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 시티의 거대한 그림자
2화

잘 보이지 않는 도시의 가치

3. 도시의 불평등과 지역 격차


여러 세계 도시가 각축전을 벌이는 글로벌 무한경쟁의 점증하는 압력 속에서 각 도시 정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개 사회 복지와 공공 서비스에 중점을 두는 ‘관리주의’로부터 지역 개발과 경제 성장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기업가주의’로 전환하는 경향성을 띤다. 기업가 도시를 성장 전략으로 채택한 도시 정부는 대개 도시를 소비문화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컨벤션센터, 복합 쇼핑몰, 관광 단지 등을 조성하는 개발 전략을 채택한다. 그 결과 글로벌 도시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도시 간의 경쟁력 차이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의 지역 격차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돌이켜보면 산업 혁명 이전 시기에 도시에서의 삶의 수준은 거의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 도시 주민 대다수의 일상은 오늘날 우리가 ‘빈곤’으로 여기는 생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도시는 오물로 뒤덮여 있었고, 시민들은 질병에 시달렸으며, 필수적인 공공 서비스는 부족했다. 18세기 말 파리의 기대 수명은 23.5세로 추정되며, 1841년 기대 수명이 36.5세였던 런던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도시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도시의 삶조차도 같은 시기 농촌의 삶에 비하면 그나마 생활 수준이 나은 편이었는데, 이는 농민들에게 지속적으로 도시로의 이주를 촉진하는 구조적 원인이 되었다. 1880년에서 2010년 사이에 세계 인구는 약 10억 명에서 70억 명으로 늘어났는데, 도시민이 그 증가분의 절반을 차지했다. 도농 격차가 도시로의 인구 집중을 낳았고, 그로 인한 도시의 과밀화는 도시 주거 환경의 악화와 불평등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북반구 세계는 이런 고질적 도시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개선책을 찾아내면서 많은 사회가 좀 더 평등화하는 변화 양상을 띠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들과 도시들 간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산업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평균 소득 비율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당시 약 30 대 1에서 1970년대에는 60 대 1로, 현재는 90 대 1 이상으로 격차는 더 벌어졌다. 세계 경제의 후발주자로 부상한 일부 개발도상 빈곤국이 부국의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국제적 불평등의 수준을 줄이기는 했지만, 이는 국가들 내에서의 (특히 도시권과 농촌권 사이의) 불평등과 생활 수준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길버트 2022: 1308-1315).

이러한 도시의 불평등과 빈곤 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현상이 남반구의 슬럼화이다. 1970년대 이래로 지구상의 후진국과 개발도상국 각지의 대도시에서 슬럼의 성장 속도는 도시화 자체의 속도를 앞질렀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슬럼가인 파벨라(favela)는 1990년대에 걸쳐 연평균 16.4퍼센트라는 폭발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인도나 아프리카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케냐는 1989년 이후 10년 만에 85퍼센트라는 믿기 힘든 인구성장을 기록했는데, 늘어난 인구를 흡수한 곳은 나이로비와 몸바사에 악취를 풍기며 터질 듯 들어찬 슬럼들이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21세기에 인류 문명이 만들어 낼 도시는 반듯한 격자형 대로와 빛나는 수직형 마천루로 장식된 유토피아가 아니라, 공해와 배설물과 부패가 덕지덕지 들러붙은 슬럼 도시일 것이라고 경고한다(데이비스 2007).

아마도 마이크 데이비스의 주장은 다소 지나친 비관론의 산물일 것이다. 하지만 글로벌화 이후 초거대 도시화와 세계 도시화 경향이 강화되면서 전 세계적 차원에서 지역 격차가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과거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산업도시들은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가 되어 심각한 지역 쇠락 징후를 드러낸 지 이미 오래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왕성한 도시적 활력을 보유한 지역 중 하나인 동북아시아 3국(한·중·일)도 예외는 아니다.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1]을 거치면서 일본은 수도권을 제외한 대다수 지방 도시가 지방 소멸의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개혁 개방 이후 급속히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에서는 경제적 활황이 지속되는 오랜 기간 동안 쇠퇴 도시 문제는 근대 초기 광공업 도시로 급성장했다가 근래에 접어들어 급격히 쇠락하게 된 동북 지역 일부 도시들에 국한된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邴正·王璐 2022; 刘威·张丹 2022). 하지만 최근 들어 전국적 차원에서 ‘수축 도시’ 문제가 새로운 국가적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刘士林 2018).

압축 고도 성장 과정에서 최단 기간에 기록적인 수준의 도시화를 달성한 한국에서도 외환 위기 이후 사반세기 동안 대도시 내 부촌과 빈촌의 격차와 수도권 및 대도시와 지방 중소 도시 간의 격차 현상이 급격히 악화하였다.(김백영·임동근 2018). 글로벌화 이후 수도권으로 자본의 집적과 인구의 쏠림 현상은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었고, 청년 인구를 상실한 지방 도시는 쇠퇴의 내리막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2016년 〈한국의 지방소멸에 관한 7가지 분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시작으로 한국의 지방 도시, 특히 과거 산업화 시대에 중화학 공업 특구로 수혜를 입었던 남동임해공업지대의 공단 도시들은 오늘날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 구조가 재편되고 생산기반시설이 노후되면서 지방에서는 경제 활동 인구 자체가 줄어드는 ‘사막화’ 현상이 점차 확산하고 있다.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정책 패러다임은 근 40년째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지만, 외환위기 이후의 국내외 환경 변화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심화시켰으며, 탈산업화와 정보화로 인한 산업 구조 조정, 유휴 자본의 부동산 투기로 인한 자본의 지역 간 편중 현상 또한 심해졌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신시가지와 구시가지, 개발 지구와 소외 지구 등 자본 흐름의 편재에 따른 격차는 국토 전역에 걸쳐 여러 스케일에서 전개되는 다층적이면서도 편재적인 현상이 되었다. 1970년대 이래 고도 성장기에 불균등하지만, 급속한 국토 발전을 이끌었던 중앙 정부의 국토 계획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남아 끊임없이 지역 쇠퇴에 대한 정책적 처방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중앙 정부의 ‘하향식(top-down)’ 정책에서 지역 쇠퇴와 지방 소멸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결국 위기를 극복할 회복력은 ‘아래로부터’ 각 도시가 지닌 자생력을 강화하는 데서 모색할 수밖에 없다.

 

4. 잘 보이지 않는 도시의 가치를 찾아서


글로벌화 이후 중앙 정부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계획이 지닌 한계는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 도시의 원형을 만든 근대 도시 계획은 시민 혁명과 산업 혁명이라는 ‘이중 혁명(dual revolution)’의 역사적 산물이다. 근대성은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 제도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바탕으로 그 사회문화적 특성을 발현시켰는데, 근대 도시는 근대 세계의 주인공이자 근대성의 공간적 무대로 등장했다. 근대 이전 광활한 농촌의 바다 위에 반짝이는 자치와 자유의 섬과 같았던 도시는 근대화의 주인공이자 핵심 현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공간 계획의 우선적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제 도시 공간은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계획에 따라 공간적으로 관리되는 대상이 되었다.

근대 도시를 특징짓는 보편적 공간 언어가 주조되는 과정과 관련해서는, 산업 혁명기 영국의 전원 도시 운동, 대니얼 버넘(Daniel Burnham)의 도시 미화 운동, 페리(C. A. Perry)의 근린 주 구계획, 용도 지역제, 국제 건축 운동 등 몇 가지 결정적 요소나 그와 연관된 인물과 장면 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계기를 꼽는다면 19세기 중반 프랑스 제2제정기 오스망(Haussmann) 시장이 추진한 파리 대개조 사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오스망주의는 도시 공간의 미학적·기하학적 완성도를 높이고 교통과 환기 등의 물리적 효율성을 고려하는 동시에 치안 확보 및 민중 봉기 예방을 추구하는 등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는데, 핵심 목적은 자본 축적에 기여하면서 노동자 혁명에 대비하는 사회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었다고 볼 수 있다(하비 2019).

이처럼 근대 도시 계획은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급격히 팽창하는 도시 공간에 질서를 부여하고 공간을 합리적으로 조직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근대 도시 계획이 현대 도시의 발전에 긍정적 기여만 남긴 것은 아니다.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적 합리성의 공간 계획을 구현한 근대 도시 계획의 대표적 특징은 계산 가능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단순화와 가독성(legibility) 증대에 있다고 볼 수 있다(스콧 2010). 스콧은 이러한 근대적 통치 이성의 프로젝트를 “국가처럼 보기(seeing like a state)”라고 요약한 바 있는데, 그 근저에는 근대 과학의 시각 중심주의와 기술 공학이 주도한 효율지상주의, 그리고 하향식 통치자의 시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합리성과 효율성, 심미성이 도시가 지녀야 할 가치의 전부는 결코 아니다. 통치자나 계획가의 시선을 구현해 낸 근대 도시 계획은 아래로부터의 도시민들의 능동성과 자생력을 무력화시키고 도시공간에 내재된 생동력 있는 사회 자본을 약화하는 경향이 있다(전상인 2017: 142-145).

일찍이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로버트 모지스(Robert Moses)가 주도하는 물리적 랜드마크와 간선도로 위주의 토건주의적 뉴욕 개발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하워드(Ebenezer Howard)의 전원도시론,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이상도시론, 버넘의 도시미화론 등 시각적 질서를 강조하는 근대 도시 계획 주류의 흐름 근저에 놓인 계획에의 강박에 대해 발본적인 비판을 가한 바 있다(제이콥스 2010). 제이콥스는 좋은 도시가 갖춰야 할 필요조건으로 도시 정부 당국자나 계획가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미시적 사회 자본을 보존하고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시의 생명력은 하향식 국가 정책이나 시각적 효율성과 심미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주민들의 끈끈한 연대와 결속, 장소성과 활력을 보존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투안(Yi-Fu Tuan 2020)은 사람들로 하여금 ‘장소애(topophilia)’를 느끼게 하는 매력적인 장소 형성이 도시적 삶의 필수 구성 요소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장소를 통해 매개된 경험, 지식, 행위, 창의, 가치 등을 통해 풍성한 삶의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동일한 공간에 대해 개인은 각기 다른 장소애를 지니고 있으므로, 하나의 공간에 대해 장소는 무한히 확장된다.

올든버그(2019)는 ‘지역 커뮤니티의 심장’으로 ‘제3의 공간(great, good places)’의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가정과 직장이라는 기능주의적 이분법의 바깥에 놓여 있는 카페, 서점, 동네 술집과 같은 제3의 공간이야말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소통을 촉진하는 핵심 장소라는 것이다. 스티븐스는 현대 도시에서 무엇보다 공공 공간의 ‘능동적 오락성(playability)’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근대 기능주의 건축의 모토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를 패러디한 ‘형태는 재미를 따른다(Form follows fun)’로 요약되는 그의 주장의 요지는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환경이 도시 경쟁력의 새로운 원천이라는 것이다(Stevens 2007: 196-198).

이상의 논자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그동안 근대 도시의 건설과 경영을 주도해 온 물리적·시각적 도시론에서 주목하지 못했던 잘 보이지 않는 도시의 가치가 오히려 죽어가는 현대 도시의 병폐를 극복할 치유책이라고 주장한다. 일찍이 제이콥스는 도시의 생동력 있는 사회 자본은 오래된 기억이 축적된 공간과 구성원들 사이에 맺어진 유대 및 신뢰 관계를 양대 구성 요소로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로 군림해 온 르 코르뷔지에는 구불구불한 ‘당나귀의 길’을 지우고 그 위에 반듯하게 건설된 직선대로야말로 ‘사람의 길’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모더니즘이 건축과 도시에 불러일으킨 무수한 혁신에도 불구하고, 현대 도시의 수많은 문제적 사례는 르코르뷔지에와 그의 추종자들이 내세운 인간과 도시의 개념이 일면적이고 편협한 것이었음을 입증한다. 문명사적 위기의 시대, 미래 도시의 전망은 큰 것보다는 작은 것,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것,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존중하는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1]
요시미 슌야는 이 시기 일본 사회의 변화를 기업국가의 몰락, 포스트 전후 정치의 환멸, 연속되는 사회적 쇼크, 정체성의 허구화 등 네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요시미 슌야 2020). 이 시기 도쿄의 변화에 대해서는 사다카네 히데유키(2020)를 참조할 것.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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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스, 제인 (유강은 역),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그린비, 2010.
천상밍·헨리 피츠 (민유기 역), 《옥스퍼드 세계도시문명사 4》, 책과함께, 2023.
투안, 이-푸 (윤영호·김미선 역), 《공간과 장소》, 사이, 2020.
하비, 데이비드 (김병화 역),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글항아리, 2019.
훙호펑·잔사오화 (민유기 역), 《옥스퍼드 세계도시문명사 4》, 서울: 책과함께, 2023
邴正‧王, 《社会发展研究》第9卷 第1期璐, 2022.
刘威‧张丹, 《理论探讨》第3期, 2022.
刘士林, 《甘肃社会科学》第5期, 2018.
Sassen, Saskia, 《The Global City: New York, London, and Tokyo》,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1.
Stevens, Quentin, 《The Ludic City: Exploring the Potential of Public Spaces》, Rout-ledge,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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