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 시티의 거대한 그림자
1화

도시 혁명에서 초거대 도시까지

현대의 문제는 도시의 문제다. 그중에서도 초거대 도시, ‘메가 시티’의 문제다.

1. 인류 문명과 ‘도시 혁명’


도시가 사라진 문명 세계, 도시가 없는 역사 발전을 상상할 수 있을까? 도시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시라는 장치는 유사 이래 인류가 만들어 낸 거의 모든 것을 보듬어 온 공간이다. 도시는 인간이 살아가는 만국 공통의 공간 언어이며, 시공을 초월한 모든 문명의 담지자다. 도시의 건물, 기념물, 기록보관소와 공공 기관과 같은 물질적 장치를 통해 인류는 현세대의 문화 자산을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 21세기는 지구의 도시화 비율이 50퍼센트를 넘어선 “첫 번째 도시의 세기(the first urban century)”가 되었으며, 도시가 “인류 최후의 고향”이 될 것이라고도 한다(리더 2006).

장기사적 관점에서 도시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도시가 다수의 인류와 친숙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 지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46억 년에 이르는 지구의 역사나 300만 년에 가까운 인류의 역사와 비교해 볼 때 도시의 역사는 겨우 6000년 정도로 턱없이 짧다. 특히 근대 이전에는 전 지구를 통틀어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처럼 짧은 도시의 역사가 지구와 인류의 장구한 역사에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해 보인다. ‘인류세(Anthropocene)’란 곧 도시가 지구환경에 미친 불가역적 변화를 가리키는 말에 다름 아니며, 기후 위기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도 아마 도시 문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도시는 언제 등장했으며 어떻게 지배적 형태로 자리 잡았을까? 도시의 역사는 인류 문명사에 결정적 전환을 불러온 두 개의 물결인 농업 혁명, 산업 혁명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도시는 농업 혁명과 더불어 출현하여 산업 혁명을 계기로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오랜 기간 막강한 자연의 힘과 광범위한 농촌적 관행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인류 사회는 두 차례에 걸친 ‘도시 혁명(urban revolution)’과 더불어 도시가 주도하는 사회로 변화해 갔다. 농업 혁명의 역설은 그것이 농민에게 반드시 축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농업 혁명으로 말미암아 인류가 정주화하고 잉여 농산물이 출현하면서 역설적으로 농촌과 농민의 삶은 도시에 거주하는 성직자, 정치가, 기술자, 장인, 상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처럼 도농(都農) 간 약탈적 관계 형성과 권력관계의 불균등한 배분 양상은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비약적으로 증폭되었다. 산업 혁명은 기계제 대공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의 생산성 혁신, 생산된 상품을 운송하고 판매하는 유통망 혁신, 그리고 그 모든 경제적 과정을 관리하는 금융과 국가 권력의 비약적 성장을 수반했고, 이러한 변화는 인류사에 획기적인 ‘이촌향도’ 현상을 촉발했다. 자본주의적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도시화(urbanization) 효과가 증폭되면서 현대적 도시의 일반적 형태는 작은 마을(town)이나 소규모 도시(city) 수준을 넘어서 대도시(metropolis, mega-city)가 되었다. 하지만 도시가 농촌을 착취하는 약탈적이고 부정적인 성격만 띠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농촌의 존재가 필요불가결하다. 자본주의적 산업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높은 토지 소득 형태의 풍부한 농업 잉여와 이 소득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강력한 도시 기업가 엘리트의 존재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 도시 산업주의(urban industrialism)의 성패는 그것이 농촌적 토대와 맺는 관계에 달려 있는 것이다(훙호펑·잔사오화 2023: 1237-1269).

도시사가 루이스 멈퍼드(Lewis Mumford)는 고전적 명저 《역사 속의 도시》에서 역사 속에 등장한 다양한 도시들을 유형화하였다. 그중에는 우주론적 도시, 신성한 도시, 실용적 도시, 유기적 도시, 커뮤니티 도시, 산업 도시, 교 통도시, 해변 도시, 내륙 도시, 군사 도시, 위계형 도시, 상업 도시, 행정 도시, 전원 도시, 계획 도시, 중세 도시, 모더니즘 도시, 뉴어버니즘 도시, 친환경 도시, 지속 가능한 도시, 휴먼스케일 도시 등 다양한 형태와 성격을 띤 도시들이 포함된다(멈퍼드 2016). 그는 이처럼 도시를 다양한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다채로운 문화적 창조성을 담아낼 수 있는 가변적인 ‘용기(容器, container)’로 파악했다. 고대 아테네와 로마, 르네상스기 피렌체, 그리고 절대 왕정기 빈과 파리가 그러했듯, 도시는 언제나 시대를 선도하는 변화를 창조하는 다양성과 포용성의 산실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자치 도시들을 일컬어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만든다(Stadtluft macht frei!)”는 표현이 널리 쓰였던 것은 도시의 독특한 분위기야말로 오랜 봉건제의 질곡에 억눌려 있던 농민들을 자유와 해방에 눈을 뜬 근대 사회의 새로운 역사적 주체(‘부르주아지’)로 벼려낸 결정적 요소였기 때문이다.

근대 도시는 한편으로는 앙시앵레짐의 사회 내적 모순 속에서 잉태된 측면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방된 외부 세계와의 소통과 자극을 통해 촉발된 측면도 있다. 근세 유럽 사회를 근대화라는 환골탈태의 길로 이끈 변화의 진원지인 자유 도시는 지리상의 대발견 이후 비약적으로 팽창한 자본주의 상업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전 지구적 소통과 교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아날학파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중상주의 시대 유럽 중심적 해양 네트워크의 형성 과정에서 현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원형을 발굴해 낸 바 있다. 그는 도시야말로 이러한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을 이끈 주인공이라고 보고, 도시를 다양한 문명의 소통이 촉진되는 ‘변압기’에 비유했다. 그는 근대 유럽사의 흥기에 미친 도시의 결정적 영향을 강조하여 “모든 위대한 시기는 도시의 팽창으로부터 표현된다”고 주장했다(브로델 2001).

 

2. 현대 도시의 탄생: 거대 도시화와 세계 도시화


문화적 다양성과 개방성, 자유로운 분위기와 사회적 활력은 시공을 초월하여 도시가 지닌 보편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도시의 특성을 포착해 내려면 그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전근대 도시와 비교해 볼 때 근현대 도시가 지닌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게 되는 것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된 ‘규모’와 ‘연결망’이다. 산업 혁명 이후 지속적인 생산 혁명, 유통 혁명, 금융 혁명을 거치며 비약적으로 성장해 온 제조업과 상업, 금융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도시는 거대한 인구 집단을 수용하는 생산과 관리의 장치(device)이자 소비와 주거의 기계(machine)로 변모했다. 또한 현대 도시는 급속히 발전하는 교통과 통신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고 시공의 제약을 뛰어넘어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유비쿼터스 도시로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 왔다. 그 결과 현대 도시는 ‘거대 도시(metropolis)’ 이자 ‘세계 도시(global city)’가 되었다.

오늘날은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초거대 도시(mega-city)도 드물지 않지만, 근대 이전에는 인구 100만 명 규모의 거대 도시도 매우 드물었다. 1800년 이전에 존재한 도시 중 오늘날의 대도시에 필적하는 규모와 연결망을 갖춘 도시를 꼽아보면, 고대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장안, 베이징, 11세기에서 13세기까지의 바그다드, 항저우, 그리고 아마도 파리와 런던, 그리고 18세기 일본의 에도 정도를 들 수 있겠지만(천상밍· 헨리 피츠 2023: 1480), 그마저도 인구 규모는 대부분 100만 명이 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에 비해 현대의 초거대 도시화 현상은 단순히 도시 인구의 양적 증가라는 차원을 넘어서 도시화의 구심적 경향과 원심적 경향이라는 양면성을 띤, 한층 더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도시 변동 양상을 보여 주었다. 거대 도시의 구심화 경향이 시가지의 공간적 팽창과 더불어 도심(또는 부도심)을 중심으로 도시의 에너지·교통·위생·행정·정보·생활·문화적 기반 설비가 고도로 집중·집적됨으로써 주변 지역에 대한 지배력의 우위를 확보하는 경향이라면, 원심화 경향은 시가지 확장과 더불어 교외화(중산층 거주지화)와 슬럼화(주거 불평등과 사회적 분리)라는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양면적 경향이 동시에 강화되는 양상을 지칭한다.

후기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 세계 주요 도시권들은 이처럼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변수들의 작동 속에서 메타 도시, 하이퍼 도시, 슈퍼도시, 네트워크 도시, 클러스터 도시, 도시 회랑(urban corridor), 초거대 도시 지역(mega-city region) 등 다양한 복합 신조어로 지칭되는 새로운 도시 현상이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들 다양한 유형의 초거대 도시들은 빈부 격차 문제, 세계화 이슈, 거대 도시 관리, 기반 설비 문제 등 글로벌 시대 지구촌의 온갖 문제들이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사회 문제의 온상인 동시에 연립 주택 교외, 빌라 교외, 산업적 노동 계급 교외, 정원 교외, 확장 교외, 빗장 공동체, 무단 점유 및 판자촌 교외 권역, 교외 스프롤(sprawl), 경계 도시 등 서로 다른 사회적·역사적·지리적 맥락에 따라 이질적인 양상으로 표출되는 교외화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도시 규모 면에서의 거대 도시화 현상과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동시에 전개되고 있는 현상이 세계 도시 네트워크 형성이다. 이 분야의 선도적 연구자인 사센(Saskia Sassen)의 개념적 정의에 따르면, 세계 도시는 일반적으로 세계 경제 조직화의 통제·지휘·관리의 구심점이자, 제조업을 대체한 초국가적 금융·정보·전문 서비스업과 같은 선도적 산업의 핵심적 입지이며, 그와 동시에 선도적 산업 생산의 혁신적 장소이자 혁신적 제품 판매를 위한 시장의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그로 인해 세계 도시는 사회적·공간적 양극화, 다양하고 이질적인 민족·인종·계급의 융합, 그리고 세계 도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건축물과 인프라 시설의 집적 등과 같은 특성을 띠기도 한다(Sassen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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