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정신 건강의 구원자일까?

2023년 9월 21일, explained

기술은 건강함이라는 신화를 개인의 몫으로 만든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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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본격적으로 정신 건강 분야에 뛰어들었다. iOS17은 건강 앱에 정신 건강 탭을 추가했다. 애플의 건강 앱은 사용자의 운동 시간과 수면 시간, 마음 챙기기 시간 등을 추적한다. 사용자는 정해진 시간에 자신의 마음 상태를 기록하라는 알림을 받게 된다.

WHY NOW

애플만이 아니다. 스타트업과 빅테크 모두 멘탈 케어 시장에 주목한다. 기술들은 말한다. 이 기술을 소유하기만 한다면, 활용하기만 한다면 당신은 건강해질 수 있다고 말이다. 이때 정신 건강과 보건 문제는 자기 계발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부지런하다면 비만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화의 되풀이다. 수많은 기술이 든든한 지원군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건강이 개인의 몫이라는 신화를 뛰어넘어야 한다.

애플의 마음 챙김

사용 방법은 직관적이다. 사용자는 아이폰과 애플워치, 아이패드를 통해 매일, 순간마다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기록할 수 있다. 스크롤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매우 기분 좋음’부터 ‘매우 불쾌함’까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감정을 묘사하는 키워드도 선택할 수 있다. 심리적 상태가 약간 불쾌하다면 화남, 불안함, 무서움, 좌절 등의 키워드가 뜨는 식이다. 감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을 선택할 수 있고 어플리케이션 내에서 정신 건강 문진표를 작성할 수 있다. 애플은 ‘쿼츠(Quartz)’라는 코드명의 정신 건강 코칭 서비스를 기획해 왔다. 이번 iOS17의 건강 탭 업그레이드는 애플이 정신 건강 관리를 생태계의 일원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증거다.

블루 오션

애플만 이 분야에 뛰어든 건 아니다. 영국의 스타트업 ‘림빅(limbic)’은 AI 치료 도우미를 자처한다. 림빅은 치료 이전 사용자의 인구 통계, 자격, 기준, 의사소통 방식 등의 주요 자료들을 수집한다. AI 챗봇은 환자와 대화하며 환자의 우울 정도, 불안 정도 등을 검진한다. 음성 바이오 마커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도 나타났다. 국립과학재단으로부터 280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한 미국의 기업 ‘킨츠기(Kintsugi)’는 AI 기반 음성 분석 도구를 활용해 사용자의 짧은 음성에서 우울과 불안의 징후를 찾는다. 2023년 기준, 현재 다운로드할 수 있는 모바일 정신 건강 어플리케이션은 1만 개 이상이다.

공급의 한계

정신 건강을 케어하는 기술은 어떻게 블루 오션이 됐을까? 일단 고쳐지지 않은 공급의 한계가 자리한다. 영국은 림빅이 제공하는 AI 기반 정신 건강 서비스를 대대적으로 배포하고 있다. 환자 과부하 때문이다. 지난 7월 영국 NHS는 정신 건강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위기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정신 건강에 대한 의뢰는 44퍼센트 증가했으나 환자를 돌보는 인력은 22퍼센트 증가에 그쳤기 때문이다. 절대적 공급의 부족에 지역과 자본의 문제도 개입한다. 미국의과대학협회에 따르면 미국인 중 28퍼센트만이 충분한 정신 건강 전문가가 있는 지역에 살고 있다. 정신 건강 치료에 있어 월평균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178달러에 이른다. 40퍼센트의 환자는 치료비를 감당하기 위해 누군가로부터 재정적 도움을 빌려야 한다고 보고했다.

공백에 뛰어든 기술

공급과 수요 사이의 공백. 기술은 이 공간에 뛰어들었다. 스마트폰만 있다면 다양한 명상 어플리케이션과 무드 트래커 기능을 통해 감정 조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병원보다 장벽도 낮다. 심리적 장벽만이 아니다. 보통 정신과 초진에 소요되는 1~2시간, 접수까지 기다리는 대기 시간을 아낄 수 있다. 기술은 진료 예약에 들어가는 품, 의사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노력까지도 대체한다. 정신 질환의 경우 대기 시간과 노력이 큰 장벽이 되기도 한다. 대학 병원 의사와 대면하기 위해 평균 14.5일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과 달리, 기술은 즉각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끔 만든다. AI와의 진료는 언제, 어디에서든 가능하다. 눈치 보지 않고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도 오랜 시간 민감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애플워치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중요한 건 누구나 기술을 소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애플은 소유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하는 불안감을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 사용한다. 테크 언론사 ‘더 버지’는 최근 애플의 마케팅 방법론이 ‘죽음(mortality)’을 주요 소재로 활용한다고 지적했다. 광고는 애플워치를 가진 이는 터널과 산속에서 바로 구조 요청을 보낼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자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생존과 건강 관리는 FOMO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정신 건강 관리는 기술을 소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양분된다. 건강 관리는 공중 보건의 영역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관리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기록의 압박

감정을 기록하는 것, 명상 어플리케이션 등이 정신 건강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지는 아직 논쟁의 영역이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과 부교수인 스티븐 쉘러는 대부분 사람이 자신의 기분을 일주일에 두 번만 기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건과 감정을 경험했을 때 어플리케이션을 켜지만, 긍정적인 기분에 치우친 채 감정을 기록할 가능성이 컸다. 책 《도파미네이션》의 저자 애나 렘키는 수시로 기록하게 하고, 모든 정보를 추적하는 웨어러블 기기의 기능이 섭식 장애부터 건강 목표에 대한 강박 관념을 강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무언가를 열거하거나 숫자를 부여할 때마다 그에 대한 중독과 집착 성향이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애플의 정신 건강 탭은 한 달간의 정신 건강 지표를 그래프로 제공한다. 일종의 성적표다.

자기 계발

정신 건강을 통제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지금의 논의는 자칫 정신 건강을 개인의 습관과 심리적 문제로 축소할 수 있다. 《미라클 모닝》은 나 자신을 돌보는 리추얼 열풍을 불렀다. 《도둑맞은 집중력》과 《도파미네이션》을 향한 관심은 현대인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통제하고 관리하고 싶어 한다는 증거다. 이런 흐름 위에서 쏟아지는 명상 어플리케이션과 무드 트래커는 감정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부여한다. 이때 정신 건강은 생활습관과 리추얼, 자기 계발의 영역이 된다. 개인만이 감정과 정신 건강을 도맡을 수 있다는 것은 신화에 가깝다. 정신 건강은 공중 보건의 문제다. 보건 체계와 인식, 문화까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IT MATTERS

1980년, 로버트 크로포드는 건강주의(Healthism)라는 개념을 정의했다.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역동적이고 다면적인 문제를 뒤로하고 건강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을 말한다. 크로포드는 건강주의가 빈곤과 혐오 등의 구조적 문제를 영속시키는 신화라고 지적했다. 그의 말처럼, 게을러서 비만이 됐다는 신화는 아직도 강고하다. 오클랜드대학은 정신 건강 어플리케이션이 정신 건강을 라이프스타일의 영역으로 축소하면서 건강주의를 강화한다고 지적했다. 건강주의는 건강하지 않은 상태를 개인의 몫으로 돌리며 이들을 소외시키고 낙인찍는다.

정부는 독거노인과 은둔 청년에게 AI 챗봇 스피커를 나눠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시민도 AI 챗봇이 은둔 청년과 외로운 독거노인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것이 근본적 해결책이 되는 순간, 그들은 스피커가 놓인 방 한 칸에 갇힌다. 건강함이 구조가 아닌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면, 기술은 또 다른 자기 계발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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