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2023년 9월 22일, explained

옥토버페스트에서 워키즘(wokeism)이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축제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 올해도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가 열린다. 수많은 사람이 몰리고 엄청난 양의 맥주가 소비되는, 즐거워야 할 축제가 올해는 문화 전쟁의 장이 되었다. 독일의 맥주 브랜드이자 참가사 중 하나인 파울라너 텐트에서 유기농 치킨을 비싼 가격에 판매한 것이 ‘워키즘(wokeism)[1]’ 논란을 촉발한 것이다. 축제의 전통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비싼 치킨과 변해 가는 축제의 모습을 비판한다. 그들은 옥토버페스트가 대중을 위한 축제로 남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WHY NOW

옥토버페스트의 키워드는 전통이다. 참가자들은 독일 바이에른의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음악을 즐기며, 전통 음식인 소시지와 프레첼을 맥주에 곁들여 먹는다. 전통에는 이것들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즐거움도 포함된다. 그러나 전통이 지나간 자리에 씁쓸함이 남는다. 포용과 화합을 이야기해야 할 축제에서 누군가는 그것이 즐겁지만은 않다. 대중은 모든 전통을 그대로 지키고 싶은 단일한 존재가 아니다. 질문이 필요하다. 지금 축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축제에 등장한 유기농 치킨

치킨은 축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다. 뒤집어 말하면, 축제를 위해 희생되는 닭의 개체 수는 수없이 많다. 동물 관련 활동가 단체는 옥토버페스트에 산업적 도축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담기 위해 봄부터 공무원, 축제 개최자들과 만나 변화를 촉구했다. 그들은 뮌헨이 2035년까지 기후 중립적인 도시가 되겠다는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변화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변화의 목소리는 양조장 중 하나인 파울라너의 음식에 반영됐다. 파울라너 운영자는 유기농 치킨을 제공하는 선택이 “동물들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실험”이라며 그 취지를 밝혔다.

치킨 대신 프레첼과 치즈를

문제는 가격이다. 유기농 치킨의 가격은 20.50유로로, 비유기농 치킨에 비해 50퍼센트 비싸다. 가격을 확인한 사람들은 치킨 대신 프레첼과 치즈를 택했다. 옥토버페스트의 총감독이자 보수당 기독사회연합(CSU) 소속인 클레멘스 바움가르트너(Clemens Baumgärtner)는 “옥토버페스트는 대중을 위한 축제로 남아 있어야 한다”며 변화를 비판한다. 환경 운동가들이 축제의 가격을 높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축제는 이미 재생 가능 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고, 일회용 접시와 식기 사용을 금지하는 등 환경을 위해 변화했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700만 리터의 맥주, 50만 마리의 치킨이 만드는 탄소를 주시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축제에 쌓여가는 물음표

옥토버페스트의 문화 전쟁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매음굴을 주제로 한 노래 ‘라일라(Layla)’, 놀이기구에 그려진 흑인 남성과 여성 신체에 대한 묘사는 인종 차별 및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핵심적인 논란 중의 하나는 여성 참가자가 입는 전통 복장 ‘던들(Dirndl)’이다. 던들의 허리춤에 있는 리본은 어느 방향으로 묶는지에 따라 여성의 기혼 여부 등 관계의 상태를 상징한다. 옥토버페스트 참가자들은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이러한 복장 문화가 기존의 성 고정관념을 강화하기 때문에 평등하지 않다고 인식한다. 즐거운 축제인 옥토버페스트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물음표가 더해지고 있다.

축제의 도시에는 비판이 설 자리가 없다

옥토버페스트는 쏟아지는 비판을 아주 천천히, 하나하나씩 받아들이고 있다. 속도가 더딘 이유는 돈이다. 축제를 즐기는 비용이 비싸지는 걸 원치 않는 숙박 업체 협회가 이를 반대한다. 전 세계에서 600만 명이 방문하는 옥토버페스트는 지역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어마어마하다. 지역 경제를 살리는 돈은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에서 비판을 묵살한다. 비슷한 일은 우리나라 강원도 화천군 산천어 축제에도 있었다. 산천어를 맨손으로 잡고 옷 속으로 넣는 이 축제는 환경 및 동물 단체로부터 학대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축제의 관광 효과, 즉 돈의 논리 앞에서 비판은 힘을 잃었다. 올해에도 산천어 축제는 무사히 진행됐다.

갈등이 장이 된 축제

축제는 본디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효과를 가진다. 그러나 지금의 축제는 분열과 갈등의 장이다. 그 모습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영화계의 축제인 영화제다. 9월에 열린 베니스 영화제에서는 로만 폴란스키, 우디 앨런, 뤽 베송 등 여성 성폭력에 연루된 감독 세 명의 신작이 상영됐다. 지난 5월에 열린 칸 영화제 역시 가정 폭력 논란이 있던 배우 조니 뎁의 영화를 상영했다. 유럽 영화제들은 논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명성을 쌓고 있지만, 관객은 계속 야유를 보낼 것이다. #CannesYouNot 등의 해시태그 운동, 영화제의 선택을 비판한 언론 기사는 이 갈등을 없던 일처럼 묻어둘 수 없다는 증거로 남는다.

갈등을 막을 수 없는 이유

정치적으로 깨어 있다는 의미의 ‘워크(woke)’가 미국 보수 진영에서 공격의 단어로 사용되면서 문화 전쟁은 수많은 곳으로 퍼지고 있다. 특히 LGBTQ에 대한 공격은 전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맥주 버드라이트는 트랜스젠더 인플루언서를 이용한 마케팅을 했다가 역풍을 맞아 결국 구조 조정까지 단행했다. 이 논란으로 같은 회사의 맥주인 버드와이저가 올해 옥토버페스트에 참가할 수 없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성소수자에 대한 백래시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아디다스와 애플, 스타벅스 등은 여전히 LGBTQ 조직을 후원하고 이들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기업의 의지가 진심인지 마케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돈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지지하는 목소리로 흐르며, 그것이 계속 이어지도록 만든다.

변하는 축제의 모습 속에서 발견하는 것

시간이 흐르고 가치관이 바뀜에 따라 무언가를 기념하고 즐기는 일도 변한다. 캐나다 퀘벡의 한 공립학교에서는 어머니, 아버지가 없거나 위탁 가정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어머니의 날 행사를 폐지하고 좀 더 포괄적인 부모의 날 행사를 치렀다. 온타리오의 몇몇 초등학교에서는 발렌타인 데이에 카드와 사탕을 교환하는 문화가 일부 가정에 재정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며 행사를 취소했다. 미국 시애틀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핼러윈 퍼레이드를 취소했는데, 그 이유는 핼러윈을 축하하지 않는 유색인종을 소외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축제와 기념일 등 일상의 이벤트가 한순간에 취소되는 건 아쉬운 일이자 급진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지금껏 우리가 무엇에 행복을 느꼈고 누구를 배제해 왔는지, 그럼으로써 그 이벤트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IT MATTERS

축제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 옥토버페스트는 바이에른 왕가의 결혼식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전통 문화와 맥주를 즐기는 파티가 되었고, 종교적 의미를 띠던 카니발 역시 세월이 흐르며 신나는 축제로 바뀌었다. 변해 가는 축제에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담는다. 독일의 카니발은 매해 정치 풍자 메시지를 담고, 퀴어 문화 축제는 평등을 이야기하며, 여름의 록페스티벌은 젊음과 자유를 나타내고, 옥토버페스트는 전통을 상징한다. 상징 속의 메시지는 그때그때 사람들이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것을 배제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옥토버페스트가 지켜가고 새로 만들어갈 전통도 모습을 바꾸며 이어질 것이다.

축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즐기고 사랑하고 행복하기 위해서,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삶의 목적을 찾고 살아가기 위해서 축제는 멈출 수 없다. 지금 벌어지는 갈등은 축제가 지속 가능하게 변해 갈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래서 우리는 축제 속에 담긴 갈등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한국의 놀이공원과 유치원, 지자체 등에서 핼러윈 관련 행사가 사라졌다. 추모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그날의 아픔을 떠올리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 괴로운 일이기에 조용한 추모의 시간을 가지는 것 역시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 ‘너무 이르다, 이제는 충분하다’ 등 많은 말의 진통을 겪은 후 핼러윈 축제는 언젠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새로 시작할 축제에는 참사 이전과 다른 목소리가 담길 거라는 점이다. 자유와 행복, 그리고 안전을 말하는 축제가 이태원에서 다시 열릴 수 있기를 바란다.

백승민 에디터
#explained #사회
[1]
인종적 편견과 차별 등에 대한 경고로써 정치적으로 ‘깨어 있음(woke)’을 의미하는 말이다. 2020년에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등장한 이후 미국 보수 진영은 사회가 ‘깨어 있는’ 것이 위협적이라고 말하며 woke를 경멸과 조롱이 섞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등을 중심으로 woke에 반대하는 안티 워크(Anti-Woke) 전략이 채택되고 있다. 이들은 환경 규제를 비판하고 LGBTQ 운동을 거부하는 등의 스탠스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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