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6월 15일, explained

강릉이 커피콩빵 원조 논란으로 시끄럽다. 이 논란의 본질은 이야기가 사라진 지역에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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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려진 ‘커피콩빵’을 두고 원조 논쟁이 불거졌다. 유사 상품으로 지적받은 업체의 대표는 “경주에는 최초로 개발한 경주빵만 팔아야 하고, 천안 호두과자는 최초 만든 곳 외에는 다 팔지 말아야 하냐”며 반박했다. 강릉에는 열 곳이 넘는 커피콩빵 가게가 있다. 

WHY NOW

우리는 언제부터 강릉을 커피로, 경주를 첨성대로, 천안을 호두과자로 기억하게 된 걸까? 서울에는 없는 특산물과 지역 축제에 모든 지자체가 사활을 거는 이유는 뭘까? 지금 지역에는 관광객을 모을 랜드마크가 아닌, 이야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발견하고 기록하지 않는다면, 지역은 더 빠르게 잊힌다.

대표 음식

지역의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지역 경제를 뒷받침하는 든든한 상품인 동시에, 지역을 각인시키고 알릴 수 있는 수단이다. 사람들은 경양식 돈가스를 보고 남산을, 과메기를 듣고 포항을 떠올린다. 내세울 만한 음식이 없는 지역은 초조하다. 지난 6월 6일, 백종원 대표가 운영하는 ‘더본코리아외식산업개발원’이 충북 진천군의 대표 음식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농민과 소상공인, 관광 등의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다. 이외에도 충남 예산군, 경북 고령군을 비롯한 지역이 대표 음식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다.

강릉과 커피콩빵

강릉의 커피콩빵은 서울에서 파는 커피콩빵과도, 강릉에서 파는 소금빵과도 다르다. 오직, ‘커피의 도시 강릉’이기에 커피를 사용한 빵이 셀링포인트가 된다. 강릉이 커피콩빵을, 커피콩빵이 강릉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강릉에서는 평범한 빵집보다 커피콩빵집이 인기일 수밖에 없으니, 자연히 원조 논쟁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지역의 특산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서울에서도 과메기를 맛볼 수 있지만, 포항의 과메기는 특별하다. 서울에서 먹는 과메기는 말린 생선이지만, 포항의 과메기는 지역의 정체성을 옹골차게 담은, 포항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심상 지도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우리는 서울의 특산물을 모른다. 그를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서울에는 신당동 떡볶이 타운이 있지만, 우리는 서울을 떡볶이의 도시라고 부르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한국의 많은 지역이 랜드마크에, 혹은 대표 음식에, 단 하나의 브랜딩에 과도하게 매달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심상 지도(mental map)는 물리적 크기와 무관하게, 지도를 그린 사람의 세계관을 표현한 상상적 지도를 말한다. 조선 시대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 일본은 중국과 조선에 비해 매우 작게 그려져 있다. 현대 한국에 사는 사람은 어떨까? 서울에 사는 사람에게 대전의 심상 지도는 성심당 매장의 크기로 축소될 수 있다. 그조차도 없는 지역은 수도권 사람의 심상 지도에서 아예 자리를 잃는다.

지역 축제와 랜드마크

대표 음식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지역 축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23년 개최가 예정된 지역 축제는 총 1129개다. 하루에 약 세 개의 지역 축제가 열리는 셈이다. 1000개가 넘는 모든 지역 축제가 해당 지역의 역사와 의미를 담기도 어렵다. 무수히 생산된 차별성 없는 지역 축제는 중앙 정부가 절반을 책임지는 예산 3억 원을 쓰고, 지자체장의 이력 한 줄로 남는다. 축제를 열 만한 특산물이나 유적지가 없는 지역의 경우, ‘한 방’을 노리는 랜드마크에 매달리기 쉽다. 강원도 춘천은 레고랜드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뚫어냈지만, 그 경제적·문화적 효과는 미미했다. 연내 방문객은 당초 예상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 100만 명에 불과했다.

한철 장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천은 레고랜드에, 포항은 과메기 장사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역이 내세울 수 있는 이야기 전부이기 때문이다. 지역은 자신의 지역을 팔기 위해 하나의 주인공을 만든다. 무수한 실패 끝에 겨우 자리를 잡은 주인공은 지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영업사원이 된다. 그 영업사원은 지역의 상인과 관광 전체를 책임진다.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소음이 발생한다. 축제 시즌마다 반복되는 ‘바가지요금’ 논란이 대표적이다. 문제의 핵심은 바가지요금이 악랄한 개인이 아닌, 구조가 만든 결과물일 수 있다는 지점이다. 지역은 몇 차례 개최되는 간헐적인 축제로만, 단 하나의 대표 음식으로만 외부의 재원을 끌어들이는 실질적 무능 상태에 놓여 있다. 상인들은 이른바 ‘한철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

납작한 정체성

논문 〈대전은 어떻게 ‘노잼도시’가 되었나〉의 주혜진 연구원은 “지역의 ‘납작한 정체성’을 강조해야만 지역이 생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중앙 정부로부터의 경제적 자립을 의미하는 재정자립도는 전국 기준 45퍼센트로, 10개 광역자치단체가 50퍼센트를 채 넘지 못한다. 재정자립도 70퍼센트를 넘은 유일한 도시는 서울특별시로, 그 수치는 75.4퍼센트다. 중앙 정부로부터 재정적 자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지역은 그만이 가진 복잡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발전시킬 시간이 없다. 주혜진 연구원은 하나의 대표 음식, 한 차례의 지역 축제를 구조가 만들어 낸 “빠르고 간편한 방법”이라고 표현했다.

구룡성채

1990년, 영화 〈아비정전〉을 촬영한 배우 양조위는 홍콩의 구룡성채를 “홍콩의 씬 시티(Sin City)”라고 표현했다. 안전 규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우후죽순 지어진 건물은 삼합회와 마약 소굴, 매음굴로 악명이 높았다. 구룡성채의 면면을 찍은 캐나다의 사진작가 그레그 지라드(Greg Girard)는 구룡성채를 둘러싼 부정적인 이미지가 일부 사실일 수는 있으나, 그 바깥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구룡성채는 “역사적, 정치적 변덕의 산물”인 동시에 “홍콩의 노동계급 사람들이 지내는 곳”이다. 그레그의 사진에는 쏟아질 듯한 흑백의 건물만이 아닌, 옥상을 돌아다니는 맨발의 아이,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체부가 담겼다. 구룡성채는 양조위의 표현처럼 ‘씬 시티’이기도 했지만, 그레그의 사진처럼 사람이 사는 곳이기도 했다.

IT MATTERS

진주의 〈지역쓰담〉 대표 권영란은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이 ‘소멸위험지수’가 아닌 ‘희망 지수’라고 주장했다. 신안면은 언제부터인가 모인 귀농·귀촌 모임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갖추게 됐다. 그럼에도 신안의 다양한 색채는 소멸위험이라는 무거운 수식어 아래 가려진다. 지금 지역은 소멸위험으로, 위기의 온상으로, 몇 명의 인구수로, 때로는 지역 축제와 건축물로 대표된다. 지역에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상생의 손이나 커피콩빵 이외의 것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더 많은 이야기가 쌓인다.

이야기를 쌓고 알리는 하나의 방법으로 주혜진 연구원은 기록을 제시한다. “다종다양한 관점의 사람이 지역과 직접 관계 맺은 다면적 기록”이 그것이다. 방법은 다양하다. 지역의 골목을 찍은 사진과 수많은 해시태그일 수도 있고, 한 지자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일 수도 있다. 일본의 잡지 〈타베루 통신〉은 지역 특산물을 그 주제로 한다. 다만 표면적인 이야기만 전하지 않는다. 발행인이 직접 생산 활동을 경험하고, 그를 바탕으로 지역과 생산자의 철학, 풍토를 잡지에 담아낸다. 부록으로는 잡지에서 다룬 특산물이 제공된다. 구독자는 지역에 대한 기록을 읽고, 직접 그를 체험할 수 있다.

구룡성채에도 양조위가 발견하지 못한 삶의 모습이 있었다. 일본 토호쿠에서는 매달 색다른 생산의 이야기가 태어난다. 이처럼 강릉과 대전, 신안면에도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지역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야기의 힘을 서울이 독점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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