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적 발전의 길고도 느린 죽음
2화

지구적 발전의 동력

낙관론을 뒤흔드는 2020년대


21세기의 첫 20년은 가난한 세계가 그릴 궤적에 대해 엄청난 낙관주의가 펼쳐지는 시기였다. 만약 당신이 그 당시를 부유한 세계의 뉴스 소비자로서 보냈다면, 그 당시에도 위기와 쇠퇴, 사회 질서의 붕괴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다는 걸 파악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류 대부분은, 다시 말해서 북미 영어권, 유럽, 일본, 그리고 몇몇 부유한 지역의 소도시에 사는 인류의 90퍼센트 이상은 부정할 수 없는 활기찬 발전을 경험하는 것처럼 보였다.

‘복스(Vox)’의 표현에 의하면 세계는 “훨씬 더 나아지고 있었다.” 이 지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낙관적인 분위기의 책과 글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세계는 상당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건강과 관련한 수치들이 개선됐다. 아이들과 성인 모두에게서 사망률이 줄었다. 문해력이 확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특히 세계은행이 정의한 “극빈층”, 즉 하루 2.15달러 미만을 버는 가난한 이들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진전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었다. 빌 게이츠(Bill Gates), 하버드대학교의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교수, 그리고 전직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였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 는 모두 한 번쯤 이러한 전망의 저명한 신봉자들이었다. 크리스토프는 매년 12월 말이 되면 직전의 한 해를 “역대 최고의 해”로 선언하는 일종의 관습을 만들어 냈다.

물론 문제는 있었다. 2017년 크리스토프는 이렇게 말했다. “예멘과 시리아에서의 전쟁, 미얀마의 잔학 행위, 그리고 미쳐가는 것 같은 대통령”, 그리고 물질적 고통은 여전히 압도적인 인류가 경험하는 현실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언젠가 말했듯이, 상황은 정말로 “언제나 훨씬 더 나아지고(getting so much better all the time)” 있었다. 모든 것의 의미는 분명했다. 모두가 나름대로 어떻게든 세계 경제의 구조를 비판했지만, 분명히 무언가는 작동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그래프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세 번째 10년대인 현재, 세계의 발전을 바라보던 지배적인 관점이 이제는 일관성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팬데믹, 공급망 비상사태, 농업 기근,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인플레이션 및 에너지 쇼크의 출현, 서방의 통화 긴축, 글로벌 경기 침체의 망령 등. 이 모든 일이 2000년대와 2010년대의 낙관론을 뒤흔들고 있다. 부실한 재정 상태는 수많은 가난한 정부에게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되었고, 수년간 증가했던 소득은 사라졌다. 2022년 10월, 세계은행은 극빈층이 줄어들던 진전이 멈췄으며, 향후 몇 년의 예후도 불확실하다고 발표했다. 세계은행의 총재는 지난 2년의 사건들로 인해 “발전이 위기에 내던져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 한창 호화롭던 시절에도 지구적 발전에 대한 승리의 서사는 이미 현실과는 다소 불확실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오해의 상당수는 통계적인 문제에서 비롯했다. 인플레이션과 구매력 평가 지수(PPP) 계산에 (특히 도시와 시골의 물가 차이에 있어서) 문제가 있었는데, 이것이 전 세계의 빈곤층을 현저하게 적게 추산하는 역할을 했다. 다른 문제들은 조금 더 주관적이다. 많은 사람이 (극빈층의 기준이 되는) 2017년의 구매력 평가 지수 기준으로 하루 2.15달러라는 기준을 비판해 왔다. 이는 말리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가장 빈곤한 국가에서 누가 가장 가난한 사람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설계된 기준이다. 그러나 앙골라나 파키스탄처럼 그들보다 아주 조금 잘 사는 나라의 사정과는 맞지 않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2.15달러라는 수치가 생계를 유지하거나 정상적인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에는 너무 낮은 수준이었다. 즉 2.15달러는 실질적인 빈곤 탈출에 대해 어떠한 유의미한 것도 측정하지 못하는 기준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지적하듯, 확실히 이러한 통계적 이슈들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글에서 지구의 발전에 관해 더욱 의욕적인 비판을 제공하고자 한다. 우리는 경제 발전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 혹은 통계적 결함을 이유로 세계의 빈곤이 감소했다는 진전을 무시해야 한다는 비관론적 주장을 펼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가난한 세계에 대한 예후가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더 나쁜 이유를 보여 주고자 한다. 일반적인 평가들은 제아무리 엄격하다 하더라도 순전히 정량적인 설명에만 몰두하고 있으며, 지리적이고 역사적이며 정치경제적인 접근법들은 무시하고 있다. 우리는 세계 발전의 뒤틀린 궤적을 뒷받침하는 구조적인 변화를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인 발전으로 복귀하기 위한 새로운 프레임 워크, 그와 결합된 더욱 현실적인 전망을 개략적으로 제시할 것이다.[1]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경제 발전의 대안적인 모델을 찾으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고도로 산업화하지 않는 한,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즉 빈곤국에서 부국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반복 가능한 전략이 없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제조업의 성장과 그로 인한 더욱 폭넓은 경제 발전의 성장세가 압도적으로 동아시아에 쏠렸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에 집중됐다. 라틴 아메리카, 남아시아, 중동,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등 가난한 세계에 존재하는 나라 대부분의 경제는 불안정한 궤적을 경험해 왔다. 이들 지역에서는 탈농업화(deagrarianization)와 탈산업화(deindustrialization)가 동시에 벌어졌는데, 특히 1980년 이후에 이런 추세가 두드러졌다.

그 결과는 동아시아의 산업화, 발전, 대규모 소득 증가가 거의 모든 다른 지역의 침체를 통계적으로 “보상(compensate)”하는 것이었다. 즉, 동아시아의 산업화는 다른 나라들의 제조업 기반 손실에 일부 책임이 있다. 예를 들자면, 심지어 가난한 세계의 대부분에서 소득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주로 중국 시장에서의 폭발적인 수요 증가에 힘입은 2000~2015년 사이의 ‘원자재 슈퍼 사이클(commodity supercycle)’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이는 신흥 시장들을 낮은 기술력과 획일화된 수출품에 의존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요컨대, 아시아의 성공은 세계의 나머지 지역에 드리운 암울한 상황을 가려 버렸다.

대부분의 신흥 시장들은 제조업과 견줄 만한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찾지 못했다. 대부분이 최근 수십 년 동안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서비스업과 상품 수출에 의존했다. 이러한 일은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지 못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개발 도상(developing)” 국가들은 (참고로 우리는 이런 완곡한 표현에 회의적이다.) 수십 년 전보다 좋지 않은 구조적 여건에 처해 있다. 경제적으로는 덜 복잡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더욱 불안정한 상황이다. 설령 그들에게 발전 연합(developmental coalition)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심하게 닳아 없어진 상태다. 가끔씩 보이는 “떠오르는 인도”나 “떠오르는 아프리카”라는 모든 과대광고에도 불구하고, 탈산업화, 생태적 파괴, 인구의 역전 등의 구조적인 역학 관계는 다가오는 수십 년 동안 경제 발전에 심각한 어려움을 야기할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새로운 산업화와 의미 있는 발전의 물결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빈곤 통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프리카가 특히 중요하다. 아프리카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최악의 경제적 성과를 보였다. 그럼에도 다음 세기에는 가장 현저하게 인구가 증가할 것이다.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그 결과는 지난 40년 동안 빈곤에 맞서 이뤄왔던 진보가 서서히 느려지거나 정체되고, 심지어 역전되는 그런 세상일 것이다.
 


제조업의 경로


우리는 떠오르는 신흥 시장의 발전에 대해 비교적 비관적으로 평가한다. 경제 발전에 있어 제조업이 수행하는 근본적인 역할에 관한 판단 때문이다. 다양한 발전 이론들을 관통하는 중심적 특징은 농업 위주의 경제를 산업 성장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의 사회 발전 도식은 제조업을 산업 노동 계급의 부상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으로 바라봤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 에서) 산업화가 “모든 민족, 심지어 가장 야만적인 민족까지도 문명화한다”고 썼다. 근대화 이론가인 월트 로스토(Walt Rostow)가 《경제 성장의 단계(The Stages of Economic Growth)》 라는 책에서 설명하는 “근대화 이론”은 미국의 지지를 받았는데, 이 이론은 산업화의 “출발”을 경제 발전의 여러 국면 가운데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순간으로 평가했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이런 주장을 펼친 책의 부제는 ‘비공산당 선언(Non-Communist Manifesto)’이었다. 니콜라스 칼도어(Nicholas Kaldor)와 라울 프레비시(Raúl Prebisch)의 연구는 지난 세기 중반에 개발도상국에서 커다란 유명세를 누렸는데, 그들 역시 산업 지향적인 국가 발전주의를 강조했다.[2]

제조업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칼도어와 그 이후의 발전 경제학자인 대니 로드릭(Dani Rodrik)은 제조업 분야가 어떻게 성장을 견인하는지를 설명하는 일련의 “양식화된 사실들(stylized facts)”을 제시했다. 그중에서 특히 세 가지의 요인을 주목할 만하다. 첫째, 제조업은 다른 부문에는 없는 생산성의 역학을 갖고 있다. 농업이나 서비스업과 달리 정규적인 형태의 제조업은 노동력 단위(unit of labor)가 증가할 때마다 수익이 늘어나며,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 사이의 노동 생산성이 “무조건적으로 수렴(unconditional convergence)”하는 특성을 보여 준다. 둘째, 서비스업의 확장에는 자체적인 한계가 있고, (농업과 같은) 1차 상품의 확장에는 생태적인 요인이 자연스레 제약을 가한다. 반면, 공산품은 거래 가능성(tradability)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조업이 성장하는 데는 그러한 필연적인 제약이 없다. 셋째,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비숙련 노동을 포함한 많은 양의 노동력을 높은 생산성의 업무에 흡수할 수 있다. 이는 서비스업과 농업에서는 어려운 일이고, 금융 및 광업과 같이 생산성이 높은 다른 부문에서도 결코 해낼 수 없었던 일이다.[3]

산업화가 발전의 핵심이라는 사실에 대한 훨씬 더 커다란 증거는 이미 성공적으로 발전한 국가의 역사적인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고용과 GDP 모두에서 제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면, 빈국에서 부국으로 발전한 경제는 거의 없다. 고소득 수준을 달성한 국가들의 약 95퍼센트가 제조업 집중도가 높은 기간을 거쳤다. 고소득 국가의 역사적 궤적을 조사한 어느 연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제조업 부문이 전체 고용의 18~20퍼센트를 달성하는 것은 (…) 고소득 국가로 성장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4] 세계은행의 수석 경제학자였던 린이푸(林毅夫)는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결론을 제시한다. “몇몇 석유 수출국을 제외하면, 어떤 나라도 산업화 없이 먼저 부유해진 경우는 없었다.” 그러니 노르웨이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페르시아만의 독재 국가들과 같은 석유 수출국들은 매우 예외적인 사례였다. 자원을 통해 발전하는 경로는 노르웨이와 같은 승리보다는 오히려 (이라크, 모잠비크, 콩고와 같은) 실패 사례가 훨씬 더 많고, 아니면 가봉이나 보츠와나와 같은 그저 그런 성공 스토리가 더 흔하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제조업을 거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는 진정한 길은 없다.

 

덩샤오핑의 세계


그에 따라 지난 50년 동안 세계에서 산업화가 가장 많이 이뤄진 지역은 동아시아였다. 동아시아는 세계의 경제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곳이기도 하다. 21세기의 “글로벌” 빈곤 감소에 대한 수많은 낙관론이 있었지만, 사실 중국이라는 단 하나의 원동력에서 수많은 발전이 이뤄진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1980년 이후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에서 발생한 실질적인 경제 발전과 빈곤 감소에는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홍콩과 같이 작은 동아시아 국가의 몫이 컸다.

1970년대의 누군가가 미래를 내다본다면 다른 곳도 아닌 중국이 이러한 세계 경제 발전의 중심이라는 점이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러시아와 비교했을 때 중국은 선진적이고 복잡하며 기술적으로 발전된 경제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희박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치적 지도력은 엄청나게 자멸적이었다. 중국은 시골 지역을 신속하게 산업화하기 위해 무모한 시도[5]를 벌였는데, 이는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기근을 낳았다. 아마 단일 사건으로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벌어진 최악의 인재(人災)일 것이다. 그들의 광신적인 이데올로기 정화 프로젝트[6]는 몇 년 동안이나 국민들의 삶을 마비시키면서 거대한 인구 집단에게 트라우마를 가했다. 또한, 중국은 급진적 마오이스트(Maoist)를 지지하고자 가장 실용적이며 유능한 엘리트들을 소외시켰다. 틀림없이 1980년대의 중국은 1950년대보다 훨씬 더 건강해졌고 더욱 평등해졌으며 교육 수준도 높아졌다. 그리고 마오주의 정책 덕분에 중국은 소득 수준에 비해 상당히 발전했다. 마오쩌둥은 여성들에게 법률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고, 미움받는 시골의 지주 계층과 같은 전통적인 지대 추구 세력(rentier)을 제거했다. 1980년의 중국의 기대 수명은 당시 중국보다 1인당 GDP가 약 다섯 배나 높은 멕시코와 같았다. 그러나 중국은 어느 측면으로 봐도 매우 가난한 나라였다.[7] 인구 1인당 GDP는 세계 최저 수준으로 카메룬과 비슷했으며, 아이티, 레소토, 짐바브웨보다도 낮았다.[8]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였지만, 전체적인 경제 규모는 스페인이나 오스트레일리아보다도 작았다. 세계은행의 지표에 의하면 당시 중국 인구의 압도적인 대다수가 ‘극빈층’으로 분류되는 수준이었다.[9]

이처럼 허름한 상태로 시작한 중국은 덩샤오핑의 집권 초기부터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심장한 경제 성장 시기를 기록했다. 중국이 이룬 제조업의 기적은 유럽이나 북미가 이룬 산업화의 규모에 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중국의 성장 기적은 너무나 갑작스럽고도 놀라웠는데, 그들의 1인당 GDP는 1981년부터 2018년 사이에 여섯 배 성장했다. 덕분에 중국은 중진국으로의 지위를 확고하게 다질 수 있었다. 같은 기간 동안 1인당 GDP가 이처럼 크게 늘어 난 기록은 오직 몽골과 적도기니뿐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자원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물론 1984년부터 2007년 사이에 있었던 중국의 가장 인상적인 성장기는 현저하게 불평등했다. 앨버트 허쉬aks(Albert O. Hirschman)이 예견했듯 말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부유해졌지만, 막대한 양의 부가 최상층에 집중됐다.[10]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성장이 둔화하자, 중국은 재분배와 빈곤 감소 캠페인을 설계할 수 있었다. 덕분에 불평등은 감소했고 이익은 더욱 평등하게 공유됐으며 “극빈층”은 실질적으로 사라졌다. 1981년에는 중국 인구의 99.93퍼센트가 하루에 5달러 미만을 벌었다. 2008년에는 약 55퍼센트, 2019년에는 12퍼센트 미만으로 그 수치가 감소했다. 이렇게 40년 동안 극빈층의 임계 소득인 하루 2.15달러 미만을 버는 인구의 비율은 92퍼센트에서 불과 0.14퍼센트로 감소했다.[11]

글로벌 빈곤의 감소에 중국이 크게 기여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중국의 소득 증가는 1981년 이후 “극빈층” 지표의 전체 감소분에서 약 45퍼센트에 기여했다. 더 높은 소득 수준, 그러니까 실질적인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소득 수준에서는 중국의 기여도가 훨씬 더 강력하다. 하루 5달러의 소득 수준에서, 중국은 소득 증가의 거의 60퍼센트를 차지한다. 중상위 소득 국가의 빈곤 기준선보다 몇 달러 높지만, 연간 소득이 3650달러에 불과한 하루 10달러의 소득 수준의 경우, 중국은 1981년 이후 전 세계의 빈곤 감소에서 무려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12]

이러한 성장세는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훨씬 더 인상적이었는데, 이는 이러한 발전에 대하여 찬사를 받는 당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중위 소득 통계는 중국의 빈곤 감소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1981년에 중국 시골 인구의 중위 소득은 월 27달러에 불과했으며, 도시에서는 월 54달러였다. 2019년이 되면 중국의 월 중위 소득은 시골에서 243달러로 그리고 도시에서는 400달러로 증가하면서 각각 아홉 배와 일곱 배 상승했다. 다른 “개발도상” 국가들에서는 소득 증가가 훨씬 더 미미했다. 인도를 살펴보자. 1983년부터 2019년까지 인도 시골 지역의 중위 소득은 두 배 증가했고 도시의 중위 소득은 80퍼센트 상승했다. 긍정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중국에 비하면 훨씬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농촌과 도시를 구분하지는 않는 수치지만 방글라데시의 중위 소득은 1983년부터 2016년까지 겨우 45퍼센트 증가했다. 페루의 중위 소득은 1985년부터 2019년까지 겨우 15퍼센트 증가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오히려 1985년 수준 이하로 떨어졌다. 케냐, 아르헨티나, 코트디부아르와 같은 일부 국가들에서는 세계은행의 집계가 시작된 이후로 중위 소득이 감소해 왔다.[13] 중위 소득이 진정으로 강력한 성장세를 보이는 긍정적인 이단아들은 동남아시아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특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가 대표적이다. 베트남의 성장세는 그들의 제조업의 기적 덕분에 특히 강력하며 중국의 성장률에 다가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도 중국에서 목격했던 것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다.

2000~2015년에 있었던 원자재 호황과 이 호황이 간접적으로는 중국 성장의 결과임을 고려한다면, 중국 이외의 가난한 세계에서의 소득 증가는 여전히 미약해 보인다. 당시의 뜨거운 원자재 시장 덕분에 라틴 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소득을 늘리고 빈곤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소득 증가는 중국 성장의 부수적인 효과에 의존한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우려스러운 추세를 가리고 있었다. 바로 이들 국가가 가진 발전의 잠재력이 구조적으로 약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은 과거에 비해 소득은 더 높고, 빈곤은 더 낮다. 그러나 수십 년 전과는 달리 중국에서 목격했던 큰 도약의 발전은 현재의 가난한 국가들이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다.

 

30년의 황금기


그렇다면 대체 왜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대부분 국가의 구조적인 경제적 입지가 악화했을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계몽적인 세계은행 통계를 뒤로하고, 동아시아권이 아닌 빈곤한 세계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전후 시기 이들 지역의 궤도를 더욱 나쁜 방향으로 바꾼 세계 경제의 변화를 바라보는 총체적인 접근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돌이켜 보면, 역설적이게도 빈곤과 기아를 비롯한 다양한 불행의 척도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던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를 세계 경제 발전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서방은 ‘영광의 30년(trente glorieuses)’을 경험했고, 소비에트 블록은 상대적인 평화와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를 즐기고 있었다. 당시 세계 경제는 전무후무한 강도와 기간의 경제 호황을 누렸다. 가난한 세계의 국가에 있어서 이는 마치 원자재 슈퍼 사이클의 상승세에 따른 급속한 산업 확장과 함께 맹렬히 성장하던 시기가 30년이나 지속한 것과 같았다. 브레턴 우즈(Bretton Woods) 모델을 기반으로 구축된 국제 금융 체제는 자본 이동성에 제한을 뒀고, 금융의 안정성을 어느 정도 허용하면서 신흥 시장들이 공격적인 경제 발전 전략을 추진하는 데 도움을 줬다. 당시만 하더라도 요즘처럼 호황과 불황이 흔하게 반복되는 역학 관계는 없었다. 현재는 그 당시의 낙관론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대니 로드릭이 쓴 것처럼, 1945년부터 1975년 사이에는 브라질, 에콰도르, 멕시코, 이란, 파키스탄, 튀니지, 코트디부아르, 케냐 등 수많은 개발 도상국의 연평균 성장률이 1인당 2.5퍼센트를 넘어섰는데, 이는 대략 30년마다 소득이 두 배로 증가하는 걸 의미한다.[14] 당시에는 낙관적이고 국가 중심적인 국가 발전주의가 유행했는데, 이를 대표하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로는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Sukarno), 이집트의 나세르(Nasser), 가나의 은크루마(Nkrumah), 인도의 네루(Nehru)가 있다. 그들은 서방의 미학과 전망을 제3세계의 열망과 결합하여 단지 서방을 따라잡는 것만이 아니라 많은 면에서 그들을 뛰어넘고자 했다.

브라질이나 멕시코처럼 상대적으로 부유한 빈곤국의 성장세는 매우 강력해서 유럽 및 미국과 급속히 수렴하는 궤도에 놓일 정도였다. 만약 브라질의 1인당 GDP가 1970~1975년의 평균 수준으로 25년 이상 지속했다면, 그들은 2000년에 프랑스와 영국보다도 부유한 나라가 됐을 것이다.[15] 진보와 성장의 걷잡을 수 없는 행진이 너무나도 명백했기에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될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강력한 성과 덕분에 월트 로스토는 그 자신이 1960년에 존 F. 케네디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르헨티나,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인도, 필리핀, 대만, 튀르키예, 그리스와 같은 나라들이 “1970년이 되면 자급 자족적인 성장을 이룰 것”이며 이집트,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도 그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16]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다.

제3세계의 좀 더 가난한 나라들도 이러한 발전의 황금기에는 놀라운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콩고민주공화국(당시 자이르), 리비아, 잠비아와 같은 지역은 그들이 보유한 천연자원에 대한 수요 덕분에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신속한 근대화 추격에 전념했고, 거기서 거두는 수익금을 모부투(Mobutu)의 트리코(TRICO) 원자로나 가다피(Gaddafi)의 리비아 대수로(Great Manmade River)와 같은 새로운 인프라에 투자했다. 코트디부아르는 지금은 잊혔지만, 한때 “코트디부아르의 기적”이라 불리며 경제 발전의 모범 사례로 여겨졌다. 커피, 면화, 코코아와 같은 농산물의 높은 가격은 강력한 경제 성장을 이끌었는데, 코트디부아르는 1960년대에 연평균 9퍼센트, 그리고 1970년부터 1975년 사이에는 연간 7퍼센트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어느 연구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이 덕분에 “코트디부아르는 브라질, 한국, 인도네시아와 함께 ‘발전의 기적’이라는 명성을 얻었다.”[17] 이러한 “발전의 기적”을 바라보는 서방측은 어찌나 낙관적이었는지,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7년에 백악관에서 코트디부아르의 펠릭스 우푸에부아니(Félix Houphouët-Boigny) 대통령에게 찬사를 보내며 이렇게 선언했다. “개발도상국들이 정말 망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카산드라(Cassandra)[18]들에게, 우리는 매우 간단한 답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코트디부아르를 보라고 말이죠.”[19]
[1]
경제학의 “단순화”와 경제 이론의 빈곤에 대한 내용은 에릭 S. 라이너트(Erik S. Reinert)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Erik S. Reinert, 〈The Terrible Simplifiers: Common Origins of Financial Crises and Persistent Poverty in Economic Theory and the New ‘1848 Moment,’〉, 《United Nations Department of Economic and Social Affairs Working Paper》 (88), 2009.
[2]
로스토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David Milne, 《America’s Rasputin: Walt Rostow and the Vietnam War》, Hill and Wang, 2008, pp. 60-66.
칼도어와 프레비시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John Toye and Richard Toye, 《The UN and Global Political Economy: Trade, Finance, and Development》, Indiana University Press, 2004.
[3]
Dani Rodrik, 〈Unconditional Convergence in Manufacturing〉,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28(1). 2013, pp, 165-204.
 
[4]
Jesus Felipe, Aashish Mehta, and Changyong Rhee, 〈Manufacturing Matters… But It’s the Jobs That Count〉, 《Asian Development Bank Working Paper》 420, 2014.
[5]
(역주) 대약진운동
[6]
(역주) 문화대혁명
[7]
Our World in Data, 〈Life Expectancy vs. GDP per Capita, 1980〉.
[8]
Our World in Data, 〈GDP per Capita, 1978 to 1987〉.
[9]
Our World in Data, 〈Gross Domestic Product (GDP), 1978 to 1987〉, World Bank Poverty and Inequality Platform, 〈Country Profile: China〉.
[10]
Albert O. Hirschman, 《The Strategy of Economic Development》, Yale University Press, 1958.
[11]
World Bank Poverty and Inequality Platform, 〈Country Profile: China〉.
[12]
World Bank Poverty and Inequality Platform, 〈Country Profile: China〉. 데이터를 활용하여 직접 계산했다.
[13]
World Bank Poverty and Inequality Platform, 〈Poverty Calculator: Bangladesh, China, Peru, Kenya, Argentina, Côte D’Ivoire, India〉. 참고로 이것은 중위 소득 수치를 사용하고 있다.
[14]
Dani Rodrik, 《The New Global Economy and Developing Countries: Making Openness Work》, Overseas Development Council, 1999, pp. 68-72.
[15]
World Bank Data, 〈GDP per Capita (Constant 2015 USD)—Brazil, United Kingdom, France〉. 데이터를 활용하여 직접 계산했다.
 
[16]
Richard Toye and John Toye, 《The UN and Global Political Economy》, Indiana University Press, 2004, pp. 176-177.
[17]
Lawrence R. Alschuler, 《Multinationals and Maldevelopment Alternative Development Strategies in Argentina, the Ivory Coast and Korea》, Macmillan Press, 1988, p. 69.
[18]
(역주) 고대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예언가로, 주로 불길한 예언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19]
Lyndon Johnson, 〈Toasts of the President and President Houphouet-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