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101
11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당연했던 것을 되돌아볼 때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어느 것이 디폴트인가?” 니트족(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NEET)을 ‘회사 놀이’로 돕는 사회적 기업을 인터뷰할 때 던진 질문이다. 직업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지만 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곧 소득이고 생계의 최소한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응당 예상할 수 있는 답변이 돌아오겠지만 머리로 이해시켜주길 바랐다.

두 공동 대표는 다른 답을 냈지만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일하지 않는 상태’가 언제든 불시에 찾아올 수 있으며, 노동에 자신의 가치를 종속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 분은 노동 가치가 줄어들고 인간의 노동력이 대체될 미래를 상상하며 일에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환경이나 사회를 알아가는 어떤 사회적인 활동”이 그것이다.

답을 듣고 나서야 앞선 질문의 핵심을 알아챘다. 삶의 주권이었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소득을 통해 노동에 종속된다. 저자는 본문에서 케이트 맥팔런드의 말을 인용해 일자리가 본질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내비친다. 요컨대 우리는 생계를 위한 소득의 필요성을 애써 노동의 가치로 치환하고 있다.

그 과정에 자율성과 주권이 개입하기란 쉽지 않다. 많은 일이 경제적 가치로 계량화되고 생산성이 낮지만 사회를 가치 있게 만드는 활동은 직업에서 제외된다. 자연스레 돈 잘 버는 일이 곧 성공이라는 인식에 짓눌린다. 노동과 소득의 연결 고리를 끊을 수 있다면 어떨까? 인류가 공헌하고 쌓아온 산물을 함께 누리며 가치 있는 활동을 해나갈 수 있다면 어떨까?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노동에 빼앗긴 우리의 시간 주권을 상기시킨다. 나태할 권리도 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 익숙한 현대인의 금서다. 자연을 수탈하고 남을 짓밟으며 끝없는 성장을 향해 달리는 것은 과연 ‘디폴트’인가? 성장주의 속에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것을 되돌아볼 때 그 여정 위에서 기본소득을 만날 것이다.

기본소득은 흔히 터무니없는 포퓰리즘이나 좌파 정책 같아 보이기도, 선별 복지 문법을 거스르는 비효율적 정책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필요했다. 시중에 엄청나게 많은 기본소득 책 중에서도 읽는 이를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납득시킬 수 있는 책이. 기본소득에 대한 오독을 샅샅이 파헤치고 한국에의 적용에 천착했다. 미래 사회를 준비할 대안을 고민한다면 이 책을 자신 있게 권한다.

이현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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