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5. UNIVERSE

2023년 8월, THREAD

이달의 이야기

세계관이라는 함정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신아람 CCO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의 기사는 인종 차별적이었습니다. 과거를 뛰어넘기 위해 이를 인정해야 합니다.”

대체 어떤 매체가 이런 반성문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아무리 가볍고 혁신적인 조직이라 할지라도 웬만한 자존감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자기비판입니다.

이 반성문은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 2018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당시 편집장이었던 수잔 골드버그가 썼습니다. 140년이 넘는 잡지의 역사를 생각하면 대담해도 너무 대담한 결정입니다.

그런데 반성문을 들여다보면 뭔가 이상합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사진을 중심으로 하는 잡지입니다. ‘조작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만 지키면 거짓을 담기 힘듭니다. 현장으로 나가 그저 카메라 셔터를 눌렀을 뿐인 그 위대한 사진가들이, 어떻게 인종 차별적이었다는 것일까요? 비밀은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에 있습니다.

세계를 보는 시선

멋진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면 일단 사진부터 찍고 식사하는 경우,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테이블 위의 낡은 물병이나 손 닦은 물수건 등을 화면 밖으로 치우곤 하죠. ‘사진에 담고 싶지 않은 것’을 프레임 밖으로 밀어내는 겁니다. 사진 안에는 예쁜 그릇에 먹음직하게 담긴 음식과 환한 표정의 일행만을 담아냅니다. 이 순간을 말끔하고 멋지게 기억하고 싶은 욕망, 너저분한 요소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포장하고 싶은 욕망의 발현입니다.

사진이야말로 시선입니다. 무엇을 볼지, 보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사진을 찍는 행위인 것이죠. 달리 말하면 무엇을 기억할지, 망각할지를 결정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방법은 노골적입니다. 집중해야 할 피사체에는 초점을 맞춥니다. 조명을 비추기도 하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흐릿하게, 또는 어둡게 담아냅니다. 부정하고 싶거나 없는 셈 치고 싶은 대상은 프레임에 담지 않습니다.

바로 그 방법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인종에 대한 편향된 관념을 만들어왔습니다. 1970년대까지 잡지에 실린 미국의 유색 인종은 노동자나 가사 도우미의 모습이었습니다. 교수나 성공한 사업가, 선량하고 관대한 이웃의 얼굴을 한 유색 인종은 사진에 담기지 않았죠. 해외 르포 사진에는 지역의 선주민을 나체로 생활하는 사람, 사냥꾼, 야만인 등의 모습으로 담습니다. 인권과 평등을 주장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흑인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었습니다.

그렇게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실재와는 다른 세계를 창조했습니다. 잡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 독자들에게 유색 인종은 같은 시민이 아니라 블루칼라 저소득층이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선주민들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야만의 상징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관입니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관점이기 때문에 완성되거나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그 세계관을 받아들이게 되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을지가 결정되어 버리죠.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사진이 증명한 탄탄하고 일관된 서사로 인종 차별의 세계관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독자를 사로잡았습니다.

권력을 손에 쥐는 방법

세계관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매체뿐만이 아닙니다. 정치인도 세계관으로 목적을 달성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을 설득하고, 매료시키는 데에 세계관만큼 효과적인 도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32년 12월, 독일입니다.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 Partei), 즉 나치당이 총선에서 승리했던 순간 말이죠. 대공황으로 독일의 경제가 망가져 있던 그때, 극한으로 몰린 독일인들은 나치를 선택했습니다. 나치가 만들어 낸 세계관이 너무나 달콤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쓸모’에 따라 차별할 수 있는 세계, 인종에 따라 목숨의 값어치가 달라지는 세계, 독일이라는 집단을 위해 개인은 희생될 수 있는 세계. 그런 세계라면 적어도 ‘나’에게는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 참담한 선택으로 이어졌습니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바로 다음 해부터 40만 명 이상이 유전병 등을 이유로 강제 불임 시술을 받았죠. ‘안락사 프로그램(Aktion T4)’이라는 이름 아래 30만 명의 장애인은 학살당했습니다. 아우슈비츠 등 나치의 절멸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는 300만 명이 넘습니다. 나치의 세계관은, 프레임 바깥으로 이들을 밀어냈습니다.

불행히도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아직도 정치가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나치가 이미 증명했듯, 혐오와 차별의 세계관은 불만 쌓인 유권자들을 손쉽게 유혹하기 때문이죠. 지난 6월 86세를 일기로 사망한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선탠을 했다”고 묘사하는 등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고 “엄마는 로마 시장이 될 수 없다”는 등 여성 차별적인 언사를 내뱉는 데도 거침이 없었던 스트롱맨이었습니다. 백승민 에디터는 〈이탈리안 스트롱맨의 죽음〉에서 그 과정과 불행한 결과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빠른 세계, 조급한 세계관

표심을 움직일 정도니, 세계관을 이용한다면 소비자의 지갑도 쉽게 열 수 있겠죠. 김혜림 에디터는 〈패션 트렌드가 ESG를 망치는 방법〉에서 인스타그램과 틱톡이 만들어 낸, ‘마이크로트렌드(Micro-trend)’ 판매 전략을 분석합니다. 판판한 액정 위에 펼쳐진 세계에서는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나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새로고침이라는 천성을 갖고 태어난 소셜 미디어에서 패션의 주기는 2주일이고요. 달라진 트렌드를 놓치게 되면 팔로워 수가 떨어지겠죠. 나의 가치도 따라서 떨어집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를 최고의 가치로 추앙하는, 패스트 패션 기업들의 세계관은 이렇게 탄생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세계관은 노동 현실과 탄소 배출, 쌓이는 재고를 우려하는 가치소비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패션 트렌드만 빠르게 공급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모든 정보가 너무 빠르게, 너무 많이 공급되는 시대를 살고 있죠. 다 따라잡기에는 버겁고 쫓아가지 않으면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닥쳐옵니다. 결국 효율을 중심으로 모든 행동이 결정되는 세계관이 탄생합니다. 시쳇말로는 그런 세계관을 가진 사람을 일컬어 ‘효율충’이라고도 하죠. 네, 분명 불편한 표현입니다.

좀 더 멋진 말이 있습니다. ‘팟패스터(PodFaster)’라는 이름입니다. 모든 콘텐츠를 요약과 배속으로 소비하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팟패스터의 시대, 정보의 가치〉에서는 최신의 정보와 뉴스를 놓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심리를 파고들어 정보 소비의 미래를 전망합니다. 다시 보지도 않을 사진을 찍고, 쓸모없는 북마크를 생성하는 현대인들은, 안전망도 없이 정보의 고속 열차를 타고 공중을 부유하는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라는 공범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만들어 낸 인종 차별의 세계관이 아주 오랫동안 단단하게 유지될 수 있었던 까닭이 있습니다. 독자라는 공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인 독자들에게 인종 차별적인 세계관은 간편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세계를 문명과 비문명으로 나누면, 비문명은 흥미로운 관람 거리가 됩니다. 내가 속한 문명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탐험과 정복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2018년의 반성문이 나올 수 있었던 까닭도 독자에게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매체가 되지 않으면, 독자들에게 계속해서 선택받을 수 없으리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과감한 자기비판이 가능했겠지요. 매체란 그런 존재입니다. 독자에게 세계관이 되기도 하지만, 독자의 세계관을 거스르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달 《스레드》는 어제와 다른 세계관을 가진 독자 여러분이 만들어 가고 있는 현재를 주목합니다. 과거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자 합니다. 2023년의 시각으로 세계를 조망합니다. 《스레드》의 세계관은 현명하고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독자들 옆에서, 혹은 그 반 발짝 앞에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아, 혹시 넘쳐나는 뉴스 프로그램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계를 보고 싶으신 분들이 계신다면 이번 달 ‘톡스’ 코너를 주목해 보셨으면 합니다. 젊은 에디터들의 시선으로 만들고 있는 뉴스 팟캐스트 〈weekend〉가 아마도 좋은 뷰파인더가 되어드릴 수 있을 겁니다.

explained

팟패스터의 시대, 정보의 가치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1배속으로 못 보는 분 계신가요? 그게 바로 저예요…. 넷플릭스 오프닝 건너뛰기 버튼 광속 클릭하시는 분은요? 그것도 저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런 사람을 ‘팟패스터’라고 부르는데요, 한정된 시간에도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팟캐스트를 배속으로 듣는 사람을 이릅니다. 팟패스터, 이제는 현대인과 동의어가 된 것 같은데요. 원인은 정보 과부하입니다. 팟패스터의 시대에 필요한 정보는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요?


패션 트렌드가 ESG를 망치는 방법

최근 중국의 패스트패션 기업 쉬인이 자주 언론에 오르내려요. 뉴욕 증시에 상장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요! 저도 얼마 전 쉬인에 들어갔다가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는데요. 민소매 티셔츠 하나를 4000원에 살 수 있더라고요. 이 가격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쉬인은 강제 노동과 환경 오염 문제로 꾸준히 비판받아 왔습니다. 더 빠르게, 더 많이 옷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죠. 이는 패스트패션 기업 전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더 우려스러운 건 명품계로도 이 구조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인플루언서가 매주 쇼핑 영상을 올리는 지금, 패션계의 가속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제약·바이오는 어떻게 돈을 벌까?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를 기억하시나요? 백신 종류가 다양해서 국내에서도 한창 글로벌 제약 회사에 대한 관심이 높았죠. 그런데 지난 7월 4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우리에게도 익숙한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로부터 무려 1조 2000억 원 규모의 위탁 생산 수주를 따냈다고 해요. 이뿐만 아니라 6월엔 SK케미칼이 아스트라제네카와 당뇨 복합제를 공동 개발 및 생산한다는 뉴스가 있었죠. 세계로 도약하는 K-제약・바이오가 연일 수주전을 이어 가며 관심이 높은데요. K-제약은 반도체, 조선, 자동차처럼 한국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을까요?


셀프 스토리지는 왜 트렌드가 됐을까

코로나19 기간 동안, 집에 있으면서 든 생각이 뭔지 아세요? 너무 답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침대 아래와 옷장 위까지 꽉 차 있는 박스, 자취생이면 모두 공감할 거예요. 내가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작아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죠.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셀프 스토리지입니다. 짐을 다른 곳에 보관하면서 내 공간을 조금은 넓힐 수 있는 방법이죠. 셀프 스토리지 트렌드를 따라가면,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도시 과밀화, 비싼 부동산 가격 문제까지 나옵니다. 우리 도시에 필요한 공간은 무엇일까요?


지역에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재작년 가을, 강릉에 갔을 때 커피콩빵을 사 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커피 도시라는 강릉의 닉네임에 걸맞은 맛난 빵이었는데요. 얼마 전 커피콩빵을 두고 원조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이 논란을 가만히 보다 보니 뭔가 이상했어요. 서울에는 서울을 대표하는 빵이 없잖아요? 천안에는 호두과자가, 경주에는 십원빵이 있는데 말이에요. 지역 소멸 시대에, 정말 지역에 필요한 건 뭘까요? 빵도, 특산물도, 랜드마크도 아닌 이야기가 필요할지 몰라요.


이탈리안 스트롱맨의 죽음

유럽 포퓰리스트의 할아버지,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사망했습니다. 막말과 비리, 추문으로 얼룩져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평가를 들으면서도 동시에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죠. 돈도, 정치적 유산도 많이 남기고 떠난 그를 따라, 21세기 새로운 스트롱맨들이 세계 곳곳에 출현하고 있습니다.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 정치를 장악한 전략을 알면 뉴 스트롱맨을 견제할 힌트도 보입니다.


2023년의 새로운 난민

그리스 해안에서 난민선이 침몰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어요. 최대 500명이 실종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는데요, 충격적인 소식은 이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영국 언론 《가디언》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파키스탄 국적자는 배가 침몰할 때 생존 가능성이 낮은 갑판 아래층으로 밀려났다고 해요. 난민선에도 정착하지 못한, 더 깊은 층위의 난민이 있었던 셈입니다. 이처럼, 지금의 난민은 다채롭습니다. 불량 국가에서만, 명시적인 전쟁에서만 탄생하는 게 아니죠. 도로를 배회하는 구급차 속 환자, 높아지는 해안선을 바라보는 섬나라의 주민, 총기 테러를 피해 이주를 결심하는 성소수자까지 모두가 새로운 시대의 난민일 수 있어요. 난민을 더 넓게 사고해야 모두가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

톡스

북저널리즘 weekend - 에디터가 해설했더니 뉴스에 쓸모가 생겼다

북저널리즘의 오디오 콘텐츠 위크엔드가 애플 팟캐스트 1위를 했습니다. 그것도 론칭 3개월 만에요!! 그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뉴스 팟캐스트라는 단어, 듣기만 해도 지루하지 않나요. 그런데 젊은 에디터들의 수다에 담긴 뉴스는 조금 다릅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니까요. 나와 같으면서도 다른 관점을 가진 에디터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끼어들어 말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듭니다. 뉴스에 어떤 ‘쓸모’를 입히고 있는지, 북저널리즘 에디터들의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롱리드

멸종하거나 창궐하거나

이 여름 무사히 나고 계신가요? 작열하는 햇빛과 짙은 녹음 사이 곤충이 생명력을 뽐내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곤충들도 너무 덥다고 느끼고 있지 않을까요? 기후 위기 상황에 지구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바뀌고 있습니다. 곤충도 예외는 아니죠. 벼랑 끝에 내몰린 곤충의 선택지는 멸종과 창궐, 둘 중 하나입니다. 먹이 사슬의 뿌리인 곤충의 생태계 균형은 이미 깨졌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건 지금 날아다니는 모기가 아니라, 기후 위기 그 자체입니다.

THREAD EXPLAINS THE NEWS
스레드는 스트리밍 세대를 위한 종이 뉴스 잡지입니다.
이달에 꼭 알아야 할 비즈니스, 라이프스타일, 글로벌 이슈의 맥락을 해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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