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폰트 사용
타이포 전쟁이 격하게 벌어지는 곳은 읽기를 사업의 핵심으로 두는 곳이다. 언론사와 출판계가 그렇다. 가독성이라는 본연의 임무와 익숙한 것에 대한 독자들의 선호, 그럼에도 새로운 것에 끌리는 디자이너의 본능, 타이포그래피가 담는 브랜딩 효과 사이에서 디자이너들은 원칙을 지키면서도 차별화를 위해
노력한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천천히 폰트의 크기를
키우고, 매체의 성격에 맞는 최적의 서체를 개발해
이용한다. 종이 신문을 없애려 했던 《가디언》은 오히려 신문에 사용하던 서체를 웹사이트에도 적용하며 디지털 공간에서 ‘고유의 성격과 목소리’를
구현한다. 원칙과 혁신을 동시에 취하려는 매체들에게 디자인은 숙제이자 해결책인 것이다.
새로운 읽기
스크린 안에서 타이포 실험이 이뤄지는 만큼, 인쇄 매체 안에서도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협업은 시도되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 교육 과정에서는 스크린 매체의 시각적 요소를 종이책에 옮기거나 선형적인 소설을 배치를 바꾸어 비선형적으로 구성하는 등의 수업이
이루어진다. 디자인적 요소를 강조하는 출판사는 이미 전통적인 바탕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체를 종이책의 본문에 적용하고
있다. 읽기의 경험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우리의 읽는 경험을 혁신한다.
IT MATTERS
1800년대, 혹은 그 이전의 자료까지. 인류는 언어로 이루어진 가치 있는 정보들을 디지털화하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 언어로 이루어지고 설명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의 생활을 효율적이게 만든다. 아무리 오래된 콘텐츠라도 검색되고, 어떠한 참고문헌이라도 접근할 수 있는 하이퍼텍스트 시대가 왔다. 절판 개념이 없는 디지털 자료는 무한 레퍼런스가 된다.
텍스트의 양이 점점 더 많아지는 지금, 읽히고 싶은 누군가는 읽기의 경험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고민의 핵심에 두게 된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말하는 주체를 드러내기 위해 누군가는 서체를 강조할 것이다. 반면 주체보다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보수적인 타이포를 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변화하는 매체 사이에서 타이포그래피는 우리의 읽기 경험을 어떤 방향으로든 더욱 진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거라는 점이다.
문자는 고정된 것일까. 기역, 니은이라는 개념은 고정돼 있지만 그 개념이 실현되는 양상은 변한다. 글자를 이루는 획은 더 두꺼워질수도, 가늘어질 수도 있다. 글씨의 크기가 더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다. 디자이너, 교정지를 보는 편집자, 쓰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글자를 가만 두지 않음으로써 읽는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 우리의 읽기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