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와 기술
1화

프롤로그 ; 혼자 잘 살기 연구소, 2년의 회고

혼자 사는 사람이 늘었다. 더불어 1인 가구의 라이프 스타일도 각광받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과 그 삶을 이르는 ‘혼족’, ‘혼삶’ 등은 과거의 ‘독신’ 같은 단어와 뉘앙스가 다르다. 이제는 자유와 독립의 대명사다. 이 책은 늘어나는 1인 가구에 대한 서울대학교 사용자 경험 연구실의 고찰을 담고 있다.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지능정보융합학과는 데이터와 머신러닝(machine-learning),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 작용)에 강점이 있다. 이러한 강점을 살려, 1인 가구가 겪는 문제를 찾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분석해 기술적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 책은 그 2년의 회고다.

다만 모두가 지상파의 유명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와 같이 사는 것은 아니다. 혼삶이 아무리 자유로워 보여도 완전한 자유가 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만만치 않다. 막상 가까이서 본 1인 가구의 삶은 바쁘고 고달픈 일과의 연속이었다. 요리, 청소, 세탁, 쓰레기 처리 등 모든 가사 노동을 혼자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혼삶은 ‘소셜 큐(social cue)’가 없는 탓에 생활 리듬이 깨지기 쉽다는 문제도 있다.

소셜 큐는 사회적 단서, 즉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해당하는 신호를 말한다. 이를테면, 다인(多人) 가구 구성원은 보통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 점심 먹으러 나가는 소리, 불이 켜져 있는 거실 등의 소셜 큐를 통해 쉽게 생활 리듬을 느낀다. 물론 일자리나 셰어 하우스 등 안정적인 거점이 있는 1인 가구는 함께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셜 큐를 얻을 수 있고 재충전의 여지도 있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이나 비정규직처럼 사회적 소속감이 약한 1인 가구는 생활 리듬이 깨졌을 때 상대적으로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혼삶이 곧 불안이자 압박이 되는 것이다.

1인 가구가 당면하는 문제는 대부분 사회적 유대감(social engagement)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사회적 유대감 척도(SCS-R·Social Connectedness Scale-Revised)’를 개발한 연구진에 따르면 사회적 유대감은 “소속에 대한 내적 감각을 반영하며 사회적 세계와 대인 관계적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다.[1] 쉽게 말해 개인이 크고 작은 사회적 집단에 느끼는 소속감과 대인적 친밀감을 말한다. 이 문제는 사회·경제·제도적 지원으로 한순간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우리는 행정가도, 사업가도 아니다.

서울대 사용자 경험 연구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정보 통신 기술 ICT을 제시한 것은 연구실의 특성 때문만은 아니다. 1인 가구 증가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그 흐름을 가속하는 건 기술이기 때문이다. ICT의 발전으로 개인의 문제 해결 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했고, 많은 부분에 있어 남의 도움이 필요 없어진 세상이 됐다. 따라서 결자해지, 해결책 또한 기술이 되어야 한다.

포스트휴먼(posthuman)이 당면한 많은 문제는 기술과 관련이 있고, 기술 역시 이를 해결해야 할 당위가 있다. 시장에는 이미 1인 가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ICT 기술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4인 가구용 가전의 소형화에 지나지 않는다. 다인 가구 중심의 사고로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1인 가구에게 적합한 솔루션을 제공하려면 훨씬 더 구체적으로 1인 가구 고유의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고, 전과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2019년 12월, 서울대학교 사용자 경험 연구실은 신림동 원룸촌에 ‘혼자 잘 살기 연구소‘라는 이름의 리빙랩(Living Lab)을 열었다. 리빙랩은 살아있는 연구실이라는 의미로 현장과 일상에서 직접 문제를 찾아 다양한 기술로 해결하고자 나온 방식이다. 사용자 경험 연구 특성상, 이미 문화가 된 혼삶은 좋은 연구 주제다. 혼밥, 혼행(혼자 하는 여행) 등 혼삶의 다양한 모습은 트렌드로 굳어지고 있다. 다만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라 온라인에서 얻는 정보만으론 한계가 있다. 캠퍼스를 떠나 혼삶의 현장을 찾은 이유다. 혼자 잘 살기 연구소는 신림동의 여성 전용 코리빙 하우스(co-living house) 1층 한쪽 구석 방에 둥지를 틀었다.

혼자 잘 살기 연구소는 지난 2021년에 두 가지 기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스마트 스피커로 코리빙 하우스 입주민을 연결하는 ‘스피커 그리드(speaker grid)’ 프로젝트, 공용 공간에 머무는 사람 수를 알려 주는 ‘프리핸션(prehension)’ 프로젝트다. 스피커 그리드는 한 포털 사이트의 ‘지식in’ 서비스와 같다. 대신 텍스트가 아닌 음성 기반이다. 입주민들은 궁금한 생활 지식, 지역 정보, 혼삶의 경험 등을 말로 묻고 답하며 귀로 듣는다. 그 과정에서 입주민들 사이에 유대감이 형성된다.

프리핸션은 건물의 여러 층에 산재한 샤워실, 주방, 거실, 운동실 등 공용 시설의 가용 여부를 시각화하는 기술이다. 센서로 측정하고 머신러닝으로 예측한 결과가 입주민의 스마트폰으로 전달된다. 입주민은 프리핸션을 통해 다양한 공용 공간에서의 행동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이로 인해 특정 공용 공간에서 다른 입주민과 마주칠까 봐 이용에 조심스러웠던 입주민은 공간적 확장감을 얻을 수 있다. 1년간 두 가지 기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비단 연구에 관한 것이 아니더라도 1인 가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생겼다.

매일 출근하며 오르던 고시촌 언덕은 거대한 벌집 같았다. 1인 가구의 셀(cell)들로 이뤄진 이 거대한 성은 낮 동안에는 슈퍼 주인과 부동산 사장님만 서성이는 조용한 곳이었다. 그들이 지키던 빈 성은 저녁이 되면 퇴근하는 사람들의 행렬로 잠깐 동안 붐비지만 그 분주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각자의 집으로 흩어져 들어간 사람들은 길 밖에 잘 나오지 않았다. 거리에는 삶의 활력이나 대인 간 교류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거기엔 여러 이유가 있다. 치안에 민감한 1인 가구는 타인에 대한 경계가 특히 높다. 게다가 신림동 1인 가구는 경제적 여유가 없는 청년 비율이 높은데 그러다 보니 문화 활동이나 사교적 모임은 사치로 여겨진다. 공동 구매와 같이 생계와 관련된 목적이 생겼을 때 잠깐 모였다가 파할 뿐이다. 필요에 따라 가벼운 교류를 하는 ‘온디맨드 연합(on-demand relationship)’이 1인 가구 시대의 새로운 공동체 양식인 듯했다. 기술 발전은 이 느슨한 연결을 더 양산하는 모양새다.

기술이 곧 경쟁력인 시대다. 이 흐름은 기존 사회의 모습을 해체하는 동시에 1인 가구를 양산하고 더 많은 이들을 혼삶으로 유인한다. 미래 도시의 모습은 거대한 아파트촌보다 진화된 고시촌의 모습에 더 가까울 것이다. 4인 가구로 대표되는 정상 가족의 해체는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왔고 이제 현실이 됐다. 뉴 노멀이 된 1인 가구, 새로운 개인의 탄생이다. 이 개인들이 임시로 연합한 형태와 같은 새로운 관계 맺기 방식 역시 등장하고 있다. 1인 가구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연구 없이는 이 변화에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1]
조화진 외 3인, 〈사회적 유대감과 SNS 중독 경향성의 관계: 주관적 안녕감과 자기통제의 매개효과〉, 《인간발달연구》, 25(4), 2018, 257-277쪽.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