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웨어러블 로봇 실험

2023년 12월 15일, explained

로봇을 입고 근무하는 시대가 온다.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지난 2022년 1월, 정의선 당시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 참석해 자회사 보스턴로보틱스의 로봇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Andrej Sokolow, Getty Images
NOW THIS

현대자동차그룹이 울산 공장 등 국내 완성차 생산 공장에서 웨어러블 로봇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시험 착용 제품은 조끼 형태의 ’엑스블 숄더’로, 머리 위로 팔을 들고 장시간 일하는 자세를 보조한다. 무게는 약 600~700그램 정도다. 현대차그룹은 전 세계 공장에 웨어러블 조끼를 도입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국내 공장에선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사용이 시작될 전망이다.

WHY NOW

2023년은 현대차 입장에서는 특별한 한 해로 기억될 전망이다. 사상 처음으로 국내 상장사 중 영업이익 1위를 기록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14년간 삼성전자가 수성해 온 자리다. 반도체 업황 악화가 삼성전자에 악재로 작용했지만, 해외 판매에 집중한 현대차의 전략이 먹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관건은 올해가 아니라 미래다. 비용은 줄이고 많이 만들어 많이 팔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재계와 노동계의 갈등이 발생한다. 웨어러블 로봇은 이 갈등의 중재자일까, 아니면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일까.

현대차 로보틱스 랩

현대차그룹의 웨어러블 로봇 개발은 그룹의 로봇 연구 개발 조직, ‘로보틱스 랩’이 담당한다. 성과는 진작에 내고 있었다. 이미 4년 전 웨어러블 로봇 ‘벡스(Vex)’와 ‘첵스(Cex)’를 개발해 현대차 정비소 등에 시험 도입했던 것이다. 하지만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불편했기 때문이다. 벡스는 구명조끼처럼 착용하면 6킬로그램의 근력을 더해 준다. 첵스는 하체 쪽에 착용하면 최대 150킬로그램 체중을 버티고, 앉는 자세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반응은 좋지 않았다. 불편했기 때문이다. 땀이 찼다. 화장실을 가거나 휴식 시간이 되었을 때도 곤란했다. 피부가 쓸리면 아픈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 테스트 중인 모델은 이와 같은 피드백을 수용해 개선 작업을 거쳤다.

오너의 의지

사실, 현대차 그룹이 로봇에 진심이 된 지는 꽤 오래되었다. 특히, 2018년 정의선 현 회장이 그룹의 총괄 수석 부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행보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지난 2020년에는 미국의 로봇공학 업체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했다. 현대차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의 자동차 회사들은 이미 로봇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테슬라는 최근 휴머노이드, ‘옵티머스’의 2세대 모델을 공개했다. 토요타, 닛산 등 일본 업체도 로봇 기술을 키우고 있으며, 벤츠, 폭스바겐, 포르쉐 등도 로봇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자동차와 로봇의 상관관계

자동차 회사가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닮아 있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로보틱스 랩의 현동진 랩장은 자동차를 일종의 로봇이라고 설명한다. 자동차도 페달을 밟으면 바퀴가 돌아가고, 운전대를 돌리면 방향을 바꾸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미래도 로봇과 한없이 가깝다. 자율주행차 얘기다. 주변의 상황 변화를 카메라나 레이저 장비를 통해 빠르게 인지해 대응해야 한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와 맞닿아 있는 군수 산업 쪽과도 연결 고리가 단단하다.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로템을 예로 들 수 있다. 열차와 군용 탱크 제조업체다. 국방과학연구소와 ‘대테러 작전용 다족보행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2025년 초까지 약 46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사람을 보호하는 기술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가 추가된다. 완성차 업계야말로 로봇의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분야기 때문이다. 챗GPT가 아무리 똑똑해진들 공장에서 차체 조립이나 도색 작업을 할 수는 없다. 만드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한다. 혹은, 그게 아니면, 사람이 로봇과 함께하거나 로봇이 해야 한다. 자동화율을 높이면 생산 효율이 높아진다. 오류나 사고의 가능성도 줄어든다. 기술로 사람을 대체하는 선택이다. 반면, 웨어러블은 사람을 보조하고 보호하는 선택이다.

러다이트 운동은 실패했지만

게다가 전망도 긍정적이다. 웨어러블 로봇 시장 규모는 2022년 9억 5250만 달러 규모였다. 2029년에는 119억 9570만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7년 동안 13배로 성장하는 시장은 흔치 않다. 기업 입장에서는 눈독 들일만 하다. 다만, 산업 현장에서의 로봇 도입에는 우려의 시선이 따라붙는다. 사람의 일자리를 뺏거나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막는 것은 아닐지 하는 우려다. 당연한 시대적 변화다. 거스르려 해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변화 앞에 생계가 흔들리는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움직임은 물류 쪽에서 한 발 빠르게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아마존과 쿠팡의 현재

아마존은 지난 10월부터 물류 창고에 인간형 로봇을 배치했다. ‘디짓(Digit)’이라는 이름의 휴머노이드다. 두 다리로 걸으며 상자를 나른다. 당장 아마존 노조는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쿠팡이다. 무인 운반 로봇이 도입되면서 물류센터 현장 작업자의 업무량이 약 65퍼센트 감소했다. 이미 쿠팡의 순고용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향후 고용 감소가 더욱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만족도는 높다”

그렇다면 웨어러블 로봇은 어떨까. 현대차 노조의 안흥렬 보건부장은 14일 북저널리즘과의 통화에서 “만족도는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근골격계 산업 재해가 많은 현장의 특성상, 산재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다만, 작업 시 주된 동작에 대해서는 확실히 보조가 되지만, 그 외 연결 동작에 있어서는 불편함을 느꼈고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 로봇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이 우선시되지 못한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현장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IT MATTERS

국제로봇연맹(IFR)이 발표한 ‘2022 세계 로봇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1년 산업용 로봇 밀도는 1000대를 기록했다. 제조업 노동자 1만 명당 배치된 로봇의 숫자다. 세계 최고다. 보고서는 전자 산업과 자동차 산업에서 로봇 사용이 집중되어 있다고 짚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우리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두 기업부터 떠오른다.

웨어러블 로봇은 인간과 로봇의 새로운 공생을 상상하게 한다. 그간 보수지를 중심으로 제기해 온, 노사 갈등의 해결책이 ‘로봇’이라는 시각 외에도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 있음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은 큰 그림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현대차는 아세안 생산 기지에 순도 높은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고, 이것을 중장기 수익성 개선의 발판으로 삼을 계획이다.

최근 의미 있는 합의가 나왔다. 공장보다는 사무실에 가까운 쪽의 얘기이긴 하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미국 최대 노동 단체인 노동총연맹(AFL-CIO) 얘기다. AI 기술이 일자리에 미칠 영향을 함께 논의하기로 했다.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 AI 기술 동향을 노동계와 공유할 것, AI 기술 개발에 노동자의 관점을 반영할 것, 노동자들의 요구가 AI 정책에 반영되도록 할 것. 양측의 득실 계산이 반영된 결과겠으나, 시사하는 바는 크다. 문제를 직시하고 논의 테이블을 차렸다. 기술은 온다. 그 기술의 모습은 인간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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