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도 아프다

2024년 2월 22일, explained

봄철이면 고로쇠 수액이 인기다. 불법 채취꾼들도 이때를 노린다.

우리나라처럼 캐나다에서도 메이플 수액을 채취한다. 사진: Chiot's 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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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지방산림청이 이달 말까지 고로쇠 수액 무단 채취와 채취 기준 준수를 집중적으로 단속한다고 20일 밝혔다. 단속 대상은 수액을 채취하는 호스와 용기의 위생 상태, 수액 판매 용기 기준 준수, 수액 채취 구멍 준수, 수액 채취 후 사후 관리 등이다. 허가 없이 무단으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WHY NOW

봄철이면 이때만 나는 고로쇠 수액이 인기다. 달짝지근하고 미네랄이 풍부해 찾는 사람이 많다. 한밑천 잡으려는 불법 채취꾼들도 이 시기를 노린다. 이들은 허가 없이 수액을 채취한다. 채취 기준을 지키지 않고 나무를 학대하는 방식으로 수액을 마구 뽑아낸다. 채취 후에도 약제 도포 같은 사후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고로쇠도 아프다.

고로쇠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의 일종이다. 낙엽 교목으로 키가 20미터까지 자란다. 줄기에 상처를 내면 물보다 약간 뿌연 색의 액체가 나오는데, 이게 고로쇠 수액이다. 달짝지근해 맛도 괜찮고, 칼슘과 칼륨 같은 미네랄이 풍부해 골다공증, 관절염, 위장병, 고혈압 개선에 좋다. 고로쇠라는 이름이 ‘뼈에 이롭다’는 뜻의 한자어 골리수(骨利樹)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고로쇠 수액을 졸이면 메이플 시럽이 된다.

수액

사람에게 좋은 이 수액은 고로쇠에도 필수 영양분이다. 고로쇠는 봄이 되면 땅속 수분과 뿌리에 저장해 뒀던 양분을 위로 빨아올려 새 눈을 틔운다. 수액은 ‘식물의 피’다. 수십 미터가 되는 나무의 꼭대기에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수 있는 건 수액이 영양분을 운반하는 덕분이다. 수액의 이동 속도는 종마다 다른데, 보통 한 시간에 수십 센티미터 이동한다.

부수입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려면 국유림에선 허가가 필요하고, 사유림에선 산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채취 시기는 2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인데, 기후 변화로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 채취 과정은 이렇다. 먼저, 나무 몸통에 드릴로 구멍을 뚫는다. 구멍에 유출기를 꽂으면 수액이 흘러나오는데, 호스를 연결해 전용 비닐이나 용기에 담는다. 링거와 비슷하게 생겼다. 겨울철에 쉬는 농가는 한두 달 바짝 일해 500~1000만 원의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

기준

산림청은 고로쇠 수액 채취가 나무의 생장에 피해를 덜 주도록 채취 기준을 제시한다. 사람 가슴 높이에서 쟀을 때 직경이 10센티미터가 넘는 나무만 수액을 채취할 수 있다. 직경별로 구멍을 뚫을 수 있는 개수도 정해져 있다. 아무리 큰 나무라도 한 나무에 최대 3개까지만 구멍을 낼 수 있다. 구멍 위치도 한쪽에 집중시키면 안 된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뚫어야 한다. 한 번만 채취하고 말 게 아니기 때문이다.

불법 채취꾼

그런데 한 번만 채취하면 그만인 사람도 있다. 불법 채취꾼이다. 이들에겐 고로쇠의 생장보다 당장의 벌이가 더 중요하다. 마구잡이로 수액을 뽑는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저녁에 호스를 연결하고 새벽에 거둬 간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뽑기 위해 한 나무에 관을 5~10개씩 박는다. 단기간에 수액을 너무 많이 뽑으면 나무가 말라 죽는다. 어찌어찌 버텨 내도 봄철에 새 눈을 틔울 영양분이 모자라 생장에 지장을 받는다.

사후 처리

나무에 호스를 연결하고 4~5일쯤 지나면 고로쇠 수액이 1.8리터 봉지에 가득 찬다. 수액을 채취하고 나면 사후 처리도 신경 써서 해야 한다. 나무에 꽂은 유출기를 제거하고, 구멍을 뚫은 부위에 약제를 바른다. 균의 침입을 막고, 구멍이 잘 아물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도 상처가 3~4개월 후에 아문다. 불법 채취꾼들은 사후 처리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숲은 깊다. 단속이 철저하게 이뤄지기 어렵다.

스트레스

1970년대 학자들이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기린이 이상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몇 분간 한 아카시아의 잎을 뜯어 먹다가 100미터쯤 떨어진 아카시아로 이동해 다시 잎을 먹었다. 왜 이동했을까. 위기에 처한 아카시아가 잎에서 쓴맛이 나는 물질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그럼, 기린은 바로 옆 나무가 아니라 왜 멀리 있는 나무까지 갔을까. 아카시아가 에틸렌 가스를 뿜어 주변 나무에 위험 신호를 보내 다른 나무도 쓴 물질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식물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IT MATTERS

‘지속 가능성’이라는 말은 산림 선진국 독일에서 유래했다. 다 자라서 목재로 쓸 수 있을 때까지 100년 걸리는 나무가 있다. 숲을 100개 필지로 나누고, 매년 100분의 1을 벌목하고, 그 자리에 묘목을 심는다. 그러면 숲을 보존하면서 매년 일정한 양의 목재를 얻을 수 있다. 1713년 독일 작센주 산림청장이던 한스 칼 폰 카를로비츠가 주장한 ‘지속 가능한 산림 이용’이다. 동물권도 정착하지 않은 마당에 식물권까지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고로쇠나무에 구멍 열 개를 뚫고 나무가 고사할 때까지 수액을 뽑아냈다간 머지않아 고로쇠 수액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침묵의 봄’이 온다.
 
이연대 에디터
#지구 #환경 #expl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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