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적 발전의 길고도 느린 죽음
4화

발전 없는 국가의 초상

일할 수 없는 대중은 어디로 가는가


물론 브라질의 석유 기업 페트로브라스(Petrobras), 러시아의 가스프롬(Gazprom), 또는 나이지리아의 NNPC 유한 회사와 같은 기업은 각각의 국가에서 나름의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국 내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흡수하지 못했다. 원자재는 저숙련 노동자와 고숙련 노동자를 적절한 임금 내에서 아주 많이 흡수하는, 특히나 저숙련 노동자를 많이 흡수하는 제조업을 결코 대신할 수 없었다. 따라서 원자재 호황기에도 수많은 실직자가 양산됐다. 원자재 호황기와 동시에 진행된 탈산업화와 탈농업화(이는 대규모 인구 증가와 맞물리기도 했다) 역시 실직자를 크게 늘렸다. 이들 대부분은 카라치, 리마, 자카르타, 라고스, 카이로와 같은 거대한 슬럼 지구에 모였다.

자연스럽게 이러한 잉여 노동력은 경제학자들이 상당히 완곡하게 “서비스 부문”의 일부라 분류하는 불투명한 경제 집단으로 흡수됐다. 대중들의 상상 속에서 이러한 서비스 노동자들의 전형은 인도의 방갈로르(Bangalore)나 필리핀 마닐라의 콜센터 노동자와 IT 전문가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인도와 같은 나라를 위한 “서비스업 주도 발전”이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하게 만든 원인이 바로 이렇게 아웃소싱되고 글로벌화된 다양한 노동력이다.[1] 그러나 이렇게 비교적 숙련된 노동력보다 훨씬 더 흔한 것은 다른, 더 평민적인(plebeian) 것이다. 비공식적이며 임시적이고, 생산성이 낮은 비정규직 형태가 가난한 도시의 사회적 지형을 규정하게 됐다. 네덜란드의 사회학자인 얀 브레만(Jan Breman)은 인도 구자라트(Gujarat) 남부의 고용에 대한 연구에서 이러한 비공식 부문의 노동자들을 가리켜 “임금 수렵 채집인(wage hunters and gatherers)”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무면허 택시 운전사들, 길가의 과일 행상들, 무소속 짐꾼들, 멈춰 선 차량의 유리를 닦아주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 잎담배를 말아 파는 사람들, 걸인들, 넝마주이들, 의류 재판매상들, 소액 사기꾼과 도둑들, 시장의 짐꾼들, 그리고 일반적인 비숙련 일용직들이다. 이들은 카불에서부터 카빈다와 마나과에 이르는 수많은 도시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2] 이러한 저숙련 서비스 노동자들의 수는 고숙련의 공식 부문 노동자보다 훨씬 더 많다. 예를 들자면, 1991년 자유화 프로세스가 개시된 이후 인도에서 창출된 수억 개의 일자리 가운데 약 90퍼센트가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IT 산업이 아니라 “비공식 부문”이었다.[3]

때로는 이들에게 “마이크로 기업가(micro-entrepreneur)”라는 그럴듯한 명칭이 붙기도 한다. 이는 에르난도 데 소토가 비공식 일자리를 관료주의에 대항하는 “보이지 않는 혁명”이라고 찬사를 보내며 처음 시작됐다. 2000년 이후에는 소액 대출을 빈곤 퇴치의 묘수로 여긴 전도사들에 의해 다시 채택됐다. 그러나 이러한 지지와는 반대로, 비공식 일자리는 사실상 잉여 노동자에게는 막다른 길이다. 가난한 세계에 만연한 임시직 일자리는 대량 실업에 대한 치료법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규모의 불완전 고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설령 통계학자들이 그 둘을 구분한다고 하더라도, 사실 임시직 일꾼과 실업자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따라서 가난한 세계의 나라의 경우, 노동자의 수는 지나치게 많지만, 그들을 투입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는 지나치게 적다. 이 상태에서 빈곤국은 놀라울 정도로 넘쳐나는 노동력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렇게 저렴한 노동력의 풍부함은 인적 자원의 비생산적인 활용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자면, 파키스탄의 중산층 가정이 일상적으로 여러 명의 가정부를 고용할 수 있다거나, 아랍어로 “하야틴(hayateen·벽에 기대어 있는 남자들)”이라고 부르는 무기력한 젊은이들이 어디에나 즐비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4] 공식적인 일자리를 향한 절박함은 이러한 사회 어디에나 존재하며, 이는 심지어 말단 일자리를 놓고도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진다. 2015년에 인도 북부의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 주 정부는 368명의 서기직을 충원한다는 공고를 게시했는데, 무려 230만 개의 지원서가 접수됐다.[5] 특히 인도에서는 끔찍한 취업 시장 이야기가 무수히 존재한다. 카타르 항공과 같은 기업의 채용 전형에는 일반적으로 수천 명의 지원자가 몰리는데, 면접 센터 밖에는 수많은 인파가 줄을 서지만 무더기의 사람들이 면접의 기회를 얻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6]

이들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의 생계 수단은 암울하다. 많은 가난한 나라들에서 금융 신용 거래(financialized credit)가 발전하면서 빚이 하나의 생존 수단이 됐다. 브라질에서는 가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2004년 18퍼센트에서 2021년 말에는 60퍼센트가 됐다.[7] 빈곤국의 이러한 “조기 금융화”는 때로 매우 약탈적인 성격을 취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국가들에서는 피라미드 사기가 급속히 늘었는데, 일자리가 없고, 불완전한 취업 상태의 젊은이들은 완벽한 타깃이 됐다. 2017년의 한 연구는 나이지리아 학생들의 70퍼센트가 최소 한 차례 이상 피라미드 상품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밝혔다.[8] 이런 나라들에서 보이는 비트코인 및 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의 인기는 (국가적) 기능 장애의 산물이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는 비트코인을 일찌감치 받아들였는데, 이는 피라미드 사기 회사인 ‘MMM’에 의해 주도됐다. 참고로 MMM이 처음으로 대규모의 희생양을 발견한 곳은 1990년대에 고통을 받고 있던 러시아였다.[9]

이러한 일자리는 단지 특별히 볼품없다거나 수익성이 없는 것만이 아니다. (노동의 열악함에 대해서 말하자면) 중국이나 한국의 초기 산업화를 정의했던 노동 착취 현장의 일자리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이러한 비산업화 또는 탈산업화된 가난한 사회를 규정하는 서비스 노동의 문제는 그런 나라들이 부유해질 수 있는 경로를 거의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서비스 일자리는 산업화와 달리 성장을 견인하지도, 생산성을 강화하지도 않는다. 인도의 “서비스업 주도의 발전” 모델은 동아시아 경제권에서 볼 수 있었던 급속한 도약과 역동성을 성취하지 못했다. 심지어 하이데라바드나 벵갈루루에서조차도 말이다. 이들 도시는 기술 부문이 제조업 및 농업과 같은 규모로 노동력을 (특히 저숙련 노동력을) 흡수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했다. 르완다가 추진하고 있는 비슷한 서비스업 기반의 모델은 제조업을 “뛰어넘어서” 서비스업으로 직행하겠다는 계획으로, “인공지능 및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아프리카의 선도적인 허브”가 되겠다는 장대한 약속을 하고 있다. 권위주의적 안정성과 원조자의 지속적 관심 덕에 르완다는 동아프리카의 이웃 나라들보다는 더 나은 성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 역시 르완다를 유의미하게 발전된 경제로 변모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는데, 2021년 기준으로 르완다의 1인당 GDP는 아이티나 바누아투보다도 낮았다.[10] 르완다의 뛰어넘기 모델을 다룬 한 연구에서 결론 내린 것처럼, “‘현대적인’ 서비스 성장으로부터 얻어지는 자동적인 ‘낙수 효과’는 없다.”[11]

 

일꾼, 이민자, 군인


농업과 산업에 의해 버려지고 서비스 일자리에 의해서도 완전히 흡수되지 않은 잉여 노동이라는 경제적 문제는 곧 사회적 문제가 된다. 직업을 얻지 못하고 불만을 가진 하야틴은 제3세계 사회의 불안정을 부른다. “젊은이의 급증”과 높은 청년 실업률, 그리고 사회적 불안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수십 년 동안 연구가 진행돼 왔는데, 청년 실업을 크게 줄인 사회만이 그러한 불안을 겨우 모면할 수 있었다. 문제가 극에 달하면 불만을 가진 젊은이들은 나라의 주권을 두고 국가와 경쟁하는, 다양한 형태의 범죄 집단이나 반군 단체의 병사가 됐다. 예를 들자면, 엘살바도르나 온두라스의 마라 살바트루차(MS-13), 멕시코나 콜롬비아의 마약 밀매 그룹, 아이티의 G-9을 비롯한 범죄 조직, 무슬림 세계의 보코하람(Boko Haram)이나 이슬람국가(IS)  등이 있다. 소말리아의 알-샤바브(al-Shabaab)는 그 이름부터가 “청년”이라는 의미이다. 조금 더 일상적인 곳을 보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불완전한 고용 상태에 놓인 젊은이들은 범죄 폭력과 도심 시위의 인력이 된다. 예를 들자면, 나이지리아 북부의 소자보이(sozaboy·군인 소년)라는 하위문화부터 남아프리카의 주마(Zuma) 시위나 인도의 도시에서 가끔 발생하는 분리주의자의 학살을 들 수 있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그리고 2011년 카다피의 리비아가 몰락하면서) 가난한 국가에는 첨단 무기가 대거 유입됐는데, 휴대 전화와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정보화 시대의 도래는 또 다른 불안정 요인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새로운 세력의 불안정한 잠재력을 더욱 강화할 뿐이다. 특히 점점 더 힘을 잃어 가는 국가의 경우, 해당 정부는 그들 자신의 영토조차도 거의 통치하지 못한다.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적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요한 “방출 밸브”는 해외로의 이주다. 대부분의 이주는 국가 내부에서의 이동이거나 계절적인 형태를 취했다. 농업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시골 출신의 인도인들이 건설업의 비공식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도시로 이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국가적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점점 더 많은 이주가 국제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특히 1980년 이후의 기간은 전 세계적인 이주가 가속화했던 시기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구가 이동했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국제 이주민의 수는 83퍼센트로 증가해서(참고로 1960년부터 1980년까지는 30퍼센트 증가했다) 무려 1억 7200만 명이 되었다. 이러한 가속화는 2000년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2015년에는 국제 이민자의 전체 규모가 거의 2억 5000만 명에 이르렀다.[12] 이러한 경제적 이민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목적지는 예상대로 유럽의 부유한 국가, 미국, 러시아였지만 아이티인은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아프간인은 이란으로, 부르키나베인은 코트디부아르로, 짐바브웨와 모잠비크 출신 이민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이주했다. 즉, 상당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곳을 떠나 비교적 부유한 이웃 국가로 유입된 것이다.

1980년대 이후의 “새로운 이주”는 이주민들이 떠나는 장소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주 노동자들이 더욱 높은 임금을 찾아 외국으로 떠나면서, 그들이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송금액이 경제 전체의 생명줄이 됐다. 1976년에 엘살바도르가 해외로부터 받은 송금액은 GDP 대비 약 0.5퍼센트였다. 2020년이 되자 그 수치는 24.1퍼센트로 증가했는데, 대부분은 미국에 있는 대규모의 엘살바도르 이주민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케랄라(Kerala)와 같은 인도 남부에서도 동일한 일이 벌어졌다. 건강과 복지 지표가 좋은, 인도에서 선진적인 지역인 케랄라의 경제는 현재 지역의 젊은 남성들을 페르시아만에 계약 노동자로 수출하는 것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인구의 이동으로 인해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와 같은 걸프 지역의 군주국들이 전 세계에서 남성 인구를 가장 많이 보유한 반면, 케랄라는 인도의 대형 지역들 가운데서도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은 유일한 지역이 됐다.) 필리핀, 네팔, 우즈베키스탄, 과테말라, 자메이카, 코소보를 포함하는 여타의 나라들도 국외의 송금액이 자국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며, 또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13]

 

동아시아의 길을 밟을 수 있을까


그리하여 가난한 세계의 나라들은 과거 산업화에 뒤늦게 성공한 나라들과는 현저하게 다른 상황에 처해 있다. 글로벌 경제 상황이 바뀌었다. 산업화의 전통적인 “플라잉 기스 모델(Flying Geese Model·안행형 모델)”은 산업화를 이뤄 내려는 국제적인 “대기 줄”이 있다는 암묵적인 전제하에, 상품을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노동력이 풍부한 나라에서는 제조업이 확산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이제 이런 모델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다. 로드릭을 비롯한 이들이 지적하듯, 산업화의 물결은 점차 약화했다. 19세기 미국, 1950년대 일본, 1990년대 중국 등의 성공적인 산업화 국가보다 현대의 국가들은 자국 시장에 대한 통제력이 떨어진 상태다. 글로벌 경쟁이 심화했기 때문이다. 또한, 글로벌 성장률의 장기적인 둔화와 부의 불평등, 부유한 국가의 인구통계학적인 변화와 연관돼 세계적인 수요도 변했는데, 이는 소비자 수요의 감소로 이어졌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가장 중요할 텐데, 노동력을 절감해 주는 자동화로 인해 제조업에서의 노동 강도가 약해졌다. 만약 기업가들이 “바느질 로봇”을 비롯한 기계들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낸다면, 앞으로는 이러한 추세가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오늘날의 가난한 사회는 이전의 산업화 후발주자들과도 상당히 다르다. 1960년대의 한국이나 1980년대의 중국은 대부분 농업 사회였으며, 대부분의 지대 추구 세력들이 결함은 있지만 일관된 발전주의 엘리트 연합에 의해 강력한 통치를 받고 있었다. 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은 그러한 농민들을 두고 “방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잠재적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고 썼다. 그들이 낮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빠르게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높은 국가 역량의 산물이었는데, 높은 국가 역량의 산물 역시 다양한 요인의 산물이다. 우선 이들 나라에서는 농촌 지주들이 이주하면서 지주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웠다. 이들 국가는 튼튼한 사회 체제에 기반을 두고 폭력을 강력히 독점하고 있었고, 국내의 엘리트는 국가와 기업 사이를 효과적으로 조율했다. 이들은 단지 국가가 기업에 도움을 주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기업을 단속할 수 있게도 해줬다. 그리고 이들의 노동력은 성공적인 교육과 공중 보건 정책 덕분에 비교적 숙련돼 있었고 건강했으며, 제조업으로 흘러들 수 있는 저렴한 노동자도 풍부했다. (전 세계적) 여건이 바뀌었고, 산업 정책의 전술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는 수입 대체 정책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도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의 산업화 후발 주자들이 이러한 성공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실용적이며 전략적인 발전주의 정치 연합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조건이 현재의 가난한 세계에서도 재현될 수 있을까? 궁극적으로 이것은 단지 경제학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각국이 고소득 상태로 빠르게 이동하는 경우 볼 수 있는 엘리트 연합을 모방할 수 있는지의 여부, 즉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투자를 하고, 그에 따른 희생에 필요한 세력 간의 협상을 할 수 있는 엘리트 연합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글로벌 발전에 대한 그림에서 비교적 밝은 지점도 있다. 예를 들어서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의류 수출국으로 탁월한 존재감을 드러낸 방글라데시, 그리고 어쩌면 최근 몇 년 동안 개혁주의가 중심이 된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예상치 못한 지역들이 그러한 도약을 이뤄 낼 가능성이 있다. 혹은 베트남처럼 이미 부분적으로 그것을 일부 성취한 곳도 있다. 특히 베트남은 복잡한 제조 기반을 갖춘 중진국 지위로의 전환에 성공한 사례로서 중국이나 폴란드만큼이나 연구할 가치가 있다. 베트남은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대의 중국에 비해 부패와 불평등이 적었고, 중국의 기적에 버금가는 강력한 제조업 주도 성장을 보여 줬다. 중국만큼이나 소득이 크게 늘어난 개발 체제 아래에서 중국과 거의 일치할 정도의 성장률을 보였다. 희망이 있는 다른 국가들에서도 전망이 긍정적이지만, 각자의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방글라데시는 기성복 의류의 수출에서 상당히 성공을 거뒀지만, 중국, 한국과는 달리 제조업 분야는 여전히 (일반적으로 무조건적인 생산성 수렴이 적용되지 않는) 소규모의 비공식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14] 한편, 고부가가치 상품으로의 다각화는 어려운 것으로 입증됐다. 2019년에 방글라데시의 제조품 수출 가운데 겨우 2퍼센트만이 중고도 기술로 분류됐는데, 그에 비해 1990년의 중국은 28퍼센트, 2000년의 베트남은 21퍼센트였다.[15]

이러한 상대적인 성공 사례나 방글라데시와 같은 잠재적 미래를 가진 나라에 주어진 도전 과제는 반드시 빈곤만이 아니라, 아르헨티나나 터키처럼 한때 번성했던 경제와 관련된 ‘중진국의 함정(middle-income trap)’이다. 특히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는 모두 이 함정에 취약하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는 중국과 거의 비슷한 성장세를 보였던 그들을 궤도에서 이탈하게 만들었고, 이후 그들은 다양한 강도로 조기 탈산업화를 겪었다. 그 함정을 벗어나려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한국의 엘리트들이 보여 줬던 것과 비슷한 접근법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은 저숙련 고강도의 제조업으로부터 고숙련 하이테크 제조업으로 전환했으며, 그러면서 현대 및 삼성과 같은 “국내 1등” 기업들을 세계 최고의 지위로 이끌었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더욱 숙련된 노동력을 양성해야 하고, 기존의 국가가 중진국 지위로 도약하는 데 있어 초기에 도움을 줬던 원래의 발전주의 정치 연합에도 도전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는 대부분의 국가가 성공하지 못하는 어려운 전환이다.

멕시코, 브라질, 이집트, 러시아처럼 중진국의 지위를 결코 벗어나지 못한 나라들에서는 상황이 더욱 암담하다. 이들 나라에서는 새로운 발전주의 정치 연합의 출현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중진국의 함정에 오랫동안 갇힌 탓에, 비생산적인 지대 추구(rent seeking) 행위를 지향하는 대기업이나 엘리트 그룹이 고착화했다. 이들은 발전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이들 국가는 더 이상 이러한 임대업자 엘리트 집단으로부터 자율적이지 않으며, 그들을 상대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도 거의 없다. 그들의 경제적 궤적은 작가 알렉스 호출리(Alex Hochuli)가 “브라질화(Brazilianization)”라고 부른 것으로 수렴된다. 이는 “현대적이지만 충분히 현대적이지 않은 상태”로, 중간 수준의 소득에 머무는 상대적 침체와 비공식성의 증가, 지대 추구, 불평등의 증가, 원자재에만 의존하는 탈복잡화된 경제, 그리고 자국민으로부터 점차 더 고립되는 엘리트 계층을 의미한다.[16] 인도는 고도로 분권화된 나라로, 문화 및 언어의 측면에서 지역별로 중국보다 훨씬 더 다양한 지역적 특색을 갖고 있다. 인도의 경우 지역의 대지주부터 뭄바이를 장악하고 있는 부동산 위주의 지역 체제에 이르기까지, 지역과 전국의 지대 추구 세력들이 여전히 권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 인적 자본의 불균형적인 혼합, 그리고 국가와 시장 사이의 열악한 협업과 같은 여러 다른 이슈까지 맞물렸다. 인도 역시 유사한 궤적, 즉 성장률은 높지만 소득 수준은 훨씬 더 낮은 상태를 마주하고 있다.[17]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다른 아프리카의 국가처럼 여전히 더욱 가난한 나라에서는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 대체로 그곳에서는 기본적으로 지대 추구 세력의 패권 통치에 대한 도전이 없다. 실질적으로 그들이 국가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으며, 따라서 경제를 유의미하게 발전시키거나 다른 형태의 산업화를 배양해야 할 유인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국가는 임금이 낮고 젊은 인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제조 부문을 건설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 실제로 거의 모든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노동자 한 명당 인건비가 방글라데시보다 높다. 심지어 1인당 GDP가 훨씬 더 낮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나마 견줄 만한 경쟁국들 가운데에는 오직 에티오피아만이 근접해 있었지만, 2017년에 발표된 아프리카의 인건비에 대한 연구에서 “정치적 불안”이 에티오피아의 “산업화를 이탈하게” 만들 수 있다며 진지하게 경고했다.[18] 설령 상황이 더 나았다 하더라도, 이러한 저소득 국가들에서의 산업화 가능성은 여전히 낮았을 것이다.

이러한 그림은 국가의 역량이 약화하고 있으며 많은 지역에서 국가의 무력(violence) 독점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로 인해서 더욱 암담해진다.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들은 증가하는 범죄와 폭력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최악의 사례인 아이티의 경우, 정부가 범죄 조직, 민병대, 군벌에 의해 완전히 주권을 상실했고, 이제는 정치적 거버넌스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부분적으로 이는 1950년 이후 수십 년 동안 급격히, 때로는 왜곡된 채 진행된 사회 현대화 과정의 산물이다.

전통적 공동체가 가능케 했던 사회적 자율 규제 기능을 박탈당한 슬럼 사회는 농업 사회와는 다른 방식으로 통치할 수 없다는 사실이 종종 입증되곤 한다. 1949년에 아이티의 수도인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를 방문했던 에드먼드 윌슨(Edmund Wilson)이라면 그곳을 회상하며 “오물도 없고, 악취도 없으며, 혐오스러운 광경도 없는” 마치 “어느 이탈리아의 마을”과 같았다고 묘사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1970년에 (자이르의) 킨샤사에 살았던 어느 미국인[19]은 그곳을 (뉴욕의) 브롱크스와 견주면서 “브롱크스의 길거리에서 킨샤사의 모든 곳에서 들었던 것보다 강도와 약탈과 범죄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들었다”고 썼는데 [20], 역시나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그 누가 보더라도 이들 사회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적 질서와 국가의 정당성이 와해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모부투, 시아드 바레, 보카사의 정권이 아무리 부패했고 혐오스럽고 잔인했다고 하더라도, 콩고, 소말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같은 나라들은 수십 년 전에는 정치적으로 주권국이었으며 절반 정도는 기능을 갖춘 체제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오늘날 그곳은 모가디슈가 알-샤바브에게 함락되는 것을 막으려는 아프리카연합(AU)의 군대, 사헬(Sahel) 전력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 병력,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전역에 개입하고 있는 러시아의 용병들인 와그너 그룹(Wagner Group) 등 외국의 군대들부터, 의도는 좋았다 하더라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힘든 서방의 수많은 인도주의 단체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외부 기관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그들 국가가 너무 약해서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위기들을 매년 분류해야만 한다. 그러나 국가의 역량을 점차 상실한 이들 국가는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서방의 개발 전문가들이 내린 합의 때문이다. 역사학자인 이드리사(Idrissa)는 서방의 전문가를 두고 “그 나라를 강화하는 방법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어떻게 하면 더 약화할 것인지에 대한” 전문가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들이 엘리트의 협업 및 정치경제학과 같은 더욱 도전적이며 현지의 상황에 민감한 질문들보다는 비정부기구 및 학술 연구팀에 의해 수행될 수 있는 무작위 대조 시험RCT과 같은 소규모의 개입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21]

불안정, 폭력, 그리고 국가 역량의 상실은 발전에 대한 가장 희망적인 시도에도 독이 될 수 있다. 만약 2010년대에 아프리카에서 진정으로 밝은 지역이 있었다면, 그곳은 바로 에티오피아였다. 에티오피아는 2004년부터 2018년까지 계속해서 여느 나라들과 견줘도 높은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일당 국가가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하며 수출 지향적인 산업 발전을 추구하는 중국식 모델을 모방하려는 투명한 시도도 있었다. 그 성과는 상당했다. 에티오피아의 1인당 실질적 GDP가 2005년부터 2020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증가하면서,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전반적인 수준보다 대략 11배나 빠른 성장률을 기록했다.[22] 그러나 에티오피아의 안정성은 중국이나 한국에서처럼 견고한 권력 국가의 기반 위에서 수립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다양한 인종의 엘리트 사이의 복잡하며 지속적인 협상에 근거한 것이었다. 멜레스 제나위(Meles Zenawi)의 개발주의 정권은 이러한 협상을 주관하고 있었다.[23] 2012년 멜레스의 사망 이후 몇 년 동안 서서히 붕괴된 이러한 “인종 연방주의”는 2020년 말에 잔혹한 내전이 발발하면서 최악을 맞이했다. 이 사태로 인해 북부 지역은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다른 지역도 영향을 받았다. 수십만 에티오피아인들의 죽음, 방대한 규모의 인프라 파괴, 국가의 정당성에 대한 도전, 그리고 멜레스가 주관하던 엘리트 인종 협상의 종말은 에티오피아가 “아프리카의 중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에 낙관적이었던 분위기에 갑작스러운 침묵을 가져왔다.[24]
[1]
 “서비스 주도의 발전” 모델에 대한 간략하지만 유용한 개요는 다음을 참조하라. Tim Barker, 〈The End of Development〉, 《Dissent》 Spring 2021.
[2]
Jan Breman, 《Wage Hunters and Gatherers: Search for Work in the Urban and Rural Economy of South Gujarat》, Oxford University Press, 1994.
[3]
Prachi Salve, 〈Data Check: 90% of Jobs Created in India after Liberalisation Were in the Informal Sector〉, Scroll, 2019. 05. 10.
[4]
Malcolm Potts, Aafreen Mahmood, and Alisha A. Graves, 〈The Pill is Mightier Than the Sword〉,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Policy Management》4(8), 2015, p. 508.
[5]
Sharat Pradhan, 〈Desperate 2.3 Million Indians Apply for 368 Low-Level Government Jobs〉, Reuters, 2015. 09. 18.
[6]
Guarav Joshi, 〈Qatar Airways Mumbai Recruitment Draws Huge Crowds, Applicants Sent Away〉, Simple Flying, 2022. 09. 30.
[7]
Guilherme Leite Gonçalves and Lena Lavinas, 〈Rentier Brazil〉, 《New Left Review》, 2022. 01. 19.
[8]
J. P. Koning, 〈Ponzis and Bitcoin as a Response to a Bad Economy: The case of Nigeria〉, Moneyness, 2021. 02. 22.
[9]
Chelsea Barabas, 〈Bitcoin’s Rise in African Markets is Driven by an Old Russian Ponzi Scheme〉, Quartz, 2017. 10. 13.
[10]
르완다의 “뛰어넘기(leapfrogging)” 시도에 대한 사례로는 다음을 참조하라. Proto, 〈Canadian AI firm Proto Invests $1M in Rwanda for Africa Expansion〉. 르완다의 낮은 인구 1인당 생산량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World Bank Data, 〈GDP per Capita, PPP (Constant 2017 International $)—Rwanda, Haiti, Vanuatu〉.
[11]
Pritish Behuria and Tom Goodfellow, 〈Leapfrogging Manufacturing? Rwanda’s Attempt to Build a Services-Led ‘Developmental State’〉, 《The European Journal of Development Research》 31, 2018, p. 600.
[12]
World Bank Data, 〈International Migrant Stock, Total〉.
[13]
World Bank Data, 〈Personal Remittances, Received (% of GDP)—El Salvador, Philippines, Kosovo, Nepal, Jamaica, Uzbekistan, Guatemala〉. 케랄라의 해외 송금액 의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Justin Sunny, Jajati K. Parida, and Mohammed Azurudeen, 〈Remittances, Investment and New Emigration Trends in Kerala〉, 《Review of Development and Change》 25(1), 2020, pp. 5–29.
[14]
Dani Rodrik, 〈Prospects for Global Economic Convergence under New Technologies〉, Brookings Institution Global Forum on Democracy and Technology, 2022, pp. 77–78.
[15]
World Bank Data, 〈Medium and High-tech Exports (% Manufactured Exports) – Vietnam, Bangladesh, China〉.
[16]
Alex Hochuli, 〈The Brazilianization of the World〉, 《American Affairs》 5(2), 2021, pp. 93–115.
[17]
부동산 위주의 지대 추구 세력들이 장악한 “작당 도시”로서의 뭄바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Patrick Heller, Partha Mukhopadhyay, and Michael Walton, 〈Cabal City: Urban Regimes and Accumulation without Development〉, 《Business and Politics in India》, Oxford University Press, 2019, pp. 151–82.
[18]
Aflan Gelb et al., 〈Can Africa Be a Manufacturing Destination? Labor Costs in Comparative Perspective〉, 《Center for Global Development Working Paper》 466, 2017.
[19]
(역주) 에드먼드 윌슨(Edmund Wilson)
[20]
Edmund Wilson, 《The Forties》, Straus and Giroux, 1987, p. 290; William Borders, 〈Kinshasa: Streets Safer, but Oh, the Graft〉, 《New York Times》, 1970. 06. 27.
[21]
Rahmane Idrissa, 〈The Sahel: A Cognitive Mapping〉, 《New Left Review》 November/December 2021, p. 36.
[22]
Our World in Data, 〈Change in GDP per Capita〉. 중국 산업화의 가장 빠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성장은 상당히 불균형했으며, 전반적으로 빈곤 감소는 다소 미미했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에티오피아의 “극빈층(extreme poverty)” 비율은 53퍼센트에서 43퍼센트로 떨어졌고, “극도로 가난한(extremely poor)” 사람들의 수는 상승했다. World Bank Poverty and Inequality Platform, 〈Country Profile: Ethiopia〉.
[23]
이러한 엘리트 합의의 개요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Yohannes Gedamu, 《The Politics of Contemporary Ethiopia: Ethnic Federalism and Authoritarian Survival》, Routledge, 2021. 다음도 함께 참조하라. Samuel Assefa, 〈Crossing the Tekeze〉, Sidecar, 2021. 03. 10.
[24]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Tyler Cowen, 〈Ethiopia Already Is the ‘China of Africa’〉, Bloomberg, 2018.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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