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로봇이 온다

2024년 3월 12일, explained

AI시대, 돌봄과 교감은 상품이 된다.

1999년, 독일의 한 박물관에서 선보인 소니의 애완 로봇 ‘아이보’ 첫번째 모델. 사진; Bernd Thissen/picture alliance via Getty Images
NOW THIS

서울시가 폐지 수거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노인을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건강 관리를 위한 대책으로는 AI 기기 지급을 제시했다. 방문 간호사가 주기적으로 건강 관리와 상담을 제공하는 한편, 비대면으로도 만성질환 등을 모니터링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뿐만이 아니다. 최근 발표되는 지자체 노인 복지 정책에는 AI 기기가 빠지지 않는다. 송파구, 강서구, 성북구 등과 같은 서울 시내 지역은 물론이고 안동시 등 고령층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도 도입이 진행 중이다.

WHY NOW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계산기다. 그 능력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면서 지금의 인공지능 기술에 이르렀다. 과학, 공학은 물론이고 경제, 사회 분야에서 이 계산 능력은 여러 차례의 혁신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돌봄은 어떨까. 돌봄의 영역에는 의학적인 진단과 그에 따른 솔루션도 포함되지만, 기본적으로는 ‘알아봐 줌, 동참, 공유, 경청, 동행, 칭찬, 안위 제공, 희망 제공, 용서, 수용’ 등의 10가지 요소가 포함된다. 인류는 이 10가지 요소를 AI와 나누어 짊어질 준비가 되어있을까.

효도하는 인형

지난 2024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규모의 모바일 전시회, MWC(Mobile World Congress)에서 눈길을 끌었던 한 스타트업이 있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가 수여하는 글로모 어워드 부문 수상 기업, ‘효돌’이다. 회사명과 동일한 주력상품, ‘효돌’을 선보여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바로 적용 가능한, 확실한 노인 돌봄 기능 덕분이다. 이미 국내 160여 개 지자체에 약 1만 대가 보급되어 있다.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야”

효돌은 작은 강아지 정도 크기의 봉제 인형으로, 7살짜리 손주 콘셉트다. 어린아이라는 설정이 있으니, ‘돌봄’ 기능은 안부를 묻는 식으로 구현된다. 기상 및 식사 관리를 “할머니 일어나셨어요? 식사하셨어요?”와 같은 인사말로 접근하는 것이다. 복약 시간 관리도 마찬가지 원리도 진행된다. 사용자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한 매체에는 효돌 인형을 업고 다니는 어르신의 모습이 소개되기도 했다. 사용자와의 애착 형성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돌봄, 받고 싶은 게 아니라 주고 싶은 욕구

그런데 개발사는 효돌에 관해 설명할 때 ‘상호 돌봄’에 관해 이야기한다. 효돌 인형을 이용하는 노인은 효돌로부터 코칭을 받기도 하지만, 요구도 함께 받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워 달라’거나 ‘발을 만져 달라’는 등의 요구다. 노인 이용자는 반려동물을 돌보듯 효돌을 돌보는 경험을 통해 자존감을 유지하고 웃음을 되찾고 애착을 형성하게 된다.

먹이를 주세요

인간은 돌봄을 받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돌봄을 주고 싶어 하는 존재다. 1996년 출시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휴대용 동물 돌봄 게임기, ‘다마고치’의 성공은 이와 같은 욕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사용자는 먹이를 주거나 놀아주는 행위를 통해 다마고치의 캐릭터를 ‘돌보는’ 경험을 한다. 생명체를 켜고 끌 수 없는 것처럼 다마고치도 기기를 끈다고 게임을 종료할 수 없다. ‘연속성’이라는 생명체의 속성을 게임에 이식한 것이다. 또한 돌봄을 게을리하면 캐릭터가 사망하는 스토리를 통해 사용자의 책임감을 자극하고 애착 형성을 독려한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사물이 감정을 가지지 않았음에도 그것을 의인화하고 인간처럼 대한다. 다마고치도, 효돌도 인간의 그 특성을 이용했다. 사용자에게 돌봄을 요구하며 관계를 형성한다.

인공 조미료 같은 가짜 공감

다마고치는 애착을 형성해 게임에 몰입하도록 설계되었다. 사용자들은 열광했다. 그래서 부작용도 두드려졌다. 1998년에는 프랑스의 한 20대가 운전 중 다마고치에 먹이를 주느라 교통사고를 내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또, 캐릭터가 사망해도 언제든 게임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관점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MIT의 셰리 터클 교수는 감정 교류를 요구하는 기계가 인간의 공감 능력을 훼손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기계와 상호적 관계에 빠질수록, 기계의 가짜 공감에 익숙해져 인간과의 관계에 적응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돌봄 로봇의 또 다른 이름, 소셜 로봇(social robot)의 위험성에 관한 경고다.

기계 감정 시대의 로봇

반면, 효돌은 애착 형성을 바탕으로 사용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코치하거나 독려하도록 설계되었다. 여기서 다마고치와 효돌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다. 목적이 다르다. 기계와 인간 사이의 관계 형성은 수단이다. 사용자의 생활과 건강 습관을 체크하고 신체적, 인지적 활동을 독려하기 위한 목적이 명확하다. 목적이 명확하다면 상호 작용의 적정선을 가늠할 수 있다. 지난 200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신경치료용 의료기기로 승인을 받으며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일본의 ‘파로’가 그 좋은 예시다.

그저 존재할 뿐

 ‘파로’는 돌봄 로봇이 아니라 ‘치료 로봇’에 해당한다. 2004년 일본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가 개발해 상용화에까지 성공했다. 치매 환자 및 자폐증 환자 등을 타깃으로 제작된 파로는 처음부터 돌봄을 ‘받을’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갓난아기 정도의 크기로, 하얀색 새끼 물개 봉제 인형이다. 쓰다듬어주면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거나 뒤척이는 것이 기능의 전부다.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센서다. 사용자가 자신을 만지고 부르는 것을 감각하여 반응하는 기능을 섬세하게 구축했다. 이름, 칭찬 등의 간단한 언어도 이해한다. 치료 효과는 명확히 입증되었다. 스트레스 수치가 줄어들고 인지 능력 향상도 관찰되었다. 파로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분명한 목적을 갖고 제작되었으며 기능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파로는 사랑받는다. 치유한다.

IT MATTERS

일본에서는 소니의 애완 로봇 ‘아이보’의 장례식이 종종 열린다. 더는 수리할 수 없게 된 로봇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식이다. 소니는 아이보의 개발과 수리를 중단했지만, 사용자들에게 아이보는 애정을 주었던 존재다. 인간의 감정이란 유약하고 비논리적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이 감정 속으로 정교한 생성형 AI가 파고든다면 어떻게 될까. AI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격과 결혼하겠다는 선언까지 나오는 시대다. ‘기계와의 교감’은 이미 서비스로서 판매되고 있으며,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향성과 적정한 기술의 상한선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의 기술은 곧 귀여운 7살 손주를 뛰어넘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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