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이 잊힌 대륙
1화

글로벌 비즈니스의 새로운 지정학

중국과 미국의 기업들이 전례 없던 방식으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정확히 20년 전,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라는 이름의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경영하던 어느 스타트업의 주가는 12개월째 71퍼센트나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아마존(Amazon)이라는 이름의 그 회사가 거의 죽을 뻔했던 경험은 실리콘밸리의 오만함을 드러냈던 닷컴 붕괴의 일부였다. 엔론(Enron)이 저지른 140억 달러에 달하는 사기 사건과 함께 미국식 비즈니스가 갖고 있던 자존심을 산산조각 냈다.

한편, 중국은 삐걱거리며 움직이던 국영 기업들을 민영화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들이 기업가 정신 문화를 조성할 수 있으리라는 조짐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유럽에서는 밝은 희망이 보이고 있었다. 유로화라는 새로운 단일 통화 체계가 도입되면서 비즈니스 친화적이며 하나로 통합된 거대한 시장이 창출되리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다.

때로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모든 예측을 우습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판데믹 이후의 비즈니스 세계는 우리가 지난 20년 전에 예상했던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기술 기업들이 전 세계 주식 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지리적 편중은 더욱 심화되었다. 미국, 그리고 갈수록 영향력을 키워가는 중국이 세계 최대의 가치를 지닌 100대 기업 가운데 76개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에 41개를 차지했던 유럽은 현재 15개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불균형은 대부분 미국과 중국의 기술력, 그리고 유럽 및 기타 지역에서의 안일함이 반영된 것이다. 그래서 크게 두 가지의 의문이 든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인가? 그리고 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그 자체로만 보면, 대기업들은 중소기업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일본이라는 주식회사의 지위는 1980년대에 급상승했지만, 이내 무너졌다. 대기업이라는 지위는 성공의 신호일 수도 있지만, 나태함의 조짐일 수도 있다. 세계 2위의 기업 가치를 지닌 사우디아람코(Saudi Aramco)는 2조 달러라는 수치로 대변되는 초강세 기업이라기보다는, 화석 연료에 대한 사막 왕국의 위험한 의존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유형의 거대 기업이 있다면, 크고 효율적인 기업들이 만들어지고 경쟁에 의해서 도태되고 있다는 것으로, 비즈니스 생태계가 건전하다는 신호다. 그것이 바로 생태계의 장기적인 수준을 끌어올리는 비결이다.

미국과 중국의 지배력을 이해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전 세계 생산량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점유율과 기업 활동(business activity)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을 비교하는 것이다(기업 활동이란 전 세계 증시의 시가 총액, 주식 공모를 통한 수익금, 벤처캐피털로부터의 자금 조달, “유니콘” 또는 그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세계 100대 기업 등에서 양국이 차지하는 비율로 정의한다). 이러한 기준에 의하면, 미국은 전 세계 GDP의 24퍼센트를 차지하지만, 기업 활동에서는 4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GDP의 18퍼센트, 기업 활동의 2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인구의 77퍼센트가 살고 있는 그 외의 나라들은 그들에 비하면 한참 아래의 체급이다.

이러한 현실은 유럽이 낭비해 버린 기회로 일부 설명할 수 있다. 2011~2012년에 있었던 부채 위기와 정치적 간섭으로 인해서 유럽의 경제적 통합이 지연되었다. 유럽의 기업들은 무형 경제(intangible economy)로의 전환을 대부분 예상하지 못했다. 유럽에는 아마존이나 구글에 대항할 만한 스타트업이 없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이다. 10년 전, 브라질, 멕시코, 인도는 거대한 글로벌 기업 집단을 만들어 낼 태세였다. 그곳에서 태어난 글로벌 기업은 거의 없다.

대신에 오직 미국과 중국만이 창조적 파괴의 프로세스를 갖출 수 있었다. 설립 25년 이내이며 기업 가치가 1000억 달러를 넘는 기업 19곳 가운데 9곳이 미국에 있고 8곳이 중국에 있다. 유럽에는 하나도 없다. 애플이나 알리바바처럼 이미 성숙한 테크 기업들이 지배 체제를 더욱 공고히 다지려 해도, 스냅(Snap), 페이팔(PayPal), 메이투안(Meituan), 핀듀오듀오(Pinduoduo) 같은 신생 테크 기업들이 점점 더 폭발하기 직전의 단계에 다가가고 있다. 이번 판데믹은 미국과 중국에서는 에너지 폭발을 일으켰고, 자금 조달에서도 호황을 불러왔다. 두 나라의 기업들은 핀테크(fintech)나 전기차와 같은 신기술 분야에서도 선두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의 마법 공식에는 수많은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다. 내수 시장의 규모가 큰 덕분에 기업들이 빠르게 몸집을 불리는 데 도움이 된다. 두터운 자본 시장과 벤처캐피털들의 네트워크, 그리고 일류 대학들이 스타트업의 끊임없는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가들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중국의 재계 거물들은 “996”이라는 근면한 직업관을 자랑하는데, 이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한다는 의미이다.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테슬라의 공장 바닥에서 잠을 잔다. 무엇보다도 정치권이 이러한 창조적 파괴를 지원한다. 미국은 안락한 유럽에 비해서 오랫동안 더욱 많은 파괴적 혁신(disruption)을 감내해 왔다. 2000년 이후 중국의 통치자들은 기업가들에게 마음껏 할 수 있는 재량권을 주었고, 국영 기업에서 800만 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최근에 양국에서 이와 같은 정치적 유사성이 사라지고 있는 데에는 이러한 지배력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날 수도 있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미국인들은 저임금과 독점뿐만 아니라(2018년 본지의 추산에 의하면, S&P500 기업들의 약 4분의 1에서 반독점 위반의 소지가 있었다), 국가적 쇠퇴를 우려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쟁을 장려하는 한편, 사회 안전망을 확충해서 파괴적 혁신으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를 지지한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계속해서 보호무역주의와 (정부가 개입하는) 산업 정책, 그리고 좌파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자본에 대한 징벌적 세금(punitive tax) 등을 향해서 표류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런 움직임이 비즈니스의 활기를 약화시키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거대한 민간 기업들이 공산당의 권력과 사회 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있다. 재계 거물들에 대한 위협은 지난해 알리바바의 공동 창업자인 마윈(馬雲)에 대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위협은 그 이후로 다른 기술 대기업의 수장들을 향해서도 확대되어 왔다. 공산당 관계자들은 일부 기술에 대한 국가적인 자급력 확보 등의 정책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주요 민간 기업들을 “지도”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만큼, 중국도 자유주의 진영의 경쟁자들로부터 자국의 기업들을 보호할 가능성이 역시나 높은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에 대한 개입을 더욱 확대할수록, 세계의 나머지 국가들은 글로벌 비즈니스에서의 지리적인 편차가 더욱 심화될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론적으로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판매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만 한다면, 누가 그 기업의 국적을 신경 쓰겠는가? 그러나 기업들이 자국 내에서 정부에 의해 휘둘린다면, 그 계산법은 복잡해진다.

세계화가 전개되면서, 다국적 기업들이 어디에서 백신을 생산하고, 어떤 나라의 디지털 관련 조항을 적용하고, 어느 곳에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지를 두고 벌써부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은 규제의 초강대국이 되려 하지만, 그 희망의 실상은 보호무역주의라는 치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 될 수 있다. 영향력이 덜한 국가들도 장벽을 세울 수 있다. 인도는 자신들의 자주권을 주장하면서 중국의 소셜 앱들을 금지했고, 미국계 이커머스 기업들의 사업을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현지의 소비자들에게는 세계적인 혁신 기술을 접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고, 현지의 기업들에게는 규모를 확장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장벽을 쌓는 것이기에, 최악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나무가 아니라, 그 씨앗을 봐야 한다

만약 세계에서 창조적 파괴의 프로세스를 대규모로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나라가 단 두 곳뿐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것은 비극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두 곳이 그러한 사실을 외면한다면, 그리고 다른 나라들은 패배를 인정하고 장벽을 쌓아 올린다면, 그것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래도 만약 20년 후에 세계 최대 기업들의 목록이 오늘날의 현실과 완전히 다르다면, 오늘의 현실은 적어도 성공에 대한 아주 좋은 척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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