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맥주

2023년 11월 2일, explained

신기술과 문화 전쟁이 맥주 시장을 전장으로 삼았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성소수자 협찬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미국의 대표 맥주 ‘버드라이트’가 마케팅의 방향을 바꿨다. 예전처럼 스포츠와 음악 이벤트 등에 마케팅 화력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UFC와 역대 최대 규모의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하는 등, 버드라이트가 그동안 판매량 부진에 시달리며 멕시코 맥주 ‘모델로’에 추월당한 설욕을 준비하고 있다.

WHY NOW

맥주는 보수적이다. 특히, 소규모 브루어리의 수제 맥주가 아닌, 대량 생산되는 맥주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맥주를 둘러싼 최근의 소식들은 우리의 현재를 반영한다. 우리는 새로운 맥주의 어디부터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범위는 문화적 수용성의 범위와 엇비슷할 수도 있다.
바질 향 맥주를 쉽게 만드는 법

최근 미국에서는 맥주의 혁신이 시험대에 올랐다. 맥주에 과일 향, 허브 향 등을 간편하게 첨가할 수 있고 잡내는 줄인다. 애주가라면 반길 만한 소식이다. 그러나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오히려 이 혁신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맥주 혁신의 정체가 바로 유전자 변형(GM) 효모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버클리 이스트’, ‘오메가 이스트 랩’ 등의 회사가 이미 유전자 변형 효모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한 맥주도 시판되고 있다.

GM 효모가 갈 수 있는 곳

소규모 브루어리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전 세계 맥주 브랜드 가치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하이네켄도 유전자 변형 효모에 관심을 두고 있다. 아직은 실험 단계다. 하이네켄이 소유한 캘리포니아 소재의 브루어리, ‘라구니타스 브루잉’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만약 그 실험이 성공한다면, 그리고 하이네켄이 결단을 내린다면 유전자 변형 맥주는 전 세계 맥주 시장의 패권을 잡게 될까? 불분명하다. 먼저, 각국의 유전자 변형 식품 규제부터 뚫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적 수용성의 벽도 넘어서야 한다.

하이네켄의 비결

사실 하이네켄은 전통을 고수하는 회사다. 창업자 제럴드 하이네켄은 1864년 ‘De Hooiberg’라는 양조장을 인수하며 기술 혁신에 나선다. 파스퇴르의 제자였던 하토크 엘리언 박사를 영입해 하이네켄 특유의 쌉싸름한 맛을 내는 고유의 효모를 개발했다. A-Yeast, 에이효모다. 150년 넘게 하이네켄은 에이효모를 고집하고 있다. 고집스럽게 지켜온 이 맛에 20세기에는 브랜딩이 더해졌다. 인상 깊은 쓴맛에 기발함, 의외성을 덧씌웠다. 또, 포뮬러1, 챔피언스리그 등 각종 스포츠 대회에 적극적인 협찬을 이어갔다. 전 세계 대중에게 초록색 패키지와 빨간 별을 각인시킨 비결이다.


버드라이트의 실패

맥주는 담배처럼 브랜드 이미지를 판다. 하이네켄은 오랜 기간 지켜온 고유의 맛에 걸맞은 창의적인 마케팅으로 독자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 이미지 구축에 실패하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다. 미국의 대표 맥주, ’버드라이트’ 얘기다. 20여 년간 미국 시장 점유율 1위를 수성하던 맥주다. 그런데 마케팅 전략 하나가 삐끗했다. 바로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인 딜런 멀바니와의 협업이다. 아역 배우 출신으로, 2022년 여성으로 성전환한 바 있다. 멀바니의 얼굴이 그려진 캔맥주를 특별제작하며 적극적인 협업에 나섰던 버드라이트는 보수 성향 소비자들로부터 역풍을 맞았다.

궁극의 무난함이 깨져버렸다

버드라이트의 맛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딱히 특징이 없어서다. 강렬한 자극 없이 밋밋하다. 칼로리도, 풍미도 가벼운 이 궁극의 무난함이 버드라이트의 셀링 포인트다. 그런데 여기에 성소수자를 옹호하는 정치적 메시지가 끼어들자, 이 무난한 맛이 깨졌다. 지난 7월에서 9월 사이, 버드라이트를 생산하는 안호이저-부시 인베브사의 올해 매출은 19퍼센트 가까이 추락했다. 정치는 버드와 어울리지 않았다. 버드라이트는 다시 콘서트와 스포츠라는, 고전적인 맥주 마케팅으로 회귀한다. 20년간 지켜온 미국 시장 1위라는 왕좌를, 다시 찾아오기 위해서다.

평범한 사람들, 전통적인 가족 서사

버드라이트를 밀어낸 주인공은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모델로 에스페셜’이다. 우리에겐 ‘코로나’ 맥주로 알려진 미국 주류 회사 ‘컨스텔레이션 브랜즈’의 주력 브랜드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모델로가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광고 전략이라고 분석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광고에 멕시코계 할머니와 손녀가 등장해 전통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맥주에 기대하는 가치

물론, 모델로 맥주의 선전은 급격히 규모를 키우고 있는 미국의 히스패닉 인구와 그 소비력에 기대고 있는 바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수많은 중남미 맥주 중 모델로가 성공한 까닭을 설명할 수 없다. 결국, 맥주 소비자의 문화적 수용성을 버드라이트의 마케팅은 뛰어넘지 못했으며 모델로는 뛰어넘었다는 얘기가 된다. 맥주는 먹거리다. 필수적이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음료다. 조금 취할 수는 있지만, 의심스러운 것이 들어있다면 마실 이유가 없다. 수많은 선택지가 마트에서, 펍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IT MATTERS

우리는 맥주 한 캔에 무던한 시원함, 익숙한 맛과 향을 기대한다. 특별히 골라 마시는 수제 맥주도 있겠지만, 치맥으로는 벨기에 수도원 맥주보다 라거 한 잔이 제격이다. 맥주는 주인공이 아니란 얘기다. 그래서 현재의 세계를 필터 없이 비춘다. 일과 후의 느슨한 시간에 걸맞은 음료로서, 맥주는 우리의 현재를 반영한다.

손쉽게 맥주의 맛을 바꾸는 유전자 변형 효모는, 기술을 이용해 먹거리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인간의 아슬아슬한 욕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드러낸다. 한쪽에서는 유전자 변형 효모로 만든 트로피컬 맥주를 즐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NON- GMO 인증을 받는 맥주 시장의 양분화를 보면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분열로 치닫고 있는 문화 전쟁은 맥주 광고의 메시지를 바꾸었다.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메시지가 함유된 맥주는 거부하고, 전통적인 형태의 인간 서사와 가족의 메시지를 내세우는 맥주의 인기는 치솟았다. 미국 사회의 가치관의 이동이 보인다. 맥주 한 잔이 너무 정치적이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먹고 마시는 우리의 모든 행위는, 일종의 정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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