차별이 존재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과 오늘날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사실상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전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는 특정 단체가 주도한 것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활동을 해왔던 단체들은 이러한 새로운 분위기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번 시위는 그 단체들이 만들어낸 흐름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마치 물 위를 떠다니는 부표 아래에 모이는 것처럼 ‘흑인들의 생명은 중요하다’ 시위에 참석했다. 공식 사무실이나 담당자도 없었다. 해당 이름을 정식으로 내건 그룹들이 몇 개 있긴 했지만, 참가자가 수십 명을 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 그룹들은 모두 각자의 주위에서 발생한 에너지를 흡수해서,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모두 규모가 작고, 다양하다. 또, 대부분은 신생 그룹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이번 시위에는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만들어낼 수 있는 대표적인 주체는 없었다. 그러나 시위 당시 영국에서 인종차별과 관련된 요구사항은 결코 적지 않았다. 이전에도 이미 형사법 제도 내에서의 인종차별에 대해 살펴본 2017년의 래미 보고서나, 직장 내에서의 인종 문제를 살펴본 2017년의 맥그리거-스미스 보고서, 학교에서의 정학 처분에 대해 살펴본 2019년의 팀슨 보고서 등이 있었다. 모두 정부가 의뢰하여 진행된 프로젝트였지만, 해당 보고서들에서 제시한 핵심적인 권고사항들은 현재까지 그 어느 것도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번의 거대한 시위를 일으킨 문제들이나 그것을 풀어내기 위해 제시된 해결책들도 역시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18년 전 인종차별주의자에게 살해당한 스티븐 로렌스는 만약 살아 있었다면 이 시위가 일어났을 때 45살이었을 것이다. 또, 이 시위 직전 3년 동안 윈드러시 스캔들, 그렌펠 타워 화재 사건 등이 있었다. 그러나 변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 많은 문제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절실한 깨달음만 있었다.

이번의 시위와 관련해서 긍정적인 면을 살펴보자면, 적어도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를 시작하기 위한 대중의 지지가 충분하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회는 실질적인 지지를 충분히 하지 않았으며, 정치인들이 이 오래된 인종적 불평등을 해결하도록 할 만한 제도 또한 없었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은 거의 없었다. 그러한 서사의 흐름을 바꾸고,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끊임없이 왜곡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백인이 아닌 사람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써야만 할 것이다.

1. 소수인종에게 더 위험했던 코로나19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영국에서 인종차별로 인한 악영향이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가 시체 안치소와 병원의 침상에 쌓여가고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해져서 무감각해진 구조적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코로나19로 처음 사망한 의사들 10명은 모두 백인이 아니었다. 영국의사협회(BMA)의 차안드 나그파울 협회장은 지난해 4월 초에 이렇게 말했다.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봐도, 이런 현상이 무작위로 일어났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건 반드시 시정되어야 합니다. 정부가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정부는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불평등은 더욱 두드러졌다. 잉글랜드에서는 다른 모든 요인을 고려했을 때, 흑인과 아시아계 사람들 사이의 사망률이 백인 그룹보다 2.5배에서 4.3배 정도 높았다.

소수 인종이 스스로 불균형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흑인과 아시아계 사람들은 백인들에 비해서 궁핍한 지역의 과밀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실업률은 더 높고, 더 가난하며, 소득은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그들이 팬데믹 기간에도 일하러 나가야만 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다세대가 모인 가정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더 크고, 자가격리를 효율적으로 할 여건이 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또한 간호 업무, 요양원 근무, 택시 운전, 보안, 배송 등 많은 사람과 접촉해야 하는 유형의 직업에 종사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인종적 불평등과 계급적 불평등이 어떻게 서로 맞물려 작용하는가? 소수 인종은 전염병에 더 취약하다. 그 까닭은 그들의 피부가 검은색이나 갈색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더 가난하기 때문이었다. 영국 통계청(ONS)의 데이터에 의하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궁핍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코로나19에 감염된 이후에 사망할 가능성이 두 배 정도 더 높다고 한다.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다수는 백인이지만, 그러한 높은 사망률에 기여하는 이들은 백인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균형적으로 가난한 이유는, 그들이 흑인이거나 황인종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종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회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은 처참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었다. ‘흑인들의 생명은 중요하다’ 운동을 통해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국민적 의식이 높아진 바로 그 시기, 우리는 인종차별이 어떻게 코로나19 상황을 이용해서 작동하는지를 분명히 목격했다. 비록 소수에 불과하긴 하더라도,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실제로 폭언을 하거나 때로는 무차별 욕설 세례를 퍼붓는 경우들이 있었다. 하지만 소수 인종들을 코로나19에 일부러 감염시켰다는 증거는 없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 불균형적으로 인종차별적인 경험을 했던 이유는, 단지 운이 나빠서 나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앓게 되는 확률이 더 높은 진짜 이유는 사람들의 상스러운 행동이나, 무례한 태도, 그릇된 의식, 조잡한 욕설, 형편없는 교육 때문이 아니었다. 그런 행동들이 분명히 있었지만, 인종차별에 더 힘을 실어주는 것은 바로 인종차별이 가진 시스템적인 특성이다.

인종차별은 역사를 거치면서 전해져 내려왔고, 우리의 다양한 제도 안에 인이 박여 정치와 경제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이는 더 악화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유지되고 있다. 어떤 의도적인 움직임에 의해서가 아니다. 우리의 수동적인 태도가 인종차별을 유지한다. 윈드러시 스캔들을 예로 들어보자. 2012년에 보수당 연립정부는 이민자들에게 적대적인 정책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오랫동안 영국에서 살아온 카리브해 지역 출신 주민들을 덫에 빠트리려는 의도로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대인들과 고용주들, 그리고 복지기관들이 일종의 국경수비대가 되어 사람들의 시민권증이나 취업비자를 확인하게끔 요구하는 정책들은 몇몇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이 불법 이민자가 아님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안겼다.

마이클 브라스웨이트는 15년 동안 런던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일해 왔다. 그런데 새롭게 구성된 인사 담당 부서는 그가 영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거주증(BRP)이나 여권 중에서 하나를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제출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영국 시민이었고, 그런 신분증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인사 담당 직원, 교장, 노조 대표가 참석한 회의에 소환되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거주증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일자리를 잃을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해심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혼란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일을 정말 훌륭히 잘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교육기준청(OFSTED)은 브라스웨이트가 가르치던 학교를 훌륭한 곳이라고 평가했다. 그곳에 다니는 거의 절반의 학생들에게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었다. 그리고 학교는 흑인 역사의 달을 자랑스럽게 기념하고 있다.

결국 그는 해고되었다. 나는 감히 말하건대, 그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언젠가 한 번쯤은 인종차별과 관련한 감수성 훈련을 받았을 것이며, 다른 곳에서는 백인이 아닌 동료들이나 학부모들과 건전하며 예의 바른 관계를 유지해왔을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심지어 흑인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흑인이나 이민자들을 적대적으로 대한 것이 아니다. 적대적이었던 것은 바로 시스템이었다. 그들은 그저 그러한 체제에 순응했을 뿐이다. 나 역시 인종 및 인종차별과 관련하여 유료 강연을 해달라는 초청을 자주 받는 편인데, 강연료를 받기 전에 여권을 먼저 제시해달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백인이 아닌 사람들을 코로나19에 더욱 취약한 환경으로 내몰았으며, 살아남기 어렵게 만든 시스템이다.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된 잔악한 사건과 비교하자면, 코로나19가 드러내는 사회적 불평등은 주로 소소한 부분들이었다. 그것은 익숙하고 흔히 겪을 수 있는 불평등이었으며, 여기에 관료주의가 결탁한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한 개인의 사망보다는 덜 극적이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2020년 6월 12일 런던에서 열린 ‘흑인들의 생명은 중요하다’ 집회 ©Photograph: Alberto Pezzali/AP

2. 흑인 인권 시위가 남긴 것

영국은 ‘흑인들의 생명은 중요하다’ 이후에도 이러한 결론에 전혀 도달하지 못했다. 시위로 인해 정치 관련 교육들이 진행되었지만 제한적이었다. 시위로 인해 반인종주의 정서가 폭넓게 표출되었지만, 그 깊이는 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충분한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자 역동성이 생겨났다. 백인이 아닌 사람들은 스스로가 목격하고 경험했던 인종차별에 대담하게 도전하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백인들의 의식도 높아져서 이러한 문제들이 시급하며 절실하다는 것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에 대한 근거는 개인적인 경험들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상 거의 모든 사람은 일터에서 이와 관련된 주제로 회의하거나 교류하는 자리를 가졌는데, 그들은 이런 만남이 어쨌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활동들 일부가 상당히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생산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몇몇 동료들은 자신들이 느끼는 바에 대하여 솔직히 이야기했던 반면, 어떤 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변화가 필요한 모든 사안에 자신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마 생애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한편, 내 이메일의 받은 편지함에는 산업조직이나 직원단체, 노동조합 등에서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이야기 해달라는 초대장이 가득했다. 물론 나의 친구들의 경험이나 내 받은 편지함 속 이메일들이 이런 현실을 먼발치에서나마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례들은 최소한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자료를 살펴보면, 영국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들이 있었다. 입소스 모리(Ipsos MORI)가 2021년 5월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의 절반 이상은 우리가 인종차별에 대처하기 위하여 더욱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인종차별에 대한 대응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13퍼센트에 불과했다. 같은 해 8월에는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이 무릎을 꿇는 행동이 인종차별 해결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절반을 훌쩍 넘겼는데, 3월에는 그 수치가 겨우 4분의 1을 넘는 수준이었다. UEFA 유로 2020 결승전이 끝난 이후에 실시된 유가브의 또 다른 여론조사를 보면, 그전까지 축구에서는 인종차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가운데 3분의 1은 이제 축구에서 인종차별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러한 진전에도 상당한 저항이 있었다. ‘흑인들의 생명은 중요하다’ 시위는 충분히 예견되었듯이 미디어에 의해 호도되고 왜곡되었던 반면, 시스템적 인종차별에 관한 내용들은 아예 보도되지 않거나, 보도되더라도 잘못 전달되었고, 설명조차 되지 않았다. 이러한 시스템적 인종차별이나 식민주의의 잔재에 대한 논의가 낯선 사람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다. 마치 차량추격전 장면이 한창 전개되는 영화관에 들어가서, 등장인물이 누구를 왜 쫓고 있는지를 알아내려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상황과 비슷했을 것이다.

흑인 인권 시위의 물결이 있은 후 1년여가 지난 2021년 7월에 입소스 모리가 수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영국인의 3분의 2 이상은 “시스템적 인종차별”과 “제도적 인종차별”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여전히 절반은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기 직전에 유가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영국인 셋 중 한 명은 대영제국이 뭔가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다섯 중 한 명은 대영제국이 뭔가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1951년 영국 정부가 수행한 사회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거의 5분의 3은 영국 식민지의 이름을 하나도 대지 못했다. 이와 관련하여 언젠가 조지 오웰은 이렇게 썼다. “민족주의자는 자신의 편이 저지른 잔혹행위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이야기조차 듣지 못하는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훨씬 더 적극적인 적대감도 있다. 팬데믹 첫해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인종차별적 증오 범죄가 12퍼센트 증가하면서, 지난 5년 동안의 급격한 증가 추세를 이어갔다. 각종 동상 주변에서 네오 나치 시위가 벌어지고, 국가대표 선수들이 무릎을 꿇으면 야유가 쏟아졌다. 또, 내셔널 트러스트 관리위원회를 장악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동원되었는데, 이는 이 재단이 관리하는 자산 목록에서 식민시대 및 노예제도의 유산이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방해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모든 일들은 적대적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에 너무 놀라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면, 어딘가에는 반드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인종차별에 대한 싸움을 벌일 때면,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반격하리라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더욱 강경해지고 있지만,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2020년 6월에 시위대에 의해 철거되어 브리스톨 항구에 버려졌다가 회수된 노예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의 조각상 ©Photograph: Ben Birchall/PA


3. 무력한 정치

이러한 여론 변화가 지속 가능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인종차별은 그 자체로 내성이 강한 바이러스여서, 그것이 숙주로 삼고 있는 정치적 통일체 안에서 적응하고, 새롭고 더욱 강력한 변종을 만들어낸다. 물론, 만약 지금과 같은 여론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상당한 성과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도 법률과 관행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럴 경우 제도 개선은 반발과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문화를 바꾸고 미래의 정책 변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동성 결혼의 사례처럼, 거대한 댐이 무너질 수도 있다. 이것은 사람들의 마음이나 법률 가운데 어느 하나를 바꾸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그 두 가지는 공생관계이다. 그러니 어느 하나를 관계없다고 무시해버리고 다른 하나를 가장 중요하다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만약 반인종차별주의의 잠재력이 지금 이 순간 명확하게 보인다면, 그것이 가진 불안정한 요소도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흑인들의 생명은 중요하다’ 시위의 영향으로 발생한, 코로나19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주목 받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시민들 중에는 이러한 변화를 원하는 확실한 정치적 지지층이 존재하지만, 정작 의회는 이에 대한 정치적 의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 시위가 일어났을 때, 노동당은 전국적 차원에서 인종차별을 규탄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고수했지만, 인종차별 철폐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이렇게 답답한 모습을 보인 노동당에 대해 그 어떠한 문제 제기도 없었다. 아마도 노동당은 반인종차별주의라는 의제를 계급적 연대의 프레임 안에 포함할만한 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 혹은, 영국의 역사에는 위대한 업적도 있지만 잔학한 행위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할 만한 능력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인종차별주의 세력이 집결할 때면, 심지어 평화롭게 시위를 벌일 때도, 노동당의 지도부는 백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게 될까 우려하여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가 전형적이다. 오히려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의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스타머보다도 더욱 나은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해당 사안에 대해서 더욱 많은 리스크를 감수했다. 그는 잉글랜드 대표선수들이 무릎을 꿇는 걸 지지했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했다. 실제로 노동당은 코로나19가 구조적인 인종 불평등을 드러내 보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시위에 대해서는 상반되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일관성 있는 계획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보수당 정부는, 비록 납득하기는 더 어렵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결과 중에 인종적으로 심각한 요소들은 없다고 주장하는, 좀 더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드러내는 증거들이 있고, 보여주는 증거들이 있고, 그것은 심지어 정부의 자체적인 보고서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그럴 때면 정부는 인종들 사이에 보이는 불일치를 확실하게 설명할 방법은 없지만, 그것이 구조적인 인종차별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정부 측 사람들은 인종 문제보다는 주거나 일자리와 같은 요소들이 더욱 두드러졌으며, 연령과 같은 항목에서 그 차이가 더욱 크게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정부가 그들 자신이 만든 보고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구조적인 인종차별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인종 불평등에 대한 거의 모든 연구는 이미 연령을 비롯한 다른 여러 요소가 반영되어있다. 그리고 정부는 소수자 집단의 사람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 더 위험한 일자리나 주거 환경에 집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마치 순전히 우연의 일치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인종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라는 것들이 이처럼 엉성한 추론들과 부적절한 내용들에 대한 강조, 독설적인 메시지와 궤변들이다. 이러한 대응들이 영국 역사상 인종적으로 다양성이 가장 높은 내각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그러한 상징적인 대표성이 가진 한계를 보여줄 뿐이었다. 대부분의 진보 진영의 사람들처럼, 달라 보이는 조직에 초점을 맞추면서 행동에는 변화가 없다면 결국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정치인들과 사진이나 찍을 기회뿐인 경우가 많다. 미국의 정치활동가인 안젤라 데이비스는 언젠가 내게 이러한 유형의 다양성을 두고 “차이를 가져오지 못하는 차이,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변화”라고 설명했다. 

나이지리아 혈통으로 영국에서 태어난 여성인 케미 베이드녹 평등 부장관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녀는 두 명의 젊은 흑인 여성 저널리스트들을 공개적으로 공격했는데, 한 명은 자신에게 직설적인 질문들을 던졌다는 이유였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썼다는 이유였다. 《스펙터》 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레니 에도-로지의 《내가 더 이상 백인들과 인종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 와 같은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한탄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그리고 사실 일부 작가들과 비판적 인종 이론의 지지자들은 정말로 사회가 분열되는 걸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말 분열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그저 잘못된 믿음에서 나온 발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은 악의적이며 정치적인 발언이었다. 불과 몇 달 전 시위가 발생한 이후, 에도-로지의 책은 영국의 도서판매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흑인 작가로서는 처음 해낸 일이었다. 베이드녹은 단지 그런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책이 인기가 많다는 점을 개탄했다.

이것은 정부가 얼마나 둔감한지, 그리고 특히 베이드녹이 대중적인 정서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례에 불과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스월 보고서이다. ‘흑인들의 생명은 중요하다’ 이후 인종과 민족들 사이의 차이를 조사하기 위하여 백인이 아닌 사람들로 구성된 위원회의 대표를 맡은 토니 스월 박사가 주도하여 작성한 이 보고서에는 “인종차별의 단편적인 증거”들을 찾아냈을 뿐이며, “영국에서는 더 이상 인종적 소수집단에 불리하도록 고의로 조작된 시스템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형편없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학술적인 가치도 없는 이 보고서는 국가 차원의 인종 관련 논의에 대하여 우파 진영의 신뢰할 만한 주장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관련 문헌을 제대로 참고하지도 않았으며 실무자들은 전문성이 부족했다. 시위에 대한 일관성 있는 대응을 끌어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핵심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보고서의 목적 자체가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스월은 이미 제도적 인종차별의 존재를 경시했던 전력이 있으며, 위원회 자체를 자신의 이념적인 성향에 맞는 인사들로 구성했다. 언론을 상대로 엄청난 홍보가 이루어졌지만, 소용없었다. 그들은 영국이 인종 관련 사안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백인이 아닌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이나 심지어 대다수 백인의 인식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71퍼센트의 사람들은 스월 보고서에 대해서 전혀 들어본 적 없거나 거의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 가운데에서는 겨우 4분의 1만이 보고서에 대해서 우호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 보고서는 처음부터 비난받았고, 그 다음에는 조롱받았으며, 결국엔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 그것은 영국의 인종 관련 논의에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고 무시되었다. 그들의 주장과는 반대되는 증거들이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고서가 작성되기 이전부터 이미 그러한 견해를 확고히 고수했던 사람들만 들춰볼 뿐이었다.
 

2021년 7월, 유로 2020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에게 패한 잉글랜드 대표팀의 부카요 사카 선수를 위로하고 있는 개러스 사우스 감독 ©Photograph: Carl Recine/Reuters


4. 우발적 사건을 넘어 지속 가능한 전략으로

지금, 이 순간의 긴급성과 명확성을 어떻게 활용하여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에 관한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다시 우리를 1년여 전 런던 북부의 그날로 데려간다. 그 자리에서는 그 누구도 우리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 시위에 나온 그 사람들을 다시 소집할 방법은 없다. 시위의 효과는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강력했지만, 그것은 휘발되었다.

사회 운동에서 어떤 체계나 두드러지는 지도부가 없다는 것은 나름의 장점이 있다. 빠르게 행동할 수 있고, 이전까지는 소외되었던 새롭고 젊은 (여성) 리더들이 등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운영의 민주성, 명확한 방향성, 일관성, 지속성이 결여될 수도 있다.

미국은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전미도시연맹(National Urban League), 역사적흑인대학(HCBU), 아프리카감리교감독교회(AME) 등 흑인들의 주도로 설립된 오래된 기관들이 존재한다. 그들 모두 나름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당장의 역동성을 양육하고, 배양하고, 유지할 수 있다. 영국에는 그런 오래된 조직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활동성의 차원에서 보자면, 이런 조직의 부재는 단지 반인종차별주의 운동이나 ‘흑인들의 삶은 중요하다’ 시위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월가 점령 시위부터 #미투 운동에 이르기까지 현대적이며 진보적인 사회 운동의 본질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한 운동들은 많은 사람을 동원하고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정치적 담론을 변화시켰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대안적인 시각을 내놓았다. 그것은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과들을, 그 시위에 참석한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고 있다. 몇 차례의 파고가 휩쓸고 지나간 이후, 우리는 또 다른 계기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우리는 구조적 불평등과 불공평의 문제들이 만들어내는 사건들에 좌우되고 있을 뿐이다.

조직의 체계를 갖춘 기관들은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각각의 사건들에 일일이 흔들리지 않고, 그들 자신만의 관점에서 일관성 있는 전략을 정교하게 가다듬을 수 있다. 영국에서는 인종차별에 대한 논쟁보다 오히려 인종과 관련한 온갖 불평불만들에 더욱 열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언론계의 인사나 정치인이 뭔가 비난받을만한 말을 하면 격렬한 항의를 받게 되고, 이러한 항의에 대한 또 다른 항의가 발생한다. ‘각성’이나 ‘문화전쟁’과 같은 용어들이, 원래 가졌던 의미들을 박탈당한 채, 마치 색종이 가루처럼 이리저리 흩뿌려진다.

작가 토니 모리슨은 1975년에 이렇게 말했다. “인종차별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들이 일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것은 당신들에게 몇 번이고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당신들에게 적절한 언어가 없으며,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려면 20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당신들의 두뇌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과학자들로 하여금 그러한 주장에 관해 연구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당신들에게 예술이라는 게 없다고 할 것이며, 당신들은 그들의 말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된다. 이런 모든 것들은 불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궤변이 생겨날 것이다.”

최근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서식스 공작부인 메건에 대한 공격, 유로 2020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한 선수들에 대한 공격, 요크셔의 크리켓 클럽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스월 보고서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례 모두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모두 심각하며 중요한 사건들이다. 각각의 사건들은 더 큰 함의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해진 의제가 없다면 우리는 결국 피어스 모건이 말하는 내용이나, 영국 왕실 안에서의 피부색 차별에 대한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드러난 불평등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포괄적이면서도 일관성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 그저 우연히 발생할 사건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드러나고 심화한 인종적 차이에 대하여 조사를 수행하도록 정부에게 지속해서 요구해야 한다. 정부가 당연히 그렇게 하리라고 예상해서는 안 된다. 또, 그 조사가 합리적으로, 선의에 의해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노동당에 많은 걸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당분간 집권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고, 불의에 저항하기보다는 그들 스스로 싸우는 것에 더욱더 적극적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구조적인 변화를 향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곳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스티브 맥퀸 ©Photograph: Steve Bisgrove/Rex/Shutterstock

5. 결국, 당사자의 이야기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압력을 어디로 향하게 해서 그 힘을 어떻게 가하느냐 하는 것이다. 본지 《가디언》은 2018년부터 영국 시민들이 국외 추방의 위협을 받고, 주거, 건강, 취업,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빼앗긴 사례들을 보도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일들이 결국 몇 달 뒤에 윈드러시 스캔들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해당 장관이 해임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스스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밝혀내고 정식 조사에 착수해야 하는 치욕을 겪었다. 하지만 그러한 압박이 사라지자, 그에 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그러나 검사인 웬디 윌리엄스가 주도하는 공식 조사는 계속되었다. 전국의 여러 도시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나는 브리스톨의 어느 교회에서 개최된 공청회에 참석했는데, 그곳에서는 주민들이 각자의 경험을 공유했다.

한 남성은 자메이카에서 아기였을 때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운전면허를 신청했지만, 그가 영국인임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이와 관련하여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역구 의원에게 연락했는데, 그곳에서는 이것이 이민 관련 문제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한 번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 저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말입니다.” 역시 자메이카 출신으로 13살에 건너온 남성은 영국에서 50년 동안 살았으며, 이곳에 증손자들도 있었다. 한때 정신건강이 악화하면서, 그는 구치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다. 나중에 혐의가 취하되긴 했지만, 수감 전력 때문에 시민권 신청이 거부되었다.

윌리엄스 검사는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중요한 권고사항들을 첨부했다. 우리는 현재 그러한 권고사항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지켜보고 있다. 윈드러시 스캔들로 인한 피해자들 가운데 지금까지 겨우 5퍼센트만이 보상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방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을 잊지 않고 계속 교훈 삼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내무부만 빼놓고 우리가 모두 함께 이 문제를 조사를 다시 시작하자고 말이다. 각 정당과 상관없이 잉글랜드 전역에서 다양한 이슈에 대해 주제를 정해서 공청회를 개최할 수 있다. 이런 공청회에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실무자들이 참석하여 문제점을 제시하고, 공청회장의 문호를 개방하여 모든 사람이 증언하도록 할 수도 있다.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에서도 그들만의 역학관계가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제안이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브리스톨의 교육 문제에 관한 공청회에서는, 그 지역 주민인 데이비드 올루소가가 교육 커리큘럼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는지를 짧게 발언했다. 지역 교사 한 명은 자신의 교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어려움들에 관해서 이야기했으며, 육성회원인 학부모 한 명도 자기 경험을 들려주었다. 그다음 방청석에서도 각자가 경험했던 것과 바라는 바에 대해서 발언이 이어졌다. 이런 방식의 조사는 레스터, 버밍엄, 맨체스터, 리즈, 리버풀, 브래드퍼드, 올덤, 런던, 루튼 등의 도시에서도 개최될 수 있을 것이고, 각각의 자리에서는 건강, 치안, 예술, 청소년, 범죄, 주거, 이민, 취업 등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공청회의 성격은 시민의회와 진실화해위원회 사이의 어딘가에 해당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증거들을 수집한 다음, 참석자들의 요구사항과 관심사들이 반영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사의 목표는 세 가지가 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지역적 차원에서 인종적 불이익을 해소하는 데 있어서 효과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는 것이고, 가능하다면 사람들이 직접 주도권을 갖고 조직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존의 비인간적인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결과들로 강조점을 옮기면서 경청하고, 발언하고, 증언하고, 진술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시스템적 인종차별과 맞서는 데 있어서의 도전과제, 해결책, 장애물에 대하여 대중들의 폭넓은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세간의 이목이 집중시키고 많은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행사를 개최한다면, 도움을 받을만한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 스티브 맥퀸 감독이 그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행사의 사회는 샬린 화이트나 사미라 아메드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레니 에도-로지나 네스린 말릭, 사트남 상게라가 그 과정을 글로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브리스톨에서 열린 윈드러시 스캔들 공청회가 끝난 이후에 나는 이렇게 썼다. “참석자들의 익명성을 보장할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 공청회는 텔레비전으로 방송되었어야 한다. 악의적인 이민 정책이 사람들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는지를 좀 더 완전하게 이해하려면, 이런 영국인들의 솔직한 증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작 공청회를 봐야 하지만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텔레비전으로 방송되었어야 한다. 그들은 이민자들을 가족도 없고, 야망도 없으며, 개인적인 사정도 없는 정체불명의 위협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와 인종차별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자는 이러한 계획에도 많은 위험 요소들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아무도 참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최악은,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이나 방해꾼들,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현장에 나타나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거나, 지루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 만약 공청회가 효과적으로 진행된다면, 그것을 약화하려는 노력이 강도 높게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위험은, 우리에게 그런 공청회가 필요하다는 바로 그 이유 안에 존재한다. 그런 일을 주도할 수 있는 기관들이 없으므로, 우리는 의제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논의하고 누가 참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다투고, 실수를 저지르고, 결국엔 그런 논의의 기회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

수 세기 동안 형성되어 온 어떤 시스템이 단 한 번이나 몇 차례의 이벤트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깊이 뿌리 박혀 있으므로, 많은 이들은 그것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인식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상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하나의 시도가 될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시위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 계획을 세우고 궁극적으로는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기보다는,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논의의 장을 만들어서 그 결과에 따른 조치를 뿌리내리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서로 신중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방식에 의하여 무언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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