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기 지친 사람을 위한 데이터
2화

데이터와 사회 ; 불안과 진실 사이

90년생은 국민연금을 못 받을까

 

제20대 대통령 선거의 첫 다자 토론은 투표일을 한 달 앞둔 2022년 2월에 열렸습니다. 네 명의 주요 후보가 모인 만큼 토론회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그리고 네 명의 후보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 주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연금 개혁입니다. 안철수 후보가 포문을 열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국민연금 개혁하겠다고 공동 선언을 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제안한 겁니다. 이재명 후보가 “좋은 의견”이라고 화답했고 윤석열 후보도 “안 할 수 없다. 선택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심상정 후보도 웃음으로 동의해 원론적으로 동의했습니다. 토론 이후 각 후보는 연금 관련 공약도 내놓았습니다.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9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기사가 쏟아지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죠.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정말 90년생부터는 국민연금을 한 푼도 못 받을까요?

알아 두면 쓸모 있는 국민연금 키워드

본격적인 국민연금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몇 가지 개념들을 정리합니다. 이 개념들을 알아 두면 국민연금 관련 기사를 읽을 때 훨씬 이해하기 편할 거예요.

• 국민연금: 국민연금 제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노년이 됐을 때 연금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퇴직하더라도 국민연금의 연금을 받으면서 노후 소득을 보장받는 거죠.

• 보험료율: 보험료율의 정확한 의미는 기준 소득 대비 보험료 납부액의 비중입니다. 국민연금에 내가 얼마를 내는지, 그 비율을 의미하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매달 버는 소득에서 얼마만큼을 국민연금에 내는지를 나타내는 겁니다. 보험료율이 높아지면 국민연금에 나가는 돈이 많아진다는 뜻이죠.

• 소득대체율: 소득대체율은 가입자의 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을 말합니다. 쉽게 풀어 보면 국민연금으로 얼마를 받는지, 그 비율을 나타낸 겁니다. 소득대체율이 높아지면 더 많은 돈을 국민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는 거죠.

아래 그래프는 근로를 통해 소득을 얻고 9퍼센트의 보험료를 국민연금에 내는 사람의 연소득입니다. 정년퇴직한 이후에는 국민연금을 받을 겁니다.

9퍼센트의 보험료를 내는 근로 소득자의 연소득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국민연금의 핵심 데이터는 인구

국민연금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세 가지입니다. 우리가 얼마를 내는지, 얼마를 받을지, 그리고 언제부터 받을지. 각각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수급개시연령이라고 하죠. 그런데 이 세 가지는 국민연금 재정이 어떻게 유지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연금의 곳간이 넉넉하다면 덜 내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곳간이 텅 비었다면 연금에 돈을 더 내야 하고 덜 받게 될 겁니다.

국민연금의 수입과 지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변수는 바로 인구입니다. 연금을 얼마나 오랫동안 받을 것인지는 평균 수명과 노년층 인구에 달려 있고, 연금에 돈을 낼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합계출산율과 생산가능인구(15~64세)에 달려 있거든요.

혹시 부양비라는 단어 들어본 적 있나요? 부양비는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유소년 인구(14세 이하)와 노년 인구(65세 이상)의 비율을 의미합니다. 부양비가 높으면 높을수록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의 부양 부담이 더 커진다고 볼 수 있죠.
우리나라 연도별 부양비 전망치, 단위: 명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위의 그래프는 우리나라의 연도별 부양비 전망치입니다. 그래프의 전반부, 즉 과거 시점에는 유소년 부양비를 나타내는 영역이 더 크죠. 출산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베이비붐 세대 때는 노년 부양비보다 유소년 부양비가 더 높은 게 당연할 겁니다. 하지만 2017년부터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출산율은 떨어지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층의 비중이 커진 겁니다. 그러면서 노년 부양비가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인구 추계에 따라 부양비를 계산해 볼까요. 2056년이면 총부양비가 100명을 넘어서고, 2067년이면 노년 부양비만 100명을 넘게 됩니다. 2070년에는 100명의 젊은 세대가 100.6명의 노년층을 부양해야 할 것으로 예측됐어요. UN은 이러한 예측보다 7년 앞선 2060년에 대한민국의 총부양비가 103.4명으로 100명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죠.
 
OECD 연도별 평균 부양비, 단위: 명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우리나라 부양비는 어느 수준일지, 통계청 데이터[1]를 통해 OECD 국가의 부양비를 분석했습니다. OECD 국가의 평균 부양비를 그리면 위의 그래프가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부양비 그래프와 모양이 많이 다르죠?

비슷한 부분이라면 역시 OECD 부양비도 과거에는 노년 부양비보다 유소년 부양비가 높았지만, 어느 시점(2020년)에 다다르면 역전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해 노년 부양비의 비율이 적게 늘어나는 게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OECD 평균 노년 부양비의 최대치는 53.5명, 우리나라의 거의 절반 수준이죠.

개혁이 필요한 국민연금

그렇다면 국민연금의 상황은 어떨까요? 2022년 기준, 우리는 소득의 9퍼센트를 국민연금에 내고,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소득의 43퍼센트를 연금으로 받고 있습니다. 2021년 11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에는 무려 924조 원의 기금이 쌓여 있습니다. 하지만 구조 자체가 내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 구조다 보니 국민연금 곳간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죠.

부양비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앞으로 연금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연금에 돈을 넣을 사람은 줄어드는 상황이 올 겁니다. 연금 재정이 고갈되는 속도는 빨라질 겁니다. 2017~2021년, 5년간 국민연금 가입자는 0.7퍼센트 증가했지만, 연금을 받는 수급자는 6.4퍼센트 증가했거든요. 속도가 다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차이는 더 벌어지겠죠.

이런 상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연금의 재정 상황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법으로 정해 두고 5년마다 연금 재정을 계산해서 발표하는데요, 처음으로 연금 재정을계산한 2003년에 이렇게 예측했습니다. 2036년에 국민연금이 적자로 돌아서고 2047년에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요. 나머지 계산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2003년 1차 계산: 2036년 적자, 2047년 고갈
2008년 2차 계산: 2044년 적자, 2060년 고갈
2013년 3차 계산: 2044년 적자, 2060년 고갈
2018년 4차 계산: 2042년 적자, 2057년 고갈

2차 계산에선 1차보다 적자와 고갈 시점이 미뤄졌고, 4차 계산에선 3차보다 그 시점이 앞당겨진 걸 알 수 있습니다. 2003년에 처음으로 연금 곳간 상황을 계산해 보니, 생각보다 좋지 않았던 겁니다. 정부 입장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죠. 당시 노무현 정부는 연금 곳간을 더 채우는 방향으로 연금 개혁을 했습니다. 핵심은 소득대체율을 인하하는 것, 즉 연금을 덜 받는 방향으로 정책을 손을 본 겁니다.

2차, 3차, 4차 계산 결과가 나올 당시, 정부는 연금 개혁을 하지 않았습니다. 국민 반발이 심할 게 뻔히 보이니 쉽게 손대지 못한 거죠. 그래서 2차와 3차 사이에는 정책 변화가 없었고, 계산 결과가 동일하게 나온 겁니다. 4차 역시 정책 변화는 없었지만 출산율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기대 수명이 늘어난 영향으로 시점이 앞당겨졌습니다.

정말 90년생부터는 한 푼도 못 받나

국민연금 고갈의 영향은 1990년생부터 받게 되는 걸까요? 우선 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단 한 푼도 못 받는다는 말이 왜 나오게 됐는지 살펴봅니다. 정부뿐만 아니라 학계나 연구소도 국민연금이 언제 고갈될지 예측하는 논문이나 보고서를 내놓고 있습니다. 2020년 국회예산정책처가 국민연금 재정을 전망한 결과[2], 적자 시점은 2039년, 고갈 시점은 2055년이었습니다. 2018년 정부의 계산 결과보다 2~3년 더 단축된 시점입니다.

2022년 초 한국경제연구원은 예산정책처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보도 자료[3]를 하나 냅니다. 고갈 시점으로 예측된 2055년부터 연금 수령 조건을 충족하는 1990년생은 국민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 보도 자료를 바탕으로 관련 기사들이 쏟아진 겁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사실일까요?

그렇진 않아 보입니다. 국민연금 곳간이 고갈되더라도 연금은 여전히 지급할 수 있거든요. 쌓아 둔 돈에서 연금을 주는 적립식이 아니라 그해에 거둔 금액을 바로 연금으로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바꾸면 해결되죠. 다만 그러기 위해선 연금이 고갈된 이후의 미래 세대가 국민연금에 더 많은 돈을 내야합니다. 한국경제연구원 보도 자료도 2055년 이후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선 보험료율을 확 올려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그렇다면 보험료율은 얼마나 올려야 할까요? 아래 그래프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보험료율 인상 시나리오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2019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근로 소득자의 중위 소득은 234만 원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할 때,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을 9퍼센트로 유지한다면 근로자가 매달 내야 하는 돈은 21만 600원입니다. 하지만 곳간이 텅 비게 된다면, 2057년엔 보험료율을 24.6퍼센트로 올려야만 연금을 지급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근로자는 매달 57만 5640원을 내야 하는 거죠. 2088년까지 보험료율을 최대 29.7퍼센트로 올린다면[4] 근로자는 월 70만 원 가까운 돈을 국민연금에 내야 하는데, 과연 이걸 반기는 미래 세대가 있을까요?

결국 단계적으로 보험료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만 어느 누구도 먼저 이야기를 안 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에 돈을 더 내야 한다고 하면 국민 반발이 심할 테니까요. 1989년 이래로 30년 넘게 9퍼센트의 보험료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 폭탄 돌리기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여파는 막 국민연금을 내기 시작한 2030세대에까지 미치고 있죠.

인구의 영향이 큰 만큼, 인구 구조가 개선되면 굳이 보험료율을 높이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출산율이 높아지면 인구가 늘어나고 국민연금을 내는 사람이 늘어나니 곳간 고갈 시기가 더 늦어질 테니까요. 하지만 출산율과 연금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당장 지금부터 출산율이 급증해서 제2의 베이비붐 세대가 생겨났다고 가정해 볼게요. 젊은 시절에는 국민연금에 많은 돈을 내겠지만, 이 세대가 나중에 나이 들어서 노년층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국민연금을 받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겁니다. 처음 그려 놓은 부양비 그래프에서 노년 부양비가 급증한 이유도 마찬가지죠. 과거 베이비붐 세대가 그대로 노년층으로 들어왔기 때문이거든요. 인구 증가가 궁극적으로는 연금 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겁니다.

역린을 건드리는 자, 누구일까

일찍이 연금 제도를 운영해 온 서방 국가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독일은 2001년 소득대체율을 70퍼센트에서 53퍼센트로 낮췄고, 2025년까지 48퍼센트를 유지하는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2022년 보험료율은 18.6퍼센트를 기록했죠. 일본은 2003년 13.6퍼센트였던 보험료율을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올려 18.3퍼센트로 맞췄습니다. 캐나다도 1995년 5.4퍼센트였던 보험료율을 2003년 9.9퍼센트로 높였고 2023년까지 11.9퍼센트로 높이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보험료율은 상당히 낮은 축에 속합니다. 아래 그래프[5]를 보면 알 수 있죠.
주요 국가 보험료율, 단위: 퍼센트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물론 해외 선진국의 정부들도 정치적 부담을 안 느끼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아예 정치가 끼어들 여지를 두지 않는 제도를 만들었죠. 독일, 스웨덴, 일본은 연금에 영향을 미치는 인구, 성장률 등의 수치가 변하면 자동으로 연금 수급액이 조정되는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일종의 자동 안정화 장치를 도입한 겁니다. 연금 제도가 국민 여론에 부담을 받지 않도록 독립된 제도로 분리해 놓은 거죠.

반면 우리나라는 모두가 연금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치권이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국민연금에는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탓에 정치적 부담이 큰 만큼 먼저 역린을 건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피해를 보는 건 국민이 될 겁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민연금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국민연금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더 내고 더 받는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아니면 덜 내고 덜 받는 방향이 맞을까요?
 

미디어는 자살률을 증가시켰을까


2023년 상반기 포털을 채운 뉴스를 보면, 안타까운 이야기를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용기를 내서 학교 폭력의 실태를 폭로했지만, 도리어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전세 사기 피해를 본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무대를 빛내던 아이돌 가수가 사망하면서 추모 공간이 조성되기도 했습니다. 조금은 무거운 주제인 ‘자살’에 대해 이야기해 봅니다.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볼 지점이 있어 질문을 던져 봅니다. 언론과 미디어는 자살률을 증가시켰을까요?

이번 장에서 특정 사건을 언급하게 될 경우, 자살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지양합니다. 대신 객관적인 사망 사실에 초점을 둔 표현으로 대체합니다. 다만, 자살률과 같이 통계적으로 관련 수치를 인용할 때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중 압도적 1위

우리나라 자살률이 높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 봤을 겁니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야만 제대로 문제를 풀 수 있는 만큼, 우리나라 자살률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데이터를 통해 정리했습니다. 살펴볼 통계는 ‘2021년 사망원인통계’입니다. 이 통계를 살펴보면 2021년 한 해 동안 사망한 사람들의 연령대는 어떠한지, 원인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1년 총 사망자 수는 31만 7680명입니다. 1983년부터 사망원인통계를 집계한 이래로 가장 많았습니다. 그중 고의적 자해, 즉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만 3352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하루에 평균적으로 36.6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다고 볼 수 있겠죠. 전체 사망 원인 중 자살의 순위는 암, 심장 질환, 폐렴, 뇌혈관 질환에 이어 5위입니다. 상당히 심각하죠. 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비율(자살률)을 살펴보면 26.0명인데, 이 수치는 고혈압의 사망률(12.1명)과 패혈증의 사망률(12.5명)을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연령별로 보면 자살의 심각성이 더 눈에 띕니다.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었습니다. 10대 사망자의 43.7퍼센트, 20대 사망자의 56.8퍼센트, 30대 사망자의 40.6퍼센트가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습니다. 과거 데이터와 함께 살펴보면 더 씁쓸해집니다. 2010년 통계에서도 10~3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었습니다. 2000년대 통계를 봐야, 사망 원인에서 자살의 순위가 내려갑니다. 참고로 2000년 10대, 2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운수 사고였고 30대는 암이었습니다. 당시 자살은 10대와 30대에선 3위, 20대에선 2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번엔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어느 수준인지 살펴봅니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자살률은 압도적인 수치로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래 나오는 그래프는 표준 인구로 계산해 OECD 회원국의 자살률[6]을 나타낸 건데, 2020년 기준 우리나라가 24.1명으로 압도적 1위입니다. OECD 회원국 평균 자살률인 11.1명의 두 배 가까운 수치죠.
OECD 자살률 현황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1996년 이후 데이터를 살펴봐도 2003년부터는 계속해서 자살률 1, 2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안 좋은 순위 1, 2위를 다투는 국가는 바로 리투아니아입니다. 발트 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는 자살 문제가 심각해서 ‘절망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리투아니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 중 자살률이 더 높은 성별은 무엇일까요? 성별로 살펴보면 우리나라 남성 자살률이 여성보다 2.2배 높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자살 시도자를 살펴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1.8배 더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차이를 자살 수단의 치명률 차이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남성 자살률보다 여성 자살률이 낮다고 해서 그 무게감이 덜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우리나라 여성 자살률은 타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입니다.

자살은 공중 보건의 위기

대한민국의 자살 통계를 보고 어떤 마음이 드나요? 자살이라는 주제 자체가 가볍지 않다 보니 약간 께름칙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자살에 대해 쉬쉬하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2018년에 진행된 자살 실태 조사[7]를 보면 자살에 대한 금기적 태도가 이전 조사보다 늘어난 경향을 보였습니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낫고, 다른 사람의 자살에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죠. 특히 “자살은 말하지 않아야 하는 주제이다”라는 질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절반에 가까운 48.5퍼센트나 됐습니다. 반면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30.6퍼센트에 불과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건 자살을 막기 위해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보건복지부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7년간 자살 사망자들의 유족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자살 사망자의 94퍼센트가 사망 전에 경고 신호를 보내 왔습니다. 자살 시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35.8퍼센트가 도움을 얻으려고 자살을 시도했다고 답변했죠.

자살은 주변의 관심과 도움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은 공중 보건 차원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공중 보건이라는 건 지역 사회의 노력으로 질병을 예방한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책임으로만 두는 게 아니라 주변 사회가 나서서, 또는 국가가 나서서 이들을 자살로부터 보호하고 예방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 시작은 정확한 실태 파악과 통계 작성일 겁니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야 제대로 된 정책과 제도가 나올 테니까요.
자살예방기본대책과 연도별 자살률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정부는 이렇게 조사된 통계와 실태 자료를 바탕으로 2004년 제1차 자살예방기본대책을 수립해 자살을 막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했습니다. 뒤이어 2009년엔 2차, 2016년 3차 대책을 마련했고,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이 진행됩니다. 예방 대책에 발맞춰서 2006년엔 지하철에 스크린 도어를 설치했고, 2011년엔 맹독성 농약 생산을 금지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자살률은 2011년에 정점을 찍고 줄어들었습니다.

2011년에 자살예방법이 통과되고, 이듬해에 중앙자살예방센터가 신설됐지만 갈 길이 멉니다. 정점은 지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26.0명이라는 압도적인 자살률로 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여태껏 정부가 세워 온 자살예방기본대책의 목표치에 머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 1차 대책 때 목표 자살률은 18.2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1차 이후 우리나라 자살률은 여전히 30명대입니다. 2차와 3차 때도 목표치와 실제 자살률과 차이는 상당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수가 늘어나면서 자살률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자살 예방을 위한 미디어의 역할

제도적인 뒷받침과 함께 노력해야 하는 곳이 또 있으니 바로 미디어입니다. 자살 관련 보도가 자살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거든요.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 들어 본 적 있나요? 베르테르 효과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의 자살 보도가 이어진 후 심리적으로 동조하거나 모방 자살 시도가 잇따르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데이터로 미디어가 자살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 봅니다. 아래 그래프는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에서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린 그래프입니다. 연구팀은 2005년부터 2011년 사이에 발생한 유명인 자살 사건을 대상으로, 관련 보도가 나간 후 한 달 동안 일반인들의 자살률을 계산했습니다. 유명인이 사망하기 직전 한 달 평균치와 비교해 보니 평균 18퍼센트가 증가한 것으로 나왔죠. 그래프를 보면 2012년 이전까지는 한 달간 일반인들의 자살 건수가 상승하는 추세가 뚜렷합니다.

우리나라 사례에서만 베르테르 효과가 분석된 건 아닙니다. 과거 장국영의 사망 이후를 분석한 논문 자료 〈The effects of a celebrity suicide on suicide rates in Hong Kong〉[8]도 있습니다. 당시 장국영 사망 이후 홍콩에서 발생한 자살은 이전 5년 평균보다 56퍼센트 증가했습니다. 아직도 일부 뉴스에는 자살 사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표현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과거엔 더 심했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보도로 제2의, 제3의 자살 시도자를 양산했던 상황이 데이터로 증명되는 겁니다.
자살예방법 및 자살보도 권고기준 시행 전후 일반인 자살률 변화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모방 자살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에선 자살 예방을 위해 자살예방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엔 언론사들이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을 정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죠. 잘못된 자살 보도로 사람을 죽게 할 수 있기에, 자살 보도 방식을 바꿔 소중한 생명을 구하려고 한 겁니다. 그래프[9]를 통해 2012년 3월 자살예방법 시행 이후, 2013년 9월 자살 보도 권고 기준 시행 이후 일평균 자살 건수가 줄어드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가 노력한다면 자살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셈입니다. 이런 효과를 파파게노 효과라고 합니다.

하지만 2018년 이후,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요? 우리는 2010년 후반부터 훨씬 더 많아진 미디어 채널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있습니다. SNS나 유튜브도 그 통로 중 하나일 거고요. 정보를 전달하고 뉴스를 제공하는 언론 역할을 하는 채널은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모든 채널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2023년 4월, SNS를 통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적 책임에 손 놓는 SNS?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자살을 유발하는 정보는 모방 자살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뉴스가 베르테르 효과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살펴봤습니다. 문제는 SNS나 유튜브, OTT 등 새로운 통로가 늘어나면서 자살 유발 정보의 양이 급속도로 늘어났다는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2017년에 복지부에 신고된 자살 유발 정보는 3만 1483건이었는데, 2022년엔 그 양이 23만 4064건으로 급증했습니다.

넷플릭스의 〈루머의 루머의 루머〉라는 드라마 본 적 있나요? 청소년의 자살로 시작되는 시리즈인지라 당연히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습니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가 방영된 이후 자살 관련된 검색량이 19퍼센트나 늘어났습니다. 방영 3개월 뒤 미국 청소년 자살률은 무려 30퍼센트 증가했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모습이 드라마에 그대로 들어가면서 자살 예방 단체의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넷플릭스는 해당 영상을 편집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OTT 접근성이 극도로 높아진 오늘날, 자살과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 땐 충분한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OTT뿐만 아니라 SNS의 상황도 돌아봐야 할 겁니다. SNS에 쓰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타인에 대한 질투, 박탈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10]가 있습니다. 굳이 자세한 연구 결과를 꺼내 오지 않더라도 SNS를 하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우울한 느낌을 받아 본 적 있을 겁니다. 거기에 유사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우울한 글과 영상, 사진을 보던 이용자가 계속해서 비슷한 콘텐츠에 노출되면 어떻게 될까요?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우울증으로 힘든 사람에게 ‘당신이 좋아할 만한 우울증 콘텐츠’를 추천해 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실제 2017년 핀터레스트와 인스타그램에서 우울증, 자해 관련된 콘텐츠에 노출된 영국 청소년이 사망했습니다. 영국 법원은 SNS 플랫폼에 사망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죠. 인스타그램은 “자살 충동을 겪는 이가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면서 반발했습니다. 사건 이후 SNS에서 자해, 자살 콘텐츠를 찾아보기 어렵게 고쳤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해와 자살 관련 콘텐츠는 SNS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OTT와 SNS는 표현의 자유, 개인의 선택이라는 방패를 들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건 공중 보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성격도 있는 만큼 해당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SNS 이용자의 자율이 더 중요한 가치일까요? 아니면 자살 보호를 위한 규제가 더 중요할까요?

군중이 군중을 삼켰다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밤,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해밀톤 호텔 옆 작은 골목에 핼러윈 축제를 즐기려는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159명의 사망자와 196명의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태원 골목에 모여 있었는지, 왜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데이터를 통해 살펴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놓치고 있었던 대규모 군중 밀집 현상에 대해 알아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까

이태원에 사람들이 얼마나 몰렸는지 살펴보기 위해 여러 데이터를 찾았습니다. 군중 규모를 파악하기 가장 좋은 데이터는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생활인구 데이터일 겁니다. 생활인구 데이터는 서울시와 KT가 공공데이터와 통신 데이터를 이용해서 특정 지역과 시점에 존재하는 인구를 추계한 데이터입니다. 보통 시위 규모나 유동 인구 분석에 많이 쓰이죠. 하지만 생활인구 데이터는 집계구와 행정동 단위로 수집하기 때문에 군중의 밀집도를 나타내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생활인구 데이터 분석이 아닌 다른 분석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마부뉴스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딥러닝입니다.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한 참사인 만큼 인파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이미지를 통해 군중의 수를 추정하는 딥러닝 분석을 사용했습니다. 클라우드 카운팅 모델(Crowd Counting Model) 등 군중 규모를 파악하는 딥러닝 기술이 꽤 나오고 있거든요. 그중 2017년 8월에 발표된 ‘crowdcount-cascaded-mlt’라는 모델을 이용해 이태원 군중의 수를 파악했습니다. 모델을 통한 추정인 만큼 실제 수치와 오차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 어두운 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인 밤 상황이라 원래 군중 규모보다 적게 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군중 수 모델 분석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당시 현장 상황이 담겨 있는 이미지를 분석해 지도로 나타냈습니다. 위의 이미지는 사고가 나기 직전 해밀톤 호텔별관에 있는 데이앤나잇(DN) 앞의 모습입니다. 이 이미지로 군중 규모를 분석하면 1133명이란 추정치가 나오죠. 네이버 지도에서 해당 영역의 면적을 계산하면 약 130제곱미터가 나오는데, 단위 면적으로 계산하면 1제곱미터당 8.7명으로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나머지 구역의 추정 인구는 각각 466명과 112명. 보수적으로 추정된 숫자라 하더라도 좁은 영역에 굉장히 많은 사람이 몰렸다는 걸 알 수 있죠.
군중 규모 분석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군중 사고 전문가인 영국 서퍽대학교의 키스 스틸 교수는 1제곱미터당 5명을 넘어서면[11] 군중 사고 위험성이 커진다고 이야기합니다. 1제곱미터당 3.5~4명이면 그래도 걸을 때 앞뒤로 다리가 걸리지 않아 각자 360도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제곱미터당 5명을 넘어서면 움직임의 자유가 없어지면서 뒤엉키기 시작하죠. 마부뉴스 분석의 밀집도는 최대 8.7명이니 상황이 정말 심각했던 겁니다. 마부뉴스 분석보다 더 높은 군집도가 나온 결과도 있습니다. 1제곱미터당 최대 16명이 밀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군중 사고는 후진국형 사고가 아니다

“과연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인 걸까…….” 사람들 대부분이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들었을 때 가졌던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 같고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압사 사고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재난이라고 경고합니다. 물론 선제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부분에서 후진국형 사고라는 지적도 있지만, 인구가 늘어나면서 혹은 대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군중 압사 사고의 발생 가능성은 더 커질 거라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합니다.
연도별 군중 사고 발생 현황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데이터로 살펴볼게요. 위의 그래프는 1950년부터 2022년까지 전 세계에서 발생한 군중 사고를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World Crowd Disaster Web Map’에서 수집한 전 세계 군중 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그렸습니다. 작지 않은 규모의 군중 사고가 거의 매년 발생하고 있고, 2000년대 들어 그 빈도가 늘어나고 있는 게 보일 거예요. 연대별로 끊어 보면 증가 흐름이 더 명확합니다. 1950년대 군중 사고는 두 건에 불과했지만 2000년대까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거든요. 2000년대에 57건으로 정점을 찍었고, 2010년대에는 40건으로 집계됐지만 흐름으로 보면 군중 사고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가장 많은 군중 사고는 종교 활동에서 일어났습니다. 1950년대부터 조사된 174건의 군중 사고 중 68건, 그러니까 39.1퍼센트가 종교 활동에서 발생했죠. 그중에는 역대 최악의 피해 규모를 기록한 사우디아라비아 하지 압사 사고도 포함돼 있습니다.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당국 집계에 따르면 최소 717명, 최대 2411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종교 활동 다음은 스포츠 경기(46건), 오락(33건) 활동으로 조사됐습니다.

사실 ‘World Crowd Disaster Web Map’에서 전 세계의 모든 군중 사고를 기록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군중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보고되지 않은 사고도 많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죠.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군중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해당 DB에 기록된 우리나라 군중 사고는 이태원 참사를 포함해 단 두 건입니다.

1959년 7월 부산 공설 운동장에서 진행된 시민 위안 잔치에서 소나기를 피하려는 관중 3만여 명이 좁은 출입구로 밀리며 67명이 압사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태원 참사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군중 사고 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였습니다. 2005년 10월 경상북도 상주 시민 운동장에서 열린 가요 콘서트 공연에 5000여 명이 몰리며 11명이 숨진 사고도 있었습니다.

밀집의 일상화, 우리 일상 상황은?

군중 사고가 늘어나는 추세일 뿐 아니라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심심치 않게 군중 밀집 상황을 접하고 있습니다. 인스타 맛집이 즐비한 ‘핫플레이스’에 가면 군중에 휩쓸려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거나, 많은 사람이 타 있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온몸을 써서 비집고 들어가야만 하죠. 대규모 공연이나 경기를 관람할 때면 인파 속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렵기도 합니다. 사고만 나지 않았을 뿐, 과밀화된 환경은 이미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4호선 출근 시간 군중 밀집도 분석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지하철 데이터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밀집된 환경에 노출돼 있는지 살펴봅니다. 서울교통공사의 지하철 혼잡도 데이터[12]를 보면, 2021년 기준으로 가장 혼잡한 노선은 혼잡도 141퍼센트를 기록한 4호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하철 혼잡도는 한 칸의 승객 수 160명을 기준으로 환산한 수치입니다. 서 있는 사람 없이 모든 승객이 좌석에 앉는다고 가정하면, 열차 한 칸은 총 54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서 있는 사람 106명까지 더하면 160명. 국토교통부에선 이렇게 160명이 꽉 찬 경우를 혼잡도 100퍼센트로 보고 있어요. 141퍼센트라는 건 열차 한 칸에 평균 226명이 탑승했다는 의미인 거죠.

혼잡도 2등은 149퍼센트를 기록한 2호선입니다. 4호선과 2호선의 데이터로 출근 시간 군중 밀집도를 분석했습니다. 군중 밀집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각 역에 표시된 원은 크게 나타납니다. 출근 시간 밀집도가 상당한 게 느껴질 겁니다. 4호선과 2호선 중 가장 높은 밀집도를 보인 건 한성대입구역입니다. 한성대입구역의 출근 시간(8시, 8시 30분) 평균 혼잡도는 무려 150.8퍼센트. 이를 인원수로 치환하면 지하철 한칸에 241명이 나옵니다.

좌석을 뺀 지하철 열차 내 공간은 42제곱미터 정도입니다. 열차 내 단위 면적당 인원수를 계산하면 어느 정도의 수치가 나올까요? 한성대입구역의 군중 규모는 1제곱미터당 4.5명으로 군중 사고 전문가들이 경고한 1제곱미터당 5명에 육박한 수준입니다. 한성대입구역 비롯해 출근 시간에 1제곱미터당 4명이 넘는 역은 네 곳이나 됩니다. 길음, 성신여대입구, 한성대입구, 혜화입니다. 매일 출근 시간에 이 네 개의 역을 지나는 사람들은 본인 의지대로 몸을 가누기가 어렵고, 정차할 때마다 좁은 공간을 비집고 움직여야만 하차할 수 있는 상황인 거죠.

체계적 관리만이 대안

압사 사고는 대규모 군중이 모이는 곳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도시뿐만 아니라 작은 지방 자치 단체에서도 사람이 많이 모인다면 언제든지 참사의 가능성은 존재하죠. 또 실외만이 아니라 지하철 같은 실내에서도 참사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건 체계적인 관리뿐입니다. 2022년 10월 여의도에서 열린 불꽃축제에는 100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모였고, 당시 서울시가 중심이 돼 합동종합본부를 운영했습니다. 반면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에는 137명의 경찰만 투입됐을 뿐 현장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군중이 모인 여의도에선 아무런 인명 피해 없이 행사를 마무리했지만, 이태원에선 그러지 못했어요.

2010년, 독일 뒤스부르크에서 러브 퍼레이드라는 이름의 EDM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행사장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에 청년들이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죠. 이 사고로 21명이 사망했고, 652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독일은 참사를 참사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막스플랑크연구소를 중심으로 압사 사고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관련 모델을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군중 밀집을 관리하고 체계적으로 대비하고 있죠. 다시는 군중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말입니다. 우리나라도 참사가 참사로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철저한 대비와 관리가 필요합니다.

군중 압사 사고는 어떤 한 사람에 의해 사건이 촉발되기보다 다수의 군중이 모여 있는 상황 자체가 원인입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는 일각에서 사고 피해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지우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의 책임 있는 움직임이 필요했습니다.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도 뒤따라야 할 거고요. 이태원 참사로 피해를 본 모든 분이 다시 건강히 일상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1]
통계청, 〈장래인구추계:2020~2070년〉, 2021년.
[2]
국회예산정책처, 〈2020 NABO 장기 재정전망〉, 2020.
[3]
한국경제연구원, 〈이대로 가다간 90년생부턴 국민연금 한 푼도 못받아…….연금개혁 시급〉, 2022.1.13.
[4]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장기재정전망 결과〉, 2020.
[5]
OECD, 〈Pensions at a Glance 2021〉, 2021.
[6]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국제 자살통계〉
[7]
보건복지부, 〈2018 자살실태조사〉, 2019.
[8]
Yip PS et al., 〈The effects of a celebrity suicide on suicide rates in Hong Kong〉, 《J Affect Disord》 93(1-3), 2006.
[9]
Jihoon Jang, Woojae Myung, and Hong Jin Jeon, 〈Effect of suicide prevention law and media guidelines on copycat suicide of general population following celebrity suicides in South Korea, 2005–2017〉, 《Sage Journals》 56(5), 2021.
[10]
Lauren A Rutter et al., 〈Social Media Use, Physical Activity, and Internalizing Symptoms in Adolescence: Cross-sectional Analysis〉, 《JMIR Ment Health》 8(9), 2021.
[11]
군중 안전 및 군중 위험 분석에 관한 데이터는 Crowd Risk Analysis Ltd 홈페이지(https://www.crowdrisks.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12]
서울교통공사, 〈지하철혼잡도정보〉,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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