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될 수 있는 미키마우스

2024년 1월 3일, explained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이 만료됐다.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 속 미키마우스
NOW THIS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 속, 휘파람을 불며 배를 조종하던 초기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이 종료됐다. 1928년 첫선을 보인 이후 95년 만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 버전의 미키마우스는 아니지만, 그 원형이 된 캐릭터다. 아직 월트 디즈니는 미키마우스를 완전히 놓아주지 못했다. 월트 디즈니는 성명을 통해 “미키마우스의 이름, 미키마우스를 무단으로 활용한 상품은 강력하게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 밝혔다.

WHY NOW

월트 디즈니는 저작권에 진심이다. ‘무인도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미키마우스를 그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 디즈니도, 과거의 창작이 없었다면 지금에 이르지 못했다. 창작은 오염이다. 성역이었던 미키마우스는 오염되기를 앞두고 있다. 디즈니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창작이라는 오염은 또 다른 기회다. 미키마우스는 이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1월 1일

매년 1월 1일은 퍼블릭 도메인 데이(Public Domain Day)다. 듀크대학교 로스쿨에서 운영하는 ‘퍼블릭 도메인 연구 센터’는 매년 1월 1일, 퍼블릭 도메인 데이를 기념해 저작권이 만료된 작품을 모아 공개한다. 올해는 D.H. 로런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버스터 키튼의 영화 〈카메라맨〉, 찰리 채플린의 영화 〈서커스〉의 저작권이 만료됐다.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건 월트 디즈니의 대표 캐릭터인 미키마우스였다. 올해 1월 1일부로, 흑백의 미키마우스는 월트 디즈니의 품을 떠났다. 의미가 크다.

저작권법과 미키마우스 보호법

1790년, 미국에서 첫 저작권법이 제정된다. 지적 재산권과 창작물이 28년 동안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고 규정했다. 법률의 목적은 ‘학문 장려(encouragement of learning)’였다. 1831년에는 그 기간이 42년으로, 1909년에는 56년으로 연장된다. 본래 미키마우스는 1984년, 저작권이 만료돼야 했다. 미키마우스를 포기할 수 없던 디즈니는 수백만 달러 규모의 로비를 쏟아붓는다. 저작권 보호 기간인 56년에 19년을 추가해 미키마우스를 75년간 보호할 수 있게끔 법을 바꾼다. 다시 미키마우스의 저작권 만료일이 다가오자 디즈니는 디즈니 정치 활동 위원회를 출범한다. 저작권 보호 기간은 75년에서 95년으로 연장됐다. 정치 로비 캠페인에만 14만 9612달러를 지출했다. ‘미키마우스 보호법’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법안의 발의자 25명 중 19명이 당시 디즈니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로부터 직접 돈을 받았다. 

저작권 만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95년이 지났다. 저작권이 만료된 경우, 누구나 해당 작품, 캐릭터를 공유하거나 개조하거나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캐릭터를 파는 기업으로서는 불안한 요소다. 그저 돈과 관련한 문제는 아니다. 디즈니의 전통과 세계관을 압축하고 있던 얼굴이 다양한 이야기와 서사에 흡수된다. 이미 디즈니는 1971년, 미키마우스를 비롯한 디즈니 캐릭터가 마약, 성적 행위 등에 참여하는 내용의 언더그라운드 만화 〈Air Pirates Funnies〉를 저작권 침해로 고소한 바 있다. 저작권은 단순히 캐릭터를 사용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디즈니라는 이름과 얼굴로 쌓아 왔던 캐릭터의 레거시가 ‘오염되는가’의 문제다.

미키마우스의 얼굴

미키마우스는 월트 디즈니가 표현하고자 했던 행복, 재미, 꿈, 가족을 모두 묶는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모험을 떠나고, 장애물을 극복해 가는 반복된 성장 서사는 미키마우스, 월트 디즈니가 ‘아이들과 가족의 친구’라는 이미지를 공고히 했다. 물론 이런 이미지만 덧씌워진 것은 아니다. 미키마우스는 1920년대의 디즈니가 갖던 보수적 정치색을 떠올리게도, 문화 전쟁의 주인공이라는 복잡한 사연을 가리키기도 한다. 화려한 테마파크 퍼레이드에 등장하는 거대한 미키마우스는 스펙터클을 자랑하는 자본력을 하나의 얼굴로 응축하기도 한다. 디즈니의 품 안에만 안긴 미키마우스는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어렵다. 퍼블릭 도메인은 미키마우스에게도, 디즈니에게도 새로운 기회다.

퍼블릭 도메인

창작은 오염 속에서 태어난다. 저작권의 핵심도 그와 맞닿아 있다. 학문 장려라는 초기의 목표처럼, 저작 권리의 핵심은 이후의 창작을 도모하는 데 있다. 저작자가 창의력을 발휘해 작품을 만들면, 법은 그를 보호해 창작자가 창작 의지를 잃지 않게 한다. 퍼블릭 도메인은 누구든지, 어떤 방법으로, 어떤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저작물이다. 시간이 흘러 해당 저작물이 퍼블릭 도메인이 된다면, 미래의 작가들은 과거의 유산을 활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나간다. 그런 점에서 퍼블릭 도메인은 저작권의 핵심에 닿아 있다. 퍼블릭 도메인이 아니라면 셰익스피어의 서사 구조를, 천일야화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사용할 수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차용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도, 천일야화를 각색한 〈알라딘〉도 출현할 수 없는 셈이다.

곰돌이 푸

미키마우스보다 2년 먼저 퍼블릭 도메인에 진입한 디즈니 캐릭터가 있다. 바로 곰돌이 푸다.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는 2022년 퍼블릭 도메인의 날을 맞아 자신의 휴대전화 기업 ‘민트 모바일’ 광고에 곰돌이 푸를 사용했다. 지속 가능한 화장지를 만드는 기업 ‘Who Gives A Crap’은 삼림 벌채로 인해 터전을 잃은 푸의 이야기를 전자책으로 전하며 기업의 미션을 알렸다. 2023년 개봉한 영화 〈곰돌이 푸: 피와 꿀〉은 어릴 적 친구로부터 버림받은 곰돌이 푸와 피글렛이 잔혹한 복수를 시작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혹평뿐이었지만, 무엇이 좋은 재창작인지에 대한 담론이 이어졌다. 다양한 오염과 수많은 시행착오 사이에서 과거의 캐릭터는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퍼블릭 도메인 속 푸는 꿀을 좋아하는 노란 곰, 그 이상이다.

리믹스라는 특권

창작의 에너지는 허허벌판에서 나오지 않는다. 저작권법의 핵심이 저작물을 울타리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닌, 적정한 선을 찾아 그들을 놓아주는 것에 있는 이유다. 디즈니는 이를 가장 잘 활용한 기업 중 하나다. 〈겨울왕국〉은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서, 〈라이온 킹〉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시작됐다. 미키마우스가, 곰돌이 푸가 다음 세대의 안데르센과 셰익스피어가 된다면 어떨까. 미국의 법학자이자 정치 운동가인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은 퍼블릭 도메인이 ‘읽기’라는 과거의 창작 문법에서 벗어나 ‘읽기와 쓰기’라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길목이라고 봤다. 오염과 리믹스는 이제야 누릴 수 있게 된 특권이다. 우리는 지금껏 이 소중한 권리를 좁은 법망 안에 가둬 왔을지 모른다.

IT MATTERS

일본의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1980년대 일본의 오타쿠 문화가 미국을 일본화하려는 시도였으며, 패전의 트라우마와 고도성장이라는 상반된 배경 아래 일본적인 것을 찾으려는 움직임이었다고 해석했다. 퍼블릭 도메인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도다. 2차 창작과 리믹스 방식을 통해 지금의 표현과 해석이 과거와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우리는 로알드 달의 올바르지 않은 표현을 무작정 삭제하기보다, 지금에 맞는 로알드 달의 서사를 새로이 만들 수 있다. 그게 창작이고, 존중이다.

미키마우스의 시작을 알린 원조 미키마우스는 우리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까? 그것은 잔혹한 푸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혹은 다양한 정치적 에너지를 간직할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성역이었던 미키마우스가 창작의 에너지로 오염된다는 점이다. 월트 디즈니의 품에서 독립한 미키마우스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상상이 허락된 퍼블릭 도메인 안에서, 다음 세대의 미키마우스가 꿈틀댈 것이다.
김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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