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종말 90초 전

2024년 1월 25일, explained

둠스데이 클락이 오후 11시 58분 30초를 가리켰다. 자정이 되면 인류가 멸망한다.

미국 핵과학자회(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BAS)가 1월 23일 공개한 ‘둠스데이 클락’. 분침이 자정 90초 전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핵과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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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스데이 클락(Doomsday Clock)’이 오후 11시 58분 30초를 가리켰다. 자정까지 90초 남았다. 자정은 과학자들이 경고하는 지구 파멸의 시점을 상징한다. 미국 핵과학자회(BAS)는 23일 “불길한 흐름이 전 세계를 재앙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2년 연속으로 시계를 자정 90초 전으로 설정했다. 지구 종말 시각이 처음 발표된 1947년 이후 역대 가장 늦은 시각이다.

WHY NOW

BAS는 올해 둠스데이 클락을 자정 90초 전에 맞춘 이유로 크게 네 가지를 꼽았다. 전 세계 분쟁 지역의 핵 위협 증가, 심화하는 기후 위기, 진화하는 생물학적 위협, AI의 위험성이다. 자정을 향해 달려가는 시곗바늘은 인위적 개입 없이는 저절로 멈추지 않는다. 공동의 위협에는 공동의 행동이 필요하다. 미국, 중국, 러시아를 위시한 세계 각국이 지구가 직면한 위험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둠스데이 클락

BAS는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등 미국 핵 과학자들이 1945년 설립한 단체다. BAS는 1947년 학회지 표지에 자정 7분 전인 시계 그래픽을 실었다. 자정은 인류가 핵전쟁을 벌여 자멸하는 시점을 뜻했다. 7분 전은 특별한 의미 없이 시각적으로 보기에 좋아서 그려 넣었다.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한 시도였는데, BAS는 이후로 매년 1월마다 국제 정세를 분석해 둠스데이 클락을 발표해 왔다.

1947-2023

1947년 분침이 돌아가기 시작한 시계는 1953년 자정 2분 전에 이른다. 직전 해에 미국이 세계 최초로 수소 폭탄을 실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미국과 소련이 전략 무기 감축 조약을 체결하고, 소련이 붕괴한 1991년에는 자정 17분 전으로 늦춰진다. 둠스데이 클락이 탄생한 이래 자정에서 가장 먼 시간이었다. 이후 시곗바늘은 다시 빨라진다. 2023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자정 90초 전이 된다.

2024

2024년 1월 23일 BAS는 올해 둠스데이 클락을 지난해와 같은 자정 전 90초로 맞췄다. BAS 회장인 레이첼 브론슨은 말한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시계를 자정 전 90초로 유지한다고 해서 세상에 안정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전 세계 정부와 지역 사회의 행동이 시급합니다.” 자정 90초 전이면 냉전이 극에 달했던 시기보다 지구가 더 위태롭다는 얘기인데, BAS는 올해 지구 종말의 위험 요소로 어떤 것들을 꼽았을까.

핵 위협

BAS가 꼽은 첫 번째 위협은 핵무기다. 지난해 러시아는 미국과 맺은 신전략 무기 감축 조약을 중단하고,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도 철회했다. 또한 NATO 회원국인 폴란드를 포위하기 위해 동맹국인 벨라루스에 전술 핵무기를 배치했다. 이란은 핵무기 제조 직전 수준의 우라늄을 농축하고,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핵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

기후 위기

두 번째 위협은 기후 위기다. 2023년 지구는 역사상 가장 더웠다. 남극 해빙 면적이 관측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전 세계는 청정에너지에 사상 최대 규모인 1조 7000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화석 연료에도 1조 달러를 투자해 노력이 상쇄됐다. 기후 위기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힌다.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인류의 고통은 끝없이 증가할 것이다.

생물학적 위협

생명 과학 기술도 위험 요소다. 유전 공학 기술이 더 정교해지고 더 저렴해졌는데, 이런 생물학적 기술이 AI 도구와 결합해 오용될 수 있다. 예컨대 충분한 노하우가 없는 개인이 AI를 이용해 인간, 동물, 식물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바이러스를 만들고 퍼트릴 수 있다. 지난해 10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생명 과학 분야의 AI 사용에 적용할 표준을 만들기로 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AI의 위험

지난해 가장 큰 이슈는 생성형 AI의 비약적 발전이었다. AI는 허위 정보를 확산해 민주주의를 흔들고, 세계가 핵 위험, 전염병, 기후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또한 AI의 군사적 활용도 가속화하고 있다. AI는 이미 정보, 감시, 정찰, 시뮬레이션, 훈련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는데, 핵무기 같은 중요한 물리적 시스템을 AI에 맡기게 될 경우 인류에 실존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IT MATTERS

둠스데이 클락을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 핵무기, 기후 위기, 생명 과학, AI는 국경 없이 전 세계에 걸친 문제여서 일부 국가나 소수 지도자가 통제할 수 없다. BAS는 공동의 위협에는 공동의 행동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먼저 세계를 두 블록으로 나누고 있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가 지구적 위기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자정까지 90초가 남았다.
 
이연대 에디터
#기후위기 #지구 #expl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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