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청년 세대
2화

청년, 자본주의가 유기한 부품

4. 노오력 담론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한편, 2016년경 중국 청년 세대의 새로운 문화로 떠오른 것이 ‘상문화(喪文化)’였다. 중국어로 ‘상(喪)’은 ‘낙담하다’, ‘실의에 빠지다’라는 뜻이 있으며 일종의 패배주의, 상실감, 비관주의를 상징하는 단어이다. 이러한 문화는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삶의 목표와 희망을 잃고 이에 좌절한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었으며, 주로 피곤하고 무기력한 모습의 이미지를 온라인에서 공유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이는 당시 중국 공산당이 내건 공식 슬로건인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강대국으로의 부상’을 얘기하는 중국몽(中國夢)과 대조되는 젊은 세대의 좌절을 드러내는 것이었다[1].

이어서 2020년경부터 온라인 플랫폼인 웨이신, 신랑왕, 소후닷컴 등에서 ‘내권’이라는 표현이 대거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주요 키워드로 등장했다. 원래 내권(involution)은 중국 경제사의 자본주의 이행 논쟁에서 주로 거론된 학술 용어로, 중국의 전통 경제가 질적 발전 없이 양적 증가만 지속하여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실패했다는 개념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최근 2년 사이 중국 온라인상에서 유행한 ‘내권’은 그 학술적 용어의 엄밀한 개념적 사용에서 벗어나 중국 청년 노동의 무한 경쟁 상황, 경쟁의 백열화(白熱化)를 뜻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국의 명문대인 베이징대학교, 칭화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이 ‘쥐안(卷, 말려들다)’인데 이는 경쟁 때문에 자신들의 체력과 지력이 소모되고 낭비되는 현상을 뜻했다. 언어가 사회상의 반영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2020년 상반기부터 코로나19 판데믹 상황 때문에 엄격한 방역 조치와 격리로 경제가 침체하자 각종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실업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후 중국에서 코로나19 상황이 효과적으로 통제된 이후 사회 질서는 회복됐지만 그 영향으로 수많은 중소기업은 활력이 줄어들었으며, 고용 인원이 감소한 반면 업무 강도는 높아져서 관련 직종 내부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대학 졸업생의 취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류학자인 샹뱌오(項飆)는 현재 중국의 이와 같은 경쟁 과잉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내권의 개념을 빌려 온다. 중국 경제사 논쟁에서의 내권은 과도한 생산 요소(노동력)의 투입으로 과밀해진 상태에서의 경쟁의 결핍을 뜻하는 경제적 용어지만, 최근에는 경쟁의 과열화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인다. 최근의 내권 담론은 젊은 세대의 사회 비판과 불만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데 두 가지 지점에서 살펴보면, 하나는 투입의 지속적인 증가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막다른 길목에 다다른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몰라 멈추지 못하고 계속 그 경쟁에 매달려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존의 내권 개념이 농업 사회의 반복적이고 경쟁이 부재하며 농경 사회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적 국면을 조명하며 ‘고수준 균형의 함정’을 의미한다면, 현재의 내권 담론은 팽이식 순환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다그치고 동원해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고수준의 동태적인 함정’이라는 것이다[2].

최근 중국의 이러한 내권 담론은 중국의 체제가 어떤 혁신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동시대 한국의 청년 담론에서 회자되는 ‘헬조선’이나 ‘노오오오력’ 담론과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최근 몇 년간 과로 사회에 관한 논의가 지속됐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표현은 2019년 봄 무렵의 ‘996’ 담론이다. ‘996’이란 주로 중국의 IT 기업에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주일에 6일씩 일하는 과잉 노동 문화를 일컫는다. 이 외에도 숫자를 사용해 중국의 과로 사회를 풍자하는 사례가 많다. 811648(8116+8이란 뜻으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을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11시에 퇴근하며, 일요일에도 8시간 추가 근무를 한다는 의미), 007(0시부터 익일 0시까지 매주 7일 근무하는 휴식 없는 상태) 등 암호와도 같은 풍자들이 중국 온라인에서 유행했다. 

특히 많은 IT 업계 노동자들이 이런 과잉 노동 문화에 대해 온라인상에서 풍자와 항의를 이어갔다. 알리바바의 마윈이 “젊었을 때 996을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느냐, 996을 할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다”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졌을 때 이에 폭발한 중국의 IT 노동자들은 세계 최대 규모의 코드 공유 플랫폼인 깃허브(Github)에 ‘996.ICU’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들은 이 사이트를 통해 996 노동을 계속하다가는 병을 얻어 중환자실에 갈 뿐이라고 항의하고, 중국의 노동법 조항을 사이트 첫 화면에 적어 넣어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법을 준수하도록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5. 중국 저층 청년들의 노동


막다른 길목에 이르러 과잉 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IT 노동자나 화이트칼라 계층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층이 주로 신분이나 경제적 의미에서 아래층에 속하는 집단을 의미한다면, 저층은 ‘subaltern’의 번역어로 쓰이기도 하고, 경제적, 문화적, 권력적 자원에서 밀려나 있는 최하층의 집단을 뜻하기도 한다. 농촌 출신의 이러한 젊은 저층 노동자들도 여러 형태의 과잉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은 마오쩌둥 시기에 사회주의적 시초 축적을 위해 도농 이원 구조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특유의 이원적 노동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과 달리 중국의 청년 세대 노동자들을 가르는 분할선은 두 가지가 교차하여 그어진다. 하나는 사회주의 시기에 만들어진 호구제다. 호구제는 도시 호구를 가진 사람은 도시에, 농촌 호구를 가진 사람은 농촌에서 거주하도록 원칙적으로 강제함으로써 도시와 농촌을 명확하게 구획하는 신분 제도다. 또 다른 하나는 개혁 개방, 특히 중국이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적극적으로 탑승한 1990년대 이후 형성된 자본 대 노동이라는 계급 구별이다. 바로 이 호구제와 자본 대 노동이라는 계급 구별 가운데에 위치한 이들이 중국의 젊은 신세대 농민공이다. 이들은 농촌 호구를 가지고 있기에 도시 시민으로서의 제도적인 복지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농민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 도시에서 돈을 번 이후 다시 귀농하는 1세대 농민공과 달리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 농업에 종사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베이징 ‘노동자의 집(工友之家)’의 연구 활동가 뤼투(呂途)는 그런 의미에서 이들을 기존의 국유 기업 노동자들과 구분하는 의미에서 농민공이 아니라 ‘신노동자(新工人)’로 호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노동자들 가운데 최근 10년간 가장 큰 이슈가 된 이들이 바로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 광둥 지역의 폭스콘 노동자들과 그 인근의 싼허(三和) 청년들이다[3].

2010년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 제품의 최종 제조 업체인 폭스콘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연쇄 투신 자살 사건이 일어났다. 2010년 1년간 18명의 노동자가 자살을 시도했고 이 중 14명이 사망하고 4명이 심각한 상해를 입었는데, 이들은 모두 17세에서 25세까지의 젊은 신세대 농민공이었다. 이러한 연쇄 자살 사건의 원인 중 하나는 이 신노동자들의 막막한 ‘퇴로 없음’ 심리로 여겨졌다. 이들은 폭스콘 공장에서 자본과 국가의 결탁으로 저임금과 장시간 과잉 노동, 폭력적인 규율의 강요 등 열악하고 막막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도시에 정착할 집을 구할 수 없고 농촌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종의 ‘퇴로 없음’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노동의 의미는 사라지고 이들 노동자의 심리적·정서적 문제를 악화시키며 막다른 길로 몰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4]

한편, 그나마 안정적인 임금과 숙소가 제공되는 폭스콘의 노동자들은 처지가 낫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명 ‘싼허(三和) 청년’으로 불리는 젊은 날품팔이 농민공의 상황은 그보다 더 열악하다. ‘싼허 청년’이라는 명칭은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있는 싼허 인력 시장과 하이신신(海新信) 인력 시장에서 일용직을 구하는 신세대 농민공을 일컫는 말이다. 싼허 청년들 중에는 심지어 폭스콘 등을 비롯한 광둥 지역의 글로벌 제조 업체에서 일하다가 그곳의 과잉 노동 조건에 질려서 일용직 날품팔이 노동자의 삶을 선택한 이도 있다. 이들은 초저가의 길거리 음식을 먹고 버려졌거나 훔친 싸구려 옷을 입으며 불법 PC방이나 허름한 값싼 여관방을 전전하여 의식주를 해결한다. 돈이 필요하면 배달이나 건설 일용직으로 하루 일하고 그날 번 돈으로 며칠간 멍하니 노는 삶을 살아간다. 

중국의 사회학자 톈펑(田豐)은 싼허 청년 현상을 두고, 중국이 지구화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가치 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형성된 저가 생산 방식 공장의 잔재라고 설명한다. 또한 부분적으로는 중국 경제 성장과 사회 정체 사이의 모순이 청년 세대 집단에 실현된 것으로 파악한다. 심지어 그는 이들을 시대가 유기한 ‘부품’으로 칭하기도 한다. 중국 경제가 스스로 질 높은 발전을 추구하고 선전의 산업이 더 높은 가치 사슬 단계로 올라서며 하이테크 제조업이 성장의 주 동력이 되어 가는데, 이 젊은 농민공들만이 큰 변화 없이 남겨지고 버려졌다는 것이다. 그는 “싼허 청년의 출현은 시대가 저물 때까지 남아 있는 중국 사회의 유산”이라며, “이제 누가 노동력을 값싸게 착취하는 공장에 들어가, 생산 라인에서 언제든 교체될 수 있는 부품이 되려 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5]

 

6. 민족주의적 충돌에서 글로벌 연대로


위에서 살펴봤듯이 최근 중국과 한국의 청년 세대는 온라인에서 서로 강하게 충돌하고 있다. 중국의 샤오펀홍이 자국의 전통과 체제에 대한 팬덤 민족주의에 강하게 물들어 있다면, 한국의 젊은 세대 역시 ‘국뽕’이라는 속어로 불리듯이 K-Pop, K-드라마, K-민주주의 등 이른바 ‘K-문화’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마치 아이돌 팬클럽이 경쟁하듯이 서로의 문화와 체제가 우월하다며 맞붙는 중이다. 하지만 눈을 약간 돌려서 살펴보면, 이들의 사회 경제적 처지는 매우 유사하다. 한국에서 최근 몇 년간 유행한 청년 담론들을 떠올려보자. ‘헬조선’, ‘N포 세대’, ‘노오오오력’, ‘금수저·흙수저’ 등의 담론은 경쟁 과잉과 청년 실업, 불평등, 세습 자본주의로 희망이 없는 한국 사회를 비판해 왔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상문화’, ‘내권’, ‘얼다이(二代: 계급과 권력의 세습을 뜻하는 표현)’, ‘996’ 등의 담론은 한국의 청년 담론과 매우 흡사하다.

심지어 현재 중국과 분단되어 있으면서도 강하게 대립하고 있는 대만에서도 현재 청년 세대를 ‘붕괴 세대(崩世代)’라고 부른다. 이는 빈부 격차의 극대화로 부모와 자녀를 부양할 여력이 없어 젊은 세대가 몰락해 간다는 뜻이다. 1980년 이후 출생한 청년 세대를 다른 말로 ‘딸기족(草莓族)’이라고도 부른다. 재벌이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고위 계층은 세습되는 사회에서, 빈곤에 빠져 사회적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쉽게 물러지는 딸기 같다는 비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대만의 20~24세 실업률은 13퍼센트가 넘는데, 이는 대만 전체 실업률의 세 배가 넘는 수치인 데다 청년들의 산업 재해 위험 노출 정도는 점점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한다[6]. 그래서 대만 청년들은 자국을 사람이 살기 힘들다는 의미에서 ‘귀신섬(鬼島)’이라고 부른다.

결국 중국이나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청년들은 온라인에서 서로 충돌하고 적대하고 있지만, 오히려 동시대의 지구화된 자본주의 속에서 거의 유사한 구조적 위치에 처해 있다. 그렇기에 동아시아 청년 세대는 이를 공통의 문제로 인식하고 서로 간의 편견과 반목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7]. 이미 기후 위기나 에너지 위기, 인종주의, 혐오와 차별, 불평등 등의 의제는 한 나라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며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는 다른 세대보다도 더 긴 미래를 살아갈 청년 세대에게 매우 중요하다. 지금은 편협한 애국이나 소비의 탐닉보다는 서로의 공통성에 주목하고 연대에 나서야 할 때이다.
[1]
Voroneanu, Lorena, 〈Why so Sang? Pessimism in Chinese Youth Culture〉, 2022.
[2]
項飆, 〈人類學家項飆談內卷:一種不允許失敗和退出的競爭〉, 《澎湃新聞》, 2020. 10. 22.
[3]
하남석, 〈시진핑 시기 중국의 청년 노동 담론: 내권(內卷), 당평(躺平), 공동부유〉, 《마르크스주의연구》 18(4), 2021., 21쪽.
[4]
Chan, Jenny, Mark Selden, and Pun Ngai, 《Dying for an iPhone: Apple, Foxconn and the Lives of China’s Workers, Chicago》, Pluto Press, 2020.
[5]
田豐·林凱玄, 《豈不懷歸:三和青年調查》, 海豚出版社, 2020., 271-274쪽
[6]
황이링·까오요우즈(장향미 譯), 《과로의 섬: 죽도록 일하는 사회의 위험에 관하여》, 나름북스, 2021.
[7]
조문영 編, 《문턱의 청년들: 한국과 중국, 마주침의 현장》, 책과함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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