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락타트 이재영, 남아름, 조수근 - 내용을 존중하고, 형식을 배려하는 브랜드

내용을 존중하고, 형식을 배려하는 브랜드
트락타트 이재영, 남아름, 조수근


‘트락타트’의 옷에는 마치 책과 글처럼 형식과 내용이 있다. 진지한 이야기를 부담 없이 풀어내면서도 의미 없는 프린팅으로 면과 의미를 오염시키지 않는다. 그들의 티셔츠에는 존경과 배려가 묻어난다. 트락타트는 그런 마음이 우리가 무언가를 인용하고, 보관하고, 소중히 하는 동력이 된다고 본다. 오래 읽히고, 또 오래 입고 싶고, 오래 보고 싶은 브랜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책과 같은 옷을 만든다. 책과 같은 옷은 어떤 의미인가?

남아름(이하 ‘남’)
책은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룬다. 그저 종이 뭉치가 아니라 내용에 따라 엮여 있고, 물성이 있다. 중간을 펴볼 수도 있고, 밑줄을 칠 수도 있다. 이런 물성은 여러 간편한 방식이 나왔음에도 대체되지 않았다. 옷도 마찬가지다. 실용성과 보온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개성과 역사를 드러낼 수 있다. 심지어 옷은 인용도 된다. 한 디자이너의 옷을 바탕으로 다른 옷이 만들어지고, 또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옷이 쓰인다. 그런 점에서 옷과 책은 많이 닮아 있다.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측면에서도 트락타트의 옷은 책과 닮았다.

조수근(이하 ‘조’)
좋은 책처럼 읽을 수 있는 옷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을 때 좋은 문장은 오래 읽게 되지 않나. 찾아 읽기도 하고, 책 전체를 뜯어 보기도 한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트락타트의 옷도 그런 느낌이었으면 한다. 뜯어 보고, 읽어 보고, 애정을 가졌으면 한다.

책과 옷의 교집합에서 탄생한 브랜드처럼 보인다. 팀을 이룬 셋의 만남도 비슷했나?

이재영(이하 ‘이’)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다. 함께 독서 모임 세미나를 했고, 페미니즘 교지를 만들었었다. 함께 밤새우면서 교지 만들고, 책을 읽다가 아침이 되면 동묘에 가서 함께 빈티지 옷을 구경했다. 철학 공부도 하다 보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철학과 옷, 글이 얽혀 삼위일체가 됐다. 우리끼리는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지금 옷을 만드는 과정이 예전에 교지를 만들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기획하고 쓰는 과정 자체가 옷을 만드는 과정과 유사하더라.

왜 하필 철학자의 얼굴로 티셔츠를 만들었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은 의미였다. 그래픽이 박힌 옷은 이미 많지 않나. 우리는 조금 더 궁금하고, 철학을 갖고 있고, 의미가 있는 내용을 옷에 담고 싶었다. 한 명의 철학자, 그의 얼굴이 지니는 의미는 이미 다층적이다. 다양한 영향력과 담론 아래에서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그냥 철학자의 얼굴만 넣은 게 아니라 레이저나 광선과 같은 요소도 넣은 이유가 있다. 한국 사회에 철학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마 니체가 지금의 한국 사회를 본다면 눈에서 레이저를 쏘지 않을까.
WALTER BENJAMIN White ©트락타트
트락타트의 옷은 누가 입을 것이라 생각하고 디자인했나?

명확했다. 처음으로는 우리 자신이었다. 100장을 처음 찍어낼 때 이 100장을 다 내가 입어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대학원생이면 트락타트의 옷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나와 같은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개인적으로 활동적인 편은 아니지만, 화려한 록 티셔츠는 좋아했다. 이런 생활 패턴과 취향을 가진 사람이 정말 많을 텐데 생각했다. 오히려 이들이 사고 싶은 옷을 못 찾아서 항상 불만족스러운 소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개인적으로 제작했던 벤야민 티셔츠를 보고 주변의 대학원생들이 자신도 만들어 달라며 문의를 한 적이 많았다. 실제로 10명 정도에 티셔츠를 만들어 줬던 것 같다.

케어라벨까지 판권지를 닮았다. 옷에도 판권이 필요한가?

판권지는 책과 같은 옷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판권은 누가 만들었고, 왜 만들었고, 언제 만들었고, 몇 판인지, 몇 쇄를 찍었는지까지 책의 모든 정보가 담긴다. 옛날 철학 책을 보면 1판이 1800년대인 경우도 있는데, 그런 판권지를 보면 ‘참 책답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 옷도 그렇게 소중하게, 오랫동안 관리하고 싶었다. 언제 이 옷을 만들기 시작했는지도 쓰고 싶었고, 이 옷을 만들게 된 경위도 라벨로 설명하고 싶었다. 원래는 몇 번째로 찍은 옷인지도 썼는데, 지금은 그 정도로 철저하지는 못하다. (웃음)
케어라벨 ©트락타트
시즌에 맞춰 어울리는 철학자를 선정하고, 라벨까지 디자인하며 콘셉트를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브랜드의 철학과 콘셉트를 확실하게 설정한 이유나 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철학자 벤야민의 철학으로 브랜드 이름까지 정하고 나니 이상한 걸 못하겠더라. 콘셉트가 어긋난 걸 만들면 누를 끼치는 느낌이 들었다. 혹자는 왜 니체나 벤야민을 희화화하냐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우리로서는 희화화한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만든 철학자 프린팅에는 애정과 존경이 듬뿍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일에 대해 가진 생각도 자연스러운 동력이 됐다. 옷을 만들기 전까지는 나인 투 식스도 아니라 나인 투 나인으로 일했다. (웃음) 나의 경우에는 이런 삶을 살다 보면 가장 먼저 사상을 놓게 되더라. 사실 가장 중요한 건데 말이다. 우리의 철학을 담고, 우리가 원하는 사상을 담고 싶다는 동력이 자연스럽게 콘셉트로도 이어진 것 같다.

면으로 만든 옷에 철학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새 시대의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패스트 패션 산업과 빈티지 문화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이한 옷, 예쁜 옷을 만드는 건 모든 디자이너가 원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더 나아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튼튼한 옷에 대한 열망이 있다. 나는 옷집 아들이라 새 옷은 잘 사지 않았다. 집에 있는 옷을 주로 입었고, 커서는 거의 빈티지 옷만 사 입게 됐다. 일을 돕기도 하고, 현장도 경험하면서 많이 만들고, 빨리 만들고, 싸게 만들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면이라는 소재가 이런 점과 잘 맞는다. 면은 주인이 잘 다루고, 소중하게 생각하면 오래 살아남는 소재다. 최근에는 면이 아닌 다른 튼튼한 원단들, 그중에서도 린넨과 리사이클 폴리 원단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고 있다.
작업 무드보드 ©트락타트
책은 오래 읽힌다. 오래 입는 옷에도 비슷한 특징이 있을까.

일단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가장 중요하다. 옷을 많이 입어 봤지만, 결국 내 일상과 맞지 않는 옷에는 손이 안 가더라. 그래서 트락타트도 우리 옷을 사는 독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많이 생각한다. 우리도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삶의 방식이 친숙하다.

실제로 리서쳐 팬츠, 리서쳐 후디는 연구자를 위한 옷이다. 의자에 팔꿈치를 잘 부딪히게 되는데 그럴 때 전기가 오르지 않나.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팔꿈치 쪽에 천을 덧댔다. 앉아 있는 사람에게 잘 맞도록 무릎이 늘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디자인을 넣기도 했다.

튼튼함도 중요한 요소다.

튼튼하다는 것은 원단이 질기다는 것 외에도 여러 요소를 포함한다. 보관이 쉬운 것, 물빨래가 가능한 것, 구김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 부자재를 최소화하는 것까지 모두 튼튼함의 요소다. 트락타트는 구김이 가도 멋스러운 옷, 물빨래가 가능한 튼튼한 옷을 만든다. 오래, 또 자주 꺼내 입을 수 있도록 말이다.

튼튼한 옷은 전자기기와 반대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기기는 아무리 세계적인 기업이라도 계획된 노후화를 전략으로 삼는다. 일부러 낡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경향이 패션계에도 넘어온 것 같다. 점점 옷이 전자기기처럼 바뀌어서 튼튼함을 잊어 가고 있다. 자연스럽게 늙을 수 있는 옷이 옷다운 옷이라고 생각하고 만들고 있다.

트락타트의 다음 계획이 궁금하다.

장기적으로는 재킷과 셔츠류를 늘리고 싶다. 조금 더 독자의 라이프스타일과 활동 반경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읽는 사람’하면 정적일 것 같지만, 그런 면만 있는 건 또 아니니 말이다. 다양한 빈티지 아카이브를 참고해서 활동적인 면을 디자인에 더 담아내고 싶다.

나의 경우에는 세 가지로 목표를 분류한다. 단기적 목표로는 카프카를 모르는 한국 사람이 없도록 만들고 싶고, 중기적으로는 철학책 독서율을 끌어올리고 싶다. 최종 목표로는 우리가 직접 매거진을 만들고 싶다.

문학이나 철학은 정적이고 고루할 것 같다. 이런 고정 관념에 균열을 내는 것이 나의 첫 번째 목표다. 왜 학문적인 영역을 스트릿 의류로 옮겨 왔나를 다시 생각해 봤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자기만의 방’을 만들게 된다. 그 이후가 더 중요한 것 같다. 타인과 교류하고, 자신이 방에서 배운 것을 나누는 방식으로 그 경험을 세계로 확장할 수 있다. 트락타트에 달린 독자들의 리뷰를 보면서 그게 어쩌면 옷을 통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교수와의 면담이나 독서 모임에 티셔츠를 입고 나간다는 분도 있고, 옷을 통해 친구들에게 철학을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이 더 늘어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애정이 가고, 위트 있고, 파격적이어야 하겠다. (웃음)

김혜림 에디터

* 2024년 2월 20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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