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INSIDE
1화

프롤로그 ; 2022

북저널리즘이 2022년의 마지막 콘텐츠로 〈2022 INSIDE; 네 가지 시선으로 본 한 해〉를 준비했습니다. 올 한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톺아보는 내용이 아닙니다. 2022년을 정의하는 콘텐츠입니다. 매일 치열하게 사람과 세계, 관계와 갈등, 기술과 규범을 고민해 온 네 명의 에디터가 각자의 시선으로 만들었습니다.

올해의 시간은 참 기묘하게 흘렀습니다. 역사책 한 권에 다 들어갈 만한 일들이 쏟아졌죠. 전쟁이 났고, 건물이 무너졌고, 경기 침체가 왔고, 이해할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해는 없겠지만 올해는 유독, 특별했습니다. 전환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힘의 방향과 돈의 성질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어제까지는 의심할 필요 없었던 생존의 법칙이 오늘은 이미 낡아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이 변화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향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겠죠. 이현구 에디터가 〈뉴오더 ; 새로운 질서의 시대〉에서 이야기합니다.

반면, 이 전환기에 힘이 세진 ‘말’에 주목한 시선도 있습니다. ‘우리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말’ 얘깁니다. 힘을 가진 그들의 목소리에 세계가 속절없이 흔들리고 말았던 시대라는 겁니다. 모두의 미디어였던 트위터는 일론 머스크의 미디어가 되었습니다. 에코 체임버에 갇힌 극우 세력에게 도널드 트럼프의 목소리는 귀가 멀 정도로 컸습니다. 김혜림 에디터가 〈힘의 말, 말의 힘 ; 모두를 위한 공론장〉에서 ‘우리의 말’이 다시 힘을 되찾을 수 있을지 전망합니다.

사실, 우리의 말이 힘을 잃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지도 모릅니다. 팬데믹은 끝났지만, 그동안 해체된 ‘우리’는 아직 복원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신 단절되어 있어도 연결되어 있다는 자기 최면이 난무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부터 메타버스까지, 단절을 부정하고자 하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죠.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세계의 확장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 사람과의 부딪침이 극단적으로 삭제되었다는 이야깁니다. 자신의 취향과 생각을 끝없이 소비했던 2022년을, 정원진 에디터가 〈과몰입; 나의 세계, 남의 세계〉에서 정리합니다.

2022년의 연말을 명랑하게 보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립의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분열과 침체의 시간이 찾아왔기 때문이죠. 그러나 인류는 어쩔 수 없이 미래를 상상하는 동물입니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존재입니다. 감염병 재난이 빼앗았던 공간을 되찾게 된 지금, 새로운 공간에 대한 열망은 최고조에 달해있습니다. 그 열망은 국경 같은 것을 넘어서는 수준이 아니라 우주로 확장합니다. 오늘과 내일에 머무르지 않고 근미래의 이상 도시를 꿈꿉니다. 이다혜 에디터가 〈대안 지구 ; 또 다른 지구를 꿈꾸는 이유〉에서 올해의 상상력이 그려낸 인류의 미래를 짚어냅니다.

뉴스를 나열하는 것만으로 가치 있는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게으릅니다. 중요한 것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틀입니다. 그래서 북저널리즘은 네 가지 관점으로 이해한 2022년을 독자 여러분께 보여드립니다. 이 관점을 도구 삼아 독자 여러분의 2022년을 사유해 보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글 신아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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