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가둔 병
1화

프롤로그 ; 치료가 앗아간 것들

코로나19로 인한 국내 첫 사망자는 청도대남병원에 입원한 정신 질환자였다. 사망자는 20년 동안 정신 병원의 폐쇄 병동에 격리돼 있었고, 사망 당시 몸무게는 47킬로그램이었다. 청도대남병원의 환자들은 침대가 없는 온돌방에서 예닐곱 명이 매트리스를 깔고 함께 생활했다. 2015년 중동 호흡기 증후군(MERS) 유행 이후 일반 의료 시설의 기준이 강화됐으나 정신 의료 기관은 예외였다. 그 때문에 정신 병동은 열악한 치료 환경을 유지했다. 그 결과 청도대남병원 5층 정신 병동에 입원한 103명의 환자 모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안전한 치료 환경을 누릴 신체 질환자의 당연한 권리는 정신 질환자에게는 없었다.

2021년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지하철 탑승 시위를 벌여 왔다. 방송사는 시위 현장과 이들의 요구를 일제히 보도했다. 급기야 여당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는 공영 방송에서 맞짱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공적 이슈가 됐다. 그러나 정신 질환자의 상황은 다르다. 정신 장애인은 UN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 CRPD)을 통해 동등한 장애인으로 권리를 보장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권리 요구는커녕 자신의 정신적 장애를 드러내는 것조차 어렵다.

환자로서도, 장애인으로서도 권리가 부재한 정신 질환자이지만 사회적으로 주목 받을 때도 있다.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 2018년 발생했던 강북삼성병원 정신 건강의학과 의사 살인 사건 등 흉악 범죄와 관련될 때다. 2020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정신 질환자의 범죄는 전체 범죄의 0.6퍼센트에 불과하다. 미국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 NIH)에서도 “대다수 조현병 환자의 폭력 가해 위험성은 적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신 질환자 = 예비 범죄자’라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고, 이들을 병원에 감금하라는 목소리가 당연한 듯 떠돈다.

정신 질환자는 누구인가?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밝히는 공황 장애에서부터 우울, ADHD, 알코올 중독, 그리고 불치병으로 여겨지는 조현병까지,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모두 정신 질환자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연구소의 《2021년 정신건강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신 질환 평생 유병률은 27.8퍼센트다. 전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평생 동안 한 번 이상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 건강보호심사평가원의 《2019년 건강보험 통계 연보》에 따르면, 정신 및 행동 장애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335만 명이다. 암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 380만 명과 큰 차이가 없다. 더군다나 코로나19로 인해 국민들의 정신 건강이 전반적으로 나빠졌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에게서 우울 위험이 나타났으며, 자살을 생각하는 비율도 9.7퍼센트에서 최고 16.3퍼센트까지 높아졌다.[1] 더 이상 정신 질환은 특정 소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의 이해도는 매우 낮다. 몇몇은 여전히 귀신이 들렸다고 여겨 굿을 하거나 기도를 하는 등, 종교적 방법을 빌리려 한다. 정신 질환을 생각조차 못한 채 나약함과 게으름을 탓하며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혹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정신 질환자임을 스스로 인정하기 싫어 외면해 버리기도 한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도 정신 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22퍼센트에 그친다. 정신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호소하지만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힘들게 정신과라는 높은 문턱을 넘어 의사의 진단과 처방이 내려지면 공식적인 정신 질환자가 된다. 그때야 자신이 나약했던 게 아니라 아팠던 것임을 알게 된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찾는 게 당연하듯, 정신적 어려움 역시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정신과 약물은 불면, 우울과 같은 증상을 조절하면서 안정적인 일상생활을 돕는다. 약물은 분명 환자의 증상 조절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국가 정책의 흐름도 약물에만 의존한다. 정신 질환을 ‘뇌의 질병’으로 인식하는 데 급급해 회복보다는 치료 중심의 접근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적인 정신 건강 정책의 흐름은 조금 다르다. 국제적 기준은 치료를 넘어 회복 패러다임을 강조하고 있다. 정신 질환이 약을 통해 완전히 치료될 수 있다면 왜 10년 이상 퇴원하지 못하는 장기 입원 환자들이 있는지, 신체장애인과 비교해 취업률은 왜 3분의 1에 그치는지, 자살률은 왜 일반인의 네 배 가까운 수치를 보이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20여 년간 조울병을 앓아온 《한겨레》의 이주현 기자는 뇌를 조절하는 약물은 시작일 뿐, 끝이 아님을 강조한다.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에서 나아가 인생의 의미를 찾는 치유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2]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 WHO)에서 제시하는 회복 패러다임은 증상 너머의 삶의 회복이다. 정신과 약을 꾸준히 챙겨 먹고 전문가와 상담을 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삶이 여전히 폐쇄 병동에 입원한 환자의 삶과 다르지 않다면 이는 회복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회복은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 관계, 건강, 목표, 주거, 여가 등이 각자의 방식으로 구축되는 과정이다. 이는 전문가의 치료나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회복에 필요한 것은 삶의 대안이다. 서구 국가들은 정신 질환으로 인한 장애에 대해서도 주거, 고용, 교육, 문화 예술 등에서 신체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갖도록 보장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신체장애인이 일을 하는데 필요한 휠체어, 엘리베이터, 활동 지원사 등의 편의를 제공하듯, 정신 장애인에 대해서도 안전한 근무 환경, 유연한 업무 조정, 필요시 상담 연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더 이상 세상은 신체장애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정신적 장애 역시 나약함이나 무능함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 어려움을 가진 개인이 정신적 어려움을 가지고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정신 질환에 대한 논의가 더 이상 개인의 나약함으로 귀결되거나 개인적 문제에 머물러서는 안 됨을, 치료를 넘어 사회적 지원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정신 질환을 사회적 맥락에서 다시금 논의하고자 하는 시도다.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한 번은 경험하는 정신 질환의 현재를 살피고, 그럼에도 열악한 정신 건강 서비스의 열악한 현실을 조명한다. 이후 정신과 치료의 희망과 한계, 그리고 그 속에서 정신 질환 당사자들이 내왔던 목소리를 살핀다. 마지막으로는 개인을 넘어선 사회적 변화와 권리 보장 제도를 분석한다.

‘정신건강복지혁신연대’는 정신적 어려움을 가진 이들의 건강과 회복,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다. 이 책은 그간 혁신연대에서 논의한 내용을 정리한 결과물이다. 20여 년 이상을 정신 질환자와 함께 일해 왔지만 쉽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주제다. 책을 집필하는 동안에도 세상과 사회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이제껏 내부자의 고민에만 그쳤던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격리와 치료만으로 사회는 정신 질환과 더불어 살아갈 수 없다. 이 책이 오늘도 스스로를 탓하며, 오늘도 치열한 삶을 혼자 살아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1]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2021년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 2021년, 11쪽.
[2]
이주현,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한겨레출판, 2021, 181-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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