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전쟁이다
완결

이것이 전쟁이다

우리는 전쟁에 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TV를 통해, 신문을 통해 전쟁의 시작부터 폭격의 순간까지 생중계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스는 진짜 전쟁을 보도할 수 없다. 전쟁은 보고 들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2016년 예멘의 사나에 가해졌던 폭격 3주기를 추도하기 위한 꽃들이 놓여 있다. ©Photograph: Mohammed Hamoud/Getty Images
* 이 글에는 전쟁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5년 3월 둘째 주, 나는 예멘의 임시 수도인 아덴(Aden)에 도착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미사일이 도시를 뒤흔들고 있었다. 후티(Houthi) 반군은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Abdrabuh Mansur Hadi) 대통령이 은신해 있던 대통령궁을 폭격했다. 정부군의 탱크들이 주요 도로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3월 23일, 전쟁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외국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과 외교관들은 예멘 최대의 도시인 사나(Sana’a)를 떠났고, 각국의 공관들은 문을 닫고 소속 직원들을 대피시켰다. 정당의 지도자들은 가족을 데리고 이 나라를 떠났다. 나는 그들 중 일부에게 진심으로 작별 인사를 전했다. 전쟁이 임박했음을 감지한 그들이 우리를 내버려 둔 채 도망가는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디 대통령은 3월 25일에 이 나라에서 도망쳤다. 같은 날, 하디를 지지하며 후티 반군에 적대적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조직한 연합군이 공습을 개시했다. 연합군 측에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쿠웨이트, 요르단, 파키스탄, 이집트, 세네갈, 수단, 카타르, 모로코가 포함되어 있었다. 3월 26일 목요일 오전 2시, 아랍 연합군 측의 전투기들이 갑자기 사나의 상공을 가르면서 정말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날 아침 나의 기억에 새겨진 것은 커다란 폭발음이나,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들의 무시무시한 굉음이나, 나의 시야가 미치는 것보다 훨씬 더 먼 곳을 타격하기 위해 날아가는 미사일의 궤적이나, 자라면서 익숙해져 버린 전쟁의 소리가 아니었다. 나의 기억에 새겨진 것은 전쟁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렇게 믿기지 않는 방식으로 일어나는지, 그리고 삶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렇게 단숨에 내전의 상태로, 처참한 굶주림으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으로, 세대 전체가 꿈을 잃어버리는 현실로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충격이었다.

우리는 문명화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모든 도시에서 전기가 끊겼다. 우리는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촛불과 가스등을 켜고 살아간다. 집에 가스가 떨어지면, 가족들은 나무를 베어다가 난로에 불을 지핀다.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은 없다. 매일 아침 아이들과 노인들은 물통을 들고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기부한 물탱크 앞에 줄을 선다. 어디를 보든 가난이 있다. 시민들은 일자리와 생계수단을 잃어버렸고, 너무도 가난해져서 이제 이 전쟁의 의미에 대해 의문조차 갖지 못한다. 여성과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에 있는 폐품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실랑이를 벌인다. 가족들은 모두 밖에서 잠을 잔다. 사람들은 도시 변두리의 형편없는 캠프 시설로 이주했고, 그곳에 방치된 채 버려졌다. 세계는 그들을 잊었다.

이처럼 완전한 참상의 한가운데에서도 또 다른 세상이 생겨났다. 그곳은 거리 여러 개를 걸쳐 시멘트 담장을 두른 신축 빌라들, 먼지 가득한 뒷골목에서 번쩍거리는 화려한 고층 건물들, 여기저기 위치한 쇼핑몰, 새로운 주유소, 환전소, 사립학교와 병원이 들어서 있는 세상이다. 이곳은 모두 약탈당한 세금으로 지어졌다. 이곳은 전쟁으로 새롭게 부자가 된 사람들, 전쟁으로 폭리를 취하는 자들, 암거래 시장의 거물들, 후티 반군의 친인척들, 알리 압둘라 살레(Ali Abdullah Saleh) 전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사는 세상이다. 예멘의 엘리트 계층은 수백만 명을 굶주리게 하고는 그들의 배는 더욱 불리고 있다. 그들이 이 전쟁이 가능한 오래 지속되기를 그토록 바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거대한 폭발음이 밀려오면서 우리 집 창문이 덜덜 떨리고 있다. 사람들의 수면을 방해하며 때로는 그들의 목숨까지도 앗아가는 이러한 폭발 장면은 내가 전쟁의 희생자들에 대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의 배경화면 같은 것이다. 내가 희생된 유족들의 증언을 녹취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이러한 풍경은 변함이 없다.

전쟁의 상흔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과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전쟁을 겪고 그로 인해 고통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쟁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우리는 이 전쟁의 참상이나 우리가 겪은 비극을 잊어선 안 된다. 설령 세계가 이 전쟁의 막을 내리고, 희생자들을 은폐하며 살육자들에게는 보상을 주고 싶어 하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이 증언과 그들의 목소리는 살인자들과 그 뒤의 사냥개들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이것은 망각, 외면, 무관심을 거부하는 기록이다. 이것은 죽어간 모든 영혼과 그들에 대한 기억만 남은 가족들의 안식과 평온을 위한 글이다.
올해 초 사나에 가해진 공습의 여파. ©Photograph: Yahya Arhab/EPA

 

증언 1 ;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들


다음은 예멘 남서쪽의 도시 타이즈(Taiz)에 사는 수마이야 아흐메드 사이드(Sumaiyya Ahmed Saeed)의 증언이다. 2015년 8월 20일 오후 4시 30분, 후티 반군이 아이들을 조준했다. 아이들은 수마이야의 남편인 무하마드 카심 라시드 알-카다미(Muhammad Qasim Rashid al-Khadami)가 타이즈의 알-다보우아 지역에서 운영하는 가게 옆에서 놀고 있었다. 그들의 아이 가운데 우사이드 무하마드 카심 라시드 알-카다미(Usaid Muhammad Qasim Rashid al-Khadami)(8), 라흐마 무하마드 카심 라시드 알-카다미(Rahma Muhammad Qasim Rashid al-Khadami)(6), 에제딘 무하마드 카심 라시드 알-카다미(Ezzedine Muhammad Qasim Rashid al-Khadami)(2), 이렇게 세 명이 죽었다. 수마이야의 시아버지인 아흐메드 알리 아흐메드 알-카다미(Ahmed Ali Ahmed al-Khadami)(50)와 동네의 다른 아이들도 여럿 죽었다.
‘이 도시의 모든 집에는 반드시 끝나야 하는 이야기가 하나씩은 있습니다.’

일주일 전, 저는 아들을 얻었습니다. 저는 죽은 첫째의 이름을 따서 아기에게 우사이드(Usaid)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녀는 불안해 하며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었다.) 저는 우리에게 벌어진 일이 차라리 기억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처음에만 하더라도 우리는 아이들의 기억이 떠올라서 울곤 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서는 그러한 비통함을 각자 달래게 되었습니다. 남편인 무하마드가 정신을 집중하지 못한 채 눈빛이 검게 흐려지는 순간에는 그가 아이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저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이들에 관한 걸 물어도 침묵을 지킬 뿐입니다. 제가 울면 남편은 슬퍼하고 더욱 조용해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 앞에서는 아이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슬픔은 내면에 남겨두고, 마음속에 가두었습니다. 우리 사이에서 자란 고통은 삶의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저는 남편의 삶이 더 힘들어지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잊으려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은 부상을 입은 그의 눈 속에, 그의 의안(義眼)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필자는 그녀에게 남편을 인터뷰했을 당시에 대해서 이야기해 줬다. 그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우는 바람에 녹음을 중단해야 했다고 말이다.) 누군가 저를 찾아올 때면, 저는 언제나 견딜 수 없이 통곡합니다. 제가 누군지 잊을 정도로 말입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마음속에서는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무하마드의 슬픔은 더욱 커져갑니다. 폭격 소리가 들리면, 저는 남편에게 “이번 폭격에서는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포격이 지나가고 나면, 저는 그로 인해 파괴됐을 다른 집을 생각합니다. 널린 사체들과 죽은 아이들과 비통해하는 어머니들을 생각합니다. 그럴 때면 저는 지하실에서 계속 살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폭탄 소리나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을 테니까요. 저는 전쟁 초기에 아기를 잃었는데, 그때가 임신 첫 달이었습니다. 제 아이들은 그 후에 죽었습니다. (그녀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데 제 이야기가 유별난 건 아닙니다. 이번 전쟁에서 자신의 아이를 잃은 수천 명의 여성들은 모두 똑같은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도시의 모든 집에는 반드시 끝내야 하지만 그 누구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씩은 갖고 있습니다. (그녀가 시선을 들어서 먼 곳을 응시한다.) 저는 지쳤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골목이 내려다보이는 이 방에서 지냈습니다. 이 방의 낮은 창문으로 아이들이 꺅꺅거리고 소리치는 게 들립니다. 제 아이의 친구들이 노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삶은 제게 관심 없다는 듯 계속됩니다. 전쟁으로 아이들을 잃고 아이들에 대한 기억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저에게는 관심 없이요. 제가 집안을 정리하고 점심을 차리는 동안 제 아들 우사이드와 제 딸 라흐마가 동네에서 놀던 게 기억납니다. 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자기들이 근처에 있다는 걸 제게 알려주곤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저는 안심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걸 기억해봐야 무슨 소용인가요?

아이들이 죽었다는 걸 생각하면 저는 미칠 것 같습니다. (그녀가 울음을 터뜨린다.) 저희 삼촌과 마지막으로 나눈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저는 당시에 우리가 살았던 지하실에 있었고,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제 주변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런데 삼촌이 제 아들 에제딘을 들어 올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를 밖에 데리고 나가서 신선한 바람 좀 쐬게 하고 오련다.” 그때가 아이들을 보는 마지막 순간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녀가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데 그날따라 저는 가슴이 답답하고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따라 지하실이 왜 이렇게 덥지? 불이 켜져 있는데도 왜 이렇게 어두운 거야?”라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때 남편이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항군이 알-카히라(al-Qahira) 성을 해방시켰어! 세상이 다시 안전해졌으니까, 이제 아이들을 밖에서 놀게 하자고.” 아빠가 하는 말을 듣고 있던 라흐마가 쌍둥이 여동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그 뒤를 따라서 나갔습니다. 제가 그때 왜 아이들을 밖으로 나가게 내버려 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비통하게 흐느낀다.) 그때 무언가가 폭발하면서 지하실의 벽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 주변이 캄캄해졌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치 짐승을 도축할 때 나는 것 같은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남편 무하마드의 소리였습니다.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길거리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녀가 울음을 터트리며 손톱을 물어뜯는다. 그리고 손가락을 펼치더니 가만히 내려다본다.) 저는 다시 남편을 외쳐 불렀습니다. 그의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시체를 보는 그의 얼굴은 핏기가 사라지고 점점 더 창백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제 아이들을 찾아서 마당 주위를 뛰어다녔습니다. 삼촌은 얼굴이 피로 흥건했지만, 그래도 숨을 쉬면서 간신히 무언가를 말하고 계셨습니다. 삼촌은 제 아이들이 있는 곳을 가리켰습니다. 저는 그분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마당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다가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 우사이드와 에제딘을 본 순간, 저는 완전히 통제력을 잃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우사이드는 남동생 에제딘을 공중으로 들어 올려서 날아오르는 것처럼 해주는 헬리콥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미사일이 아이들에게 날아왔다고 합니다. 제 아이들인 우사이드, 에제딘, 라흐마의 시체 곁에는 아이들의 할아버지도 숨을 거둔 채 누워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이들만 보였습니다. 부상을 입고 제 주위에서 도움을 요청하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이들의 곁에 서 있었습니다. 우사이드는 생기 없이 누워 있었고, 라흐마의 등에는 커다란 상처가 있었습니다. 한 노인이 제 앞으로 에제딘의 시체를 옮겼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저의 또 다른 딸인 마와다(Mawadda)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마와다는 미사일이 터졌을 때 쌍둥이 언니인 라흐마와 그 자리에 함께 있었습니다. 라흐마는 마와다의 눈앞에서 공중으로 날아갔습니다.

마와다는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와다는 평생의 소꿉친구였던 자신의 쌍둥이 언니를 잃었습니다. 마와다도 파편 때문에 입은 상처의 부상이 아직 심합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라도 방문하면 아이는 숨어 버립니다. 마와다는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쌍둥이 언니의 이름이 불리는 걸 원치 않습니다. 그리고 동네의 다른 아이들과 놀 때도 누군가 라흐마의 이름을 언급하는 걸 싫어합니다. 마와다는 언니와 함께 공부하던 학교에도 가지 않습니다. 언젠가 하루는 학교에 갔다가 눈물바다가 돼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동묘지에 묻힌 아이들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기억에 의지하여 산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아이들은 기억일 뿐 현실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이들의 사진을 감추었습니다. 제가 그 사진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겁니다. 사진을 보면 제가 울 거고, 그러면 남편도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친구에게서 아이들 사진을 몇 장 얻었고, 지금은 잘 보관해 놓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겁니다. 저는 매일 반군에게 저주를 보냅니다. 그들은 제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갔고, 이제는 꿈에서만 아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저를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냥 혼자 울고 싶습니다.
2021년에 예멘의 한 여성과 손자가 그녀의 죽은 아들이 묻힌 사나의 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Photograph: Yahya Arhab/EPA

 

증언 2 ;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다음은 호데이다(Hodeidah) 서부 지역의 알-쿠타이(al-Qutay) 마을에 사는 아흐마드 압델 하미드 사이프(Ahmad Abdel Hameed Sayf)의 증언이다. 2017년 1월 26일 오후 5시 40분, 아랍 연합군의 비행기가 알-쿠타이 마을에 있는 아흐마드의 형인 파흐미 압델 하미드 사이프(Fahmi Abdel Hameed Sayf)의 집을 공격했다. 파흐미의 아내인 아스마 압델 카데르 야신 샤라프(Asma Abdel Qader Yassin Sharaf)(30)가 죽었고, 그들의 세 아이들인 무하마드 파흐미 압델 하미드 사이프(Muhammad Fahmi Abdel Hameed Sayf)(12), 말라크 파흐미 압델 하미드 사이프(Malak Fahmi Abdel Hameed Sayf)(3), 말라캇 파흐미 압델 하미드 사이프(Malakat Fahmi Abdel Hameed Sayf)(18개월)도 함께 죽었다. 그리고 니스린 핫산 자이드 무하마드(Nisreen Hassan Zayd Muhammad)(10)라는 이름의 소녀와 세 명의 여성, 그리고 그들의 이웃인 압델 카림 압델 하미드(Abdel Kareem Abdel Hameed)의 아이들 가운데 두 명이 죽었다. 파흐미와 아스마의 아들인 아마르 파흐미 압델 하미드 사이프(Ammar Fahmi Abdel Hameed Sayf)(8)는 부상을 당해서 왼쪽 다리가 절단되었다. 이날 공격의 목표물로 알려진 사바폰이라는 이동전화 회사는 피해 가족들에 대한 보상이나 치료비 제공을 거부했다.
‘미사일이 떨어지기 직전의 순간으로 돌아가는 꿈을 꿉니다.’

그것은 차라리 공포영화여야만 했습니다.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배경 음악이나 출연 배우도 없는 영화였습니다. 자체적으로 연출된 몇 초 분량의 그 영화에서 제가 본 유일한 장면은 서쪽에서 날아온 미사일이 우리 형의 집을 타격하는 것이었습니다. 머릿속에서 그 장면을 재생할 때면 언제나 그 순간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빨리 감기를 해서 이후에 제가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때로는 일시 정지를 누른 상태에서 제 기억 속에 세부적인 장면들이 새겨질 때까지 슬로모션으로 재생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영화에 끼어들어 미사일을 멈추고 시간을 정지시키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밤이 되면 말없이 슬픔에 빠져 있는 형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런 형을 위로하려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미사일들을 막을 힘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아니면 바로 그 순간에 우주가 개입해 지진이나 허리케인 등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래서 미사일이 우리의 생명을 앗아가기 전에 공중에서 폭발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 미사일들이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미사일 뒤에는 분명히 어떤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우리 형의 집을 목표물로 설정하고 버튼을 눌러 여자와 아이들을 죽인 악당이 있을 겁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여기 알-쿠타이 마을에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가 침묵에 휩싸인다.) 그냥 가난한 가족들의 집이 흩어져 있고, 수리점과 시장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병영 시설이나 순찰대, 민병대는 물론이고 무기를 가진 남성조차도 없습니다. 이곳에서는 오랫동안 저희들만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는 평화롭게 살아가려 했을 뿐입니다. 그런 마을에 그들은 미사일을 날렸고 내 형제의 가족을 죽였습니다. (그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며칠 뒤에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었는데, 그걸 들으니 미칠 것 같았습니다. 연합군이 형의 집 옆에 설치된 사바폰(SabaFon, 예멘의 통신사)의 안테나를 겨냥하고 미사일을 쐈다는 겁니다. 거짓말쟁이들. 개자식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연합군은 주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를 했어야 합니다. “바보들아 잘 들어, 우리는 쓰잘데기 없는 저 안테나를 날려 버릴 거야.” 그러면 우리는 즉시 아이들을 데리고 사막으로 대피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원래 목표로 설정했던 안테나를 건들지도 못했고, 미사일은 우리 형의 집에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무엇이 저를 얼어붙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의 영화에서와 달리 실제로 저는 멈춰 있었습니다.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한 순간 공포심에 온몸이 사로잡혔습니다. 저는 그대로 얼어붙은 채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습니다. 형은 제 옆에 있었지만, 다른 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형이 그 장면을 보지 못하도록 두 팔로 형을 꽉 끌어안았습니다. 하지만 몸을 돌린 형은 자신의 집이 폭발해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형은 저를 뿌리치려고 발버둥 쳤지만, 저는 오히려 형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고는 그대로 울게 놔두었습니다. 제 품에서 형의 몸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몇몇 친구들이 다가와서 형을 진정시키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을 잘 지켜봐. 내가 가서 살펴볼게.” 저는 형이 자해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담배를 꺼낸다.)

저는 그 집에 가장 먼저 들어간 사람이었고, 혼자였습니다. 지붕이 언제든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본 것은 참상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문제의 현장 한가운데에 서있었지만,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얼마 후에 몇몇 사람들이 도착해서 가구를 비롯한 여러 물건들을 가져갔습니다. 그들은 그 집을 털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그들을 제지하지도 못한 채, 그냥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저는 형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저 불타버린 시체들을, 갈가리 찢긴 시체들을, 절단된 시체들을, 뒤틀린 시체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폭발이 워낙 강력했기에 시체들 중 일부는 집 밖으로까지 날아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곳에서 제가 본 건 이웃 몇 명과 아이 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저의 형수와 어린 아들 무하마드, 두 딸 말라크와 말라캇이 있었습니다. 말라캇의 사체에는 손과 발이 없었습니다.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말라캇! 아가야, 내가 너를 데리고 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아이는 제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말라캇은 그날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촌, 저도 데려가요.” 그래서 저는 말라캇을 가게에 데리고 갔다가 다시 집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그리고 몇 분 뒤에 미사일이 떨어졌습니다. (그가 비통하게 울음을 터뜨린다.) 그날 우리 형의 절규, 공중에서 소리를 내며 형의 집으로 떨어지던 미사일, 피어오르는 연기, 불타버린 시체들. 이런 이미지들 때문에 저는 몇 달 동안이나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미사일이 떨어지기 직전의 순간으로 돌아가는 꿈을 꿉니다. 꿈에서는 제가 언제나 어떻게 해서든 그 참사를 막아냅니다. 저의 형은 아직도 처참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형은 잠을 이룰 수도, 그것을 잊을 수도 없습니다. 그는 다친 아들을 치료할 방법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저도 형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면 당시의 기억이 정신없이 되살아납니다. 저는 형의 아이들과 그의 아내, 그들의 웃음소리, 그들이 만들어내던 시끌벅적함, 우리가 함께 살아온 아름다운 날들을 기억합니다. 연합군들에게, 그리고 그들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자들에게 저주가 내리길. 어느 편이든 예멘 사람들을 죽이는 이들 모두에게 저주가 내리기를. 그들은 모두 그저 살인자입니다.

누가 우리 형에게 말라크와 말라캇, 무하마드, 아스마를 되돌려 줄 수 있습니까? 누가요? 대체 누구입니까?
2022년 2월, 예멘 남성이 후티 반군과 예멘 정부군 사이의 교전에서 박격포로 추정되는 공격으로 죽은 아이의 시체를 옮기고 있다. ©Photograph: Ahmad Al-Basha/AFP/Getty Images

 

증언 3 ; 기억에만 남아 있는 것


다음은 사나 시내의 에라트 함단(Erat Hamdan) 지역에 사는 사바흐 압다 아흐마드 파레(Sabah Abda Ahmad Fare)의 증언이다. 2015년 6월 2일 오후 5시 30분, 아랍 연합군의 비행기들이 사바흐의 집을 공격했다. 사바흐의 딸인 노우라 알리 아흐마드 무하마드 알-카발리(Noura Ali Ahmad Muhammad al-Qabali)(19)와 아들인 슈하브 알리 아흐마드 무하마드 알-카발리(Shuhab Ali Ahmad Muhammad al-Qabali)(5)가 죽었다. 딸의 친구들인 루브나 술탄(Lubna Sultan)과 이쉬라크 알-자이피(Ishraq al-Zaifi)도 목숨을 잃었다. 그녀의 이웃인 카이드 알-아트미(Qaid al-Atmi)의 아이들 중에서도 루다이나 알-아트미(Rudaina al-Atmi), 아미라 알-아트미(Ameera al-Atmi), 압도 알-아트미(Abdo al-Atmi), 아디브 알-아트미(Adeeb al-Atmi), 이렇게 네 명이 죽었다. 연합군은 사바흐의 집을 파괴했다. 이곳은 그녀의 남편인 알리 아흐마드 무하마드 알-카발리(Ali Ahmad Muhammad al-Qabali)가 직접 지은 집이었다.
‘저는 그날 잔해 속에서 더 이상 무엇도 남지 않은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습니다. 제 딸인 노우라의 친구들이 찾아왔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말입니다. 마침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제 딸이 얼마나 기뻐했는지가 기억납니다. 딸은 그 친구들을 몇 달 동안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녀의 환한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저의 유일한 딸이며, 조만간 약혼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보다 이틀 전, 노우라의 숙모가 자신의 아들과 결혼하지 않겠느냐고 물어왔습니다. 노우라는 “생각해 볼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저는 딸아이와 친구들에게 얼마간의 자유 시간을 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노우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루브나에게 가 있을게. 만약 비가 올 것 같으면 동생 슈하브더러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렴.”

오후 4시 15분, 머리 위로 비행기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자발 누쿰(Jabal Nuqum)이나 에라트 함단(Erat Hamdan)을 폭격하려나 보다.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바로 그 순간, 저는 제 아들 슈하브가 떠올랐습니다. 아들이 그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무서워할지 생각했습니다. 아들은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언제나 잽싸게 저의 목에 매달렸고, 그러면 저는 참다못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슈하브, 숨 막혀. 내 목을 조르고 있잖니.” 그러면 아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겁먹지 말라고 이렇게 꽉 붙들고 있는 거예요.”

이웃인 루브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 말아요, 슈하브도 지금쯤이면 집에 들어와 있을 거예요.” 그때 창문이 폭발하면서 깨진 유리조각들이 우리 주위로 날아들었습니다. 루브나의 집이 연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녀의 여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바깥에 나가서 슈하브가 괜찮은지 살펴볼게요.” 잠시 후, 그녀가 외쳤습니다. “아줌마! 아주머니네 집이 사라졌어요.” (그녀가 침묵에 휩싸인다.)

상상이 되나요? 당신의 집과 그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모두 땅속으로 사라지는 게 말입니다. 창문 너머로 우리 집의 잔해가 보였는데,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정신을 잃지 않고 집이 있던 곳까지 몇 미터의 거리를 건너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이제 6미터 깊이의 구덩이만 있을 뿐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널려 있던 팔다리, 우리의 머리 위를 선회하는 비행기,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우리 집의 잔해, 일부가 파괴된 이웃집들뿐입니다.

제 앞으로 얼굴들이 지나갔습니다. 팔다리와 시체들이 보였습니다. 제 아들 칼리드(Khalid)가 자신의 형제들을 파냈습니다. 칼리드가 작은 발 하나를 집어 들었고, 저는 그만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그건 슈하브의 다리였습니다. 틀림없었습니다. 이건 단순한 엄마의 직감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그날 아침 입혀준 검은색 바지와 재킷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때 우리 집이었던 곳을 뒤로하고 정처 없이 걸었습니다. 이웃 여인 한 명이 저를 발견하고는 인근의 진료소로 데려갔습니다. 진료소는 부상당한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무너진 잔해에서 구조된 다른 이웃 한 명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죽어버린 네 명의 자식들을 애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를 두 팔로 끌어안았고, 그날 있었던 일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계속 되뇌었습니다. 그녀는 횡설수설하며 자식들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식을 잃은 다른 어머니들처럼 소리를 지르지 않았습니다. 비통해하며 제 얼굴을 때리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몸뚱이를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 잔해 속에서 더 이상 무엇도 남지 않은 그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마치 찬물을 맞은 것처럼 어떤 확고함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진 우리 집의 잔해를 바라보며 서 있던 바로 그때, 그러한 확고함이 저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딸 노우라를 마지막으로 봤던 그 모습, 웃고 있던 모습으로, 친구들과 행복해하던 모습으로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슈하브가 놀던 모습으로, 노래하던 모습으로, 자신을 죽이러 날아오는 비행기에도 겁을 먹지 않는 아이로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참사가 덮쳤을 때 그러한 확고함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줄 수 있는지 잘 모를 겁니다. 그것은 강인함일 수도 있고, 어쩌면 저의 언니가 말하는 것처럼 망연자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젠가 제가 노우라와 슈하브와 함께하는 날들을, 우리가 또 다른 아름다운 집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꿈꿉니다.

폭격 사흘 후, 저는 한때 우리 집이었던 곳을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우리 가족을 삼켜버린 구덩이를 멍하니 바라보며 제 남편이 몇 년 동안 힘들게 지은 그 집에서 안락하게 살았던 때의 기억에 빠졌습니다. 비바람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장소였던 그 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하나의 구덩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그 구덩이의 한가운데를 들여다봅니다. 사라져 버린 그 집에서의 생활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노우라의 모습을, 그녀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그녀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그녀가 얼마나 사랑받았는지를 기억합니다. 딸에게는 앞으로 창창한 인생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저는 골목길에서 놀던 슈하브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완벽하며 온전했던 당시의 삶을 기억합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 그 구덩이 속을 계속해서 들여다봅니다.
2020년 7월, 사나에서 석유와 타이어를 판매하던 가게가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괴되었고, 그 잔해 주변에 어느 여성이 서 있다. ©Photograph: Mohammed Hamoud/Getty Images
영문 번역: 사와드 후세인(Sawad Hussain). 이 글의 좀 더 긴 버전은 매거진 《n+1》의 2022년 여름호에 실려 있다. 이 글의 저자인 부시라 알-막타리(Bushra al-Maqtari)가 쓴 《당신들이 남긴 것, 잊힌 전쟁의 땅에서 들려온 목소리(What You Have Left Behind: Voices from the Land of the Forgotten War)》의 영문판은 오는 10월 19일에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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